치창훌jjl.j혜 30 년사 The Presbyterian Church of New Jersey : A 30-Year History 1972-2002
치황료.iitj헤 30 녕샤 The Presbyterian Church of New Jersey : A 30-Year History 1972-2002 뉴저지장로교회 로고 01 의 로고는 뉴저지 장로교회가 위치한 -, I NEW JERSEY의 영문머리글자인 N과 T 가 겹쳐지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 가와기독교를상징하는 물고기 형상을이루고 있으며,물고기의 몸체와꼬리는대한민국을상 징하는 태극기의 색상t빨강과 파랑)을 띠고 있 다. 따라서, 로고 전체가나타내는 바는 “한국인 의 정 체 성 (IDENTITY)을 가지 고 미 국 NEW JERSEY에 자리잡은그리스도를 중심으로하 는기독교회 “라고하겠다. (도안: 김창길목씨 ~OV많LAPPING LEIT많SOF ‘N’ AND l ‘J’ FORM THE CRUCIFIX AND FISH IN R퍼R페I없ANCEOFαfRIST. THE TA표 AND BODY OF THE FISH ARE ABS1RACIED AND mWRED WIIHTHE CEN1RAL HUES OFπffi KOREAN FlAG, RED AND BLUE. BY THESE VARIOUSSY뼈OUSMS, WE MEAN TO GIVE REFERENCE TO OUR MULTI-FACETED IDl많‘ITIIY AS Þ,표뼈많SOFπffi CHRISTI때 COMMUNITY IN NJ, AS 1\\표MBERS OF 깐ffi KOREAN-Al\\표IDCANm:rvαIDNITY II'‘~N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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룹갚:ll^ t 예수닮기원하는사람들 당회장 김 창 길 목사 1 1967 년 J.F. Kennedy대통령의 Kennedy Doctrine 이 발효되면서 한국의 전문직 고급 두뇌들이 미국의 영주권을 얻어 미국이민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조국은 경제 적으로 가난했고 정치적으로는 군사정권으로 불안했을 때이다. 많은 젊은 지성인들이 신 앙의 양식을 가지고 살아보려는 생각으로 조국을 놔두고 미국의 대도시를 찾아 떠나오 게 되었다. 허드슨 강을 옆에 자리하고 맨하탄을 마주 보고 있는 뉴저지 저지시티 메디 칼센터에는 많은 간호원들과 의사들이 쉽게 취업할 수 있는 병원이었다. 한때 메디칼센 터는 한인 간호사들이 오 육십 명이 넘게 근무했고 의사들이 열 명이 념게 근무했다. 다 른 직종 전문직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맨하탠11 직장을 얻고서 Path Train을 타고 저지 시티에서 뉴욕 맨하뺀1 출퇴근할 때이다. 그때 1972년 8월13 일 사일러스 칸덕트 공원(Silas Condict Park)에 장영춘 목사님을 모시고 20 여명이 모여 높고 푸른 하늘을 지붕 삼고, 싱그러운 숲을 벽으로 여기고, 땅 바댁11 주저앉아 첫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뉴저지한인장로교회의 시작이란다. 뉴저지 주는 미국에서도 작은 주에 속하지 만 뉴욕 시를 옆에 두고 미국의 지성을 자부하는 엘리트 주다. 미국에서 제일 역λ까 오 래된 신학교인 Brunswick The이ogical Se뼈nary가 Rutgers University 안에 있고 세계 장 로교 최고의 명문신학교인 Princeton πleologic따 S않1Íllary가 Princeton University 안에 있다. 또 감리교의 유명한 신학교 Drew Divinity School 이 Drew Universtiy 안에 있다. 조선에 처음 복음을 들고 찾아오신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님은 Brunswick신학교 출신이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라 목사님은 Drew신학교 출신인 것을 기억한다. 뉴저지
--- ‘양쩌 #;*{;, 0 ’=-.:;:a:2: 130 념사 주는 한국교회와 의미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 많뻐on이 뉴저지 중부 사람이고 스티븐스를 기념한 공과대학이 허드슨 강변에 었다. 허드슨 강을 건너자마자 Columbia University와 New York University, 줄리아드1 맨하탄, 맨내스 음대들이 뉴욕에 있다. 뉴 저지는 문화, 정치, 경제, 과학, 종교 교육, 음악이 민첩하게 움직이는 뉴욕 메트로풀리 탄에 속해 있다. 강 하나 다리건너, 해저터널을 넘어, 있다. 그 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맨하탠써 일을 하고, 살기는 뉴저지에 건너 와서 살았다. 이제 우리 교회가 미국 뉴저지에 세워진지 어언 30년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의 선배 는 공원에서 푸른 숲을 바라보면서 예배드리기 시작해서, Jersey City의 Redeemer Lutheran Church에서, Secaucus의 First Reformed Church에서, 다시 Jersey City의 The Evangelical Free Church에서, 또다시 Palisades Park의 Calvary Church 등에서 셋방살이 교회생활을 하다가 16년 전 Palisades Park 본당을 사교 두 교육관을 사고 7년 전에는 Oakland에 28 에이커(약 3만 3천 평) 예닮원을 샀다. 처음 20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1,000명이 넘는 식구가 되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역사{뚱事)이오며 전적인 하 나님의 은혜이다. 뉴저지 주 150 여 개가 넘는 한인 교회 중에 현존 두 번째 역사{歷史) 를가진교회가되었다. 2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뉴저지장로교회의 과거 역사를 서술하면서 하나님의 역새投 흉원를 찾아내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끝난 것이다.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자래現f맨Yf)를 찾아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 깨닫고 구원의 자리로 옮겨가는 미래지향적, 즉 생명의 구원지리에 들어가 는것이다. 이민자는 나그네로 산다. 이 땅에서 기독교인들은 순례자로 산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닮아 사는 순례자이다. 4
