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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장로교회_30년사_2부

Published by kpcnjc, 2020-08-13 14:47:15

Description: 뉴저지장로교회_30년사_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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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36 경로학당 시간표 버겐경로학당 초기 시간표 교시 시간 과목 내용 2 오전 10시 ~10 시 50 분 영어 알기 쉬운 일상생활회화 3 및 미국 시민권 오전 11 시 ~11 시 50 분 진리의 말씀 신약성서 중 요한복음 12 시~오후 12 시 50 분 교양강좌 미국복지법률, 의료보험, 서예, 음악 등 자들묘L이 느낄 수 있는 외로움과 무료흠띨 서로 위로, 격려함으로 여생을 보람있 게 지내도록 위와 같은 내용으로 경로학당을 개강하오니 많이 오셔서 듣고 보고 서로 사퀴면서 보람된 여생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7) 개강일은 마침 설날[舊正]이어서 경로잔치를 겸하여 베풀었다. 임마누엘회가 주도하 는 이 학당은 매주 토요일 무료로1 성경과 영어공부, 교양강좌 등을 각 1시간씩 제공하면 서 오락과 친교도 나누게 했다.2월에는 학당 어르선들이 여가를 즐기시라고 남전도회가 비둑 3세트 장기 1세트를 기증했다. 4월 6~7일에는 봄 여행을 다녀오고, 늦가을 연로자들을 위한 독감예방주사를 실시 했고 연말에는 뉴욕주 온천에 다녀오기도 했다. 가을철인 9월 8 일에흔 같은 내용으로 9 월학기를개강했다. 버겐경로학당은 지역 한인 원로들이 교양과 견문도 넓히고 여가도 즐기면서 아울러 신앙도 기를 수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어르신네들의 인기 높은 ‘명딩? 이 되어간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온 지구촌 인구가 21세기로 갈수록 고령화현상을 보이면 서 연로자 목회사역이 날로 중시돼 가는 차제에 경로학당은 임마누엘회와 함께 소중한 존재가아닐수없다. 훨 90년 2월로서 김창길 목사가 본 교회에 부임한 지 10년째로 접어들었다. 2월 n 일 주보에 “오늘은 김 목사님께서 부임하신 지 10주년 되는 날입니다. 과거에 도 목사님이 수고하셔서 오늘의 이 교회를 이렇게 부흥시켰지만, 앞으로 더 많이 수고하 7) 당시 신문광고 내용{뉴욕한국일보) 273

여 은혜로운 교회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희망사항이 보인다. 본 교회 6대 담임목회자인 김 목사는 정확하게 1980년 2월 10 일 주일에 정식 부임 했었다8) 그때까지는 캐나다 토론토장로교회 교육목사로 사역 중이었다. 김 목사가 오기 전인 70년대의 본 교회는 목회자의 잦은 이동으로 지속적인 부흥과 성장을 할 여유가 없는 혼동과 격동기로 점철됐었다. 그의 부임은 참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었던 것으 로평가된다. @용용한@행, 얘채 임마누엘회가 그토록 오래 벼르고 오매불망해온 성지순례가 결국 그해에 성사됐다. 2월 18 일부터 13 박14 일 일정으로, 김창길 목사의 인솔아래 강신원 권새 강동열, 정주 섭 장로 등 모두 17명 9)의 순례단이 이스라엘 이집트 로마 등을 둘러보았다. 1인당 참 7떼는 1,850달러였다. 순례자 일행은 3월 3 일에 무사히 돌아왔다. 80년대 초 임마누엘회 창립 이래로 그 동안 웬만한 국내외 명승유적지는 거의 다 훌 다시피 탐사해온 회원들로서는 성지순례가 가장 큰 목표중의 하나였음이 물론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어히는 성지순례는 아무 때고 무작정 갈 수 있기보다 현지 기후와 상황이 이상적인 최적기(最適#비에 맞춰가야 하므로1 전문 여행사와 현지가이드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이므로1 ‘이른 비’ 와 ‘늦은 비’ , 여름과 겨울철을 미 리 살펴 방문해야 성경에 나오는 네게브 광야의 계곡이나 샤론 평원의 아름답고 현란한 들꽃무리 등 자연식물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 테러사태가 빈발하여 중동평화가 위태로 운 때는 더구나 함부로 만만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무튼 엄마누엘회는 성경으로만 읽으며 꿈에도 그리던 곳들 주님이 돌풍을 잠재우 시고 또 제자들을 돌보러 불위로 결어가시고 모닥불에 물고기를 구워 잡수선 그 갈릴리 호수, 믿음의 선진들이 누비던 곳, 요셉과 모세와 파라오의 터전, 출애굽 현장, 초기교회 흔적 등을 바쁜 일정 속에 부대끼며 구경하고 왔다. 말하자면 평생 소원 한가지를 이룬 셈이다. 임마누엘 회원들은 그 뒤 교우들에게 들 8) 본서 117쪽 참조. 9) 기타 순례단 이름· 오안순 오순덕 이정석 김금이 박순자 이영자 허필연 정시화 정봉숙 김향란 김혜정 이순옥전백임 274

@샘행 8 썽 려줄 얘기 거리, 보고할 ‘건덕지’ 가 많았다. 그후로도 성지순례는 기회가 닿는 대로 반 복된다. 우리의 지상최고의 최종 성지순례 목표지는 어딜까? 물론, 에덴동산보다 더 아름다운 저 하늘나라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길이길이 살며 즐길 곳이다. 우주역사의 완성점이 기도하다. 김 목λ까 이끄는 임마누엘회 성지순례단이 현지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 하늘나라에 서 성지순례 중인 분이 있었다. 바로 김창길 목사의 모친인 안마리아 권사였다. 안 권사 는 그해 2월 25 일 한국 서울에서 영원한 본향 길에 올랐다. 주일날이었다. 고 안마리아 권사는 80년대 초 아들 김창길 목사의 부임이래 본 교회에 적을 두고 명예권사로 추대됐다, 10) 순고까 김동철 목사의 사모로서, 순고까 안길선 목사의 누이동생 으로서 한국 교회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던 안 권사의 몸은 서소문교회의 기념묘지인 서 소문동산에 안장됐다. 곁에는 1959년 미국 유학도중 앞서간, 고인의 맏아들이자 김창길 목사의 맏형인 김창권 성도도 나란히 묻혀있다.11) 비슷한 시기인 2월 20 일, 본 교회 김수룡 집사의 부친도 부산에서 별세, 주님 품에 안겼다. 김수룡 집사는 미동부야구협회 회장이자 본 교회 Tobias 어린이야구단 감독이기 도했다. ø-L~J 엉 \"1, 뉴저지성서대학이 그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3월 10 일 오후 7시에 거행된 제 1회 졸업식전에서는 본 교회 중진 저l 직을 비롯한 13 명이 감격과 영예의 첫 졸엽을 했다 12) 아울러, 성서대학은 3월 6, 7일에 2학기 개강을 했다.13) 학기 당 등록금은 200불. 교회학교 및 한국학교 교사들에게는 100불씩 장학금 10) 본서 130 쪽 참조, 11 ) 서소문교회 50년사 93쪽 참조, 12) 제 1 회 졸엽생’ 구자섭 김공환 김경숙 김성인 김영숙 박병태 이수희 이인용 장혜경 정주섭 조영진 조인 기 황석남(가나다순) 275

‘*용i확、J‘ #;;{Rl 캉료료교호 l펴 o 년^~ 사진 34. 저11 회 뉴저지성서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Following the first commencement ceremony of the New Jersey Bible Institute 혜택을주었다. 1988년 4월 26 일 본 교회 부설기관으로 개교한 성서대학은 당초 ‘뉴저지한인성서학 원’ 이란 이름으로 출범, 뉴저지성서신학원으로도 불리다가 현재 이름으로 개칭됐다. 성 서대학은 한동안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다 90년대 하반기에 뉴저지노회로 이관되어 노회 측이 전담 운영케 된다~(사진 34) l 엔 l 뿔 션교웰음 샌져 딴표 전도부에서는 2월 25일자로 ‘1 인 1불 선교헌금’ 관련 보고를 했다. 전년도인 1989년도에 연52가정이 참개 총1,531불의 모금실적을 올렸고 그중 1,434 불을 3차에 니눠 송금 지출했다는 내용이었다 지원대상 선교λ}는 인도네시아의 김의정- “rmw 13) 요일별로 2 과정으로 나눠진 과목과 담당교수진은 화요일· 모세5 경(한진희) . 신학개론{강세대) . 고대 교회새이학권) . 청지기핸조덕현) . 기독교교육{김창길),수요일:소선지서(박종만J . 현대교회새이학권) 비울서신(안태호) . 이단비펜이숭재) 등이었다. 276

박연화 선교사로 이리안자야 자야푸라에 거주 중이었다.띠) 전도부는 한편, 선교 헌금봉투는 늘 교회입구 책상 위에 비치돼 있으니, 봉헌자 이름 과 가족 수 및 해당 달을 적어 예배 때 헌급하거나 전도부 회계(배동희 집씨에 제출해 달라는 요령과 함께 “복음일선에서 수고하는 여러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 니다’라는 부탁도 곁들였다. 1990년은 특히 본 교회 성가대가 현저한 발전과 함께 분엽화된 사기였다. 교회음악 은 자고로 교회개혁 빚 성장과 불가분의 함수관계에 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성전음악 을봐도알수 있다.껴) 구약시대 레위 지고t(Levite) 성전음악인들이 고대 레위의 세 아들의 3 계열16에 따라 헤만(Heman), 아십f(Asaph), 여두둔(Jethudun)'71 3 형제의 계열로 분엽화되어 효과적으로 제사음악을 맡아 연주했다. 우리 교회 성가대 역시 이와 비슷하게, 할렐루。 þ,18) 호산나, 가브리엘 성가대로 나뉘어져 있은 것이다. 3월 25 일에는 3부 할렐루야성가대 독창자 김경희 선생이 새로 부임했다. 그 무렴, 88 년 9월25 일 취임한 안수집사 4명이 교회에 헌납한 0]:마하 피아뇌U3E)가 도착해 성가 대실에 놓았다. 본당 내 피아노는 반주자들만 사용하도록 했고, 사용 사에는 담당자에게 허락을받도록했다 14) S江, P.O.Box 54 Jayapur, lrianjaya, Indonesia. 15) 고대 구약시대 히브리 성전음악의 기틀을 놓은 사람은 선지자 사무엘이었고(삼상10:5) , 다윗과 솔로몬 은 이를 극대화시켰다(역대상6:31 이하, 15:16 이하 16:41-42, 23:5-6, 25:1 이하, 역대하5:12-13 , 7:6, 9:11). 그후 여호사맛 · 히스기야 ·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도 성전음악은 재차 활성화된다(역대하 20:21 이라 29:25-30, 35:15) 포로시대 이후에도 성전음악의 전통은 맥맥히 이어지나 현저히 약화된다 (에스라3:10-11 , 느12:24, λ1137). 16) 제사장과 성전 사역자 직분을 맡은 레위의 후손들은 선조인 레위의 아들 3 형제→게르손(Gershon) , 고 핫(Kohath. 후대에는 그핫 Kehath 이라고도 불렸디.), 므라리 (Merari) 에 따라 3 계열로 나눠져 있었다 (민3:17). 성전음악인들 역시 위의 3 계열로 분할됐다. 역대상 6:33-48 잠조 17) 여두둔은 에단(Ethan)과 동일 인물이다 히브라 원어의 어원이 같음 또 주 15) 의 역대상 · 하서 성구들 을대비해 보면 알수있다 18) 할렐루야 성가대는 주보 Àj-에 자주 1 할렐루야 성가대로 표기되기도 했다. 둘 다 자주 쓰이지만, 할렐루 얘Alleluia) 는 ‘h’ 시운드를 사용하지 않는 라틴어에서 왔고, 할렐루야는 히브리 원음대로 표기한 것이 다. 할렐루야는 노래를 뜻하는 허브리어 ‘할랄’ 동사의 권유명령형인 할렐루(H띠lelu) 와 여호와 하나님 올 뜻하는 ‘야’ (Y따l 또는 J때)과 합해진 것으로여호와를 찬휩}라는 의미이다. 277

