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도 밝힌바 있지만, 한 목사는 과거 김창길 목사가 부목사로 재직했던 서울 서소 hwmI 문교회가 (훗날의) 순교자 김동철 목새김 목사 부친)에 의해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 을 무렵인 1948년, 학생의 몸으로 북한에서 단신 월남, 서소문교회를 모 교회 삼아 김 b빠 목사 가족과 함께 지내기도 했었다. 그는 김 목사의 어머니 안마리아 사모로부터 자식처 써 럼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야 X강매 한 목사는 한국신학대학, 유니온신학교 퍼시픽종교대학, 셔우드뮤직스쿨 등을 졸업했 고 강도사 시절인 1969년 여러 교역자, 성도들과 함께 뀐즈한인교회를 개척하여 계속 시무해왔다. 권즈한인교회는 특히 1977년 한 목사가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것을 계기로 대형교회로성장했다. 그래의 주요 대내샤한 4월 25 일 예배 후 임시공동의회에서는 안수집사 3명을 선출하는 투표를 했다. 당선 된 이는 정주섭, 이대영, 양호식 집사 등이었다. 5월23 일 임시 제직회는 김기태 장로의 사퇴서 제출 건 때문에 모였다. 김 장로의 마 지막 가정 심방예배와 사표 건은 김 목사가 협의하여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6월에는 김 목사가 김 장로 심방 결과를 보고하고 기도를 해 보고 사표 수리 여부를 결 정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로는 1년여만에 다시 돌아왔다. 7월18 일 82년도 잔여기간을 위한 공직부서 담당지를 임명하면서 미래의 교회당 건축 을 위한 건축위원회도 구성됐다. 건축위원장: 서광진/재정부징r 양호식/안내부정: 김성천 8월1일에는 건축위원으로 정주섭, 양호식, 이대영, 오안순, 오순덕 제씨 들이 임명됐다. 10월17일은에코레이크파크에서 추기 야외예배로드렸다. 바람이 불어 날씨가차가 웠지만 많은 교우들이 참석했다. 그날 주보에는 자랑’ , ‘예수님 찬양 , ‘오늘 집을 나서 기 전’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등의 곡이 끼어있어 많은 교우들이 함께 부르며 찬 양했다 교회는 몇 달 전부터 매주일 예배 전 복음성가들을 열심히 부르곤 했다. 9월 17-18 일 엄마누엘회가 1620년 필그림들(pil맹ms) 이 영국에서 신앙과 삶의 자유 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가장 먼저 상륙했던 곳인 플리머스 성지를 순례하고 왔다. 회원들은 상륙했던 곳과 메이플라워호 모형, 당시 정착촌이 있던 농장(plantation)과 박물 관등을두루구경했다. 11월 21일 추수감λ}절 예배와 함께 여전도회 주최로 성대한 디너파티를 가졌다. 173
à I- c므 느주~-i ^l O' '-'-\"쿄호 I 30 낭 ^t 11윌 말부터 교회에서는 인기 리에 가죽표지 찬송가를 보급하고 있었다. 식품점에서 는 15달러였지만 교회에서는 절반가격인 7달러에 배부했다. 잭해짧 얘 4월 5-7일 제15회 동노회가 뉴욕한성교회에서 개최됐는데 새로 4교회가 노회에 가입 했다논소식이었다. 6월 21 일에는, 과거 본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공석 중일 때 벚 달 간 강단을 맡아 수 고했던 김종혁 전도사가 뉴욕한성교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김 목사는 안수 후 우리교회 에서는 처음인 7월 11 일 주일 남전도회 헌신예배에서 ‘하나님과의 화목’ (고후5:191계 1:30/2-3장)이라는 설교를 했다. 김 목사는 그후로도 김창길 목사의 출타 시에 본 교회 강단을지킨적이 였다 6월 중에는, 제6회 미 동부지역 봉황대기 축구대회에서 장기호 선생이 이끄는 뉴저지 청년회가 4연승을 했고 최우수선수로 우리 교회 변효남 교우가 뽑혔다 1982년도 저붙어가면서 12월 결산의 달을 맞았다. 각 부서는 내년을 앞둔 정기총회와 임원 선출을 위해 기도하면서 분주한 연말을 보냈 다 청년회와 임마누엘회, 남전도회와 여전도회 등이 차례로 총회를 개최하고 새 임원들 을선출했다. 그해 성탄절예배는 12월 19 일에 드렸다. 주보에는 예수님의 탄생은 교우들의 마음속 에 기쁨과 희망을 주십니다. 양치는 목자들과 동방의 세 박사틀이 찾았던 예수님을 우리 들도 찾아 예배 드립시다’ 란 교훈이 실렸다 성탄절과 신년 행사는 다음과 같이 치러졌다 23일 밤 성탄축히춧불예배 26 일 성토뚝히예배, 성탄축하잔치 12월 31 일 밤 미국인교회와 합동만찬, 송구영신 예배 1월 2일 신년축하예배, 축하잔치 특히 23 일 밤에 있은 성탄축하 춧불예배는 인상갚게 드려졌다. 대강 순서는 다음과 같 았다. 174
α3 수 예배에 입하는명상 한밤충11 나신 。 }71 예수 조그마한 고을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아기 예수 점화와효벙 (83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참회기도 예언서낭독 이 λ}I야 60:1-3, 9:2-7 찬송 78장 / ‘곧 오소서 입미누엘’ 복음서낭독 누가 2:1-7 찬 • •λ 102장: ‘오 작은 마을’ C그 예언서낭독 미 7} 5:2, 이사야 60:6 복읍서낭독 누가 2:8-19 82장: ‘저 들밖에’ 찬 { -<-- 〔그 복음서낭독 D}태 2: 1-12 메시 지 김창길목사 한밤의성가 한편 12월 26 일 예매 때 주보 속에 넣어진 카드는 83년 기도제목과 함께 전도대상자 를 기도하는 중에 작정, 기록하여 송구영신 예배 때 드리도록 했다. 175
19:1J3 뺑&짧 &뼈헥 [;~해 씨생초꿇짧책 1월 2 일 공동의회가 열려, 63,878 달러 규모의 결산 과 70,000 달러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당일 임명된 신년도 서리집사는 여자 10 명, 남자 12 명 등 모두 22 명이었다 그해 목표는 ‘다시 새로워지는 해’ 였다.9 일에 있은 1월 정기 제직회에서 김 목사는 소금의 직분이 되는 제 직, 기도하는 제직, 말씀 읽는 데 주력하는 제직이 될 것을당부했다 1월 15 일에는 이언년 권사가 명예권사로 추대됐고, 당일 제직수련회가 양호식 집사 집에서 박석린 목λH버 겐장로교회)를 초청해 열렸다. 23 일 예배 후에는 서태호 집사 집에서 신임집사 환 영회개 30 일에는 서광진 집사 집에서 전 교우 신년축 하 친목회가 성대히 열렸다. 신년축하 잔치는 당초 1월 2 일 신년예배 후로 예정돼 있었으나 서집사 가족들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연기됐었다. 예배 후 식사와 윷놀이를 했는데 푸짐한 상품도 준비되어 있 었다. 새해에는 구역이 7개로 늘어났다. 1구역은 저지시티였교 2구역(저지시티), 3구역(호보 큰) 4구역(린허스트 · 패터슨 · 벨빌), 5구역(파라무스 . 포트리 · 테나플라이), 6구역(이스런 · 에디슨 · 팔린), 7구 역(권즈 · 브루클린)등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대폭 확대됐다. 뉴저지 쪽도 여러 구 역으로 늘고 특히 뉴욕의 권즈와 브루클린에도 교인들 이 분포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윌 9 일 광고시간에는 특별히 1982년도 전도상 시 상식 이 있었다{괄호 속은 대상재. 176
t 양 83 쌍훗L 오안순(김은숙), 한원열(조영진 · 양연이), 김어금(배인숙), 양명자(김춘지) 원혜숙(김창신), 이선옥(권은숙), 유정순(이경희), 정주섭(조수훈 • 정옥희), 권은숙(이성배 • 이상금), 오순덕(최명진 • 김화자), 조동희(김동관 • 박화순), 김민자(김종덕 • 엄두식), 최재식(정주택 • 이문영 • 황성태) 김창길(김성천 최도현 노멍담) 한편 김창길 목사는 연초 한달 동안 섬기일전과 갚은 묵상을 위하여 성경 읽기와 기 도에 힘쓰고 긴급한 심방만 하기로 했다. 풍체 !L 1월 9 일의 정기 재직회는 미국교회측의 임대료 인상안을 논의하는 한편, 지난해부터 수개월 째 본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는 김기태 장로의 거취문제로 현 직분에 대한 해 명 요청을 담임목사께 했다. 김 장로는 일부 제직과의 불편한 관계로 떠났던 터였다. 김 목사는 “아직 해명 요건이 되어있지 않아 행정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답 변했다.3월 정기 제직회는 김기래 장로가 이명돼 간 것으로 서류를 보내왔음을 확인했 다. 그후 7윌 초순에 김 장로와 이혜숙 집λ까 본 교회로 되돌아왔다. 1년여 만이었다. 당일 주보는 “김기태 장뢰이혜숙 집λ9께서 1년 1개월 동안 교회를 쉬셨다가 다시 본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환영합니다” 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당일 정기 제직회는 김 장로 건으로 격론이 벌어져 부득불 제직회가 산회되는 소동이 있었다. 8윌 제직회에서는 교회의 모든 일을 장로 · 안수집사 · 권사 등 항존직분자들과 의논 하여 결정하되 인사권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주도하기로 했다. 장로가 공석중인 당회이기 때문에 당희 대신 헝존직 모임에 교회 일을 맡기게 된 것이다. 7월 17일 주보에는 “지난 재직회에서 건의한 대로 앞으로 당회가 생길 때까지 항존직 모임에서 교회행사를 의논 결정하겠습니다 라고 명시됐다. 또, 8윌 제직회 기록에는 내 년(84년)에 장로 추천을 하여 선출하기로 했다는 사항이 보였다. 그후', 7월부터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항존직 모임이 있었고 첫 모임은 7월28 일에 있 었다. 항존직 기도회는 81년부터 줄곧 있어왔다. 김 장로는 그후 교회출석과 봉사생활을 열섬히 했고 84년 1월 1 일 협동장로로 임명 됐으며 그해 11월 4 일 재차 시무장로로 취임했다 177
\"\"'I- c닐 씬 누주 ;{;l 。 *i끄효 130 년^. 갱붉홈얘채화 새해를 맞아 부흥사경회가 2월 3-6 일에 개최됐다 본 교회 성회 순서지에는 반드시 찬송가 가사 전체를 싣는 배려를 했다 당시 한인교 회들이 저마다 다른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ö}직 통일되기 전이 어서 옛 ‘합동’ 찬송가로부터 ‘새찬송깨 , 개편찬송7}가 골고루 사용되고 있었다. 강사는 초기 중국인 선교사였던 방지일 목새영등포교회 원로목씨. 새벽기도회와 저 녁집회로 모였다. 이를 위해 1월 20 일 목요기도회는 준비기도회로 모였다. 방 목사는 노 구에도 불구하고 ‘어찌할꼬’ (행 2:37), ‘다시 주신 삶’ (갈2:20), ‘주선 지위’ (행 2:35), ‘주 님의 형상으로’ (빌3: 21), ‘처음이요 니중’ (요1:14) 등의 메시지를 통해 은혜를 끼쳤고 새 벽기도회도이끌었다. 매일 설교 직후에는 합심 · 통성 서원기도 환영과 소식 순서가 들어가곤 했다. 집회 기간 동안 인근 지역교회 목회자 다수가 초청돼 순서를 맡았다. 그후 3월 정기 제직회에 보고된 전도부 집계에 따르면, 집회기간 동안 새벽기도회는 남자 7망 여자 10명, 낮예배 는남자 46명, 여자 64명, 저녁예배 때 남자 26, 여자 40 명이 출석했다. 방지일 목사는 특히 80-90년대에 미주지역 각 교회에 인지도가 높아 수많은 교회들 이 강사로 청하곤 했다.1911년 평북선천 출생인 방 목사눈 선천 신성학교와 평양 숭실 전문학교, 평양신학교 등을 졸업하고 장대현교회에서 목회를 했으며 총회파송 중국선교 사로 21년간 사역하면서 중국 선도 한국학교장도 지냈다. 해방 후에는 한국교민회의 책임 아래 동포의 귀국을 알선해 미군의 도움으로 수 차례 에 걸쳐 수 만 명을 귀국시켰다 그는 또 1961년과 67년 두 차례 예장t통합측)의 경기노 회 노회장을 지낸 것을 비롯, 총회전도부장, 재단이사장, 기독공보사강 대한성서공회 재 단이사장 등 수많은 공직을 맡았다. 만년에 경기노회 공로목λh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로 지내면서 숭전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은혜로운 설교자일 뿐 아니라 60 여권에 달하는 수많은 저서도 펴냈다. 특히 1991년에 펴낸 체험수상록 ‘눈물의 병OfE\\)’ 은 미주에도 폭넓게 소개되어 많은 감동을 주 었다. 또 깊은 말씀 묵상의 결과로 신구약 성경 대부분을 망라한 강해서를 펴냈다. 한편 전도부는 부흥사경회를 계기로 ‘은혜성가집’ 2 백 부를 편집 발행했다. 수록곡은 61곡 이 곡들을 부를 때마다 은혜를 받곤 했다. 이 노래들이 은혜롭고 좋다 보니 성회가 끝나면서 상당수가 행방불명(?) 되어 주보에 “은혜성가집을 가져가신 분들은 교회에 가 져오사기 바랍니다’ 란 광고가 나기도 했다 178