‘얄견사 뉴저지장로교회 30년 교회 여정을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엄마누엘)는, “모 든 얼에 하나념이 이기셨다\"(여호와 닛시)는, 그 하나님에게 알렐루야 아멘 하는 고백과 찬송과 선앙과 기도이다. 30년이 지나면 반세기가 다가오고 반세기가 지나면 한 세기가 온다. 시간은흐르고흐르지만 주님의 교회는 영원하다. 알렐루야!아멘! 3 교회는 세^cf에서부터 부름 받아 선택된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뉴저지장로교회의 목표는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될예닮원)’ 에 있다. “이는 근본 하 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 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자기를 낮추 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섬이니라\"(빌립보서 2:6-8). 도성인선(道成N神 : Incarnatíon)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순종이셨 고 우리 인간에 게는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희생으로 찾아오셨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길 은 날마다 자기를 부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다{마태복음 16: 2껴. 예수님의 성품을 닮ö}가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교회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뉴저지장로교회의 기능은, 첫째로, 말씀선포와 성례전이 살아 았는 올바른 예배에 있으며, 둘째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도록 가르치는 교회학교 교육에 있으며 , 셋째로, 세상 끝 날까지 이르라 복음의 증인이 되는 전도와 선교에 있으며, 넷째로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처럼 세상과 인간에게 섬김과 봉사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 안에 있는 이민교회로서 또 다른 역할이 있어야겠다. 5
영양“ #루 \"\"'ÃI 장뚫쿄호어 n 년 ^t 1. 한국 기독교인의 가치관 확립으로 Korean-Am앉lcan의 주체성 위기를 극복-케 해야 한다. 2. 복음적인 신앙으로 교회와 교피를 넘는 에큐메니칼적인 교회운동으로 세속주의와 이기주의와 종교 다원화주의를 극복케 해야 한다. 3 뉴저지장로교회는 COlllll1unity Church Center가 되어야 한다. City와 County와 S빠빡 국가를 위해 있어야 하는 교회이다. 지역사회의 문제가 교회의 문제가 되어 기도하고 고민하고 같이 해결해야 한다. 교회가 지역에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예배만 드라고 끝나는 것 01 아니라 1주일 내내 예배와 신앙집회 그리고 Service가 있는 교회이기를 바란다. 4 먼저 받았으니 다시 주는 교회 한국장로교회의 좋은 선앙과 부흥을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베풀어 다시 역선교 를해야한다. 5. 요셉, 다니엘, 모세, 바울, 주기철, 손OJ:-원과 같은 2세 3세 인물을 길러야 한다. 6. 한국인끼리만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미국인과 세계인과 더불어 함께 하는 교회를 만들어야한다. 7 믿음가지고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8. 현재보다 미래지향적(전국시민)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뉴저지장로교회는 이런 선앙과 비전을 가지고 30년 동안 점진적으로 이루어 왔고 앞으로 계속해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께로 가까이 주님을 닮아 가는 교회 가되도록할것이다. 4 20년 시를 쓰려고 기획하고 애썼지만 안 되었다 역사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닌가보다. 때가있고사람이 있어야한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 30년 사를 위해 사무 장로요 수펼가언 최영선 장로님을 준비해 놓으셨대여호와 이레) 그의 믿음과 사명감, 문장력, 역사를 관찰하는 예리함을 통해 교 6
에수 닮기 원하는 사람율 회사를편찬케허셨다. 원고를 정리해준 비서 오민재마르다) 집λh 임경순 집샤 안정옥 집λL 이영채 집λh 양혜정 집사들께 감사를 드린다. 많은 자료가 없어 안타깝고 01쉬웠다. r.뉴저지장로교회 30년사」는 뉴저지주 안의 한국인교회들의 역사요 한국동포의 역사이다. 이 조그마한 서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후손들에게 진솔한 우리의 모습을 건네주기 위하여, 후학들의 초기 동포교회사 및 이민학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그저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2002 년 봄, 예닮원 목사관에서
;ζ~ c= 누구:;;;;;;-1 :;;;;;;1 。 독교호 1 30 닌^~ !ll,,:1:;~,,~ ’-~ 구륨위하늘은’맑음’ 역사편찬위원회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들’이 걸어온 지난 30개 성상의 발X태를 더듬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사랑하사 선진들의 고귀한 헌신과 엽적을 찾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있어 사랑으로 아낌없이 격려해 주선 본 교회 여러 교우들께 감사 드립니다. 새벽재단에 서 온 교우들이 통성으로 기도해 주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무릎을 조아 려 기도해 주선 교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한편 30년 간의 생생한 자료를 제공해주시교 서슴없이 증언에 응해주신 여러분들에 게 마음 갚이 고마움을 전하는 바입니다. 이 엄청난 책임을 맡고서, 우리는 두려움이 앞섰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힘 에 겨운 막중한 일인 까닭입니다. 정작 한 권 책으로 묶게 되고 보니 어설프기 이를 데 없고 본의 아니게 왜곡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기 역사 편찬 때 바로 잡 고 보완하면, 진실에 보다 더 접근하는 초석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작은 정성이 우리 교회 역사 정럽에 길라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I願]이 있을 뿐입니다. 