쩔i #추:;;;~:;;;,장를를 zl호 l겸 g 났 ^t 한편 호산나 성가대를 지휘하던 김진양 전도사의 이임으로 자리가 빈 후임 지휘자로 는 이병천 집λH브니엘콘서트콰이어 지휘재가 5월 첫 주부터 부임했다. 그러나 두 달도 채 못된 7월중사임했다 그후 10월 1일 새로 이한업 집사가 부임했다. 그는 서울음대 성악과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음대대학원 출신이었다.90년 10월부터는 주보 앞표지에 3개 성가대의 이름과 각 음악사역자들의 이름이 동시에 나란히 기재되고 있었다. 또한, 청년여전도회에서는 89년 말부터 매주 화요일 성경공부와 함께 어머니합창단 연습을 해왔다. 지휘는 김정화 교우, 반주는 김님주 집사였다. 어머니 합창단은 3월 27일에는 어머니들을 초청해 자축연을 가졌고, 10월 28 일 교회 에서 창립 18주년기념 음악예배 때 첫 공연을 함으로써 공식 ‘데뷔’ 를 했다.12월 23 일 에는 성탄축하 음악예배를 주도했다'9) 그전에도 다양한 모임에서 이미 선을 보이고 있 었다. 한편 기타 그해 상반기의 주요 음악행사후 1월 21일 찬양예배는 서울 대학합창단 초청 음악예배로 드려졌다이 센서스를한려야마 그 즈음 연방 상무부 센서스국이 주관하는 90년도 인구조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이 10년마다 하는 행사였다. 교회에서는 센서스에 미처 응하지 못한 교우들을 돕고 있었다 “Census ’90(인구조사)을 아직 하지 못ü}i] 분은 꼭 하시기를 바라며 조사용지 를 잃어버렸거나 작성하시기 힘든 분은 Billy 전도사님께 말씀드리면 협조해 주십 니다. 인구조사는 교포들의 21) 지위흥농때 큰 도움을 주는 일이므로 누구나 다 해주 시기 바랍니다. 영주권 없는 분들도 해 주시기 바라며 신원에 대한 보장은 미국정 부가 책임집니다 \"22) 19) 본서 294쪽 참조 20) 서울 대학 합창단은 전국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합창단이었다. 당일 주보 참조 21) 당시는 1교포’(橋脫)라는 용어를 많이 썼으나 90년대 후반기로 가면서 점차 1동포'(同服)란 말이 자리잡 는다. ’교포1 는 몇 가지로 재미한인들에게는 모순된 말이다. 즉 고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일걷는 말로서 타국에 없혀 삶을 암시하므로, 해외의 한국 공관이나 특파원을 포함한 재외 한국언론 지 λL 지상사 등 에서 한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외한인들이 스스로 ’교포1 라고 함은 자신을 제3자로 정의하는 우스 운 명칭이 돼버린다. 더욱이 이미 미국시민이 되어 미 국적을 지닌 한인들에게는 교포라는 말이 걸맞 지 않다. 그보다는 한인, 동포 동족 또는 겨레란 말이 더 어울린다. ’본국이란 말도 그렇다. 미 시민권 멸8

센서스는 소수계의 혜택과 권익신장에 도움이 되는 일변도 있으나 매번 부정확한 수 치(數↑폐가 나오기 일쑤였다.90년도 센서스도 한인들 수가 상상외로 적게 집계된 것 등 많은문제를내비쳤다. 샤란얘 태왜 폴새 사순절 막바지인 성금요일 뉴저지노회가 본 교회당에서 가상칠언예배를 드렬 때, 본 교인들은 타 교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아래층에서 비디오로 동참했다. 4월 중, 본 교회는 자랑의 쌀’ 모금을 하여 한국일보시를 통해 1천 불을 보냈다. 남 전도회는 어려움에 처한 동포소녀 앤지 양을 돕기로 하여 848달러를 모금, 가족에게 전 달했다. 그후 7월중 앤지 양으로부터 고맙다는 카드가 왔다. 4월 22 일 찬양예배 때는 볼리비아 선교를 다녀온 이학권 목사의 선교보고를 듣고 현 지에 전기가 없어 예배를 못 드라는 교회를 위해 4개의 개스램프를 보내기로 하여 참석 자들이 헌금을했다. 하반기에는 청년회가 성탄절을 암두고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옷 수집을 하기도 했다. 내원벼 뽕샤오4 시 봄이 다가오자 교회당 안팎과 교육관 뒤 정원을 꾸며 줄 교우를 찾고 있었고, 3윌 마 지막 주일에 청년부 회원 일동이 이에 응해 대청소를 했다 또 부활절에는 순결한 백합화를, 가을에는 청초하고 화사한 국화 화분, 성탄절에는 화 려하고 진홍빚 포인세티어를 시절에 맞춰 자진하여 기쁘게 강단에 바치는 교우들이 해 가갈수록많아졌다. 자들의 본국은 미국이지, 한국이 아닌 것이다. 대신 모국, 조국, 고국이란 말을 써야 할 것이다. 이 당 시 동포란 말이 잘 사용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친북파들이 이 용어를 즐겨 쓰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참고로, 한국의 석학 겸 정치인이던 김동길 교수는 그의 글에서, 그 옛날 아침마다 재래식 변소의 인분을 치워주며 ”똥 퍼요1\" 라고 부르짖던 인부들을 아침마다 1동포여 1플 거듭거듭 부르 짖는 애국자로 비유했다. 한인이나 동포, 동족, 겨레 등 허고 많은 좋은 말들이 있는데 구태여 1교포1 란 말을 골라 쓸 필요가 있는가 22) 1990년도 주보철 참조 279

^ ,,\"I-ë:므 느주 ;;;;i I 0 -'-교호 I 30 년^~ 일찍이 어린이찬송가 작가 앨리스 클리터 (Alicε Jean Cleator)는 부활절을 위해 이런 시를 옳였다 23) 눈처럼 하얀 저 백합화 부활의 아침 노래하네/주 예수 다시 살아나신 즐 거운 이날 활짝 피었네/흰 백합화는 주 예수님, 부활의 날을 축하하네/우리 다 함께 온 정성 다해 부활의 소식 전파하자. (하략) 이 해 부활절에는 모두 18 명의 교우들이 눈처럼 흰 백합화를 제단에 드렸다. 71 엇 i 얼마 전부터 교회는 매달 셋째 금요일에 전교우기도회를 갖곤 했는데, 이 해도 1월 19 일, 2월 16 일, 3윌 16 일 등 금요일에 내 · 외부 강사의 설교를 곁들여 가졌다. 기도회 때 마다 간단한 순서지가 배부됐다.1'2부로 나누어 전반부는 성경봉독과 설교, 헌금까지 골고루 갖춘 예배형식이었고 후반부는 통성기도 개인기도로 이어졌다. 그런데 4월 20 일 순서지를 보면, 기도회 %씩이 다소 바뀌었다 1'2부를 하나로 합 쳐 예배형식을 간소화하는 대신 기도시간에 강조점을 두고 통성기도-대표기도-찬송 등 을 교대로 하거나 대표기도 또는 합섬기도로 일관하기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기도제목 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는 점이다 @! g 김혜희 전도사와 함께 본 교회에서 집사 때부터 성실히 봉직해온 이병호 장로는 3월 4 일자로 시무장로직을 사임, 4월 19 일에 열린 뉴저지노회 제2회 정기노회 때 한국선교 사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어서 22 일에는 대예배 때 안수기념 설교를 하기도 했다. ‘여 호와를 기다리는 자’ (사 30:18-26)라는 은혜로운 메시지였다. 아울러 목회보조사역자로 헌신해온 부인 김혜희 전도사도 5월 20 일 사임서가 수리 됐 다. 이명호 목사는 9월16 일에 한국선교센터 를 개설해 본 교회 김 목사가 다녀오기도 했다. 나중에 이 목사는 한국에 ‘한마음교회’ 를 개척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80년대에 이명호 장로 부부가우리 교회에 많은 봉사와 공헌을 했다. 주보 소식란에도 어지간히 오르내렸다. 한때는 한국에 나갔다가 비자문제로 막혀 여러 달 머무는 통에 온 교우들이 주님께 매달려 간구한 적도 있다. 귀한 일꾼들이다 23) ‘Beautiful Lilies, White as the Snow' (l 900년 작) 새찬송가 599장, 인터넷 자료 등 참조 280