50 낼행쐐 ε% 폭샘 부흥성회가 끝난 그해 ‘대통령 날’ (president’s Day)을 낀 2월 11 일부터 미 동북부에 50년만의 대 폭설이 내렸다~ 12 일 밤까지는 곳에 따라 강설량이 18 인치로부터 24 인치를 기록했고 심지어 1ft를 넘은 곳도 없지 않았다 19) 13 일 주일날에도 큰 지장을 주었으나 많은 교우들이 어려운 교통사정을 이기고 출석 했다. 마주 동북부 지역은 겨울철에 이따금 폭설이 퍼붓기로 원래 악명(?)이 높지만, 이 해의 눈은 무릎까지 찰 정도로 정말 대단했다. 이 폭설과 부홍집회로 인하여 2월 하순 구역예배는 1'2구역만 드리고 다른 구역은 시간을 갖지 못했다. 태챔얘 7H 써 3월6 일에는 교육부가 한글학교를 개교했다. 한글학교 부장은 김귀남 집샤 매주일 오 후1시부터 1시30분까지 30분간 진행됐고 3 개 반으로 편성됐다. 또 태권도 교실도 역시 3월 첫 주부터 개설돼 매주 예배 후 45분간 정재봉 사범이 지 도했다. 80~90년대에 많은 교회가 한국문화학교 등을 통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범죄가 많아 늘 위험한 미국사회에서 개인 방어를 위한 호신술도 필 요하겠지만, 그보다도 우리네 전통문화와 정신 및 육체 단련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4월 3 일의 정기 제직회에서는 교육부장 검귀남 집사가 “한글교육에 학생들이 흥미를 많이 느끼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어른들이 시간을 꼭 지켜달라”고 부탁을 했다.5월 제 직회에서도 “오후1시 이전에 어린이들을 교회에 데려와 달라”고 재삼 촉구했다. 효과적 인 한글학교를 위해서는 어른들의 시간 엄수가 필수적이었다. 모처럼 시작된 한글학교는 그해 7월10 일부터 6주 동안 중지하기도 했다. 미국인교회 에서 선교사 훈련을 위해 교실을 침실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 · 고등부도 별 도의 모임 대신 성인예배에 침석키로 했다 9월 4 일에는 한글학교 2학기가 개강됐다. 그날부터는 모임과 예매시간을 정확히 지 켜, 한글학교에 지장이 없도록 다들 애썼다. 즉 오후 1시부터 장년부 성경공부가 본당에 서, 성가연습이 주교실에서, 한글학교가 교실에서 각각 정시에 시작됐다. 특히 한글학교는 1λ110분전까지 학생들이 모이도록 부모들이 힘썼다. 19) 인터넷의 동북분 기후 역사 자료를 참조했음. 1’껴
‘A 、 、 ι #;;{;, z。‘r*?i고 ~I 33 0 녕^~ 팩갚홉얘핵 ‘& 해 @’ 교회가 성장하다보면 수입과 함께 지출도 늘게 된다 임대주인 미국인교회는 한인교회가 나날이 성장해 가는 것을 보자 뭔가를 느꼈는지, 새해부터 교회당 윌 사용료 300달러를 500달러로 인상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1윌 제직 회는 이대영, 서광진 두 집사에게 미국교회측과 상의하도록 위임했다. 2월 제직회 때 서광진 집사는 미국교회측이 새 계약서(contra띠를 제시하면서 임대료 500달러 건과 아울러 2년 계약을 요구해왔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3월 제직회는 3월 7일 에 이대영 재단이사장이 미국인 교회대표를 만나기로 했으나 고수광, 양호식 집사가 대 선하도록 했다 미국인교회당을 빌려쓰는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그들의 시선은 점점 곱지 가 않았다. 자체건물을 갖지 못한 한인교회들의 “서러운” 상황은 어디나 마찬가지였지 만 미국인교회와 비교적 친선관계가 좋은 우리 교회에도 가슴 아린 일들이 닥치곤 했다 물론 미국교회 전통과 예절에 충분히 익지 못한 한인들의 잘못도 있지만, 교회당을 임대해주는 미국인교회 측이 대체로 한인교회가 성장하여 규모가 커지면 덩달아 그런 태도를 보이곤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특히 한인 밀집지역의 커뮤니티 보드 등에서는 한인교회들이 성장해 가면서 도로 주 차 등의 문제로 껄끄러운 불평 불만을 토해놓기가 일쑤였다. 각별히 몸을 사리며 ‘요 주 의’ 하는 한인교회들도 가끔 폭탄 같은 경고장 또는 ‘추방’ 통고를 받고 급기야 내어쫓기 는 이픔을 유달리 많이 겪고 난 교회들은 X써 건물을 마련하고자 하는 열망에 불이 붙 곤했다. 흔히 주일날 친교 시간 때 유난히 번지는 한식 냄새와 쓰레기의 뒤처리, 교회 시설 또는 기물 파손, 교회당 안팎을 마구 뛰어다니는 어린이들 등이 주 요인이 되곤 했다. 3월 6 일 주보에는 이런 통보사항이 실렸다. 미국교회의 청원으로 교회 캐비닛을 성 가대 가운 넣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앞으로 안내위원 및 주교교시들은 성가대 가운 있는 방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튿날인 3월 7일에는 윌요일 미국교회 건물관리위원회와 고수광, 양호식 집사 등 본 교회 대표가 만나 교회관리에 대한 특별한 주의를 들어야 했다.13 일 주보에는 “온 교우 들은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 는 주문이 폈다. 내용인 즉 이라했다. 1. 교회마등뻐서 절대로 농구를 하지 말 것. 2 어린이들이 칠표k게 낙서를 하지 말 것. 180
3. 교회당 요k게서 어린이들을 뛰지 못하게 할 것. 4. 교실이나 부엌의 서립에서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말 것. 5. 본당의 헌금봉투나 기타 다른 것에 1각서하지 말 것. 6. 교회기물이 파손됐을 때 즉시 보고해줄 것. 7. 교회당 사용 후 의자정리 및 청소를 잘 하고 쓰레기통을 깨끗이 비울 것. 8. 교회에 올 때 정장차림을 반드시 할 것. 그리고 그 아래는 “이 모든 일에 부모와 교λL 학생들이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 는 주를 달았다. 우라로서는 예배 장죠:7} 이쉬운 판이니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3월 20 일 주보 상에도 “주일에는 어른이나 어린이나 정장 혹은 단정한 옷을 입고 교 회에 나오시길 바랍니다’ 란 통보가 반복됐다 4월 정기 제직회 때 봉사부의 김춘지 집사 는 “교회 끝나고 돌아갈 때 안내위원들도 끝까지 남아 쓰레기 버리는 데 협조해달라”고 제직들에게 부탁했다. 김 목사가 3월 제직회 때 교회 일에 제 삼자가 되지 말고 내 일 같이 참여하재’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국교회는 비판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고 우리가 본받을 점도 많겠지만, 미국인 주류 교회 다수는 으레 주인으로서의 자기네 입장을 더 강조하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우라로서야 달거나 쓰거나 가릴 처지가 못 됐고 그런 계기를 통해 자체건물 마련을 위한 갈구는 더욱 커져만 가고 갚어만 갔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 안에는 이름다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교인들과 제직들은 끊임없이 교회에 무엇인가 바치기 원했고 봉사하기 원했다. “손 대접 하기에 힘쓰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을 집에 초대하기를 즐겼고 남이 보지 않는 가 운데서 교회 구석구석을 눈여겨보고 돌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3윌중에는 한 교우가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빠와 아기의 생일 기념으로 교회에 찬송가 30권을 헌납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늘나라 보고에 보물을 쌓 은 그 교우에게는 훗날 주념으로부터의 Àcf급이 컸으리라! 그러나 교회에 비치한 찬송가는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교회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와 관련, 4윌 제직회는 “앞으로 찬송가는 교회에다 두고 다니시라”고 촉구 했다. 아울랴 “교회 살림살이를 갖고 계신 분은 서무부에 연락해달라’는 서무부장 서태 호 집사의 요정이 있었다. 181
&양싹』 #후 ~i~1 èf--’Z1!l 1 30 섭 At 종려주샘과 부웰주엠 교훈 사순절이 절정에 달해가던 종려주일 주보에는 이런 유익한 교훈òl 실렸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 은 유대인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를 외쳤습니다. 호산나의 돗 은 히브리말로 ‘구원하소서,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118:25)입니다. 그후에 이 말은기쁨의 갈채, 찬양의 송영으로사용되었습니다 수년래 우리 교회의 전통인 성금요일 가상 7언 기도회가 제5구역의 주관으로 금요일 인 4월 1 일 오후 8시에 열렸다. “그날은 가능한 한 금식을 하시기 바랍니다’ 란 권고의 말씀도 주보에 게재됐다. 주보 상단의 교훈은 늘 유익했다;4월 3 일 부활주일의 주보 메시지는 이러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지은 인죠띈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주님 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기에 대신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L-w' 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햄게 영원한 삶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부활을 진정 믿는 신자들은 이 땅이 나그네인 것 을 알고 세상 욕심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삽니다 AJ 푼 ‘대포관고1:1 1 ’-내느냐 야느냐 본 교회가 정식 광고신청을 안 했는데도 한인 신문 ‘종교안내란’ 에 우리 교회 광고가 마구 실리는 적이 있었다. 다른 많은 교회들도 마찬가지였다. 8o~90년대 언론계에서는 신청이나 계약을 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싣는 광고를 흔히 ‘대포광고’ 라고 불렀다. 미리 광 쏘아놓고 본전을 찾기 때문인지 ‘대훗잔 을 건네 면서 동시에 손을 내민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언론사에서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한 상투적 전략의 일환으로 그런 ‘선심’ 을 쓴다는 것을 뻔히 알므로 과히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론의 광고파워를 생각하면 교회 홍보 차원에서 고맙다고 해야할지 어떨지 때로는 난감했다. 그러나 교우들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신청하지도 않은 광고를 위해 ‘생돈’ 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판단하여, 4월 제직회 때 광고료를 지불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광고를 취소해 달라” 는 서신을 신문사 측에 띄우기로 했다. 1용웰
198:3 c~ 빽 혜샤 2월 13 일 오후에는 뉴욕한성교회에서 동부노회 여전도연합회 제2차 총회가 열렸다 50년만의 대 폭설이 내린 무럽이었다. 이어서 15 일에는 뉴욕제일장로교회에서 뉴저지평 신도산학원 졸업식이 거행됐는데, 본 교회 오안순권사가졸엽했다. 그 즈음 뉴욕한성교회 검권석 목사가 지병으로 입원해 시찰회 소속 교회에서 교회 당 100달러씩 사량과 위로의 성의를 표하기로 해, 본 교회도 3월 제직회 때 그러기로 결의 했다. 김 목사의 환우{愚憂)는 그후 계속 악화돼 결국 1년여만에 별세하기에 이른다. 4월의 대외행사로는 4월9-10 일 이틀간 뉴저지연합장로교회에서 제직들을 위한 연합 집회가 열렸다. 강사는 서울 청량리중앙교회의 임택진 목사였다. 또 제2차 여전도연합회 총회가 4월 10 일 한성교회에서 개최돼 본 교회 오안순 권사 가 회장에 피선됐다~4윌 19~22 일에는 미주한인장로회 제 17차 동노회가 뉴욕한성교회 에서 열려 본 교회 김 목사가 다녀왔다. 이 노회에서 김 목사는 뉴저지중앙장로교회의 임시 당회장으로 임명됐다. 그 교회 당회장이던 윤명호 목사가 다른 교회로 옮겨갔기 때 문이었다 5월에는 제2회 장로교 전도대회가 4~8 일 한성교회당에서 열렸다. 당시는 자체건물 을 가진 한성교회에서 노회의 웬만한 행사들이 죄다 열리고 있었다. 미주동부지역 장로 교 션교협회가 주최한 이 대회 강사는 성경주해가인 대구제일교회 이상근 목사였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란 주제로 열린 이 대회에서 이 목사논 ‘믿음의 3면’ (팀후 3:12 ~1키, ‘하나님의 형상’ (창 2:27~28), ‘믿음의 3 대상’ (엠 1:15~19), ‘하박국을 통한 믿 음의 교훈’ (합 2:1~8), ‘하나님의 형상’ (창 2:27~28), ‘누구든지 문을 열면’ (계 3:20~ 22) 등의 설교를 했다. 그 기간동안 새벽기도회도 함께 진행됐고 6, 7일 이틀간 교역자 세미나도곁들여졌다 졸업철인 5월말에는 이선옥 전도사가 뉴욕장로회신학대학을, 최재식 구역장이 스티 븐스 공대를, 김창선 교우가 릿거스 대학교를 각각 졸업했다. 한편 이선옥 전도사는 6월 5 일부로 본 교회 명예전도사로 추대됐다{같은 날 강선원 권사는 명예권사로 추대됐대. 당일 오후에는 여전도회 연합회 월례회가 포트리한일교회에서 열렸다.7월 1~3 일에 는 할렐루야 83전도대회가 권즈 칼리지에서 개최됐다 183