본 교회사를 엮어가면서 새삼 깨닫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역사의 주인이시고, 주관자시라는 사실의 재인식입니다 자못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역λ까 이루어져 나간다 는 생각을 절대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헛된 포상의욕에 사로 잡혀서도 아니 될 터이고요 또,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라 안에서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 앞에 설 때 정녕 부끄럼이 없고 후세들에게 아름다운 흔적과 본을 남기겠구나 하논 생각도 듭니다. 바로 그런 깨달읍이 소중하기에 일말의 보람과 긍지도 느낌니다. 돌이켜보면, 시련을 통하여 교회가 더욱 성숙해갔습니다. 성도들의 눈묻 어린 기도 거기 친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내리신 용기로 말미암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 었습니다 8
연창샤 우리 교회 역사는 마치 비행기여행에 비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 있을 때는 날씨가 구 질구질하고 비가 내렸으나 비행기를 타고 치솟아 올랐더니 구름 위 하늘은 맑았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구름 대를 지나 맑은 하늘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립 니다. 내 제단을 굳건히 지켜오신 ‘지킴이’ 성도들께 감사 드리며 치하하는 바입니다. 누군가 ’역사는 전쟁의 기록’이란 말을 했습니다만, 역경과 고난의 이민 역사 속에서 도 교회를 섬기며 굳건히 제단을 지켜온 우리들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이 김 주시는 하나님께 다시 감사 드립니다. 아무쪼록 바라기는, 이 작은 기록이 우리 교회의 참모습으로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랍 니다. 또한 욕심을 부려 미주 한인 교회사의 일익을 담당하는 자료가 되었으면 승F는 작 은기대도갖습니다. 이쉬움으로 남는 것은 조금만 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더욱 알차고 충실한 교회사 를 꾸밀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마련이 있습니다. 너무 조급했다는 것이, 아니면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희들의 변이라면 변입니다. 이나마도 어떤 이는 ’기적’이란 표 현을 감히 썩도 했습니다. 애초부터 개인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디루려는 의도가 절대 없었습니다. 이것은 교 회의 역사일 뿐이지 한갓 목사나 어느 한 개인의 역사는 절대 아닌 때문입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단순한 교회 역사의 기록을 넘어, 일 개인에 대하여 과대한 양이나 지 나친 표현이 가미되기도 하였으리라는 염려를 해봅니다. 이는 오로지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오니 넓은 해량으로 양지하여 주시기를 아울러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저희들이 역사 편찬을 위해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하다 보니 너무나 귀한 자료들이 저 희 편찬위원들 손에 쥐어졌습니다. 발행인의 뜻도 그러하려니와 저희들도 버리기에는 너 무나 이깝다는 생각이 들아 모두 묶다 보니 처음 생각보다 방대한 감이 들기도 합니다. 나무람을 주십시오 그리고 잘 못된 부분이나 누락된 부분을 지적해 주십시오 얼마간 의 해가 지난 다음 가편챈b밟遍劃할 때 필히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진실에 가까 운 역사서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간단없는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 이 자리를 벌어, 우리교회 30년사 발죠딸 위해 선두에서 지휘하신 당회장 김창길 목 새 자료를 뽑느라 힘쓴 안덕원 목새 30년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감수를 맡아준 오안순 권사와 양호식 장후 본 교회 설립의 시대적 배경을 조망한 조종무 집새 영문 약사를 담 당해준 김영일 집사 · 구자섭 권사 내외와 유진 양, 많은 자료를 일일이 추리고 타이핑해 ’9
준 오민자 집λh 교정을 봐준 조성자 집λh 자치회 임원 명단과 통계자료를 추려준 임경 순 집λL 자료를 복λL 타이핑해 준 안정옥, 이영채 집λh 특히 많은 양을 찍어주고 파일 을 정리해 준 양혜정 집사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서울에서 많은 도움을 준 안소라 양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부록의 취합과 일부 영문번역을 해준 최영준 집새 그 외 부록 자료들을 타이 핑해준 대학 · 청년부{구혜리 김민정 김정란 김정윤 김지운 김지환 Heather Lee박영상 박진호 오현주 윤두희 이동수 이주엽 임소연 정진호 최다미) 여러분께와 일부 영역(英 짧을 담당해준 김혜숙, 박상태 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도움을 준 김성훈 목사{뉴욕중앙일보 종교섹션 담당 객원기 자-), 쪼들리는 시간 중에 밤잠을 설치며 서둘러 출판해준 한국의 ‘도서출판 그리심’(대표: 조경혜 권새 여러분께도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 외에도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본 역사편찬 위원들은 애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라며.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강받降뼈과 은 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법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2002 년 6 월 30 일 위원장 최영선 김영일 김 진 안정옥 오민자 오안순 유동우 위원 김성인 이인용 임경순 장화인 정주업 조성자 조종무 유방원 최창화 황종태 최영준 10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들 차례 Contens 발간사 / 김창길 목사 Preface: Editor\"Îll-대M, Rev. 