@양 4월 29 일 당회에서는 지난 2년 3개월간 전도사로 시무해 오며 호산나 성가대를 지휘 해온 김진양 전도사의 사직원을 수리했다. 그는 5윌 28 일 아내 유영은 집사와 함께 미 주장신대학을 졸엽했다. 과거 호산나성가대 지휘와 반주자로 헌신했던241 두 사람은 곧 본 교회 지 교회를 개척하면서 목사안수도 받는다. 남전도회는 5윌12 일 남전도회 가족모임의 밤을 가졌다. 가정의 달에 적절한 모임이었 다. 이인용 집사가 이끈 이날 예배 때 조영진 전도사가 ‘잔칫집과 같은 교회’ (요 6:53- 56) 란 설교를 했고 2부 코이노니아{친교) 시간도 이끌었다. 이어서 6윌 16일에는 중고등부 기족의 밤이 개최됐다. 5월말부터는 본 교회 주보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 동안 써온 교회 앞 전경의 펜화 그 림염) 대선 교회 정면을 찍은 사진이 청색 1도로 실라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교회 전경을 비교적 가까이서 담았기 때문에 아치형 교회이름 간판이 분명히 눈에 들어와 시원스럽 게 보이고? 옆으로는 주차해놓은 교회 밴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교회 벽돌 색이 짙은 데 다 건물 자체가 강조되느라 상대적으로 배경이 약화돼, 주보 표지 그림으로서는 다소 어 두워 보였다. 이를 의식했는지 한 두 번의 설험단계를 거쳐 이듬해인 91년 11월 24 일 주 보부터는 간판도 보이고 건물 측면도 비스듬히 강조된, 보다 더 밝은 사진이 실리기 시 작했다 재# 본 교회가 80년대부터 겸어온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펠리세이드팍 본당 주변에 교 인 승용차 주차 건이었다. 후에 구입한 예닮원은 대지가 드넓어 특별한 주차문제는 없었 24) 본서 139쪽 1980년 ‘교회음악 사역의 면모’ 항 참조, 25) 본당 전경을 펜으로 묘사한 주보 표지그림은 본당 헌당식을 갖던 1987 년 5 월말 화가 김양숙 교우가 직접 그런 것으후 이 해까지 거의 만4년간 시용돼 왔다. 이 그림은 90년대 후반에 다시 주보표지 그림 으로 쓰인다.80년대사 1 주보 이야기 1 참조 281

;;:;;:t- c르 누주처,; 1 o-~ 쿄호 l 지만, 본당은 주택단지의 주민 밀집지역상의 난점으로 건물은 마련했어도 넉넉한 자체 주차장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다. 본당 구입 전후에나 90년대에나 이 문제로 많은 고통을 치러왔고 주보 교회소식란에 도 뻔질나게 경고나 호소문이 떠오르곤 했다. 특히 80년대 본당 구입 직후에는 교인들 의 더블파킹과 무단주차, 본 교회 어린이들의 안전관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일 지경이 었다 동네와 시경 등의 수도 없는 교통질서 호소를 듣기도 했다. 한번은 펠리세이드팍 시 경찰서장으로부터 직접 정중한 관련통보를 받기도 했다. 그해 5월 27일에는 주보에 이런경고가댔다. “교회당 앞길과 옆길에는 파킴을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뒤에서 오는 차들 에 방해를 줍니다. 여러분의 지동치들은 길가나 Volk Funera1 Home 파킹할 수 있습 니다 또 11윌 4 일에는 이렇게 당부했다. “교회 앞과 옆길을 건너실 때 신호등을 지키십시다. 보행로를 꼭 이용하시고 아이들이 뛰지 않도록 조심시키십시다. 부모님들은 어린이들의 교통질서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t !1;l CÞ- 5월31~6월3 일에는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강사로는 서소문교회 김호일 목시를 초 청했다. 매주일 아침 서울기독교방송에서 설교도 담당해온 김 목사는 집회기간 중, ‘교 회의 본질’ (마16:13-20), ‘기도의 능력’ (마-6 :5-13), ‘청지기론’ (고전4: 1-5), ‘소문난 교회’ (살전1:1-12), ‘합한재 (행9:10-19), ‘시험의 광장’ (마4: 1-11), ‘너희가믿느냐’ (P19:27-31), ‘그 리스도의 지상명령’ (행 1:6-11)등 은혜롭게 말씀을 전했다. 끝 날인 6월 3 일 오후에는 저l 직회 수련회까지 인도했다~(사진 35) 서소문교회는 본 교회 김창길 목사의 모교회후 본 교회 교인들 중 다수가 거기 출신 이다 우리와는 자매교회이며 O}측이 오랫동안 좋은 사이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편, 비슷한 기간에 호산나{)O뉴저지복음화대회가 포트리 고등학교에서 5월25~27 일 사흘간 열렸다. 강사는 나성동양선교교회 임동선 목사였다. 임목사는 27일 2, 3부 설 교를 본 교회에서 하기도 했다. 282

3 션영&‘ 사진 35 김호일 목사 초청 부흥회 Rεvival Service, with guest speaker Rev. Hoil Kim ;J. 얘 26) '\" '\" 그해 6월 4일 본 교회 김창길 목사가 제4대 회장에 피선, 1년간 뉴저지지역의 120 여 한인교회를 대표하게 됐다. 본 교회당에서 있은 뉴저지교회협의회 저114차 정기총회에서 당선된 김창길 신임회장 은 취임인사에서 교회간의 유기적 협력을 위해 우선 교회주소록 발간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최초로 뉴욕교협과의 공동교회 주소록이 발간됐다. 1990~91년 1년간 김창길 회장이 이끈 제4대 회장단은 여느 해보다 대 사회봉사에 주력했다. 뉴저지교협의 저114회기 주요 사엽은 이라했다. 90년 7월 7일 고 이희철 목사(성광장로교회) 장례식 주관. 26)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 10년사{뉴저지교협11998 년), 딩시 한인언론 보도기시{뉴욕한국일보 · 뉴욕중앙일 보)참조 283

7월 14~15일 베뢰아파 귀신론 비판 강연회(강사: 원세호 박사). 9월 16일 브루클린 처치애브뉴 사태 피해 한인 돕기 후원금 모금주일. 1C월 11일 동유럽 · 중공 · 소련선교여행보고(박재영 · 안모세 목사) 10월 25일 브루클린 처치애브뉴 한인 장봉재, 박만호 씨에 각 $1,000 전달. 11월 12 일 브루클린 한인교회협의회 방과후 프로그램에 $1, 000 전달. 11월 14 일 뉴욕 · 뉴저지교협 합동 주소록 발간 결의. 11월 27일 북한선교여행 보고(윤명호 목사). 12월 16일 제 3회 성탄축하연합음익k계배. 12월 30일 교협뉴스 창간 배부 91년 1월 7일 신년하례만찬기도회(쉐라톤호텔/230명 참석). 3월 9일 세미나 ‘성서번역과 목회자 신학’ (박창환 교수) 3월 22~24일 ‘91 호산나청소년전도대회(l OOC 여명 참가). 3월 31 일 부활절새벽연합예배 얄샘 쐐탤 착책 21) 7월 1 일 주일 2부 예배 후 30살 이상 중년교우들 중 희망자를 위한 간(메 검λ까 무 료진단으로 실시됐다. 참가 의사는 한수웅, 한혜원, 신전식 박사 등이었다. 당일 간 검사 를 한 교우들은 모두 197명. 주사를 맞아야 할 교인들은 8월 21 일 교회버스로 단체로 가 기도했다 한인들 중에는 간염환자가 유난히 많다. 전염성이 강한 간염은 A형으로부터 B.C. D.E.G. 미상형 등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강한 전염성 때문에 에이즈보다 더 중시되 곤 한다 원인은 음주과다, 화학약품과용, 병원균에 의한 주사바늘 오염 등 다양한데, 악화 되면 간경화, 간암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심하면 간 이식수술을 해야만 되는 경우도 있다. 한인 간염환자가 흔한 이유 한가지는 인정이 많다보니 사이좋게 술이나 음식을 함부 로 나눠먹는 관습 때문이다.90년대에 뉴욕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교인 상대로 457명을 진단한 결과, 약10% 인 44명이 B 또는 C 형 보균자였고 2 명은 간염으로 사망했다. 항원 과 항체가 전혀 형성되지 않고 음성반응을 나타내어 주사를 맞은 사람은 2꺼명이었다. 예방주사를 안 맞을 경우 감염위험성은 상존한다. 항원과 항제가 형성되지 않아 음성인 27) 의학관련 자료는 다음 책을 참조했음최지원 장로회갑기념논문집J (1 997 년 · 꾸멈출판사) 2부 의료상 담펀. 284

경우는 예방주사를 최소 3번 맞아야하며, 사람에 따라 5번 이상 맞아야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에화 90년 초여름, 이웃교회인 포트리 성광장로교회의 이희철 목사가 교통사고로 갑작스 럽게 별세했다. 측근의 말을 종합해 보면, 7월 7일 뉴저지 북부 Route17 도로선상에서 사고를 당해 당일 3시 15분경, 55세를 일기로 운명했다옛 뉴저지교협 제 1회기 부회장을 지내기도 한 고인의 장례식은 교협(당시 회장 김창길 목사)에서 주관했고건)7월 11 일에 발인예배가 거행됐다. 장지는 조지 워싱턴 기념묘원이 었다. 이어서 7월 23 일에 열린 장신대학 동문회(회장 김창길 목사)도 추후 고인의 부인 을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30) 고 이희철 목사는 1976년 4월 13 일 본 교회 제5 대 목사로 부임, 1979년 9월까지 시 무하고 귀국,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했다가 재차 입국해 성광교회를 시무하던 중이었다. 그는 80년대에 본 교회를 방문해 설교를 한 적도 있고, 본 교회 부설 뉴저지성서대학의 개교 초기에 모서115경을 강해하기도 했다. To 뼈 áS 택-서 I! 3J) 1990년은 Tobias(토바이어스)32)의 해였다. 여름 · 가을 리틀야구대회를 ‘싹쓸이’ 했기 때문이다 본 교회 토바이어스 라틀야구 A.B 팀은 그해 6월 16 일 뉴욕 브롱스의 J.F. 케네디고 교 야구장에서 열린 제 11회 동부 리툴리그 야구에 출전, Tobias A는 우승을, B 는 4위를 차지했다 또 김규호 군이 최우수선수상, 박종우 군이 승리투수상;B 팀이 응원상을 받기 도했다~(사진 3이 28) 본 교회사 109쪽 각주 38 참조 29)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 10년사{뉴저지교협/1998년) 9, 31 쪽과 기타 당시 한인언론 보도를 참조했음, 30) 당시 뉴욕주 톨맨 공원에서 열린 미주동부장로회 신학대학 1990년도 총회에서 논의됐다장로교 시보 '(미국장로교전국한인교회협의회 발행) 1990년 7월 31 일자 등 관련 보도 기사 참조 31) 뉴욕한국일보 1990년 6윌 20 일자 섹션Al 면, 6면, 10월 24 일자 스포츠면 참조 32) Tobias 는 1 하나님은 선하시다1 의 히브리어 문구 영어식 발음은 ‘토바이어스’에 가깝다 히브리어로는 토비아스이다 본서에서는 ‘토바이어스’ 로 통일했다. 285