,,\"I- ë를 누구처 ;l 。 {i끄호 I 30 닌^~ 71 훨:생輪 80년대 초부터 일찌감치 후대 교육을 유난히 강조해온 우리 교회는 해마다 성경공부 열기가 더해가고 있었다. 매년 암송대회나 퀴즈대회를 개최하는 것 외에도, 1983 년 연초부터 전도부 주최로 성경문답지 풀기가 시작됐다. 성경공부 문제지를 배부하고 교우들이 답안지를 작성하여 안내석에 제출하면, 체크하여 돌려주곤 했다 성경공부 제1호를 제출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았다. 오순덕, 최도현, 정주택, 이문영, 정영선, 이선옥, 정옥희. 3월 제직회 때 전도부장 최도현 집사논 “2윌 현재 9명이 답안지를 냈다’며, “저l 직들 이 성경문제집을 많이 내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4월에도 이를 재차 강조했다. 4윌 24 일자 주보에는 “성경공부 4호가 나왔습니다. 마치신 후에 전도부장에게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란 통보와 함께, 3호를 낸 교우들의 이름이 기록됐다. 오안순 오순덕 최도현 김영선 이선옥 정주택 정옥희 이문영 박정윤 배인숙 김어금 등 이었다. 한편 5월 29 일에는 구역 및 개인대항 성경퀴강f 열렸다. 원래는 야외예배와 함께 열 릴 예정이었다가 비가 오는 통에 교회에서 진행됐다{야외예배는 그 다음 주일인 6월 5 일 드렸다). 범위는 창세기. 모두 100문제가 출제됐다. 퀴즈대회 수상자들은 다음과 같다. 구역상 : 3구역(호보큰 · 구역장 최재식) 개인상 : 이문영 이선옥 권은숙 오요받 김영선(이상 순위멸) 징려상 : 김창신 박병연 박정윤 정주택 권상식 각 부의 성경공부도 왕성했다 5월 첫 주일부터 오후 1시에 장년부 성경공뷔담당 이 선옥 전도사)를 시작했다. 아울러 청년회도 전년도부터 나름대로 성경공부를 해온 터 였다. 6월 정기 제직회에서는 교육부장 권은숙 집사가 “고등부 학생들에게 집에서 성경 1 장씩을 꼭 읽게 부모님들이 배려해 달라’고 당부를 하기도 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징후’ 의 하나였다 10월 9 일에는 성경문제지 모범 해답자와 전도자들을 시상했다 수상자들은 이선옥 184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들 오안순 오순덕 정주택 김창신 등이었다. 이듬해에는 어머니 성경반이 조직되어 본 교회 hwm~ 평신도교육의 근죠띨 이루게 된다. ν p 란 해에 서l 번 바괜 교엑샤 따gι 끄씨4i 1983년은 한해동안 어린이부 교육전도사가 세 번 비뀐 해였다. 2년 3개월간 시무해온 주윤서 전도사가 6월 19 일 자로 사임하고, 후임자로 임광수 전도사가 부임했다. 주 전도사는 5월 제직회에 “본인 사정으로 주일학교 일을 계속할 수 없으니 다른 분을 물색해 달라 는 말을 전달했었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율동도 이끄 는 등 교회학교 일을 헌신적으로 해왔고, 재임 당시 약혼식과 결혼식도 올렸다. 신임 임광수 전도사는 서울 도원동교회 출신으로 신일중고등학교와 장로회 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장로회 신학대학 신학과 1년을 수료했다. 임 전도사는 본 교회 어린이 여름캠프도 이끄는 등 많은 수고를 했으나 5개월 후 서울장로회 신학대학 에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11 월 초순 한국으로 떠났다. 연말을 한달 남짓 앞둔 11월20 일 윤은수(마이크) 전도사가 새로 부임했다. 그는 노스 이스턴 바이블칼리지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7』 목샤 박샤학위 취특 김창길 담임목사는 수년간 목회생활을 겸한 연구와 각고의 노력 끝에 1983년 6월 7 일 드디어 맥코믹 신학교20)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수여식은 당일 시카 고대학교 라키펠러 채플에서 거행됐다. 김 목사는 학위를 받은 약 한 주 후인 6월 13 일부터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그가 교우 들에게 부탁한 기도제목은 이러했다: 20) 맥코믹신학교 · 미국장로교앤CUSA) 교단 신학교 중 하나. 대도시인 시카고에 위치해 있으면서 다변화 된 사회를 위한 지도자 양성 차원에서 지구촌 선교 도시선교 현대교회의 지도자의 개발과 행정교육 을 중시한다. 다민족 복합문화권을 적극 인정, 인종차별이 없는 것이 특정. 1829년 설립 이래 수많은 저명 지도자가 배출되었다. 마포삼열(Samuel Moffet)을 비롯 이길함, 곽안전, 배위량, 소안론, 새뮤얼 무어 퉁 한국교회 초기 미국선교사들의 잘대 다수가 이곳 출신이다. 최초의 한인동문은 1930년대의 배민수(뉴욕한인교회 6대 담임목사)였고, 50년대에 한철하, 김득렬, 백예원 등이, 70년대에 일부 한인 들이 공부했다. 1978년에 시작된 목회학 박사 과정의 첫째 그룹이 81 년도에 졸업햇다. 대한예수교장로 회 총회 목사연수교육, 총회 여전도회 연수교육 등도 여기서 실시돼온 바 있다.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샤 157-159쪽 참조 '185
(히 ;':t ξ등~ι 누주;애;, 。 £ i고호 130 녔^~ 겸손하고 정직하기 위하여, 말씀에 갚이 들어가기 위하여, 기도에 더욱 힘쓰기 위하여, 교회당 건축을 우1 0-1여, 교우들이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도록, 교우들의 가정, 가정의 기도 제목을 위하여. 김 목사가 겸손해지기 위한 기도를 우선으로 삼은 것은 그 즈음에 박사 학위를 받았 교 여기저기 초청도 많이 받아 목회자로서 대내외적 위상이 날로 저l고됨을 의식했기 때 문이었던모양이다. 김 목사는 또 그 무렵 뉴욕한성교회 김권석 목λ까 장기간 투병 중이어서 그곳 강단 에서 À1주 대리설교를 했다 당시 김권석 목사의 회복을 위한 기따 범 교단적 차원에 서 이루어지고 있었다.6월 26 일에는 예배 후 오후 4시부터 주교실에서 김 목사 목회학 박사학위취득 축하예배 및 논문발표회가 있었다. 이날의 순서는 이러했다.(표 22) 표 22 축하예배순 목회학 박사학위 축하예배 및 논문발표회 집례자. 송병기 목사(목양교회) 개회송 유필봉집사 기도 말씁 윤명호 목사(뉴저지성은교회) 찬송 논문발표 사람을 찾습니다(막 1:16-20) 정인영 목사(뉴욕영락교회) 축사 169장 다같이 축가 김창길목사 답사 폐회송 'Ministry of Lay μ겼ders삐p Tr뼈ing tbrough the Korean 드{드 s=:. Bible In며tute in Korean-Arneri떠n Context’ 임인환 목사(장로회신학대학 동문) 김정국 목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동문) 김병기집사 김창길목사 어지신 목자(김진양 집사) 박석린 목사(버겐장로교회) 186
예수 닮기 원하는 사참들 1983 낸도 표 24 캔프와 수랜최 어린이 캠프 반 조칙표 (이륨은 가나다순) 그해 7월 18 일 -21 일 3박4 일간 교회학교 어린이부가 ‘말씀대로 살자 (덤후 3:15)는 주 |반이 홈 베드로 바윷 요한 제로? 포코노수양관에서 여름캠프를 가졌다. 어린이들과 교사들은 심신을 단련하며 마음껏 교사 청영션 엄광수 정재철 자연을즐겼다. 장경숙 죠푼숙 캠프 조직과 일정은 (표 23,찍,25)과 같았다. 학생 김규창 고갱수 고은수 캠프 신청 어린이는 추후 늘어나 당초의 반 김규호 배미쩔 문석 조직(19명) 보다 캠프 수료자가 6명 더 많았다. 김동욱 배샤론 문성계 앵라이언 양제니 셔채훈 이병민 이유진 장풍현 조정헌 이회숭 청은주 조션갱 애 캠프수료자 명단 m U옐i 랩 2-1-이언, 이병민, 고정헌, 배재철, 앤 김규호, 김규창, 장회인, 최인분, 킹 김동욱, 조선경, 이유진, 김성미, 뾰 서재인, 최인실, 배샤론, 정은주, 고은수, 양제니, 고정수, 이줄리, 표 25 어련이 캠프 시간표 배미셀, 문석, 서재훈, 장동현, 문성계 (합 25명) 시간 18 일 19' 20일 이에 앞서, 6월 5 일 본 교회학교 교사 장 7:00 기상 경숙(유치부), 정재철 (유년부), 유정심(유년 7:30 새벽예배 8:30 체조·셰연 9:00 아첨식사 교희학교 어련이챔프 조칙 표 23 10:00 찬송공부 10:30 아침예배 11:30 출발 생경공부 고문: 이대영(교육부장) 김어금(어련이부 부장) 12:00 개회예배 수영 게임 총지도: 입광수 전도사 정심식사 그림그리기 교사: 청재철 • 갱영선 숙소배정 보조교사: 장경숙 조문숙 오리앤테이션 피크닉 노래지도· 임광수 장경숙 편지 쓰기 생경지도: 임팡수(바윷) 정채철(요한) 갱앵션(베드로) 식생활: 조문숙 장정숙 김숙자 갱영선 레크리에이션·회계:갱재철 율용판리. 조문숙 회계: 갱재철 6:00 저녁식사
부), 권은윌중 · 고등부) 등은 크리스천 아차데미 주최 교사강습회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어린이캠프를 마친 뒤 8월 15 일 제직회에서 임광수 전도사는 “준비과정과 교사진이 미흡했으나 하나님 은혜 가운데 무사히 마쳤다’면서 “유년부 교사를 보완해 달라’고 부 탁했다 8월 6 일부터 7일까지는 제2회 전교인선잉수련회가 열렸다. 주제는 ‘여호외를 찾을 만한 때에 찾으라’ . 강사는 박맹술 목새대구대봉교회 위임목 씨였다. 회비는 가정당 45달러였고 식사는 예년처럼 각 가정에서 준비했다. 참가 가정 수는 모두 20가정이었다 박 목사의 설교제목은 ‘하나님의 자녀’(요일 3:1-12), ‘믿음을 더하게 하자’(마 14:22- 33), ‘하나님이 함께 하는 나그네 생활(히 11:1-6)등이었다. 여름이 차차 식어가딘 8월 25-28 일에는 청년부가 제4회 수양회를 펜실베이니아에서 개최했다. 채해 뼈 8월 14일로써 교회설립 11주년을 맞았다. 주보에는 이런 글귀가 올라 있었다. “그 동안 우리로 역경을 이겨내게 하시고 앞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립니다. 앞으로 우리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성장히는 교회가 되어야하겠습니 다 여기 ‘성장하는 교회’ 란 말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참된 성장을 지향하고 있고 또 주님 은혜 가운데 실제로 서서허 성장단계로 들고 있음을 시사히는 말로 여겨진다. 또, 창립 11주년을 기념하여 본 교회에 10년간 계속 출석한 교우들에게는 기념패를 주기로 했다. 그해는 홍무승 집사와 이애순 권찰에게 주기로 하여, 한국에 기념패 제작 을 주문하여 추수감사절에 수여 됐다 서핵 £장 jt c얘빼 새쏠;* 5월 29 일 청년부 회지 ‘작은 빛’ 원고 모집. 10월 2 일 성찬식을 앞두고 참회기도 하며 준비할 것을 예고하면서 회개의 제목을 제 188
시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어긴 좌.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감당치 못하거나 교회 일 을 방해한 죄. 거짓증거와 분노, 다툼 등 이웃에게 지은 죄 등.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양심을 속인 일 등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에 감사하는 기도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채 ι표샤I 얘 씬채쏟 10월 9 일 예배 후, 전도부 주최로 성경문제지 모범 해답지들과 함께 전도자들을 시상했 다. 특히 이날 수상한 전도자들은 모두 11명이었고 이들이 전도한 대상자들은 총26 명에 달했다 과거에 비해 현저히 증가된 숫자였다. 교회가 성장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날 전도상 수상자들은 다음과 같았대가나다순 · 괄호 속은 대상재. 고수광(조동근 · 위은희) 권은숙(이춘희) 김동관(양성절 • 이신옥 • 김공환) 김일영(김남연). 오순덕(최명찬 • 신복자 • 최명철 • 이명애) 이대영(정신옥) 이문영(장상일 • 안주현 • 장경희) ol -2}금(김덕림 • 이미라 • 이미경) 이애순 (이정호 • 이낙선) 최재석(천형권 • 홍순일 · 원혜경 • 이정목 • 송정화) 한원열(이진호) 캘 11월 18 일부터 20 일까지 그해 하반기 부흥사경회가 열렸다 주제는 ‘바로 알괴 바로 믿고, 바로 살자’(덤후 3:14), 강시는 토론토영락교회의 검재 광목사였다. 김재광 목사는 사흘간 ‘인간의 요구와 하나님의 선물’ (행 3:1-10), ‘신앙생활의 3 대 황금률’ (살전 5:16-22),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야 4:13-17), ‘구하라 주신다’ (마 7:6-12), 주일예배 때는 ‘최고의 은새 (고전 12:3I!13:13) 등의 제목으로 사랑에 관하여 열변을 토 했다. 또 주일 오후에 있은 제직수련회 때 ‘충성된 일꾼’ (마 25: 23-38) 이란 설교를 했다. 강사 김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을 나왔고 토론토영락교회 위임목사로 7년 시무했고 미주한인장로회 총회징l을 지냈다. 원로목사로 은퇴한 뒤인 90년대에는 러시아선교사로 사역하게된다. 189