힘m αumg α1 • 3 편찬사 / 역사편찬위원회 많itor: Church 돼S때 cc血pilation Co뼈i뼈e.8 1 부 우리 교회가 태어난 배경 The Background of 0따 Church’s Founding • 8 1. 시대적 배경 돼storical Background • 16 2. 교단적 배경 Denominational Background • 21 2 부 우리 교회의 발지취 The ChllfCh History • 25 1. 창립기 많iy Period (1972 - 1이9) • 26 (1) 태동기 Inception Period (1972 - 1973) • 26 (2) 격동기 Turbulence Period (1974 - 1975) • 55 (3) 과도기 Transitional P,앉iod (1976 - 1979) • 68 2. 중흥기 Restoration Period (1980 - 1984) • 113 3. 안정기 Stab파ty Period (1985 - 1990) • 201 4. 성장기 Growth Period (1991 - 1995) • 299 5. 성숙기 Maturity Period (1996 - 2002) • 388 6. 미 래기 Future Period • 505 3부 영문약사 Sunnnaty in 당l생ish Trans1ation • 511
z ‘1=1. 느주;케 ;;;1 。 추 i고 ~I 30 단 ^t 4부 생생한 기록들 Memorable Rε, cords • 537 1. 공동의회록 Public meeting Records • 538 2. 제직회의록 Church Committee meeting Records • 548 5부 모음 Collections) • 653 1. 연두 메시지 모음 Collection of Pastor's New Year Messages • 654 2. 목회 보고서 모읍 Collection of Ministry Reports • 670 3. 월요영어학교 보고서 Report of Monday English School • 687 부 록 (Appenψ‘) • 697 1. 뉴저지 장로교회 연혁 History of Presbyterian Church of New Jersey • 698 2. 연도별 표어 와mual Goals • 716 3 연도별 연중 행사표 Annual Events Chart • 718 4. 2002년도 본 교회 조직표 Church Organization Chart of Year 2002 • 744 5 역대 교역자 명단 Chronological List of Ministers • 745 6. 역대 헝존직 명당 Chronologic따 List of Church Leaders • 751 1) 장로 Elders • 751 2) 안수집사 Deacons • 753 3) 권사 Kwonsa, Senior Deaconesses • 755 7. 역대 교회 직원 명단 Chronological List of the Church’s Administration • 758 8. 연도별 제직 명단 Annual List of Adrninistr때ve Leaders • 759 9 선학교 · 뉴저지 성서대 졸업 / 재학 교우 명단 The List of Graduates and Current Students of Theological Seminaries/ The New Jersey Bible Institute • 784 10 연도별 장년 재 적 교인 명 단 Annual List of the Church’s Registered Elderly Members • 787 12
;;,]i!ìl 11. 유아세례, 입교, 학습, 세례자 명단 List of Infant Baptisms, Entering-a-faith, Studying, and the Baptized • 814 12. 연도별 각 자치회 임원 명단 Annua1 List of Associations / Group 0짧cers • 822 13. 연도별 교회학교 교사 명단 Annua1 List of Sunday School Teachers • 837 14. 역대 성가대 지휘, 반주, 독창자 명단 Chronologica1 List of Choirmasters Accompanists, and Soloists • 846 15. 연도별 성가대원 명단 Annua1 List of Choir Members • 849 16. 연도별 구역 조직 Annua1 List of Cell Groups • 860 17. 결혼, 별세, 입택 이새 개업자 명단 List of Church Weddings, Funera1s, Hous응 wannings, and New Business Establishments • 870 18. 연도별 새 교우 명단 New Annua1 List of New Fellow Believl없 • 881 19. 각종 집회 총람 Compreh않lsive Record of Various Church Meetings • 894 (1) 제직 수련회 Leaders’ Re뾰ats • 894 (잉 전 교우 하기 수련회 αlurch-wide Summer Reσeats • 895 (3) 부흥회 Reviv머 Wo빼ps • 896 (씨 간증집회 Testimo띠와 Meetings • 897 (5) 신앙깅좌 Seminars • 897 (이 주일 대예배에 내방 설교한 외부 목회자 Gu않t Speakers(pastors) for Sunday Worship Ser띠ces • 898 (7) 기타 Miscell뻐eous • 905 20. 문예지 발행 총람 Comprehensive Record of Various αlurch Publications • 910 21. 음악예배, 음악회 총람 Comprehensive Record of Musica1 Concerts and Services • 914 22. 예배 처소 · 부속 부동산 이전/매입 일지 Church Plac않 of Worship, Records of Annex Building Purchases / Transfer, Church Properties • 919 23. 연도별 각종 통계 Various Annu때 Statistics • 922 1) 교인 출석 통계 Church Member Attend때ce • 922 2) 헌금 통계 Various oftì떠ngs • 929 ~.