사진 36 토바이어스(T obias) 리틀 야구단 Tobias LIttle League Baseball team 13살 미만 동포 어린이들을 위해 미동부야구협회(회장 김수룡) 주최, 뉴욕한국일보 주관으로 개최된 이 경기에는 모두 5 개 팀이 참개 B조 1위로 결승 진출한 한벚교회의 주니어타이거스팀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는 TobiasA, 뉴욕선광교회의 ‘호세나’ 팀, 뉴욕한국학교팀이 A조, 주니어타 이거즈와 TobiasB가 B조로 나눠 조별로 대결한 뒤, 승자와 패자가 각각 1'2위, 3'4위 전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열띤 각축전...토바아스아팀 우승’ 이란 타이틀로 한국일보가 1변에 대서특필한 기사 는익사이팅했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역시 토비아스A팀과 주니어E-}이거즈팀 간의 결승전으로, 두 팀은 초반 타력전에서 후반 투수전으로 바꿔가며 연장전으로까지 들어가는 각 축전을벌였다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야구전을 즐겨본 탓인지 어른선수들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 관중들은 “깜찍하다”는 둥 “곁멋이 들었다”는 둥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모두 9살 미만 의 ‘진짜 꼬마들’ 인 TobiasB는 이날 발을 구르며 형들을 응원,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9윌 16 일 3부 예배 후에는 지난 2년간 야구단 감독 김수룡 접사가 편집한 야구학교 의 기록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시사회를 갖기도 했다. 또 야구학교 가을학기를 9월 8 일 286

‘ γ‘- 개학했다 10월 20 일 추계 리틀리그야구대회에서도 역시 Tobias A( 이하 토A)팀이 우승, 그해의 2관왕이 됐다. 레오니아의 실밴파크 야구장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토A는 각 3 개팀씩 A.B조로 나뉘어 치라진 예선전에서 한빛타이거스 A팀과 각각 2승 전적으로 나란히 결승전에 진출해 맞붙었다. 이날 개인상도 Tobias가 휩쓸었다. 이덕영 선수가 2타점 2루타로 최우수선수상을, 신 준섭군이 최우수감독상, 박종우 투수가 승리투수상을 각각 받아낸 것이다. 이날 주심은 88올림픽 야구심판위원이었던 윤희준 씨가 맡아 돋보였다. 김수룡 협회장의 말대로 이 날 경기는 나이 어린 TobiasB 등에는 절대 불리한 게임이였다. 한편 야구학교는 12윌 16 일 종강예배를 가졌다. 채 1990년은 선교가 유난히 강조된 해였다. 그해 교회표어 자체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5]1:8) 였다. 당회는 다가올 창립 20주년 기념 해외 파송 선교사를 보내기로 결정해, 김창길 목사 가 6월중 한국에 가서 직접 인터뷰하고 돌아온 보고를 했다. 선교사 후보는 양승환 전도 사와 정득수 목사였다. 교우들은 선교사 선정문제를 놓고 많은 기도를 해왔다. 달마다 드리는 전교우 기도회의 주요 기돼목이기도 했다. 7월중에는 특수임무를 띠고 중국대륙을 방문한 이들이 많았다. 우선 강동열 장로는 선교를 겸한 친족 방문을 위해, 오순닥 권사도 친족방문을 위해, 김에스더 사모는 버클 리대학 기독학생회를 인솔하여 중국과 일본을 3주 동안 다녀왔다. 김 사모는 8월 26 일 청년회 헌신예배 때 ‘세계선교와 우리의 비전’ (마28:18-20) 이란 설교를 통해 일본 · 중 국선교보고를했다. 이어서 김창길 목사도 8월27일부터 9월8 일까지 헝가리, 채코슬로바키애 유고슬라비 애 동독 등에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미국 전역에서 10명의 목회지들이 공산주의에서 민 주주의로 변천하고 있는 나리들의 교회를 시찰하고 헝가리 신학교 개교식에도 참석했다. 김 목사는 9월 30 일 찬양예배 때 동구권 선교여행 보고를 했다. 10윌 21 일 임마누엘회 헌신예배 때는 강동열 장로도 보고를 했다. 한편 당회는 11월 중, 콜롬비아 선교사로 박용규 목λP3l를 임명하기로 했다. 287

새빽 얄x짧 7윌 29 일부터 1부 예배 성가대의 찬양이 시작됐다 지휘는 이상원 집λ까 맡았다. 대원으로 봉사하기 원하는 사람은 새벽시간에 가까운 오전 7λ130분에 나와야 했다 큰 봉사거리였다. 사람들의 목청은 정신 의식과도 비슷하여, 보통 오전 끄시는 돼야 완전히 풀리기 시 작하고 저녁쯤에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전 중의 무리한 성대 사용 은 삼가는 것이 좋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성악가더라도 이른 아침에는 거 칠고 둔탁한 소리를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전세계의 주일 낮 예배도 오전 11시 전 후로 통일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성가대뿐 아니라 전 교인이 찬송가를 불라야 하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1 주얼날 이른 아침부터 노래해야 하는 1부 예배 성가대는 자연히 무리 없는 소프트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그 시간에 특별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초 자연적인 은총과 기도와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성대를 돌보지 않고 희생하 는 그들의 봉사가 참으로 가상하다! 1부 성가대는 추후에 ‘가브리엘 성가대’ 로 명명됐다. 가브리엘(Gabriel)은 생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천사이므로3껴 첫 시간에 새벽을 깨우며 주님 영광을 나타내는, 그야말 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성가대에 적합한 이름이라 할만하다.(사진 3키 한편 그 즈음 교회는 호산나 성가대 지휘자를 구하고 있었다. 신문광고에는 본 교회 에 관한 소개와 함께 지휘자의 자격조건을 열거했는데, 현직 본 교단 산하 지휘자나 뉴 저지지방의 교회 성가대 지휘자는 응할 수 없다’는 조건이 흥미로웠다떼 X• 12 종효 샤꽤 @! \"\"1 <! 8월 26 일은 교육관 구입을 위한 헌금을 낮 예배 중에 했다. 예산액은 10만 불이었는 데, 실제 헌금이 작정까지 포함해 총 96,410불이 드려졌다. 당일 주보에는 이 헌금의 취 지가 설렸다.(사진 38) “오늘은 예배 중에 교육관을 위한 특별헌금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정성 33) 당시 충북 청주시 상당교회 부목사 288

사진 37 가브리엘 성 가대원들 (가운데 줄 맨 우측이 지휘자 이상원 집사) Gabriel Choir members (atfarright, midcllerow, Conductor Deacon Lee.) 사진 38 제 2교육관 전경 Second Educationa1 Building 된 헌금을 통해 미국 짱11 서 2세들이 신앙과 흐멜을 훈련받을 장소를 허락하십니 다. 이 일에 우리는 기쁨과 감사로 효뼈합시다. 그날 점심도 청년남전도회가 바자로서 제공, 판매금을 교육관 헌금으로 내놓았다. 이라하여, 지난 1989년 3월 1 일 제1교육괜6)을 구입한 데 이어, 이 해에 제2교육관을 구입, 12윌 15 일에 클로정센 비좁은교육공간을한층더 확보하게 됐다. 제2교육관은 245,000 불에 구입했다. 이로써, 본 교회는 본당과 함께 모두 3 개의 부동산을 보유한 셈이 된 것 34) 단8:16, 9:21, 녹1:1 9, 26 참조. 35) 1990년 7월 중 뉴욕한국일보 하단 광고 스크랩을 참조했음 289

'\"'~를르 .\"랬f‘ ()#추'\"'\"''\"'' 쿄호 1\\;3\" 0 녕사 이다. 여기에 훗날 예닮원이 추가된다. 환샤교우플음 위란 71 표 7월 전교우 기도회 때의 순서지를 보면, 서경미 양의 건강회복과 그녀의 믿음과 부모 님과 치료히는 손길을 위뼈 온 교우가 간절한 합심기도를 했다. 또 가정에서나 구역예 배와 주일예배 때 계속 기도해 달라는 광고가 주보에 계속 실렸다. 그 밖의 환챔)김 병수 장로와 김지희 양; 최봉숙 교우 등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는 당부가 있다 끄월에는 서원희(최미선) 교우의 이들 스티븐 군이 입원한 뒤로 기도회 때 김 진 집사 와 함께 포함됐고, 12월 그해 마지막 전교우 기도회 때 다시 서경미 양을 위해 집중기도 를 하고 있었다. 이듬해도 여전히 서경미와 스티븐을 위한 기도는 계속된다. 7~ 락, 채 7i 시촌 빌리 박 전도사는 2년 107~월 시무 끝에38) 9월 학기부터 대학원에서 연구하기 위해 보스턴으로 떠났다. 훗날 그가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대학교에서 사역하게 되면서 본 교회가 선교헌금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밖에 몇몇 교우가 타지 학교 개학을 위해 떠 나갔다. 빌리 박 전도사가 떠나고 난 공석은 이내 채워졌다', 9월말 최정훈 전도사가 중 등부를, 남 웨슬리 전도사가 고등부를 맡게 된 것이다. 한국학교와 경로학당; Tobias 야구학교 등이 9월 8 일 한꺼번에 개강을 했고, 뉴저지 성서대학도 9월 11 일에 개강했다, Tobias는 12월 16 일에 종강예배를 가졌다. 여름철에 잠시 쉬던 청년여전도회 성경공부와 어머니 합창반도 9월4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b후첸 o」호(-路) 한국학교 흑인작가 앨릭스 헤일리39)는 자신의 뿌리인 선조 문타 킨태의 발자취를 찾아 검은 대 36) 11 E. Edsa1l, Boulevard에 위치 구입가역 $255,000 37) 원래는 11 월 5 일 클로정 예정이었으나 연기됐다. 1990년 11 월 4 일 주보 소식란 참조 38) 빌리 맨B퍼yP따k) 전도사는 1987년 10월 18 일 자로 중 · 고등부 교육전도사로 부임했었다. 당시 프린 스턴신학교 교역학 석사과정 중이었다. 1989년 6월 1 일부터는 전임 · 풀타임 청소년목회자로서 학생 . 학부모 상담 · 성경지도 및 그룹활동 자녀문제 지도 등을 해왔다. 본 교회사 87, 89년도 부분 참조 290