--i#;:{Xl ^。t- ë르 그효뼈 얘 gk종 12월 22 일 목요일 밤에 성탄축하예배를 드렸다.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표 26) 제 1부 성토홉0-1여l 배 집례자 김창길목사 투극 c 82장(저 들 밖에) 찬송 83장(고요한밤) 김목사 기도 제 2부음익예배 λ~ ;〔Z그늬lC2그.5-õ,. C그 설 교고 광소 찬 。도 :다 합창 • 유치 ·유년부 ‘아기뻐라주오셨다 o Come Al1 Ye Faithful’ ‘고요한밤’ We Wish You A M얹γ Chris1mas’ 피아노독주 이유진 ‘탄일종’ 무용 ‘고요한밤’ 성구낭독 • 중·고등부 이상은 비이올린 독주 최인제 녹2:1 -14 η Holy Night' 합창 What Child ls This' 추 Away In A M와Jger 도 'Ring the Pells’ 김목사 표 26 성탄 축하예배 19Q
연말인 31 일은 한 · 미 합동 디너파티를 갖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이날 우리 교우들 은 1984년도 소원 기도 제목을 담임목사께 적어냈다. 김 목사와 EFC 미국인교회 담임 마이클 플로레스αi[ichael A Flores)목사가 한 · 영 이중 언어로 진행한 합동 송구영신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전주 ‘확실한 나의 간증’ (295장) 찬송 예배에의 부름 (시 90: 1-17) 성경봉독 찬송 ‘나는 밝히 알도다’ (278장) 헌금 봉헌송 ‘새해의 기도’ (A New yi얹r’s Prayer) 메시지 ‘내주는 강한 성이요’ (344장) 찬송 죽도 191
^~을므 @ 누주;에 ;::;:10--- 교호 130 않^~ 19~4 그해 첫 주일은 정초얀 1월 1 일이었다. 새해 목표는 ‘계속 성장판 교회’ 였다. 192 예배 중 성찬식이 거행됐고 새해 서라집사가 임명됐 다. 여집사 10 명, 남집사 12 명 등 모두 22명이었다. 서 리집사 임명기준은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살려 는 사람, 지난 1년 동안 6 개윌(26주) 이상 교회에 출석 한 사람, 교회 치리에 순종하며 교역자를 협력하는 자 등이었다 타 교회에서 집사로 봉직했던 자나 본 교회에 봉직 했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 집사로 임명될 시 6개월 이 상 교회출석과 봉사 여부를 고려키로 했다. 새해 초 반 7댄 일은 김기태 장로가 협동장로로 임명된 λ}실이 1과 김 장로는 원래 시무장로였으나 잠시 휴무했다가 복귀 했었다 1윌 8 일 예배 때부터는 회중 찬송가를 간주 없이 계 속 부르기로 했다. 또 그날 당일 예배 중 제직회 부서 담당자를 임명했고, 예배 후에 열린 공동의회는새해 예산안을 82,740달러로 확정했다. 공동의회 후 장기 호 집새김귀남 집 λ9 댁에서 선년축하 전 교우 친목회 를 가졌다. 한편 1월중 미국인교회와 건물관리를 위한 회 의에 김기태 장후 양호식 집새 서광진 집사 등 본교회 대표가 참석해 회의 결과를 서광진 집사가 보고했다. 그해 선염집사 환영회는 2월 19 일 예배 후 주교실 에서 열렸다. ι‘ % 그 즈음 교회학교 어린이부는 매달 초에 교육내용을
본 교회 주보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자칫 교회학교 교육에 무관심해지기 쉬운 학부모들을 환기시켜, 자녀들과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기 위함이었다 3\"4월 교육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왜연 4일 기도의능력 11 일 무엇을 기도할지를 가르쳐주신 예수님 17일 롤러스케이팅 18일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신 예수님 25일 주는생활 4월 1 일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8 일 발을씻기신 예수님 15일(종려주일) 자기 죽음을 예언하신 예수님 21 일(토) 부활절 파티(양호식 집사 댁) 22일(부활절)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또한 3월 11 일 예배 후에는 교육부 주관으로 ‘부모와 교사와의 대화’ 시간도 가졌다 1984년 ‘커피봉사부원 연간계획’ 이 3윌 18 일에 발표됐다. 주일날 친교시간이면 소다나 커피 등 음료를 꼭 마시는 볍이교 음료 자체는 물론 컵과 스푼, 커피젓개(stirrer) 등 부속도구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커피를 끓여 준비하고 테이블에 배열하는 것도 일인 데다 빼고 나면 설거지와 쓰레기 등 뒤처리가 필수적으로 따른다. 그러니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만만치 않은 봉사 일감이었다. 더욱이 남의 교회당에 세 들어 사는 처지이니 더욱 뒤처리에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본 교회는 아예 구역책임제로 담당하도록 3월부터 12월까지 각 구역별 순번제 봉사팀을 썼다. 각 구역장은 당번 기간동안 책임 하에 구역원들 중 3가정을 지명하여 예배 시작 15분전 에 도착하여 커피준비를하고, 예배 후본당뒷정리와주교실 청소돕기, 쓰레기 치우기 등 을 맡기게끔 했다. 효과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었다. 85년 새해부터는 여전도회 봉사부가 친교시간 다과봉사를 주관하면서 다과봉사 시간표 를 붙여놓고 다괴를 제공할 이들은 원하는 해당공란에 적어 넣도록 했다가 86년에는 재차 구역별로 한달 씩 맡기로 했다. 193
.~썽f\" #;X{Rl 장효품.ül효 l경 01썩 ^t 7』권서 옥샤 쇼:*~ 1984년 4월 4일, 뉴욕한성교회 김권석 목사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집례는 뉴욕 동노회장 이성의 목λ}개 조사는 당시 노회서기였던 김창길 목λ까 맡아했다. 고 김 목사는 우리 교회와 상당한 관련을 맺고있었다.1982년 9월 5 일에 개최된 본 교회 김창길 목사의 위임식 때 위임국장으로 절차를 이끌었다. 또 그가 83년 1월을 전후하여 업 원한 이래 1년 이상 계속 한성교회 강단을 비울 동안, 본 교회 김 목사가 주일날 오전에 뉴 욕을 오가면서 한성교회 강단을 여러 번 지켰고, 성례식을 집례했다. 김권석 목사는 한국에서 전도사 시절부터 서울 동산교회 등 4교회를, 미국에서 버팔로 한인교회 등 3교회를 개척 설립했다.70년대 초 뉴욕한민교회를 설립한 데 이어, 한성교회 를 개척해 교인 수 1천명 급의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능력 있는 목회자였다. 아울 러 동노회 노회장과 미주장로회 신학대학 이사장도 지냈다. 장로회신학대학과 숭실대학 사학과‘ 등을 졸업한 그는 미국에 이민 옹 뒤 목회하면서 뉴 욕신학대학원이YTS)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82년 페이스신학교에서는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목회와 학업에 너무 무리를 했는지 병환으로 목회를 하지 못한 채 요양을 하다가 그해 4월 2 일 새벽에 우드사이드 자택에서 운명했다. 뉴욕교계와 동노회가 큰 일꾼 을잃은것이다. 김권석 목사는 행복한 하늘나라로 갔지만, 목회자가 평소 건강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중 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후 유고집이 책으로 나와 88년 4월2 일 출판감사예배가 4주기 추모 식과 함께 거행됐다. 한성교회 후임자로는 정영환 목사가 부임해서 한동안 목회를 한다. ~}~ ^~출 투표플 콰마 이 해 4월 27일, 장로 3 인 선출을 위한 임시공동의회가 열렸다 본 교회는 당초 4월에 있은 교단 노회에서 장로 3 인 선출허가를 받았었다. 이날 우선 협 동장로 김기태 장로에 대한신임투표가실시돼 압도적인 다수득표를 했다. 같은 날 정주섭 집사 역시 피택장로로서 다득표 했다. 장로투표는 공동의회 투표권을 가진 교인 수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한다. 그후 정주섭 피택장로는 10월 9 일(회) 버지니아 성광교회에서 열린 동노회 제20차 노회 기간 중 장로고시에 응시, 합격했다. 또한 11월 4 일에는 김기태 장로의 취임 및 정주업집사 장로 장립식이 김창길 목사 집례로 성대히 거행됐다. 1M
그러나 김기태 장로는 또 다시 대인관계 등의 문제가 생겨, 이듬해인 1986년 8월에 권고 사직 형태로 처리되어 교회를 영 떠나게 된다. 그 즈음 한국에서 똥일) 찬송깨 가 나와 우리 교회는 5월 첫 주일(6 일)부터 사용하기 사작했다 새찬송가에서 개편찬송가로 비꾼 지 약 4년 만이었다;4월 첫 주일인 1 일에 열린 정기 제 직회는 찬송가를 변경하되 서무부 주관 아래 교회비치용으로 50권을 구입하기로 했다. 4월 8 일 주보 교회소식란에는 관련 뉴즈카 이렇게 댔다. “통일찬송가는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맞는 금년에 한국의 모든 교파가 하나로 통 일된 효녕가로 찬B하기 위해 19개 교파가 연합하여 묘단든 효똥가입니다. 성경이 하나 인 것처럼 효벙가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할벨루야~벙가 구입신청은 장기호 집사님(서무부장)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권당 3달러입니다 그 무렵 뉴저지를 비롯한 미주 각처의 한인교회들이 앞다둬 또는 신중을 기해 통일 찬송 가를 구입했다 일부 교회는 얼마간 기존 찬송가를 고집하기도 했지만 이내 바꿔나갔다. 통일 찬송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여러 교파 교회의 연합집회나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대형 집회 때에 합동찬송개 새찬송개 개편찬송가 등에 공통으로 실린 같은 곡인데도 매번 서로 다른 7}사로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 해프닝(?)을 벌여야 했다 또 서로 다른 찬송가에 실린 좋은 곡을 부르고 싶어도 수고롭게 구입하거나 복사해야 하 는 어려운 점도 있었다. 당초부터 번역가사가 통일되지 못했고 새 찬송가가 나올 때마다 매 번 조금씩 수정했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왜 이렇게 자주 찬송7까 바뀌어야 하느냐”는 노 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겨레가 하나로 통일된 찬송가 를 사용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물론 통일찬송가에도 문제점은 많았다. 곡조와 가사 등 200 여 군데가 틀려있었고 일부는 신학적인 문제도 비쳤다. 통일찬송가는 2000년대까지 약20년간 계속 사용돼오다가 한국 찬송가공회에서 다시 새로운 ‘21세기찬송깨 를 펴내기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문제점이 많아 아직 ‘실험단계’ 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는 미국 교계의 경우, 교단과 교파마다 자기네 선앙과 신학교리에 맞는 고유한 찬송가를 쓰고있으나, 같은 곡조인 경우는 번역가사가 아닌 영어 원어이기 때문에 가사가 195
거의 공통이다. 우리 교회는 설립 초부터 여러 번 찬송가를 바꿔왔기 때문에 합동과 새찬순 재 개편, 통일 찬송가 네 가지를 다 갖춘 가정도 많았다. 3흙종날 뼈 91 애새훨 1980년대 전반기부터 유난하리만큼 꾸준히 이어진 관습이 하나 있다. 여 성도들의 베이 비샤워 (baby showe이다. 첫 번 케이스는 1984년 4월 주보에 나타난 대로, 여전도회가 시작 했다. 그 뒤로 베이비샤워 뉴스가 끊이지 않고 줄기차게 주보 소식란을 장식해나갔다.1986 년 11월 30 일, 젊은 층으로 구성된 청년여전도회가 생긴 뒤로는 그들의 몫이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자매들을 위해 한꺼번에 치른 적도 있다. 베이비샤워는 누구든 이민초기에는 생소한 말이며 관습이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조금 씩 베이비샤워 관습이 번져가고 있다고 하나, 주로 아기용품점에서 이용하고 있어 상엽성이 농후하다. 사실 베이비샤워는 대단히 이름답고 편리한 전통이다. 일반적으로 베이비샤워는 예비염 산부에게 여자친구나 이웃들이 파티형식으로 아기용품 등 선물을 주면서 용기와 격려를 「해 주는 것이 상례이지만, 출산준비 소식이 미리 알려지지 못했거나 사정상 산후에 하는 경우 도 없지 않다. 김정은 사모의 경우 4월 3 일 득남한 뒤 펙 한참 후인 15 일 주일오후에 베이 비샤워가있었다 그 전에는 베이비샤워를 해도 주보에 내지를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이띠}를 계기로 계속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누군가 센스 있는 여 성도가 제안하여 시작했을 수도 있다. 경; 객&빽 ~I \" l3 a 1980년대에 유년부와 중 · 고등부 등 교회학교는 잦은 지도자 경질로 안정감과 지속성 없는 교육이 반복됐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 해에 중 · 고등부는 2월초 실내수영장에서 친교를 히는 등 뭔가 새롭게 활동이 전개되 는 듯 했다.4월에는 중 · 고등부에서 캠프기금 마련 쿠키세일을 했다. 또 4월 18 일에는 중 · 고등부 16명이 그레잇 어드벤처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6월 이후 중고등부는 또다 시 지도A1를 찾기 위한 기도를 호소하고 나섰다 196