à I-ii:므 느주~-t ~I . Ò .......... .:L고호 24. 봉헌, 봉사자 명 단 List of Church Contributors and Dedications[Contribut- ions] • 933 25. 각종 규정, 내규 및 회칙 Various Regulations, Bylaws, and Detailed Rules • 941 (1) 재직회 각 부서별 임무 Roles of Associations / Groups • 941 (2) 장학위원회 회칙 Rulεs of Scholarship Foundation • 944 (3) 교회 묘지(임마누엘 동산) 관리 규정 Church Cemetery [Emmanuel Hill] M빠ltenance Regulations • 945 26 자치회 회직 The Group/Association Regulation • 948 (1) 임마누엘회 회칙 The Emmanuel Association of Mission Ad빼 • 948 (2) 제 1 여 선교회 회직 만le 1st Women’s Association of Mission Work • 950 (3) 대학 청년부 회칙 The College and Young Adult Group • 953 27. 임마누엘동산 안장 현황 List of Emmanuel Hill Burials • 955 28. 교회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위원회 Committee of 3얘1 마miversarγ Celebration of Church Foundation • 956 29 도표로 보는 30년사 30 Ye따s in Church Insignia • 957 30 사진으로 보는 30년사 30 : A History in Photo • 961 31 추역을 담아 • 977 찾아보기 Index • 980 참고자료 및 문헌 References & Bibliography • 983 일러두기 1 ‘우리 교회 발자취’ 에서는 각 해당 연도를 홀수 쪽 상단에 표시하였다 2 각주는 해당 쪽의 하단에 작은 체로 넣었다 일련번호는 각 부별로 구별하였다 3 인용문은 본문과 구별하기 위하여 다른 체로 색도를 낮추어 넣었다 4 본문의 사진과 도표는 내용에 맞추어 일련번호를 넣었다 5 색인은 부별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6 목차와 제목에는 영문을 달았다 7 후미 ‘찾아보기’ 에는 연혁을 중심으로 뽑았다 14
、 ~r= r환 \\; “ #주lõ; i\"* ò- ~.i짜:2: 1 30 년^~ 에, 부 · 우리 교회가 태어난배경 Chaptεr 1. 깐le Background of our Church’s Founding ,;('!í ’짧.., ,‘ γ ‘“1 ‘* .. ‘t * * i* u[io영 [fl[f펑정[IDì/tI영[['0앓ITìl ~[io때[}1:Ç[io @U 애밍:W D밍『정영y
1. 셔쐐쩍배경 1) Historical Background 얘 g 얀택 : 뺑책 쐐 벼 액 E 다 2) 우리 뉴저지 장로교회가 창립된 1970년대 초기는 세계적으로 중대한 변혁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무엿보다도 50년대와 60년대를 특정지은 냉전체제 가 수그러들고 미국이 중공과 국교를 트면서 72년부터 ‘죽의 장막’ 이 서서히 걷히는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소련도 71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총리의 사망을 계기로 자유세계와의 협조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데탕트의 기 운이 감돌고 있었고, 소련연방을 지탱하던 위성국들도 조금씩 독립 의지를 보이던 때이기도 하다. 한편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 베트남 전쟁의 수 렁에 깊숙이 빠져가던 미국은 60년대 말엽 참전이 확대 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국내에서 반전여론이 고 조돼 격렬한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등 정부에 대한 불선이 극에 달하자, 70년대 들어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고 마침내 철군 결정을 내린다. 부정적인 측 면으로는 이것을 ‘패전’ 이라고 불렀다. 전쟁이 끝나면서 경제가 급속히 악화돼갔다. 불가 상승에 기인한 노조의 요구대로 임금이 인상되면서도 물가가 덩달아 뛰어올랐고 막대한 전비는 물론, 중동국 가협약으로인한유개油↑閒 인상등으로인플레 율이12% 1) 이 부분을 본 역사편찬위원회 조종무 집λH 현 뉴욕 ‘라디오서울’ 보도본부장j 가 썼음을 밝혀둔다 2) detente: 프랑스어로 국제 긴장 완화를 뜻함 16
까지 띈 적도 있었다: 1973년 10월에 닥쳐온 에너지 위기는 특히 석유 소비량이 세계 으 k 뜸인 미국인들에게 환경자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었다. 석유를 비롯한 자원이 지구 ψ 싱에 무한정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mxbgv 이 같은 변화 속에, 미 정가에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 음모에 따른 ‘워터게 이트’ 가 엄청난 스캔들로 확대되어 결국 그의 사임을 몰고 왔다. 닉슨은 압도적인 표 차 ‘} 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재 집권기 절반(2년)도 채 못 채우고 스스로 물러나는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이 사건은 베트남전쟁 패배와 함께, 정부와 국가기관들에 대한 불 0£m 신풍조를낳았다. * *t£@ øl ,;;펜운동으호 앤란 쇼수엔종 ~I 위 향Ai 써 따 70년대는 아울러, 미국 내 민권 신장으로 소수인종의 지위가 대폭 향상된 시기였다. 소수계 민권운동은 이미 60년대에 흑인들이 앞장을 섰는데, 그 주도자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였다. ‘뉴프론티어’ 이ew Frontie이로 대표되는 케네디 집정기와 ‘위대한 사회’ (The Great Society)로 대표되는 린든 B. 존슨 대통령 시절의 주요 정책을 민권 향 상과 사회복지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 흑인 민권운동의 자극제 구실을 했다. 1960년 2월,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보로에서 백인들만 출입이 허용된 식당에 거절 당한 흑인 학생들이 농성을 벌인 일이 있었다. 백인 고객들의 출입을 막으며 계속된 농 성에 견디다 못한 식당 측이 결국 손을 들고 흑인들의 출입을 허락했다. 이를 계기로 흑인들의 성토와 파업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심지어 일부 백인 학생들 도 참여했는데, 이때 조직된 학생 비폭력 조정위원회는 식당뿐 아니라 백화점, 교회 등 을 상대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한 끝에, 1백여 도시에서 차별대우가 폐지되는 극적인 성과를얻었다. 이 무렵 킹 목사는 앨라배마 주 버밍엄 시의 인종차별 법규를 반대하는 저항 행진을 이끌었다.1963년 8월28 일 민권운동 지지자 약 20만이 수도 워싱턴에 모여들어 ‘자유 와 직업을 얻기 위한 워싱턴으로의 행진’ 이란 구호 아래 시위를 벌였다. 패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 는 킹의 명언은 이때 니온 것이다. 그해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지만 그가 생전에 제안했던 민권법안ó] 1964년 통 과됐다. 이 법의 통괴는 소수계에 역사상 가장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됐고1 다 소나마 인종장벽도 허물어졌다. 전에 없던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1 일부 흑인들은 민권향상의 궁뜬 속도와 불충분성에 계속 불만을