C쩍수 앓 71 짧상 씨}형융 i 영쟁 ε 륙의 감비아까지 두루 누렸다. 우리의 영적 뿌리는 하늘에 있지만,40) 우리고유의 문화 전 통적 뿌리는 조국 대한민국에 두고 있다. 한국학교는 2세들에게 우리네 전통문화의 뿌리 를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무렵 본 교회 한국학교가 6년째를 맞아 착실히 성장발전하고 있었다.1990년 11윌 21 일자 중앙일보는 본 한국학교를 다루면서 “이재 개교 6년째를 맞지만 학교운영에 있 어서 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체계가 잡힌 학교”라고 썼다 41) 90년 가을학기 현재 본 교회 한국학교의 학생 수는 90 여명. 초기의 30~40 명에서 크게 늘어났다. 학급수도 3 개 학급에서 9 개 힘L급으로 많은 선장률을 보였다 학생 중 3 분의 1 이 비(취교인 자녀들이어서 지역사회 봉사기능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시 학제는 유치반부터 초등학교42) 6학년까지 기초 · 초급 · 중급 · 고급 등 4개 급으 로 구분, 급별로 2반씩 모두 8반에다 1년 과정인 중고등부 특별반을 포함, 모두 9 반이 었다. 수엽은 토요일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진행됐다.3시간 수엽 중 2시간은 한 국어를, 나머지 1시간은 특별활동을 했다. 특별활동은 태권도, 음악, 미술, 한국역사 등이 었다 본 한국학교의 강점은 한국역사교육이었다. 신문기자와의 대담에서 교감 김성인 박사 는 “한국어는 가정에서나 다른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한국역사는 아무 곳에서도 배울 수 없다’면서 “한국인의 뿌리를 세우는 데 한국역사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강조했다. 한국사 교육은 학습수준에 맞춰 이야기한국λh 한국사 1 . II로 니눠 실시했는데, 교사 들의 열의와 필요성을 깨달은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로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더 욱이 한국어l서 한국사 관련 시청각교재와 영웅 · 위인전 등을 다량확보 학생들이 늘 손 39) Alex P. Haley(1921 ~ 1992). I뿌리J (Roots-the Saga of an 와nerican Family . 1976년작)로 스핀간 메 달을 받았다 「뿌리」는 1767 년 감비애Gambi띠에서 노예상인들에 의해 납치돼 신대륙으로 팔린 선조 Kunta Kinte의 족적을 더듬어 12년간 추적하고 연구한 대작으로. 1977 년에는 8부 작 텔레비전 드라마 로 구성돼 미 전역에 방영됨으로써 주가를 높였다 이 드라마의 최종 에피소드는 미 역사상 최다 시청 지를 끌었다 물론 그 뒤로도 재방영됐고 한국서도 번역 방영됐다 「뿌리」는 흑인계를 비롯한 소수민 족 전통문화 유산의 소중성과 노예제 폐지의 타당성 부각, 소수인종 민권 앙양 등에 간접 기여했다. ‘World Book’ 9권(‘H’) 참조 40) 요17:16 참조 41) 뉴욕중앙일보 ↑한국학교탐방 시리즈의 17 번째로 본 교회가 다뤄졌다. 이 부분에서 신문 보도내용을 일 부참조했음. 42) 당시는 한국에서 아직 1국민학교↑국민학생1 등으로 부르다가 90년대 후반에 1초등학교초등학생 1 으로 고쳐 불렀다. 291

쉽게 한국역사를 접할 수 있게 했다. 한국학교는 제1교육관을 교사로 활용하는 데다 교회로부터 연4천불의 지원을 받아 유능한 교사와 교재 확보 등에 무리가 없었다. 또 90년 연말로 구입 완료한 제2교육관 을 방과후학교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학교는 그해에 4년 과정을 이수한 10명의 졸 업생을냈다. 액(J~I 뼈뽕 그해 10월 28 일부터 매주간 구역예배 상황이 주보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주보 뒷면 교회 소식란에 다음주 구역예배 예보만 올리곤 했으나, 그 주간부터는 주보 안쪽 예배순서 아랫난에 각 구역담당자와 함께 구역별 장소와 인원, 헌금 등 보고내용과 함께 내주 장소와 연락전화번호까지 수록되기 시작한 것이다쩌 이것은 구역예배 참여를 한층 더 북돋우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또 그만큼 주보 편집 및 인쇄술이 발전했다는 얘기도 된다. …AT 해슐:좋 그 무렵 교회가 수적으로 눈에 띄게 부흥하고 있었다. 전년도인 1989년 마지막 주일 교인 통계와 대비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도표 오른쪽 칸의 1990년 끄윌 11 일은 교인 출석수가 가장 많은 주일가운데 하나였다;(표 3키 우선 성인 모임 중 1부 예배 참석자수를 보면, 새해에 예배 회수를 3부로 늘린 것과 관계없이 교인수가 고정돼 있다 2부 예배의 경우 참석자 상딩수가 3부 예배 쪽으로 옮겨간 듯 전년도보다 준 것을 감 안하더라도 3부에 총 200 명이 념는 교인들이 새로 늘었다. 하나님의 은총일뿐더러 3부 예배의 추가가 성공적이었음을 시사한다. 90년도 주일찬양예배 참석인원이 ‘234명’ 으로 기재된 것은 구역대항 찬송경연대회 에 가족들이 총동원된 결과다. 그 다음주일(11월18 일) 찬양예배는 평상시 수준(49 명)으 로 되돌아갔다. 대체로 찬양예배 참석자 수가 변화가 심한 주된 원인은 특별행사가 있 43) 10월 28 일자 주보에 ↑ 10윌 구역예배보고1 가 처음 실렸다 292

%양썽썽 댐며 뻐 m” 뻐 ” 。 구분 川 이 없’ ιJ1l 4---- 1 부예배 쟁 ι끼 HT q T님 ] 찬양예배 49 o\"\"-.l,!.τc5\"님, 이린이 영어예배 51 주일새벽기도회 37 45 612 1.072 표 37 교인 출석 통계 거나 오후행사를 참관 또는 참석하려는 외부 방문자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90년 연초에 시작된 주일 영어예배는 1월 14일 48 명이 모였다가 그 다음주 절반이하 로 급감\\17명)하여 10 명 안팎으로 유지된다. 방학 때인 8월중(25명) 중간 최다치를 이룬 뒤 다시 줄어들면서 11월 11 일 당일을 비롯, 연말까지 숫자보고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영어권 선자 다수가 학교 기숙사생 등 이동성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어린이부의 경우, 유치부 규모만큼의 새 어린이들이 불어났다.11월 11 일 주보에는 “교회학교 어린이부가 200명이 넘게 모인다”는 희소식이 실렸다. 충분한 수적 근거가 있는 것이 10월 중순부터 그때까지 매주평균 180 명 이상이었고, 직전 주일인 11월 4 일 은유치부 65명, 유년부 134명, 합계 199 명이었다. 중고등부 역사 수적 증가율을보인다 어린이부와 합하면 전체 교회학교가 300 명을 바라보는 단계다. 수요기도회는 참가자 증강 목표가 하나의 숙원이 되다시피 한다.11월 4 일 주보에는 “수요일 예배에 만납시다. 금년 12월까지 수요일예배에 70 명 참석하기 운동 이라고 권 면했다. 이 목표는 이듬해 5월, 70명 선을 돌파함으로써 일시 달성된다꺼 44) 이듬해인 1991 년 5월 19 일 주보에 ”몇 주간 째 수요기도회에는 60 여명이 참석하고 매일 새벽기도회는 25 명 이상이 참석합니다 기도하는 모임에 참석하기에 힘을 댐시다.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 니다”란 뉴스가 실렸다. 사실 바로 그 전주 수요일인 5 월 8 일의 회집 수가 75 병이었다 참고로, 5윌 8 일 당일 교회증축위원회 모임과 함께 건축설계사의 브리핑이 있었다 293

듀 ;;;;:iÃI 장로쿄호 I 30 닌 Af ,d 찬양순서 11윌말에는 김흥교 목사를 부목사로 지휘 이삼원 집사 청빙, 12월 1 일부터 시무하게 됐다. 본 반주 이희령 선생 교회 오기 전 서울서소문교회 부목사 였던 김 목사는본교회 행정, 교육, 교 합창 어머니합창단 구담당 목사 등으로 수년간 사역하게 된다쩌 김 목사는 12월 2 일 ‘여섯 더 푸른열매 /김규환 하기 하나’ (녹 13:10-17) 란 메시지로 취임설교를했다. 베들레힘의 여인숙 /Saα-ed Fo1k Song 연말 당회는 펠리세이즈팍 타운의 처음 노엘 / Old English Carol 주민과의 유대를 위해, 이듬해 연초에 사 공무원을 초청해 만찬회를 갖기로 자 와서 경배하라 / La며1 18th cen따γ 했다. 교회학교 학생들의 음악과 고전 무용, 태권도 등 특기와 장기 쇼, 구역 어린이합창 지은·소희·희령 별 음식 등을 준비하기로 했고1 영어가 유창한 사회자도 물색 중이었다. 호택·요한·규선 그해 연말은 여느 때보다 더 감사한 제시카·크리스 분위기였다. 제2교육관을 확보했기 때 문이었다 주예수눌자리 없어 축하하오 기쁜 크리스마스 중창 작은불꽃중창단 천사들의 노래 외 2곡 Org;와1과 Piano 이희령 • 김영숙 주 예수를 사랑한다 / J.S. Bach 오 1 거룩한 밤 / A. Adam 줌창 남성중창단 합창 어머니합창단 개선마차타라 울린다 크리스마스 종 / Gus leγene 하나님을 찬양하라 / 마T. by C.S. Bernent 합창 125 장 다같이 표 38 성탄 음악 예배 그해 성탄시즌인 12월 23 일 찬양예배 때 어머니합창단이 주관하는 성탄축하 음악예 배가성대히 열렸다 ‘뉴저지한인장로교회 어머니합창단’의 본격적인 첫 데뷔 행사이자 90년대의 첫 음악예배 겸 첫 성탄예배였으니 만큼 의미가 갚었다고 할 수 있다.(표 38) 순서지에는 “우리의 작은 목소리로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과 또 올 한해도 지켜주선 45) 김흥교 목사는 그후 뉴욕한인중앙교회 부목사를 거쳐 가장 최근 뉴저지 보은장로교회를 개척한다 294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준비하였습니다”는 다소곳한 인사말 이 올라있었다찌 모두 27명인 단원들은 이상원 지휘, 이희령 반주로 ‘베들레햄의 여인숙’ , ‘처음 노엘’ 등 다양한 캐럴의 화음으로 밤하늘을 별처럼 수놓았피 어린이합창단, ‘작은 불꽃’ 중창 단, 오르간 · 피아노 중주, 남성중창단의 찬조출연도 있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 교회 성탄 축제는 크리스마스 당일 성탄축 하예배 외에 성탄축햄악예배, 어린이성탄축하예배 등 다양한 내용으로 갖고 있었다. 그해 성탄절 이브에 있은 교회학교 성탄예배도 예년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됐다. 특히 음 악성극 ‘솔타’ (psalty)는 큰 감격을 맛보게 했다.1'2'3부 성가대와 가족들은 연말에 연합으로 평가회 겸 위로회를 가졌다. 대학생들을 위한 만남의 파티도 연말에 있었다. 한편 이에 앞서 16 일 밤 허드슨장로교회에서 열린 뉴저지교협(회장 김창길 목새 주 최 제3회 성탄축하음악예배도 700 여명이 참석하는 등 대성황을 이루었다.47) 그해 12월 31 일 뉴저지교협(당시회장 김창길 )이 발행하는 ‘교협뉴스’ 가 창간됐다. 앞표지에는 허드슨교회에서의 제4회 연합 성탄축하음악예배 광경의 사진을 담았고, 꼭대기에 발행언 김창길, 주간 김철연, 편집인 오다위 · 이성현 등으로 표시돼 있었다. 실 제 편집은 오다위 신부와 김철연 목사개 원고정리는 이성현 목사와 본 교회의 김성인 집入}개 식자는 오마르다 집λ아 맡아 수고했다. 창간사에서 김창길 교협회장은 여러 한인교계 관련 통계자료를 인용하괴 교회를 중 심한 민족들이 미국에서 조기정착을 했고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한 역사적 전례들을 열거 했다 46) 당시 대원 명단이 이러했다 소프라노· 김현주 조항인 노준희 김에스더 정연미 임경애 이경희 안현숙 나혜균 박민서 한혜원 강진희 김정희 장혜경. 메조소프라노: 유정숙, 안정옥 이혜경 심희숙 최영희 박현숙 앨토. 김미경 박정예 이향금 김남주 박순상 홍순애 배연희. 47) 문정선 목사{찬양장로교회)가 집례한 1 부 음악예배에서 김해종 감리사가 1하나님의 얼굴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2부 음악순서에는 200 여명의 연합성가대와 찬양남성중창단, 아가페관악합주단, 뉴저지 Y 여성 합창단 등이 출연했다 지휘자는 이병천 집사, 반주자 석경혜, 독강자는 메조소프라노 윤현주, 테너 박 승녕 씨 등이었다. 48) 즉 필그림들(Pilgrims) 엄밀한 의미에서,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라머스에 상륙, 최초로 정착한 영국 이민자들은 1 청교도'(淸敎徒 . Puritans) 오}는 다소 다른 1분리파'(Separatis얹)였다. 전자는 영국 국교 회(Anglican Church) 제도 안에서 내부적으로 정화하기 (purify . 여기서 퓨리턴이란 이름이 나옴)를 원 295