표 27 1984 SUMMER RETREAT SCHEDULE 어련이캠프 스케줄 TIME JULY 6 (Fr iday) JULY 7 (Saturday) JULY 8 (SUnday) Wake up call ’Good Morning ’ 8:30 8reakfast Mor ni ng Devot ion & Songs Morning Worship Outdoor Recreat ion Packing & Indoor Recreation 12:30 Lunch Lunch GOOD8YE 뉴훈 3:30 Departure from the 5:00 To the Beach/Water SI ide Church 없ck to Harvey Cedars 5 5:30 Dinner 1ndoor Games Bible Study & Movie 6 Arr ived at Harvey Cedars 6:30 Ice Cream Party hwE Get Ready for Bed b& 7 Brief Orientation 빠 GOOD NIGHT 깅 F흉 Devo t i on & Games 싸 £ f4F Bedt ime 'GOOD NIGHT!\"‘ '----- 셔랜 QI 부 6 샤 셔릎캔프 그해 여름어린이부는하비시더 비치에서 제6차여름캠프쩌따veyCedars ’84 Bible Conference) 를 가졌다. 어른들이 제3회 전교우 수양회를 가진 때와 같은 주간이었다-.(표 27) 캠프에 앞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이런 공문이 나갔다. 푸른하늘, 푸른잎새, 푸른바다… 어린 심령들에게 푸른 꿈을 올해에는 하비시더즈 해변 수양관에서 심어주렵니다. 여기 참여히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끝으로,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켜주시며 일생에 못 잊을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그리 스도의 사림들로 익어 가는 풍성한 열매가 맺어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똑히 간 구하는 바입니다. 아멘. 뉴저지한인장로교회 목사 김창길 전도사윤은수 19'7
.\",(4[f、 #루 ~-!~I 장트쩔.m호 I렇 O~M 7』허l 희 션도샤 부 o』콰c~ 10월 7일에 새로 김혜희 전도사가 부임했다. 나날이 H빠만 가는 담임 김칭길 목사의 목회를 협조할 분이었다. 김 전도시는 부산 남성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 여성지도과를 나와 밸리포지 크리스천대학에서 기 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이명호-김혜희 부부는 우리 교회 주보 교회소식란을 한참동안 장식했다. 까닭은 두 분의 교회 봉사활동이 전반적으로 활발했던 데다 한때 한국에서 비자 문제로 묶여 서울에서 서울 구역을 돌보면서 지냈던 까닭이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우리 교회를 위한 활동을 했다고 헬 수 있다 온 교회가 그들의 귀환을 오매불망하며 기도했었다 김 전도사의 남편 이명호 장로는 집사 시절부터 우리 교회에서 오래 충성하다가 훗날 목 사로임직하게된다. 8* 년표 주요 대내 챙샤엠 ~I 4월 20일(금) 성금요일 가상7언 기도회 · 성찬식 겹 연합구역예배. 4월 23~24일(월 · 화) 임마누엘회 회원 (9명) 3차 여행(나이아가라폭포 • 김 목사인솔). 4월중 정재봉 군, 런던 국제태권도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 개인 대전 3등입상. 6월 3일 야외예배(스와츠우드레익 주립공원). 6월 19~21일(화-목) 미주힌인장로회 제 9회 총회(총대 : 김 목사). 7월 6~8일(금-주) 어린이부 제 6회 성경캠프(롱비치 하비시더비치 수양관). 7~8일(토 주) 제 3회 전 교우 수양회(하비시더 수양관). 주제 : ‘믿음 요써1서’ /강사 김일광 목사(동양제일교회) 7월 12~15일(수-주) 중 · 고등부 하기수양회(밀포드 YWAM 캠핑센터). 15일 전 교우 수양회 실무진 평가회(수양회 결과 발표). 7월 30~8월1 일(월 수) 뉴저지연합부흥회. 강사: 김진홍 목사(남양만 활빈교회) 8월 12일 설립 12주년 기념예배 및 다과회. 16~18일(목-토) 유치 •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6~19일(목-주) 중 • 고등부 캠프(펜주 파인브룩 바이블컨퍼런스). 198
8월 26일 학생 15명, 교사 1 명 참석. 9월 16일 9월 23일 전도부원 3명 임명(오안순 • 서광진 • 정주섭) 10 월 8 일(월) 가을야외예배. 10 월 18~21 일(목-주) 정주택 교우 중공료문 편에 신약성경 5권과 10 월 21 일 11 월 4일 가스펠송 테입 107B 보냄. 임마누엘회 사과 따기 나들이. 추계 부흥성회. 강사: 이준만 목사(나성정운교회) 공동의회(교회당 이전 건). 김기태 장로 취임 및 정주섭 집사 장로 장립식. 흘쉽 하,4 11월에는 본 교회 역사상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기도해오고 갈망해온 새 교회 당으로 이전한 것이다. 현재의 본당인 펠리세이즈팍의 건물이대사진 24). 이에 앞서, 8월 26 일에는 새 교회건축위원들을 임명했는데 다음과 같았다. 「 디. 김창길목사 J..!... '2:'\". 김기태장로 서태호집사 위원장: 조인기집사 정주섭 서광진 양호식 이대영 오순덕 오요단 회 계: 부회계 : 위 원: 사진 24. 현재 사용하고 있는 펼 리세이드팍 본당이다 The church at its current location in Palisades Park, NJ. 199
g 、r ‘ & 듀^,-f ;;;;;1 장로쿄호 lj0 년 At 9윌중 김 목사는 교회이전 등의 문제로 포레스트힐 수양관에 들어가 20 일간 금식기도닫 했다.10월 7일의 정기 제직회는 교회이전을 원칙으로 함에 있어 다른 후보건물을 탐색할 수 있는 권한을 건축위에 위임했다. 당시까지 머물던 자유복음교회당은 향후 4개월 더 쓸 수 있도록 당초 합의해 두었으나, 더 이상 오래 렌트를 내면서 그 기간을 채울 필요도 없이 바로 다음달에 이전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10월 21일에 열린 임시 공동의회는 건축위원장 김기태 장로가 당시 입주해있던 미국인교 회와의 상황을 설명하교 이전할 새 후보건물에 관한 사항을 소개한 뒤, 온 교인이 이전여부 를 놓고 거수투표를 한 결과 55명중 압도적인 디수인 49명이 찬성함으로써 통과됐다. 새 교회당에서는 오후예배 대신 오전예배를 드리게 됐다. 미국교회가 오후예배를 드라는 때문이었다 주일 오전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교회설립 11년만의 일이었다.11월 18 일 까지도 미국인교회당에서 오후예배를 드려야했지만 그 후로는 주보에 오전10시, 11시로 예 배시간이 기재되고 있었다 또 목요기도회는 수요예배로 바뀌었고 새벽기도회도 가질 수 있게 됐다. 새 교회당의 사 무실도 시용할 수 있게 되어 11월 n 얼 제직회는 전화와 가구 등 비품을 구입하기로 하는 한 편, 그 동안 몇몇 제직들이 나누어 자택에 보관하고 있던 교회 비 품을 시무실로 모아놓기프 했다 그러나 미국교회가 오후 행사나 특별행사를 할 때는 그만큼 공간에 제한이 따랐지만, 갑 수해야 했다. 결국 최종 목표는 자체 교회당 마련이었고 바로 이 건물이 유력한 후보가 띈 다. 교회는 그 동안 자체 교회당 마련을 위한 건축헌금을 꾸준히 적립해왔고 이를 위해 건죽 위원회가 많은 수고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같은 달에 갖게 된 그해의 추수감사절에는 교인들의 감사가 유달리 넘쳐 났다. 깜 사헌금 예산도 4,000달러였다. 200
예수 닮기 원하는 사행을 1985 번도 q u, Stability Period 새 션샤cH ~I 취샤 오 4 k ψ 새해에 정말 필요한 새 일꾼이 왔다. bE봐 당회가 신임 성가대 지휘자로 김형주 집사를 선임한 맨 것이다~ 1월 1 일 신년축하예배 때 소개된 김 집사는 서 써 울 충현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서울대학교 음악대 X매} 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총신대학 2년을 수료한 뒤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교육 석사과정을 이수 중이었 다. 김 집사는 본 교회 성가대의 수준 향상에 크게 기 여했다 그는 오자마자 성가대에 전문 독창자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3월 제직회는 솔리스트 사레비 지출항목을 4 월 제직회 때 결의키로 했고, 정작 성가대 예산에서 지 출하도록 결의했다. 그러나 독창자에게 월 250달러씩 을 지급하기로 결정된 것은 8월 제직회 때였다. 2월 17일에는 예배 중 성가대원과 교사들이 임명됐 다. 성가대장 김기태 장후 김형주 지휘자, 박병연 반주 -^}, 김동관 총무, 그리고 대원이 19명이었다. 대체로 이 민 교회에서는 일부 파트의 멤버가 귀한 경우가 많은 데, 이 해 대원들 중에 앨토는 단 2명뿐이었다. 혼성합창을 건물로 비유한다면, 베이상} 기초를 이 루고 소프라노는 지붕을, 테너와 앨토는 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4부 합창이 균형 을 이루려면 일반적으로 고성인 소프라노와 저성인 베 201
사진 25 전교우 (19:35 년) Church members ( 1985) 이스는 숫자가 많아야 하고, 중성(中聲)인 앨토와 테너는 상대적으로 적어야 한다. 중성 의 소리가 고음이나 저음보다 크면 균형을 잃고 불안해 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 리 교회에 앨토 대원이 적은 것은 음량이 충분한 이상 과히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우리 교회 성가대 대원수는 점차 불어나게 되며 수요공급 현상에 따라 2.3부 예배가 개설되는 80년대 말부터 90 년대에 이르면서 2, 3, 4개 성가대 체제로 다원화된다. 그해 신년예배는 1월1 일 월요일에 드렸다 새해 첫 주일 6 일 예배 중 성찬식과 아기세례, 세례 및 전입교식이 거행됐고 서리집 사를 비롯한 일꾼들이 엄명됐다. 정초부터 매주 주보가 풀칼리 표지로 바뀌었다. 1윌 13 일 예배 후에는 조영진 집사 집에서 신년맞이 전 교우 친목회를 가졌다.(사진 25) 한편 김창길 목사는 1월 21 일부터 2월 3 일까지 있는 베델성서연구반 참가 차 17일 한국으로 출타했다. 제직회가 필요한 모든 경비를 지출키로 했다. 김 목사가 떠나있는 동안 주일예배 인도와 기도순서, 수요예배와 새벽기도 등을 김기태, 정주섭 장로가 맡아 하고 설교는 타 교회 목사들이 차례로 맡아했다. 이 기간동안 구역예배는 쉬기로 했다. 2월 8 일에 돌아온 김 목사는 한국에서 주문 제작한 교인들 집 대문에 부착할 교회 명패를 마련해 왔고 10 일부터 각 가정별로 배부하여 붙이게 하였다. 우리 교회로서는 첫 시도였을것이다. 202
한편 새해의 커피봉사는 여전도회 봉사부가 주관하기로 하다. w“ m 교최 채션 olo~;;f 딛ι 애 연초에 통과된 1985년도 예산안은 88,700달러였다. 잉맨 그 즈음 교회가 부쩍 성장하면서 헌금액도 현저히 불어나 헌금괜가 점점 중시되고 킹 있었다. 김창길 목사가 부임하기 직전인 1980년 초 헌금수입이 월 평균 1,500달러 안팎 캘 이었는데, 80년대 전반기를 지나면서 2,000, 3,000, 4000, 5,000, 그리고 1만 달러대 ‘기록’ 을 경신해왔기 때문이다. 1월 정기제직회는 헌금계수를 재정부중 2명 이상이 계수하되 교회 근처 은행에 구좌 를 오픈하고 입금을 하도록 조처했다. 또 헌금봉투는 미국 교회 것을 쓰지 말고 개인 봉 투를사용토록했다. 5월 제직회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전문가에게 교회 등록 문제와 세무보고(IRS)를 의 뢰토록 한 것이다. 이 결정을 하기 앞서 공인회계사 진 명 씨로부터 주 정부 등록문제와 세무보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한편 교회는 목회적립금을 모아왔는데 6월 정기제직회는 목회적립금 중 4천달러를 차용토록 했다\".6월 제직회는 또 6월중 로스앤젤레스에서 실시된 목사고시 위원으로 필 요한 경비를 총대비에서 지출했다. 그러나 7월로 들어서면서 교회 재정에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7월 7일 정기 제직회 때 재정부 보고에 따르면, 상반기인 6월까지의 수입이 46.8%에 그치고 특히 십일조 헌 금은 41.8%밖에 달성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시적 현상일 뿐 부족분은 이내 채워지곤 했다. 그해 말 통과된 86년도 예산액은 104,300달러였다.80년대 하반기에 돌입하면서 최초로 10만 달러 대를 넘어선 것이다. 주보 01 샤71 주보는 그 교회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앞^ì 봐온 대로 과도기였던 70년대는 주보가 이렇다할 체제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였 다. 초기 여러 해 동안은 주로 교우들이 직접 그린 표지그림을 사용하면서 교회력 명절 이나 특별한 행사 때만 미국식 풀칼러 주보용지를 썼다. 인쇄 미디어도 등λ뻐meograph) 로부터 원시적인 초기 복사 시대 사이를 면치 못했다. ‘g )3