표했다. 특히 북부 빈민촌에서는 높은 설직률과 주택난, 취약한 학군, 정부관리들의 부정 부패 등으로 반감이 쌓여가자, 로스앤젤레스, 뉴저지 뉴어크, 패터슨, 워싱턴DC, 볼티모 어, 신시내티, 디트로이트 시카고 등 주요 도시를 중섬으로 줄이어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흑인계 대다수는 폭거(暴짧)보다는 평화롭고 온건한 방법을 지지했다. 특히 킹 목사는 폭동에 계속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불행히도, 1968년 백인의 흉뺀1 암살됐 다. 킹 암살사건은 또 한차례 폭동을 몰고 와 수많은 사상지를 냈고 많은 도시가 파괴됐 다 약탈과 방화로 도시상가가 갯더미가 돼버리자, 싱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피 신한 것은 물론, 폭동 재발이 두려워 상가로 복귀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폐허화 돼버린 상7}마다 ‘렌트’ (RENT)사인이 나붙자, 때마침 가발이라는 좋은 아이 템을 개발해 낸 한인들 중에는 손쉽게 대도시 노른자위 상가에 진출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얻어진 상접들은 가발업이 사양기에 접어들자 재빨리 다른 품목들로 바꾸기도 했으나, 상당수는 아직 한인들 간에 인수, 운영되고 있다. 민권운동의 승리는 70년대 들어 미 원주민 · 히스패닉 · 아시안 계에도 영향을 미쳐, 발언과 지위, 권리 행낭의 길이 점차 열려갔다. 한마디후 소수민족이 미국사회에서 발뻗 고 살수 있는 시절이 된 것이다. 활풍호 60년대에 개선되어 70년대에 꽃핀 미국의 정책이 있다면 이민볍 개혁이다. 케네디 -존슨 때의 획기적인 이민정책 갱신으로 세계 각국에서 이민물결이 넘설대며 흘러 들어왔다. 개혁이민법은 케네디 집권기인 1963 년에 입안됐던 것으로1 그의 사후에 통과돼 후임자인 존슨 대통령이 65년 10월 3 일 뉴욕 항 ‘자유의 상’ 앞에서 서명함으로 써발효됐다. 그때까지 적용되던 이민법은 1952년 개 정된 출신지 쿼터제로 당시까지 입국해 있던 국가별 이민의 적당한 퍼센티지를 할당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인들은 당초 연간 100명 수준의 이민쿼터를 배정 받았었으나, 새 이민볍 통과로 연간 2만 명으로 상향됐다. ‘하트-셀러 법’ 이라고도 불린 새 이민법은 미국 이외의 지역을 둘로 나눠, 한국 · 중 국 · 일본 · 필리핀 등이 포함되는 동반구에는 연17만, 유럽을 포함한 서반구지 역에는 12 만 명을 수용키로 하교 국가 당 2만 명을 넘지 않게 한 것이 내용의 골자였다. 한국인은 그때부터 연2만 명이 상한선이 됐다 이에 따라 60년대 말부터 가속화된 한국인의 미주이민은 70년대 들어 피크를 이루었 18
유깅 UilL 고,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 대규모 한인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5년 개정된 이민 법은 1976년까지 지속됐다. 랜 3) 액 ..,. x』 •- 이민의 드센 물결은 모국 상황이 여랴모로 좋지 못해 일어나는 자연현상에 가깝다. 생활고나 사회불안 속에서는 누구나 여건만 된다면 이민 보따라를 싸기 마련이다. 한인 들의 미국이민이 봉을 이룬 1970년대 한국의 상황은 과연 어떠했을까? 군사정권으로 특징지어진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을 추진하려논 집 권층과 이를 저지하려는 반(反) 군사독재 투쟁세력으로 인해 정치와 사회가 극도로 불안 해졌다.70 년대의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노동자 전태일 분신X댐 사건, 설미도 특수군 난동 사건, 대연각 호텔 화재 등은 그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72년 10윌 17일, 박대통령이 특별선언문을 발표하고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른바 유신헌법이 태동한다. 그해 11월 국민투표를 실시해 유신헌법을 확정하고 통일주 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소위 ‘체육관 대통령’ 이 등장 했다. 유신을 반대하는 대학생 사위가 확산되고, 해외에서 반 유신체제 민주화운동을 주도 하던 야당지도자 김대중씨가 일본에서 한국 정보기관원들에게 납치됐다 풀려나는 사건 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한일관계에 마찰을 일으켜 국무총리가 친선사절로 일본을 방문 하기도했다 경제적으로는, 박 정권의 3차에 걸친 경제개발 5 개년 계획 아래 경부고속도로 건설, 해외수출신장, 새마을운동 정착 등 긍정적인 열매도 없지 않았으나 장기적인 희망을 던 져주기에는 미흡했다. 아직 산업화에도 이르지 못하던 시절, 국민들은 ‘보릿고개’ 를 넘 지 못하며 주림과 고통 속에 지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정치 · 사회 · 경제 어느 면으로든 국민이 만족하고 살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럴 즈음 활짝 열려진 희망의 땅 미 국의 이민문호는 한국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 을 실현시켜줄 기회로 성큼 다가왔다. 3)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가 생활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읍력 4-5 월(민증엣 센스국어사전). 19
노구;애 ;ζ^ItOë~르 .:ül호 130 녕 ^f 애애꽤략 짧랙 앤그X 애 매 3흐 @ 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 이민을 결심하기에 적합한 여건이 갖춰지던 70년대를 맞아 조국을 떠나온 수십만 한인들은 대도시 주변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태평양 연안으토는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새너제이 등에, 동부인 대서양 연안에는 뉴욕을 비롯하여 워싱턴, 볼티모어 등에 한인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 권즈의 플러싱, 뉴저지의 저지시티는 당시 한인들이 밀집하기 시작하던 지 역이다. 저지시티는 저지시티 메디컬센터에 근무하는 수많은 한인 의사와 간호사들, 가 족들이 거주하기에 편리했다. 