#루;;;:;;-1 \"1 장로 zl 호 초기 청교도들은48) 미국의 정선사의 기초를 놓아 오늘날도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그 선앙전통을 찾을 수 있다. 뉴저지와 뉴욕에 들어온 화란사람들은 개혁교회 전통을 심어 세계제일의 문명도시를 건설했고 앵글로색슨계는 성공회(영국 국교회)를 들여오} 초대 대 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배출했다. 루이지애나를 중심한 프랑스계와 나중에 이민 온 이탈리아계는 키톨릭으로 교육계에 공헌했고, 유태계는 회당을 도입, 특히 경제 · 문화예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히는 민흰ethnic) 이 됐다 한인들은 보다 더 늦게 온 이민그룹이지만, 75~8o%가 기독교인들로서 교회생활 중 심으로 이민생활을 개척, 정착해나가기 때문에 틀림없이 미국 주류사회에 공헌하고 성 공할 것이라논 것이 김 목사의 전망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민교회의 역할과 교 회지도자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며 교협의 영향력도 막대한 것이다. 이어서 김 회장이 밝힌 교협뉴스 창간의 의의는, 1. 교파와 규모가 서로 다른 교회들 의 단합과 협력, 2 각 교회의 뉴스 전달의 창구 역할, 3. 지상강단과 연구발표를 통한 목회정보 교환; 4. 지역사회를 향한 한 목소리의 강화; 5. 문서선교지 역할 등이었다. 뼈댐 훌 추짧 £뼈 &뼈훌용휴한 @훌책 1. 7. 신년주일 성찬식. 연합 제직수련회(강사: 김계용 목사). 1. 14 지 교회 브런스원장로교회 성찬식 및 제직임명식(집례 : 김창길 2. 1. 2. 8. 목사). 2. 11. 박희일 • 김인선 협동장로 임명. 2. 18 오순덕 권사에 공로패 수여. 김창길 담임목사 본 교회 성역 10주년 서무부, 교인주소팩 수록하기 위한 각 가정 사진 촬영개시(김 젠 집사). 교실 효율적 사용을 위한 설문. 했던 반면, 후자는 국교회의 내적인 정화 여지가 없다고 봤기 때문에 더욱 박해를 받아 결국 화란으로 피신하게 된다 (훗날 초기 플리머스 교회를 시무한) 윌리엄 브류스터 장로가 1606년 영국 스쿠비에 설립한 분리주의 모임이 정부에 의해 불법화되자, 교인들을 이끌고 화란 암스테르담 도피생활을 거져 1609 년 라이덴(Leiden) 에 수십 년 정착했다 그러나 2 세들이 화란 문화에 물들기 시작하자, 신대륙 이 민을 결심한다 이때 윌리엄 브랫포드(플리머스 정착촌 초대총독)가 ”이 무리는 순례자”라고 지칭한 데 서 필그림이란 이름이 생겼다 진짜 청교도는 필그림이 상륙한 수년 후에야 비로소 주변 지역에 도착 하기 시작한다. 관련 인터넷 참조. 296

2. 18~3. 3. 임미누엘회 성지순례. 2. 25. 전도부, 1인 l불 선교헌금 관련보고. 3. 25. 3부 할렐루야성가대 김경희 솔리스트 부임. 3. 10. 뉴저지성서대학 제 1 회 졸업식. 4. 1. 이윤규 장로 협동장로 임명. 4. 2. 대심방 개시. 4. 11. 4. 28. Tobias 야구학교 개강. 4. 29. 청년여전도회 바자회(총$3 , 976 모금). 5. 12. 김진양 전도사 사임(지 교회 개척 차). 5. 20. 5월중 청잠년 야구팀 친선경기 차 조직. 5. 27. 남전도회 가족모임의 밤. 5. 31 ~6.3. 김혜희 전도사 사임(이명호목사와 한국사역 차). 6. 16. 7. 1. 야외예배 CTollman Park). 300여명 참여. 7. 9~ 12. 김호일 목사(서소문교회) 초청 부흥사경회 7. 15~17. 중고등부가족의밤 7. 23~27. 여름성경학교 교사 수련회(교회당). 7. 29. 각부 졸업예배(신학교 2명, 대학원 박사과정 2명, 석사 · 학사 각 1 명, 중고등부 18명, 초등학생 6명. 8. 16~ 18. 어린이부 교회학교 교사강습회(강사: 조유경 전도사). 8. 26. 어린이여름성경학교(본당). 전교우수양회 강사: 이기경 목사(서울경동제일교회 )491 중고등부 캠프(케이프메이 캠프장) 흐딛주 • 세례 · 아기세례 거행 1부 예배 가브리엘성가대 찬양 개시(지휘 : 이상원 집사). 미주장신대성가단 제 1회 순회공연 (지휘 : 이재숙 교수/반주: 김미경)에 (목)토) 어린이성경캠프(멤엘기도원). 85명 참가. 회비 : $60. 교육관 헌금(예산 :10묘별/모금: 작정포함 $96,410). 9월중 빌리 박 전도사 보스턴으로 연구차 이임. 49) 제9차 전교우 수련회부름 받은 공동체1 란 주제아래 열린 이 성회에서, 이 목사는 7월 15 일 대예배 때 1 부름 받은 공동체'(마 16:13-20) 란 설교를 한데 이어, 포레스트 수양관에서 1 교회의 우선 순위'(요4:19 26), ↑뒷마당은 어떤가'(삼상1:1 0-23) , '달란트↑(마25:14-20) , ‘드로아의 환상’(행 16:6-10) 등의 메시지로 이끌었다, 오전집회는 창세기 공부로 이어졌다. 총경비를 교회가 부담한 이 성회에는 약160명의 교우 가참가했다 50) 반주자 김미경 씨도 우리 교회 반주자인데다 15명 단원들 중 본 교회 김진양 전도사, 유영은 집사 등 상당수의 교우들이 있었다. 297

A I- 2 #주;낸 ;;;;1 O~ .za호 1 30 딘사 9. 8. 한국학교, 경로학당 개학. 9. 11 ~ 12. 뉴저지성서대학개강. 10. l. 호산나성가대 이한섭 지휘자 부임. 10. 5~6. (금-토) 임마누엘회 기을여행(플리머스보스턴). 30명(최초로 버 스대절). 10. 14. 새 신자환영예배. 10. 28. 창립 18주년 기념예배. 기념 음12,1-(겨1 배(어머니합창단 첫 공연). 1l. 4. 구역대항 찬송가경연대회. 12. 1~2. 청년남전도회 주최 찬양의 밤. 강사: 송병기 목사(목양장로교회). 12. l. 김흥교 목사 부임. 사역 개시. 12. 15. 오후제 2교육관클로징 g빽 l. 28. 버겐경로학당 개교. 4. 19. 4월중 ‘사랑의 쌀’ 모금($ 1.000) 한국일보사에 전달. 6. 4. 6. 19~2 l. 남전도회 맨지 양 돕기 모금($ 848)전달 6. 24.~27. 이명호 장로, 제 2차 뉴저지노회서 한국파송 선교사로 목사안수 7. 14~ 15. 9. 6~9. tns극 10. 16.(화) 10. 20.(토) t二 t그. 10. 20.(토) 김창길 목사,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 저14대 회장 피선. 12. 16. 미주한인장로회 15회 총회(본 교회 총대 김창길 목사 • 정주섭 장로). 김 목사서기 피선. 김진양, 이흐푼전도사목사고시 합격. 노회교육부 주관 중고등부연합 수련회(뱉엘수양관). 전체 135명(본 교회 30명) 참가. 뉴저지교협 주최 베뢰아 귀신론 비판강좌(에덴교회당). 강사: 원 세호박사. 뉴저지노회 제 2회 뉴저지장로교선교대회(뉴저지초대교회). 주제 : 너희가 주라(~l-(3 :3 7). 강사: 이상근 목사(대구제일교회). 제 3회 뉴저지노회(총대 강동열 • 정주섭 · 양호식 장로). 가을철 리틀리그 야구대회에 Tobias A. B팀 참가 뉴저지여전도회연합회 주최 이민자녀교육세미나(강사: 김득해 박사).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 제 4회 연합 성탄축하읍익뼈1 배 (허드슨장 로교회). 298