환챙$ ^누r Ä -I I O- .... .iil효 130 닙 ^t 김창길 목사가 부임 뒤 1980년 4월 20 일부터 한동안은 고전적인 교회당 모습의 펜 화가 실렸다\".80년대 초기 주보 표지는 이죽희 집사의 이들 이상목 교우 등이 정성껏 제 작한 표지 그림을 6개월마다 또는 해마다 바꿔왔다.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출신인 이 군은 미 전국 그래픽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 있는 디자이너였다\". 1982년 2월 14 일 주보에는 그 동안 해마다 또는 절기에 따라 다양하고 아름다운 주보 표지 그림을 그 리고 있는 이상목 군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짤막한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81 년 6월 14 일 주일부터도 주보그림이 바뀌었다. 한동안 기도하는 두 손을 표지그림 으로 썼는데, 역시 본 교회 교우인 이성의 교우가 다른 모습의 기도하는 손을 그려 대체 하기도 했다. 당시 주보는 모자라 결석자에게는 보내지 못할 정도여서 23 일부터는 매주 120매를 인쇄하기 시작한 때였다. 기도하는 손은 원래 독일종교화가 뒤러의 작품이 유명 하지만, 이와 비슷한 다양한 손들이 그려져 왔다. 우리 주보의 ‘기도하는 손’ 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84년 1월 29 일 주일부터는 향후 본 교회 자체건물을 상상하여 부드럽고 현대적으로 그려 싣고 6개월간 사용했다. 디자인은 역시 이상목 교우가 담당했다. 펠리세이즈팍으로 교회당을 이전한 85년부터 86년 12월 28 일 주일까지 약 2년 동안 은 미국출판λ까 인쇄하여 기독교서점에서 판매하는 풀칼러 주보용지를 사용했다 사실 직접 그린 그림은 정답기도 하고 우리 교회의 정체성도 살려주지만, 그림만은 흑백보다 칼러가 아름답고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찍이 1977년 이희철 목사가 부임했을 당시도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칼러 표지에는 어두운 색도 들어가 있어서, 또는 당시 형편상 겉 표지에 교회 이름이나 주소 사역자 이름 등 꼭 필요한 사헝들이 들어가지 못했다. 표지만 보아서는 어느 교회 주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매주 다른 표지가 여의치 못한 경우, 같은 칼러 표지가 여 러 주간 반복 사용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다가 87년 1월 4일부터는 자체 제작한 단색 표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 표지에는 교회명과 주소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 이름들이 명기됐다. 자체교회당을 봉헌하던 1987년 5월 30 일에는 화가 김양숙 교우가 헌당예배 순서지 표지용으로 그린 교회당 전 경을 이후 주보 표지로 한동안 사용했다. 이 표지그림은 90년대에 다시 한번 사용된다. 요즘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나 그래픽 프로그램이 놀랍게 발달하여, 각 교회에서도 인쇄와 맞먹는 품격으로 디자인과 프린트, 복사 등을 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한 시대가 되 었지만 70~80년대만 해도 원시적인 시스템을 면할 수 없었다. 2(짜
여1 수 &앵용 3 평3ξ 글자의 경우, 주보 안쪽은 정해진 순서만 식자하여 복사를 해두었지만 교회소식란 등 매주 엽데이트해야 하는 비정기적인 부분은 모양도 비뜰비뜰하고 엉성한 조립식 활자의 한글타자로만 여러 해 줄곧 쳐왔다. 그래도 주보표지만은 1980년 4윌 20 일부터 체제가 한결 산뜻하게 바뀌었다. 사진식 자체로 한글 · 영문 교단명과 교회 영어이름, 담임목사 이름, 성가지휘자 이름 등이 명시 된것이다. 본 교회 한글타자기는 오래도록 영문이 따로 되지 않아서, 예를 들어 YWAM도 ‘와 이 더블유 에이 엠’ 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원시적인 악조건 아래서 도 초기에 주보 제작에 땀흘려 수고한 선진들에게 그저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라 던 85년 4월, 이태호-박정윤 집사가 한글영문 겸용 식자기를 교회에 헌납하면서 획기적 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 오늘날의 컴퓨터 폰트에 비하면 공타에 가까운 글씨이지만 이전 타자기에 비해 글씨가 한결 단정한 데다 영어도 모두 찍히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4월 28 일 교회소식란에는 그 기쁨과 흥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 주보 활자는 이태호 박정윤 집사께서 헌납하신 식자기를 사용하여 찍었 습니다. 이제 책이나 신문, 초청장, 교회요람 등 모든 문서 작성을 이 식자기로 찍 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주보 아래쪽에는 또 이런 귀띔을 달았다. “오늘 주보는 정신옥 교우가 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정신옥 교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타자를 쳐왔다는 얘기가 된다. 누가 타지를 쳤을까? 식자기가 생긴 즉시 교회요람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 다음 주일인 5월 5 일 주보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85년 교회일람이 나왔습니다. 각 가정과 사업에 필요하신 대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교회일료떨 식자해 주신 정신옥 교우와 제본을 해주신 김상진 집사, 고순이 교우, 정신옥 교우, 조흥번 교우, 이재숙 교우께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교회 인쇄문화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86년 1월 26 일부터는 예배순서가 영어 로도 나란히 표시되기 시작했다.90년대와 21세기초를 지나면서 인쇄문화는 급속도로 발달하여 현재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새 활자체(폰트)와 1,000PPM대를 넘을 정도로 고 205
Ã\" ë르 #;;ζ 에:>1: 10- 쿄혼 도의 정밀도를 따지는 최첨단 그래픽을 논하는 시대가 됐다.(표 28) 총(*휩 쭈뾰 1# 1 혜랴 80년대 초만 해도 교회 주보 제작을 담당하는 것은 지금처텀 교회 사무원이나 비서 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 일을 맡을 만한 교인이 있으면 그 도움을 받을 뿐 이다 그러나 그 봉사의 가치는 사실 막중했다. 그 방면에 소질과 정성이 필요했기 때문 이다. 표 28. 주보 변천사 갤썩쏘마 E산으 샌건1!'! 이;:.'--- @75.7.20-76.12.26 3.77.1.2-78.4.2 ιε4 (등사판수작업) (기성품풀칼라주보용지) 끼{ (j) 72.8.13-74.2.17 (백지에써서복사) 뉴셔서 정」호고~ J:rl 추 시야 3효 이이 ‘p ['-'八 nnnh ‘\\'h,, 1、 11\"ιI’‘ j ,'(ï\"ll ’ ‘prc; SJι.e' ι ,‘”“ιιιN_ ,J.QI엔 01 @)77.4.9-78.12.23 @78 .12.30긴9-7.8 @79.7.15-80.8 .3 1 206
얘수 뉴셔 λl 잔인강회 \" @ 8 1.1.1 8-8 1.6 @81.6.14-82.1 .24 82.8.1-82.9.12 CV80.9.7-81.1.1 1 (이성의교우그림) (이상목교우그림) &깅 앓? @ 82.2.1-82.7.25 @ 82.9.19-83. 1.16 @83. 1.23-83.7.17 뉴져지 한인강로교회 The καPr f'~t>yt\"rian Church 111 U S A @83.7.23-84.1 .22 @84.1잉 84.12.25 @85. 1.6-86.12.28 (기성품풀칼라주보용지) 207
。”수을 Uf라보자 1 시 \" 이1 수깅 '\"이 !;;!.\"'j @ 87.1.4-87.6.7 @ 87.6.14-90.5.13 @90.5.20-96.12.22 (화가김양숙교우그림) 썼 뉴자재상호꼬쩍& 1 개이윷닝이 “이 이“ η @ 96.12.29-99.12.31 @ 00. 1.7-현재 김창길 목사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이다. 그때도 역시 한 여 집사가 이 일을 맡아 봉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그 여 집사가 무엇인가 꽤 큰 보따리를 싸들고 목사 사택으로 찾아왔다. 웬일일까 궁금하게 생각하며 김 목사 내외가 대문을 열고 맞았다. 그 여 집사의 얼굴은 열기로 달아올라있었교 들어오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버티고 서 서 들어오기를 마다했다 그녀의 말인즉 모 집사와 아귀다툼이 있어서 이젠 주보고 뭐 고 다 그만’이라며 문 밖에서 “이거 타이프라이터예요,\"하며 갖고 온 보따리를 내동맹이 치듯 놓아두고 가버렸다. 보따리를 풀어 얀을 들여다 본 김 목사는 기도를 하는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사모에게 말했다. 208
“여보→ 내일이 주일인데 주보가 안돼 있으니 이 밤에 어쩌겠소. 당선이 좀 해 보시구 려 앞이 캄캄했다. 조작법은커녕 평소 타자기를 만져본 경험조차 없던 터라 난감하기 그 지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키 하나를 눌 러보았다. 평생 처음 기계로 글자를 쳐보는 순간이었다. 열 손가락을 써서 제대로 키를 쳐탤 처지는 절대로 아니었다. 소위 ‘독수리 타법 이라고 한 손가락 타이핑 타법으로 쳐 내려갔다. 어느새 훤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그후 그렇게 몇 년간을 계속 주보 만드는 일이 사모의 집1]0비이 됐다 그해 3월 3 일, 어린이부에 조은선 교육전도사가 새로 부임했다. 조 전도사는 서울 수 색장로교회 출신으로 국악예술고교를 졸업하고 노바칼리지에서 수학한 뒤 밸리포지크리 스전칼리지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 당시 85년도 교육부 책임자들은 다음과 같았다. 교육부장 : 이진수집사 중 • 고등부 지도 . 윤은수 전도사 어린이부지도 : 유치부 지도 . 샌디 · 조은선 전도사 박현서 선생 3월 중 운행하기 시작한 새 밴 버스는 교회학교를 위해서도 유익하게 사용됐다. 그해 2윌, 매월 1회씩 모여 성경공부를 하는 젊은 클럽을 당회가 인가했다. 아울러 펠 라세이즈팍 · 포트리 지역 어머니 성경공부반을 오픈, 매주 화요일 오전10시에 아래층에 서 갖기로 했다. 그리하여 2월 26 일 화요일 아침 10시부터 1시간 30분씩 어머니성경공 부반 첫 모임을 가졌고 이후 매주마다 계속됐다. 그해 10윌 13 일에는 어머니 성경반에서 매주일 오후 창세기 공부를 시작했고 금요오후에는 마가복음 공부를 시작했다. 젊은이 성경반은 격주 1회씩 네비게이토 교재로 공부를 했다. 209