주는 다르지만, 뉴욕 맨해튼이 바로 헛슨 강 건너에 있어 패스(E따돼 트레인으로 1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교통상의 편의도 좋은 정착 조건이었다 새로 형성되는 이민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교회가 틀어선 것도 이 무렵이었다 강 건 너 뉴욕에는 1921년에 이미 감리교 계통인 뉴욕한인교회가 처음으로 설립돼 해방 전 거 주자들과 유학생들의 안식처 역할을 해왔교 해방 후로는 최초로 1963년 5윌 뉴욕 브루 클린에 브루클린한인교회(현 뉴욕한인중앙교회)가 세워졌다. 뉴저지사상 최초의 한인교회는 통설과는 달리, 일찍 011966년에 설립됐던 것이 뒤늦 게 밝혀졌다. 앞서 뉴욕한인중앙교회를 설립한 백예원 목사를 중심으로 러더퍼드 어utherford)에 세워진 뉴저지한인교회가 그것이다.아 그러나 당시 미국성서공회(돼 S) 뉴 욕지부 행정감독관을 겸직했던 백 목사가 목회에는 미력이었던지, 이 교회는 1974년 사 실상 와해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밝혀지는 대로 속속 바로잡o}, 바로 기 록되고 기억돼야 할 것이다. 저지시타 한인인구가 4~500 명 선에 달하면서 한인 커뮤니티가 제법 커가던 1971년 4월10 일, 장로교 계통인 뉴저지 제일한인교회가 설립되고? 박재영 목사가 시무하게 됐 다. 뉴저지사상 두 번째 한인교회요 현존하는 최초의 한인교회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현존) 제2호 한인교회로 우리 교회가 탄생한다. 4) 뉴욕한인중앙교회시{2000년) 70, 73 쪽 참조, ‘뉴저지한인교회’ , 융희 백예원 목사 고희기념문집 ‘의의 길로 걸어가며’ (기념문집출판위원회, 성광문화사, 1994년) 99, 530, 544, 556쪽 20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들 .ii!!도썩 째정 2. .뀔繼뼈췄 5) k ψ Denominational Background xmbgJ 본 교회의 역사를 논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의 하나가 본 교회가 소속된 교단의 역사다. 무소속 교회나 독립교회를 제외한 대다수 교회가 연합체나 상회 기구에 속해있 £m 기 마련이다. 성경의 진리대로 행하며 거듭난 신지들이 지체 역할을 하고 있는 지상의 오 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에 해당하는 하나의 무 £ 형교회(invisible Church)를 이룬다. 며α 써 마찬가지로 유형교회들도 교회끼리 친교와 단합, 치리(治理) 등을 위한 효율적인 각 따 종 조직체와 제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한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루살렘교회나 안디옥 교회, 기타 교회들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한 마음 한 뜻 되어 하 나의 연합체를 이루었다. 본 교회는 그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신앙 및 신학적 뿌리를 장로교(the Presbyterian Church)에 두고 있으며, 현실적인 조직체로서 교단인 미주한인장로회에 소속되어 있다. 7&jξ 교 먼저 장로교에 관해 간략히 개괄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장로교는 장로교회 또는 장로회와 같은 의미이다. 넓은 의미에서 장로교는 노회 (presby않ry)로 불리는 대표모임으로 구성된 민주적 교회행정 및 치리체제라고 볼 수 있 다. 이와 상반된 개념으로는 예컨대, 중세 카톨릭교회나 오늘날의 감리교 성공회에서 볼 수 있듯이 주교나 감독이 교회들을 대표하는 감독제(episcopacy), 또 회중 자신들이 대표 함으로써 지역교회의 독립자치를 강조하는 회중교회(congregation때sm) 등이 있다. 현재 세계 장로교의 모습은 수많은 갈래와 지류들의 묶음으로 이뤄져 있으나 본래의 장로교는 16세기의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에서 분리된 개신교로부터 파생된 한 일파로 5) 이 부분을 위해 본 교단자료(미주한인장로회20년사/총회출판권2000년)와 미국장로교 자료(미국장로교 한인교회사J전국한인교회협의회11999년), 인터넷 자료(장로교 일반역시) 등을 참조했다. 21
^ .. ’‘셔누주\"--1:;0:;:, O--~\"\"\" ..:i고호 130 닙^~ 시작됐다. 장로교의 뿌리는 장 칼뱅(Jean Calvin . 영어 John Calvin . 1509-1564)의 개혁 운동에 두고 있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장로교제도 내지 장로교주의 (Prεsbyterianism)는 칼뱅이 강조한 개신교 적 특정을 대표하는 교회체제의 한 그룹이었다. 칼뱅은 마르틴 루터로부터 출발된 종전 의 개혁사상틀을 구체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X 빽 해핵 a 빽 장로교의 각 교회 안에는 최고의결기관인 당회가 있고 그 아래 제직회와 각 부서, 선 교회 등이 있다. 마찬가지로 주로 교회 단위로 소속돼 있는 교단에도 질서체계가 있다. 즉 각 지역교 회들이 모여 이룬 각 지방의 노회(presbytery)가 있고, 이 노회의 상회로서 전국 노회들 의 집합 조직체인 총회 (General Assembly)가 있다. 이 모든상· 하단체가모여 교단을 이루며, 총회는교단의 최고 친교및 의결 · 치리 기관이다. 교단에 따라서는 노회와 총회 사이의 중간기구로 주요 지방별 노회끼리 한데 모인 대회 (Synod)를 두기도 한다. 본 뉴저지장로교회가 소속된 교단은 미주한인장로회(Thε Korean Presbytεrian Church in America / 약칭 KPCA) 이다. 본 교회는 아울러 직상회인 뉴저지 노회에 소속돼 있다. 야 4올얘얘혹활 책 미주한인장로회는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약4년 후인 1976년에 공식 창립됐다 그러므로 본 교회 설립배경과는 무관하나 같은 70년대의 일이므로 1980년 전 까지 70년대를 중심으로 조망해 본다 교단 모체가 될 노회는 그전부터 존재해 있었고 정식 교단이 되기까지 얼마간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본 교단 총회출판국이 발행한 「미주한인장로회 20년사:i2000년)에 따르면, 1973년 9 월 16 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역자들이 뜻을 모아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미 국 서부의 각 주를 관할하는 서노회가 먼저 조직됐다. 이듬해인 1974년 11월 2 일에는 시 카고를 중심한 중서부지역을 위한 중앙노회개 75년 6월16 일에는 뉴욕과 필라델피아에 서 동노회가 각각 조직됐다 이 3 개 노회는 한국장로회 총회와 긴밀한 관계를 갖기 위하여 1974, 75년에 정식으 22