수 X 쟁앵 1쩔앓 4. 성장최 ~1{.991-1995) Growth Period 1991 l’’ι 냥애 p 새해 표어는 사도행전 2장 47절을 따라 ‘날마다 더 하는 교회’로 정해졌다. “우리 교회가 올해에는 신령한 면에서 질적 양적으로 더해질 것을 기도하고 노력합시 다”란 주보의 교훈이 성도들에게 힘을 더해주고 있 었다. 김창길 목사는 새해 첫 주일인 6 일 ‘날마다 더하게 하소서’란 설교에서 이 표어를 정하게 된 동기를 밝혔 다, 1) 90년 11월 어느 날 기도원에서 새해를 준비하던 중 행2:47 성구가 마음에 와 닿아 당회에 제의한 즉 만 장일치로 통과됐다는 얘기였다. 김 목사는 이런 말도 했다. “참회기도를 드리던 한 장로님이 4.5부 예 배를 드러도록 해달라고 기도할 때 제 맘속으로 는 감사하고 기쁘면서도 ‘이어쿠, 큰일 났네!’ 했 습니다. 사실 어떤 때는 주일 대예배에 3번 설교 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물론 장로님의 기도는 그 렇게 목사가 많이 설교하게 해달라는 뜻이 아니 라 교회가 커져서 교회당을 다시 신축하게 해달 리는 뜻인 줄 압니다 \"2) 1) 본 교회보 ‘임마누엘’ 제3호(1991 년 3월 31 일자) 참조 2) 실제로 그해 하반기에 4부 예배를 드리게 된다. 299

^ . . ii:든? 누주;;;;-t ;;;1 。 동쿄호 130 넘,,~ 그러면서 김 목사는 19년 역사 중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 다. 이유는 교인수가 많아질 때 자칫 오만하여져 신앙의 질적 호땅에 소홀하기 쉽기 때 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 이상의 딴 것은 없다” 면서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중심이 요 우리는 그분께만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집권 말기이던 당시, 미국 내 경제불황이 심각할 때였으나 우리 교회는 새해 예 산을 전년도보다 12만 불이 더 많은 583,000불을 책정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사람 들”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하에 김 목사의 새해 교훈을요약해 본다. 주께서 “날마다 더하게 하신”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러 모이기에 힘 쓰는 교회였다. 장 칼뱅 3)은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 세례와 성찬이 집행되는 곳, 성도들이 친교히는 곳, 하나님의 말씀을 훈련되는 곳으로 정의했다. 우리 교회가 곧 그러해야 한다. 두 번째로,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칩을 받는 교회였듯, 우리 교회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있는 동안은 그의 가 르침에 순복해야 한다. 또 초대교회가 믿는 자들이 늘 함께 한 교회였듯, 우리 교 회도 한 형제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초대교회가 기도에 전혀 힘쓰는 교회였듯이 우리도 위로부터 기도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함으로써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6 일 오후에는 본 교회 출신인 김진양 전도시플 통해 새로 개척하게 된 웨체스터한인 장로교회 창립예배가 드려졌다 4) 우리 교회가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개척하기로 한 3개 지교회 중 두 번째 개척교회다. 김 전도사는 본 교회에서 집사직으로 시작해 전도사와 성가대 지휘자를 거쳐 목사가 되기에 이르렀다.5) 김창길 목사가 집례한 이날 행사에서 교단총회장 김정국 목사가 말씀을 전했고 뉴욕 노회장 정영환 목사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 새 교회의 미래를 함께 축하했다. 김진양 전 도사는 “부족한 봄이지만, 한 마리의 어린양도 소홀히 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몸과 열성을 바쳐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6) 3) 영어명 존 캘빈. 프랑스 출신인 스위스 종교개혁가 장로교 시조 4) 교회당 위치는 15 S. B떠뼈 Rd. Mt. Kisco, NY 10549 였다 5) 김진양 목사는 1992년 10윌 이 교회를 떠나교 김영 목사가 후임자로 부임한다 6) 1991 년 1 윌 10 일 중앙일보 보도내용 참조 300

19 양 t 현3ξ 행사에 앞서 김창길 당회장은 다음과 같은 기념 머l시지를 발표했다. 웨체스터 한인장로교회를 창립하면서 당회장김창길 목사 뉴저지한인장로교회가 뉴욕주 웨체스터 지믿써 거주하는 동포들의 선교를 위 해 지교회인 웨체스터 한인장로교회를 개척케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많은 이민교회들이 그래왔듯이 저희 교회도 18년 6개월 전에 교회도 빌리지 못 한 채 갑자기 뉴저지 효다석에 있는 사일러스 칸덕트 공원에서 첫 예배를 시작하 였습니다. 몇 번은 가정에서, 그 다음에는 두 번이나 빌린 교회에서 좀 나가달라 는 노티스를 받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지금의 교회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우리의 힘으로 찾은 것도 아닙니다. 돈이 준비되어서 산 것도 못됩니다. 운이 좋아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 통안의 어려움을 인내해서 얻은 결과도 아닙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거저 받은 것 입니다. 우리는 디음 찬송가를 자주 부릅니다. 웬 밀르엔]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네 /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 이 몸 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우리를 위해 먼저 십자기에 구속해주신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전해 준 자가 있어서 듣고 매우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는 ‘땅 끝까지 이르 러 증인 되자 라는 표어를 가지고 뉴저지 브런스윈 지 g배 첫 번째로 지 교회인 브런스윈 한인장로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또다시 올해는 ’날마다 더하는 교회’란 표 어로 두 번째 지 교회로 웨체스터한인장로교회를 창립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는 우리 교회에 두 분의 부목사님을 보내주시고 제 2교육관을 구입하게 하시고 이제는 교인이 700명을 헤아리는 교회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 걱해 볼 때 우리의 입이 열 개 있더라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4월이면 비자를 수속하고 있는 박용규 목사님이 콜롬비아 선교사로 들어 가십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 교회는 교회 안 살림에 여러 가지 필요 하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남아서 하는 선 교가 아닙니다. 모자라지만 해야할 일이고 사명이 있기에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 다. 이 선교에 온 교우들은 기도와 협력과 봉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웨체스터 한인장로교회에 파송하는 김진양 전도사님은 본 교회의 서리 집사를 거쳐 전도사로 2년 3개월을 시무했으며 오늘 창립예배에 참석하는 호산나 성가대의 초대 지휘자로서 공헌이 릅니다. 역시 김진양 전도사의 부인인 유영은 301

쩍π、 #주 :>:i:>:1 Ã。t 도E:!쿄호 I 30 닝^~ 사모도 본 교회 서리집사와 호산나 성가대의 반주자로 수고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신~.이 돈독하고 소명 B이 투철하며 책임감이 강한 김진양 전도시들 웨체스터 한인장로교회에 파송하는 데 전도부와 당회가 만 장일치로 가결히여 보법니다. 이 길은 고난과 역경과 고독과 싸우는 길이며 때로 는 세햄1 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또 때로는 사람휩1 게 배반과 비난을 받는 길 입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길이요 복음을 전하는 길이기 때문에 부 름받은 자만 가는 길입니다. 앞으로도 김진양 전도사님과 웨체스터 한인장로교회 를 위해 계속적인 기도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시작은 미 QL면}나 장래는 창대케 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웨체스터한인장로 교회에 입할 것을 믿습니다. £ 똥썩1 빼 새해부터는 교회가 보다 더 활기차고 생기 띤 모습을 보였다. 우선 교회 주변 횡단보도 안내 담당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교회 앞길과 옆길이 번 잡하여 성도들의 교회당 출입과 안전운전에 늘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청년남전도회 봉사부는 주보 간지(閒紙)에 12 7찌 안전주의사항을 나열했는데, 신호 등 준수와 어린이의 보행 조섬, 보행자들에 대한 예절, 파킹규정, 지도담당 지원요청 등 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기 특히 Edsall Boulevard 선상에 이중주차나 정차를 삼가해 달라는 부탁이 들어가곤 했 다 두 달 남짓 후 3월 10 일에는 인근 경찰서에서 와서 아이들이 교육관 뒤뜰에서 놀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갔다. 위반하면 교육관 사용허 7}가 취소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9월초에는 인근 지역민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기 위한 유의사항을 교인들에게 알렸다 교회주변에서 차량을 오르내릴 때 이중주차를 하지 말도록. 신호등을 지켜 꼭 보행로 로 통행할 것. 차도를 건널 때 어린이들을 보살필 것. 교회 앞 옆길에 통행자들에게 방해 가 되지 않게 길을 막지 말도록. 가능한 한 큰 소리를 지르지 말 것. 교회에 단정한 옷차 림으로 오갈 것 등이었다. 이라한 ‘몸조심’은 교육관 사용허가를 유지해야 할 우리 교회 나름의 자구책이면서 적극적으로는 지역사회에 모범적인 한인 교회상을 부각시키는 한 길이었다. 한편 새해부터 당회는 임마누엘회 연령을 60세 이상; 청년 남전도회와 청년여전도회 는 25살 기혼자로부터 40살까지로 결정했다. 7) 1991 년 교회주보철(l윌 21 일) 참조 302

A 앵양 X ‘힘 새해부터는 구역모임을 효과적으로 분담하기 위해 크게 2개 교구로 나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1교구에는 제1~ 1l구역이 속했고1 교구담당 교역자는 조영진 목새 R교구는 12 ~22구역에다 담당자논 김홍교 목사였다. 당시 구역편성은 별도 표와 같다.(표 39) 표 39 구역 편성표 1 교구 담당교역자 · 조영진 목사 구역 지 。-기# 성경 지도 구역장 권찰 한종희 2 Pallsades Park 3':.여。지L..! 박희일 전춘심 3 박건자 4 Pallsades Park 박희일 김진 이은희 5 배연희 6 Pallsades Park 조영진 현용남 민성희 7 허필연 8 Pallsades Park 조영진 이상근 박순자 9 김남주 10 Pallsades Park 저。 T;t서며 박해칠 박광자 11 정낙신 Pallsades Park 김인선 Iζ〉}C7:j3-51i 권찰 Cliffside Park 4τ:~~ 박병태 박현숙 이혜경 Jersey City. Secaucus -t4- 。C그m 조영진 강진희 조선희 유학생구역 이학준 김공환 김정숙 이영채 Clifton . Caldwell 3':.여。지....:.! 닙「L:」그-까L、 채규례 배동희 Parlin. South Amboy 3':.여。지L..! 호s 여。서「 김혜중 진정애 2교구 담당교역자 김홍교 목사 이영희 구역 지 。-j1 성경 지도 구역장 12 Leonia . Fort Lee 이학준 이인택 13 14 Fort Lee 7口l'。호4τl!. 김홍윤 15 16 Fort Lee 카。도。i역 방호성 17 18 Fort Lee 김인선 최재식 19 20 Little Ferry . Bogota 7口1-。호.Ilι1 민의홍 21 22 Hackensack.Rutheford 7口1-。호.Il1← 이인용 Tenafly. Englewood 가ζ그도〈그역\"\" 이대영 Closter.Demarest. Harr 김홍교 김인선 Paramus 김홍교 김수룡 Washington TWPWayne 키口호。」미」 고수광 New York 김홍교 김명걸 303