.~짧、 .;;.\"~ '\"항풍룹i끄효 l견g 녕 At *1 캔축캔음 우리 교회는 교회창립 10년이 훨씬 넘도록 남의 셋방살이를 변치 못하고 있었다. 물론 한인 밀집 지역 내에 예배처소를 얻기가 극히 어려워서 아직도 많은 한인교회들 이 교회당을 임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임대주인 미국인교회와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은 감내해야만 한다. 6월 정기 제직회는 현 입주건물을 자체교회당으로 구입키로 하교 전교인 모금운동을 통해 건축헌금 16만 달러를 모금키로 했다. 오안순 권λ}가 교회당 건축을 위해 작정하고 부어온 생명보험금(1만달러)을 바친 사실도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6월 한 달 동안 미국 인 교회측과 상의한 결과 “현재로서는 교회당을 매매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7월 21일 주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예배 중에 교회건축을 위한 특별헌금을 한 것이다. 그날 주보 상뺀1는 이런 메시지가 떠 있었다. “…우리 교회가 뉴저지 땅에 창립된 지 14년 맞는 해에 처음으로 교회가 결 정히여 건축헌금을 합니다.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대로 느껴오는 마음대로 감사하며 기쁘게 드리십시다. 여러분의 교회 건축 헌금 이 우리 뉴저지한인장로교회를 구입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 시는 일입니다. 헌금을 지금 다 못 내시는 분은 약정을 하셔도 됩니다 그날 헌금결과는 20,040불 작정 중 5,140 달러가 입금됐다. 아울러 7월 13 일로 만료 되는 교회건축기금 적립금을 마니마켓으로 돌리도록 했다. 그해 연말에는 당회가 제직회로부터 위임받아 선정한 다음 건축연구위원들을 발표했다 정주섭 김기태 강동열 양호식 이대영 이명호 조인기 이진수 김경열 (9명) 건축재정 회계: 조인기/부회계 : 이진수 71E~ 주요 대내 QI 벤트 @안 l 4월 7일 한국학교개강. 5월 12일 새 반주자 최승혜 씨 임명. 6월 5일(수) 재일동포 기독교여전도회 합창단 27명 뉴욕방문. 단원 2명에게 17, 18일 이틀간 민박 제공. 6월 첫 주부터 수요기도회를 목요기도회로 변경 없ø
(미국교회 형편상). 6월 16일 교회당 건물구입 건으로 공동의회 소집 (현 입주건물 구입 결의). 6월 27~30일(목~토) 중 · 고등부 제 6차 하기수양회 (YMCA캠프123명 참가). 30일 전도부 주최 구역대항 성경퀴즈대회(범위 : 마가복음). 입상팀(괄호 속: 구역장) 1등: 5구역(김춘지). 2등: 1구역 (고수광), 2구역(최줌근), 3구역(김기태), 4구역(정주섭), 6구역(최재식) 7월 l 일(월) 임마누엘회 관광(그러l 잇 어드벤처 사파리엔주 밸리포지 국립공원). 7일 전도부, 한국 도서지역 선교비 ($400) 송금. 7월 20일(토) 교회학교 어린이부, ‘세서미플레이스’ (Sesame Pla<떼 관광. 중등부, 저지사우스비치 다여옴(학생 18명/교사2명) 7월 21 일 예배 중 교회당 구입 특별헌금. 솔리스트송란양부임. 7월 22~24(월-수) 교회학교 어린이부 여름성경학교 개교(매일 평균40명 참가). 시간: 오전 10시 오후2시. 학비무료 교사: 정재성 정재절 김문선 김문희 이문영 이영자 7월 27~28일(토 주) 제 4차 전 교우 수양회(헤브론수gt관). 주관: 남전도회. 강사· 손길용 목사(화잇플레인즈한인교회). 267}정 190여명 참석. 8월 1~3일(목-토) 제 7회 교회학교 어린이 여름캠프(포코노 수양관). 회비 l 인 20불. 학생 32명/교사3명/보조교사3 명 참가. 8월 9~11 일(금 주) 둥 · 고등부 여름캠프(참가자 30명). 8월 18 일 설립 13주년 기념예배 예배 중 한국학교 제 1학기 수료식, 발표회(1학기 수료생 32명. 교사 7명) 9월 l일 부흥회 준비위원장 이명호 집사 선임(전도부). 22일 추계야외예배(셰퍼드 레이크). 10월 6일 교회학교 어린이부 조은선 전도사 이입. 김규형 전도사부입. 10월 17일(목) 미국교회 사정상 당분간 목요기도회 휴회. 20일 한국학교 제 2학기 개강. 27일 예배 후 친교시간 다과회 때 중고등부 피아노 모금바자 (모금액 : $800). 11월 1~3일 심령부흘성회. 강사: 박종수 목사(남서울교회). 2U
a 옳{'(, #;;{X ,장훌료 j고효펴g 암〈‘ 12월중 오전 6시에 새벽기도회 회집. 12월 8일 강동열 장로 협동장로 추대. 공동의회 22일 85년도 전도상 시상식(괄호 속은 대상자 수). 1등: 고순희 (5명) 2등: 정에스더 (3) 3등: 채혜숙 박정윤 이선묵(킥잉 4등: 장상일 김혜숙 정신옥 김영근 장기호 김명걸(각1) 25일(수) 성탄절 축하예배(중고등부 • 어린이부 특별순서). 서리집사 임명(남19/여 16/총35명). 성경퀴즈대회(여호수아서) 개최(괄호 속은 구역장/권찰). 1등: 포트리구역(최줌근 유병문 정신옥) 팔린구역(이진수/정낙신) 2등: 펠리사이즈파 구역(고수광 / 고순희), 파라무스 • 오러델 구역 (서태호/이문영) 3등: 호보큰 구역(최재식 / 김성인) 4등: 저지시티 구역(이명호 / 유정순) 대외 책샤 o쉰| 4월 7일 부활주일 새벽연합예배(뉴저지연합교회). 6월 17-22일미주효앤장로회 총회(나성영락교회) 총대: 김창길 목사. 7월 8일 ‘효끈국이민교회와 2세의 장래를 위한 특별예배’ (뉴욕한성교회). 강사: 한경직 목사(서울영락교회 원로목사)/주최 : 프린스턴신학교 아시아신학센터/후원: 미국장 교효앤교회 동부지역협의회 ·미주 한인 장로회 동노회). 10월 8-9일(화-수) 미주한인장로회 동노회 제 22차 정기노회(필라영락교회). 212
에수 짧기 원하는 사형플 1986 년도 *』솥 딴논 교회 1월 1일에 신년축하예배를 드렸다. 그해 새해 목표 λ 는 ‘칭송 받는 교회’ 로 정했다. w 새해예산이 처음으로 10만 달러 션을 넘어섰다. 이 Eb“ 것은 불가앙등 등 전반적인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교회가 그만큼 발전하고 성장한 증거였다. g 김 목사는 중재기도를 위해 기도카드에 각자 새해 따 기돼목을 적어내게 했다. 신년예배 후 여전도회가 마 싸 련한 떡국을 들며 새해인사를 나눴다. 또 5 일 예배 중 킹 성찬식을 거행했고 예배 후 신년도 첫 제직회를 열었 씨 다. 새해부터는 커피봉λ}를 구역별로 한 달씩 담당키로 파 했다0.12 일 예배 후에는 전 교우 새해친목회 및 이태호 집사 오픈하우스 행λ까 함께 열려, 윷놀이, 레크리에 이션(지도: 김진현 교위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86년 1월 19 일부터 주일예배를 비롯한 모든 예배모 임의 출석 통계가 주보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1월초 2 주 분을 소급하여 당일 주보에 실린 첫번 통계는 다음 과같았다:(표 29) 표 29 예빼 출석 통계 날짜 대예배 어린이 중고둥 구역예배 목요기도 주일새벽 계 1 5일 117 46 26 25 4 11 229 12 일 119 44 23 (3 개구역) 13 5 12 216 (1 개구역) 1월 26 일부터는 주보 예배순서가 영어로도 병기되 기 시작했다.2월 9 일부터는 주보가 자체디자인 단색 표지로 바뀌었다. 또 주보 예배순서 위에 ‘칭송 받는 앙3
누주 Ä -I Ä, I ^t- ë르 0- 교회’ 란 타이틀이 붙었다.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서 목요기도회가 수요기도회로 바뀌었다. 한편 당회가 4월중 장 로와 권사 각 3 인씩을 투표하기로 공고하다. 사! 책해 oH 본 교회 어린이부의 이희석 군이 오랫동안 백혈병으로 앓다가 1986년 초 하늘본향에 돌아가 영원히 주님 품에 안겼다. 이형목-박현서 교쑤의 이들인 희석이는 85년 4월 부활절 시즌에 돌연 불치병이 발견 돼 뉴욕대학교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후 번번이 병원을 드나들며 여러 달 투병생활을 하 다개 온 가족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릴 심산으로 9월에 모두 한국으로 나가 기도원 에서 기도하며 요양했었다 그 동안 어린이부, 중고등부를 비롯한 온 교우들이 그토록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건만, 희석이는 하늘나라가 더 좋았나 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그가 행복한 웃 음을 지으며 우리와 만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 85년 마지막 주일 주보에는 특별히, 희석 엄매박현서)로부터 온 눈물어린 편지가 실 려있었다. 사모님! 진작 연락도 못 드러고… 지금은 모든 것 다 주님께 맡겁니다 희석이가 이만 한 것도 감사할 뿐이죠. 그묘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건강하신 성도님들께는 지금 열심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전해주시고요. 고난과 어려움, 병중에 계신 교우님들도 무조건 감사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주님 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증거니까요. 일일이 성도님들께 안부 못 전함을 이해하시고 특별히 학생회 회원 전원과 담당 선생님께 너무 좋은 선물 잘 받았다고 전해 주세요. 희석이가 예수님 얼굴 보며 매일 기도하지요 어머니성경반 회원님 모두 여전도회 회원님과 맨지 어머니, 그 외 모든 분 들께 안부 전해주세요.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희석이를 위해 꼭 기도해 주세요 현서올림 214
박현서 집사는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낸 슬픔을 딛고 일어나 이를 계기로 더욱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을 다하게 됐다. 후에는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여전도회 제2대 회장을 거쳐 1989년도에는 어린이부 부장까지 맡게 된다. 믿음의 큰 승리였다! g샌 ε 뇌 9 샤를 우냥#야 그해 5윌 4 일, 그랜드피아노를 구입했다. 아래층 피아노를 못쓰게 됨에 따라 임시 제직회를 열어 피아노를 구입키로 하고1 제 직 1인당 100불씩 모금한 것이다. 성가대장, 지휘자, 총무, 반주자 등 4명으로 구성된 그 랜드피아노 구입위원회도 구성했다 그렇게 해서 제직 일동이 총 9500달러 헌금으로 그랜드피아뇌야마하 C5형)를 구입, 봉헌했다. 이를 거울로 삼아 그후 90년대에 예닮원 본당을 위해서도 제직들이 같은 방 법으로 헌금하여 봉헌했다. 그때는 피아노 가격도 높고 헌금도 훨씬 많았다. 5월 말에는 중고등부에서도 전자피아노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어느 특정 교인이나 가족이 한꺼번에 헌납하는 것도 물론 귀하지만5 교인 수가 많0찌면서 여러 자 원자가 십시일반으로 내는 이런 유의 단체모금은 픽 효과적이었다. 폴샤왜 쪽책채쩨 흩*$ 김 창길 목사는 자신의 공적인 대내외 출입사항을 명명백백히, 투명하게 알리고 다니 고, 숨기는 것이 없었다. 교단 총회나 노회, 기타 외부모임 참석은 물론 타 교회에서의 단 하루 한 시간의 외부 설교 건, 섬지어 기도나 축도 순서까지도 전체 교우들에게 분명 히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주애..î..3함 얄ø<>1:o~1 빼옳 채려얘 τJ#랴 주일 오후 3시에 개시된 찬양예배가 격주로 각 부 헌신예배로 드리게 됨에 따라 3월 23 일에 임마누엘회가 첫 헌신예배로 테이프 를 끊은 데 이어 여전도회 (4월 20 일), 남 전도회(5월 4 일) 등도 줄을 이었다. 임마누엘회가 헌신예배 첫 ‘선’ 을 변 그 다음주일(30 일) 주보에는 이렇게 기재됐다. 원5
‘ ξ씬(, 느주;;;;;:-1 ;;;;1 장 æ교호 l경 Q 얹 ^t “창립 14년묘배 처음 드린 역사적 찬양여1 배에 참석한 교우들이 42명이었습니 다. 특히 성가대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임마누엘 회는 외부강사가 없이 강동열 장로가 설교했고, 여전도회 헌신예배에는 정 영환 목사가 초청되어 ‘헌신의 삶 (웹5: 15-21)이란 설교를 했다. 남전도회는 부회장 양호 식 집사가 인도하고 이명호 회장t피택장뢰이 하나님의 섭리 (출4:10-13)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사뭇 자발적, 자치적이고 고무적인 현%에었다 더욱이 헌신예배 주보에는 전체 교회 광파 아닌 그 부서의 광고가 충분히 실릴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부서의 선전홍보용으로도 톡톡한 구실을 해냈다. 예를 들어 5월 4일 남전도회 헌신예배 주보의 ‘광고’ 란에는 회보 ‘임마누엘’ 2호 원고 모집, 회원가입 촉 구, 매주 대예배 실황 녹음 테이프 홍보 남전도회가 돕고 있는 한국 경북 금광교회에 대 한교우들의 지원 협력 부탁등이 실렸다. 남전도회 전도부는 또 i달러 선교회원’ 을 모집 중이었다.1인당 월정헌금 1달러씩을 내는 부담 없는 선교모금방식이었다. 헌금방식은 분할 또는 일시불로 본인 편의대로 할 수 있었다. “모금액이 월 $100 01 상이 될 경우는 뉴져지한인장로교 단독으로 선교사를 지원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알차고 야무진 포부를 밝힌 글귀가 주보 위에서 유난히 반 짝거리고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찬양예배에 참석숫자는 한동안 매주 주보통계표에 실리지 않고 있었 다는 점이다. 실릴 난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실험단계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각 부서 의 독립성을 살리기 위함이었을까? 샤체 교회만음 ø~ 랜야마! 그해 6월 중순, 자체교회당 마련을 위한 성도들의 열정이 뜨거워만 갔다. 현재 입주 중인 펠리세이즈팍의 캘버리 교회당을 구입키로 한 것이다. 6월 12 일 목요일에 성전구입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여전도회 주최로 가졌다. 강사는 뉴욕 권즈한인교회의 한진관 목사였다. 또 15일 제직회는 건축위원들이 현 입주 교회당 의 집기, 마이크 및 목록을 명시하여 총 50만 달러에 구입하기로 하고, 건축헌금 모금운 동은 당회와 건축위원회에 일임키로 했다. 6월 22 일의 주보 상단에는 건축위원회가 현 임대 교회당을 구입키로 결정한 경과를 보고하고, 그 다음주일인 29 일에 전 교인 건축헌금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온 교우 교 회건축 헌금을 한 결과, 목표액(15만 불)의 약 절반인 75,643불이 모금됐다. 216