에수 닮기 원남}는 사람들 .iilξl F적 뼈영 로 한국총회에 ‘미주노회 인준 청원서’ 를 제출하자 한국교단은 75년 제 6ò회 총회에서 w“ 미주에 설립된 세 노회를 연합노회(Union Presbytery)로 인준키로 결의했다. m 1975년 12월 4일 밤, 시카고 근교 스코키의 할리데이 인에서 세 노회장들이 만나 이 ιbgu 튿날 새벽 1시가 가깝도록 장시간 회합을 가졌다. 한인장로회 미주노회장 김계용 목새 재미노회장 양치관 목λh 미주동노회장 이병규 목사였다. ‘* m 이들은 3노회의 나아갈 길과 취할 태도 등을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t요t * 노회의 (1) 명칭 통일, (2) 영역 분할., (3) 미주 대회 (Synod) 조직 등에 관하여 합의, 역사 웅α 써 적인 이정표를 마련했다. 따 명칭은 한인장로회 미주 동 · 중앙 · 서 노회(The Eastem, Central, Westem Presbytery of the Korean Presby빼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떠로 통일하기로 했다. 노회별 영역은 동노회가 펜실베이니。h 웨스트버지니 ó},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및 그 이됩以東) 지역, 중앙노회는 동 · 서노회 해당지역을 제외한 중앙지역, 서노회는 몬 태나, 아이다후 유타, 애리조나와 그 이서(以西)지역으로 가름했다. 또 진로와 행동 통일을 위해 한인장로회 미주대회를 조직하되, 각 노회가 5명씩의 총 대를 파송하고, 1976년 8월 중 양치관 목사가 대회를 책임 소집케 하고 3 노회장의 행 동과 발언도 절대 통일하여 김계용 목사로 대표 발언케 할 것, 치리상회를 조직해 힘을 규합하고 살길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노회-총회 간 중간기구인 대회 (synod)를 조직하겠다는 당초의 생각은 한국총 회와 미 교단인 UPC를 의식한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마땅찮게 여겨졌다. 이 문제와 관련, 세 노회장은 다소 견해차는 있었으나 서로 연락하는 기운데 회의석%에서 총회로 조직할것을결의했다 그리하여 노회장 회의의 결의사항에 따라 드디어 1976년 8월 9일, 3개 노회 대표들 이 시카고 시세로한인장로교회에 한데 모여 한인장로회 미주총회를 결성했다. 노회별 총 대 수는 당초 소집공고보다 2명씩 추가되어 각 7명씩 모두 21명이었다. 이 역사적인 21명의 창립총대 명단은 다음과 같다. 동노회: 김권석 김규환 김정국 김형숙 이병규 최이열 최양선 중앙노회: 김인수 김응률 문장선 방신학 양치관 이선영 이진삼 서노회 : 김경서 김계용 김장호 오은철 이금식 정대범 최광수 23
누구처 ;;;:1 장중쿄호 130 년^~ UPC에 가입하는 문제는 며칠간 장시간에 걸쳐 토의되었으나 노회 단위로 가입할 경 우 총회 결의에 의하여 최후 결정을 짓는 동시 총회는 자동해제키로 한다는 단서를 붙여 총회를 조직했다 미주에 한인장로교단이 생겨나는 역사적 거보를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총 7 장 26조에 달하는 미주한인장로회 총회 규칙을 시행법으로 채택하고 1954년 이전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을 채택 준용키로 했다. 첫 총회장으로는 김 계용 목사{나성영락교회 시무)가 피선됐다. 총회는 또 취지와 태도를 밝히기 위하여 다 음과같은 ‘우리의 다점’을발표했다. 우리의다짐 오늘 역사적인 한인장로회 미주총회를 창립히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룩되는 일을 통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 모든 일 을 하고자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펴고자 하시는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는 것으로믿는다. 우리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지 εt하고 세계 시민으로서 폭넓은 교회와 사회를 이 룩하기 위하여 모든 장로교회와 우호 협조 관계를 가지는 것은 물론이나 먼저 한 국인이 된 긍지를 가지고 우리의 아름다운 전동을 존중하며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우선적으로 미주 힌인 교포에게 선교하고 그 지위 효l'il띨 도모하며 봉사와 교육을 통하여 흩어진 한인교회들을 지도 육성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옛날 아브라흔배게 가나안 땅을 허락히여 주시고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과 같이 또한 오늘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로 히여금 복의 근 원으로 삼으신 것으로 믿는다(창 12: 1-4). 우리는 이를 위하여 새 바람처럼 역사하는 총회 산하 모든 성도탬게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께서 힘주실 것으로 밍고 바라며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다 짐히는바이다. 1976년 8월 10일 한인장로회 미주총회 총회는 또 1978년 7월 21 일 로스앤젤레스 소재 나성영락교회 예배당에서 모인 제3 회 총회 때 총회 명칭을 ‘미주한인장로회’ 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후 총회는 급 속히 발전하여 1979년 4월에는 캐나다 노회가 신설됐다. 24
이 서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I을 I 후손들에게 진솔한 우리의 모습을 건네주기 위하여, J」L. 후학들의 초기 동포교회사 및 이민학 연구 에 도움을주기 위하여, ,W 그저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들’ 의 흔적을 남기는것이다. 까- } (발간사중에서) 를흐:)- Thep따JOSe of writing this book is, 뼈m때ly, the i: - glOl)' of G여. Secondly, we 애sh to pass on our history and heritage to the generations ahead. Thirdly,we h야Je that this book will become a useful 때dition to the stuφ ofthe 빼y immigrant church in theU띠때 States in the later decades ofthe twenû얘1- centl.ny. Fmally, we d뼈icate this book to th않ewho believe and desire to be more like Jesusα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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