그해 7윌 27일 변호사로부터 교회당 건물 계약서가 왔다. 건물 클로정 날짜가 9윌29 일이었다. 그리하여 교우들의 건축헌금 마감일을 9윌20 일로 잡았다. 돌이켜 보면, 교회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다들 익사이팅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8월부터 여전도회는 헌신예배 주일마다 성전건축헌금을 위한 봉사로 냉면을 그릇 당 5불 씩에 실비제공하고 있었다 또 건축바자회도 열었다. 9윌 14일 주보 꼭대기에는 이런 뉴즈카 실렸다. “미국교회가 지금 짐을 싸고 있습니다. 교회당의 마지막 죠F금 치르는 날이 9월 29 일입니다. 건축헌금 약정하신 분들은 가능한 한 9월 21 일(다음주일)까지 내어주 시기 바랍니다 9월 21 일 교회당 마련을 위한 은행융자가 나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고? 클로정 날짜 를 이틀 앞둔 27일에도 건축기금 바지를 여전도회 주최로 열었다. 물품을 제공한 성도는 29명, 자원봉사자가 40 명이나 됐다. 그럴 동안 이사준비를 하던 미국교회가 돌연 형편상 클로징 날짜를 얼마간 연기해달 라는 부탁을 해왔다. 사랑으로 이해하고 그러라고 쾌히 승락했다. 그리하여 그해 10월 23 일 목요일에 클로정이 완결되어, 마침내 자체교회당을 확보했다. 교회설립 14년만의 쾌거였다! 미국 교회는 11월 29 일에야 이사를 완결했다. 펠리세이즈 본당인 캘버리처치 구입을 위해 여전도회는 사상 최초의 건축바자를 열 었다. 9월초 주보에 “본 교회 최초(7)의 바자를 위해 물품헌납을 하실 교우들은 친교실 벽에 붙어있는 표에 이름과 품명, 수량을 적어 넣어달라’는 광파 났다. 김하식-송기화 교우는 고추장 48 병을 헌납하기도 했다~9월 14 일 오후 여전도회 헌신예배 주보에는 이 렇게 기재됐다. “9월 27일에 있을 여전도회 주최 건축헌금 바차를 위해 여전도회 회원들의 적 극적인 협조와 기도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7
화를훌 없?‘혔힌 #후§냉용 1. ò .......iil.t l 30 없 ^t 21일자 교회소식란을 보자 ‘비번 토요일 여전도회가 주관하는 바자가 있습니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교 회에 오셔서 하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과 여러 가지 물건이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준비되어 있사오니 오셔서 쇼핑하시기 바랍니다. 친지들에게 선전 해 주시기 바랍니다…또 김치병이 있으신 분은 목요일까지 교회에 갖다주시 기 바랍니다. 이렇게들 극성이니, 하나님이 어찌 웃으시지 않을 수 있겠으며 교우들은 또 어떻게 가만히 앉아 배길 수 있겠는가! 또 온 교우를 대상으로 공문도 냈다. 여전도회 회장 명의로 된 공문이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께 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미국까지 오게 하시고 또 뉴저지한인장로교회를 한 식구로 섬기 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에 감사드립니다‘ 뉴저지 한언장로교회 역사 14년묘때 우리들의 자체교회당을 주신 주님께 입으 로 다 어떻게 감사드랄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은 하나님이 기획하시고 우리를 통해 이루신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 여전도회는 감사와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해 집 안에서 살림하며 나가서 일하는 바쁜 일손들이지만 우리의 힘을 모아 교회당 건 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마음과 지혜와 힘을 모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성 전건축을 위한 바자회를 열려고 기획하고 준비했지만 그 일이 쉽게 되지 못했습 니다. 이 역사적이고 뜻갚은 일에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여전도회 바 자회를 위해 여러분들의 헌물이나 시죠별사를 원합니다. 또 재정적인 후원도 환영 합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우리는 이 일을 잘 모르오니 도와주시고 협력해 주시고 지도 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우리들이 묘별뜰}놓은 물건들을 마음껏 사용해 주시기 바 라며 9월 27일(토) 친교실에서 법겠습니다. 우린 힘을 다해서 준비하겠습니다. 여전도회 회장 김귀남 집사 드림 ※ 9월 25일(목)~27일(토) 이 기간 중 일손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내실 수 있는 분은 김귀남 집시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션첸 꾸 øl71 자체성전을 마련하자마자, 성도들은 내 집이라도 마련한 듯 바침과 드림의 정성의 손 길을뻗치기 시작했다. 218
째수 그해 11월초에 장로장립을 하게 된 이명호 집사가 기념으로 본당 강단 및 성구 일제 를 봉헌했다. 기존 강단은 교회학교용으로 쓰기로 했다. 양호식 장로도 주일학교 교실에 비치할 피아노를 봉헌했다. 새 권사 임직자들은 교회 마이크시스템을 봉헌했다. 한 교우 가정은 친교식탁 및 의자 세트를 익명으로 헌납했고 그후 줄이어 여러 교우들이 식탁 세트를헌납했다. 또 여러 교우들이 몸과 시간을 바쳐 아래층 친교실을 확장하고 페인트칠을 시작했고 뜰에서도 정원수, 잔디 깎기 등 조경 작엽에 나섰다.11월초 중 · 고등부실을 45석 규모 로 넓혔다. 중 · 고등부 교육관 수리가 완공되자, 전기공사를 양철순 집사가 맡고 전기시 설 일체를 이정호 집사가 헌납하기도 했다. 새 간판을 만들어 달거나 교회 부엌에 냉장고를 들여놓는 이들도 있었다. 12월 8 얼부터는 유아부실을 방음유리로 막아 어머니들이 거기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있게 했다. 책 그해 9월 14일 미주한인장로회 동노회 여전도회 연합회(회장 오안순) 주최로 뉴욕 한 민교회에서 제2회 성경퀴즈대회가 열렸다. 본 교회 팀 3 명(고순이 · 이윤성 · 김혜숙)은 장하게도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연합회장이 본 교회 오안순 권사인데다 김혜희 전도사가 심사위원 중에까지 참가했 으니 이를테면 본 교회 일색이었다. 이것은 말씀교육의 승리였고 축제였다! 이날 성경퀴즈 대회 전 오안순 회장이 이끈 예배 중 박석 린 목사는 ‘말씀에의 한 뜨 거움’ (녹24:32) 이란 말씀을 전했다. 연합회 전도부장 홍선순 권사가 사회한 제2부 대회 는 오 회장의 대회인새 참가자들과 심사위원 소개, 대진표 추첨, 본 대회, 심사발표, 시 상식등으로진행됐다. 성경퀴즈 출제위원은 김정국, 정영환, 김창길, 송병기 등 네 목회자들이었고, 심사위 원은 이영숙, 박진현, 김혜희 3명의 전도사가 맡았다. 참가팀은 모두 9교회 팀이었다. 이날 응원을 위해 뉴욕까지 원정(?)을 간 교우들 14명을 위해 조인기 집사가 저녁을 한턱내기도 했다. 참으로 멋지고 통쾌한 하루였다. 219
컸&£풍 l 잭새 , \"1앨새 애책샤 채책 그 해 끄월 2 일 오후5시에 강동열 장로 취임, 이명호 · 양호식 집사 장로장립, 강선 원 · 박정예 권사 취임식 등 임직식을 동시에 거행했다. 집례자 김창길목사 지휘 ~그1 등~T- 오근간 최승혀1 피아노 ~늬그 τc:]r 입례송 98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예배의부름 정도인목사 (고전 3:6-9): 김춘실 목사 기원 펑화의 기도: 성가대 김상한 목사( ‘하나님의 동역자들’ ) 송영 송란 목회기도 355장(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찬송 집례자 장로와 권 λν교우탬거1 기도 위원 / 장로: εF태순 · 곽근상 • 김철진 • 권오경 • 성경봉독 신동호·이성남 찬양 목사: 박희소 • 현인덕 • 김영주 • 최양선 • 김영주 • 이성의 설교 당회장 현보 헌 소 장로에게(손길용 목사)/권사에게(정인영 목사) 이명호장로 。 a 김병기집사 교회가 임직지에게(정주섭 장로)/ 헌금기도 임직자가 교회에게(강동열 장로)/ 찬송 소개 서약 안수기도 악수례 선포 권면 답사 ==;- 4二 ζ그 기념품증정 220
인사 임직자가 당회 ε배게(양호식 장로) 찬송 정주섭장로 축도 (246장: 내 주의 나라와) 김정국목사 o~ 엉£ 톰옳 μPr 그해 11월 30 일에는 여전도회의 부흥과 효율적 운영을 위해 만 35세 이상은 여전도 회로, 만 35세 이하는 청년여전도회로 분리, 재편했다. 여전도회 고문으로는 양호식 장 로개 청년여전도회 고문으로는 이명호 장로가 각각 임명됐다. 후에 교언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여전도회는 3'4개로 나뉘게 된다. 한쭉폭j않 운션 사해 이 당시의 한국학교 운영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발견돼 흥미롭다. ‘1987년 한국학교 예산얀 으로 타이틀 지은 이 자료는 86년 11월 23 일 한글학교의 최영규 집사가 작성한 것이다. 1. 참고서 교사용 (4인 기준 $600 2. 소모품 $500 3. 학생 S딘품대 ((40명 기준 월 1인당 $1. 50) $400 4. 학생용 ~ ~OO 5. Cabinet $100 6. 특별활동비 $500 7. 정교사 사례(틴 $100X5人 X1이固月 =$5, 000) $2 , 000(효팩학교 자체부담 별도) 8. 부교사 사례(月 $50 X2 X10=$1,000) $1,000 (한국학교 자체부담 별도) 9. 교통비 (V와lBus 운영비) $1, 000 계 $6,300 상기예산기준 학생 40명 X$200 C1학기 $100)=$8,000 계획안 • 정교사 5명 부교사 2명 221
느루처치 ^。I- -E르‘쿄호 매주 토요일 오전 10:00부터 12:30까지 학교 운영을 원칙으로 하는 예산 계획 단에며 기타 세부 계획안 수럽 후 가감되는 내용은 별도 보고 예정임. 1986년 11 월 23일 한국학교 최영규 이 계획안에 덧붙어있는 한국학교 시간표는 다음과 같았다. 1O :00~ 10 :50 한글 1C 분 휴식 11:00~11:50 미술·음악·태권도 12:00~12:50 1C 분 휴식 한글 10분휴식 애훌등 ccc 그해 부활절 시즌인 4월 6 일 줄리아드 기독학생선교회 (CCC) 학생들이 본 교회를 방 문, 음악예배를 드렸다. 이들은 합창 17곡, 소프라노 독창 3곡, 첼로 독주 1곡, 피아노3중주 1곡, 혼성4중창 1 곡 등을 연주해 왕성한 찬양 의욕을 보였다. 이들 중 최승혜, 김호영, 경 운, 송 란, 서 연화 학생 등은 이때를 전후하여 본 교회를 거쳐갔거나 본 교회 출신 음악인들이었다. 이때 독창을 한 신영옥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을 거친 세계적인 성악가후 현재 한 국에서 맹활약 중이며, 김인혜 역시 한국에서 저명 성악가로, 교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 다. 이태원은 훗날 브로드웨 이 뮤지컬 출신으로 ‘명성황후’ 주연 등을 맡기도 한다 당시 혼성4중창과 합장을 주도했던 이기선 씨는 권즈장로교회 지휘자를 지냈었고 현 재는 서울 총신대학교 종교음악과장 겸 대학교합창단 지휘자로 있다 그밖에 출연자 모 두가 국내외의 유명 음악인들로 활동하고 였다. 짧&밸 3월부터 격주로 오후3시에 헌신예배를 드리기로 함. 30일 한국학교봄학기 개학. 부활절 예배. 교회 회보 ‘임마누엘’ 창간호 발간 배부(표 30)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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