;;q 를료 '--^-\"''''I 0 -.:;:효호 풍gf려 ^H \\:1짧 1월중 당회와 음악부는 주요사항 한가지에 합의했다. 교회예배 중 회중 찬송가를 부 를 때, 미국교회처럼 마지막 절 직전에 간주를 한 후 나머지 절을 부르기로 한 것이다. “오늘부터 교회예배 중 진똥 부를 때 매 찬송마다 마지막 절에 간주를 한 후 마지막 절을 부릅니다. 죠뚜하는 동안 찬송의 뜻을 음미하며 가사를 통해 조용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인들의 교회는 이렇게 찬벙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기 앞으로 미국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니갈 텐데 좋은 것이면 빨리 사 용하기로 성가대 지휘자, 반주자, 대장, 총무 등이 찬성했습니다껴 사실 이 관습은 김 목사가 부임하던 해인 1980년 초에 실시하기 시작했다가 1983년 정초에 그만두었던 관습이었다. 교회음악 사역도 날로 새로워지고 확장돼갔다. 새해부터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로 하고 청년부 · 중고등부 · 초등부 대상으로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와 플루트 등 관현악기 연주 자모집에 들어갔다, 2월 l일에는가브라엘성가대 반주자로홍순양양이 부임했다.9) 그해 8월 17~18 일 이틀간은 우리 교회로서는 첫 번째 성가대수련회를 박재훈 목사 (캐나다 토론토 큰벚장로교회 )10)를 초청, 본당에서 가졌다. 성가대원 및 성가대 후보자들 이 참석하여 유익한 지혜와 지식을 터득했다 박재훈 목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우리네 고유의 찬송가를 많이 작곡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1) 과거 한양대학 음대 작곡과 교수생활과 영락교회 성가대 지휘자 생활을 오래하면서, 수많은 어린이성가와 찬송개 성가합창푸2)과 독창곡,갱) 오페라 ‘에스더’ 등 을 작곡한 한국 유수의 교회음악인이었다. 또 한영찬송가위원회의 음악 전문위원으로 활 8) 1991 년 1 월 13 일 주보 ‘교회소식’란. 9) 당시 지휘자는 이상원(가브리엘성가대), 이한섭(호산나성가대), 김홍일(할렐루야성가대) 집사들, 피아노 반주자로는 경운, 김영숙, 홍순양 교우들, 오르간 반주자로 김미경 교우 등이 봉직하고 있었다. 10) 현재 원로목사. 11) 한국교회 어린이들이 어머니주일이면 으레 부르곤 하던 1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통일 찬송 가에 실린 ↑지금까지 지내온 것 '(460) , ,눈을 들어 하늘 보랴 (256) , 매서 돌아오오'(317) , ,산마다 불이 탄 다 고운 단풍어11'(311) 등 12) 박재훈의 대표적인 성가협L곡으로 ‘목마른 사슴같이’(시 42편)가 있다 한국적인 가락에 다소 서구적 인 화읍을 결합시킨 곡이다. 캐나다에 거주하기 시작한 후 그는 융조리컨암論) 형태의 한국적이고 현 대적인 합창 시편가를 다수 ξL곡했다 그의 초기 성가작품으로는 구세대가 애창하던 ‘내 진정 사모하 는 친구’ (2중창 또는 2부 합창)가 유명하다. 관련 성가합창곡집 악보 참조 304

약했었다꺼 그는 캐나대11서 목회하면서도 국내외에서 지주 초청을 받기도 했다. 박 목사는 집회기간 중 ‘찬미의 제사’(시 69:30 -31),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하나님’(시 22:3) 등의 말씀으로 성가대원들에게 큰 격려와 많은 교훈을 주었고, 18 일 오후 성가대헌신예배 때는 ‘측량 못할 은혜, 영원한 찬송’(웹 1:3-14)이라는 감동적인 말 씀을전했다. 101월 27일에는 당초 4부 예배로 확장됨에 따라 김홍일 집사를 할렐루야 겸 호산나성 가대 지휘자후 4부 시온성가대 지휘자로 정성훈 선생을, 시온성가대 소집책으로 정우영 집사를 각각 임명했다15) 왜 QI 애프핸악흩 우애#I:~ 이 무렵, 교회는 창립기념예배 시 헌금으로 레이저프린터를 구입했다. 주보에는 “주 보 발행을 위한 ‘레이저 컴퓨터’를 구입했다 고 잘못 기재되기도 했다16) 그래서인지 그 무렵 주보 텍스트는 언뜻 보기에도 훨씬 단정하고 깔끔하게 눈에 비쳤 다. 요즘은 레이저프린터가 흔해빠지고 칼라 레이저프린터까지 나오는 수준이지만, 당시 는 ‘인쇄문화의 대 혁명’이라고 할만한 존재였다. 비록 화면의 폰트가 어설프게 보이더라도 인쇄물 자체는 기존 사진식자를 능가할 만 큼 깨끗했기 때문이다. 레이저프린터가 주로 가루잉크를 사용하는 반면, 액체잉크를 사 용하는 잉크제트형 또는 ‘데스크제트’ 등의 프린터가 당시 이미 나와 있었으나, 인쇄된 글씨 모습은 레이저프린터와 ’천지 차’가 있었다. 잉크제트 프린터는 물론 중대형 레이저 프린터 개발에 일찍이 흉레트-패커되Hewlett-Packard)가 선구적 역할을 했다. 13)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는 소프라노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걸작품이다. 14) 미국장로교 한인교회협의회가 발간한 이 초기 한영찬송가는 1976년 4월말 발간계획에 들어가 2년 후 인 78년 부활절을 기해 5000권(755 쪽)을 발행한 이래 92 년 6월까지 16년간 계속 간행 보급했다[미국 장로교한인교회사 52~57쪽 참조] 그후 다양한 출판사에서 비슷한 한영찬송가를 발행했고 현재는 한 국초냥가공회에서도 (통일)찬송가의 한 · 영어 판을 계속 펴내고 있다 15) 정성훈 지휘자: 연세대학교 읍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매니스(Mann많)스쿨에서 음악이론의 석사과정을 이수중이었다 16) ‘레이저 컴퓨터’라는 것은 아직 없다 그러나 레이 저빔은 프린터와 CD플레이어 및 CD 리코더 등에 실 제로활용되고있다. 305

\"-f^'느주 ^0t-\"i‘ë-‘‘‘르‘l‘~‘~‘ @ 91년 1윌 한달 동안 하늘나라로 돌아간 분들이 유난히 많았다. 주보 상으로는 모두 4 명이었다 17) 우리 교회가 커갈수록 매년 결흔과 장례 건도 덩달아 잦아져갔다. 1월 6일 조영진 목사 조모{1O일 장례식) 1월 8일 박명숙 권사 입관예배(김창길 목사 집례) 주문원 교우 부친(13 일 추도예배) 박선옥 교우 부친(서울서) 한편, 그해 하반기에 장례예배를 치른 것으로 주보철에 나타난 이들은 고 김은규 여 새7월 5 일), 이정석 성도{11월 30 일)였다. 김창길 목사가 집례한 두 사람의 장례식 순서 지를 대비해보면, 나름의 특색이 있다 전자는 고인의 약력을 수필을 쓰듯 몇 문장으로 담담히 옮어 나갔고 후자는 약력을 간단히 요약하여 조목조목 나열하고 유족상황을 상 세히 소개한것이다. 신문부고에 보니, 이영규 전 뉴욕한인회 부회장의 부친인 이정석 성도는 76세를 일 기로 하늘로 떠났다. 전주 리(李)씨뻐 효령대군19)의 19 대 손이기도 했다. 놀우드에 거주 중이던 그와 부인 김금이 교우는 만년을 보람있게 보내고 있었다. 전년도인 90년 12윌 30 일 주일 3부 예배 후 임미누엘 전원을 초대해 오찬회도 가졌던 것이다.2이 성경은 성도들의 죽음을 매우 귀히 여긴다. 전도서 7장 2 절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기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 심하라로다’라고 교훈 한 것이 그 예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年數)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 17) 1991 년 1 월 13 일 주보 교회소식란 참조 18) 조선왕조 왕손인 전주 리(李) 씨는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輪)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는 이 한의 22 대 손이다 전주 리씨는 모두 122 개 파로, 대부분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派朝)로 두고 있 다. 그중 가장 번창한 파가 효령대군파다. 전주 리씨 효령대군파 항럴표에 따르면, 본 교회 이정석 교 우의 경우처럼 ‘정’(廷)자 돌림은 21 세손으로 표기돼 있다 세(世)와 대(代)는 다르며, 효령대군의 6자 (六子)가 1 대로 쳐진다 관련 웹사이트 참조 19) 효령대군(孝寧大君)‘ 조선왕조 제3 대 왕 태종(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4남4녀 중 둘째아들 보(補). 양령대군의 아우이자 충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이다. 일찍이 20대 초에, 아우 충령에게 성덕이 있음을 발견, 임금자리를 양보하고 충신으로서 아흡 조정을 내리섬기며 왕실어른으로 대접받았다. 서울시는 1984년 11 윌 7 일 청권사 앞길을 ‘효령로’로 명명했다. (주85와 같은 자료 참조). 20) 당일 주보 교회소식 참조 306

19 영 1 헬뚱 와슬픔뿐”이라고탄식했다{시 90:10). 장례식은짧고도긴 인간생명의 무상함과흙에 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육신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해 줌과 동시에, 하늘 영생에 대한 믿음, 마지막날의 부활을 알리는 소망의 전조가 된다. 또 그 어느 때보다 71족의 소중함 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우리 주님은 식구를 잃은 유가족에게 언제나 갚은 온정을 느끼사고 큰 위로와 긍흉 을 베푸시고 소망이 되셨다. 나사로를 삼리시기에 앞서 그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또 청년 외아들을 잃고 우논 나인성 괴부를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며 “울지 말라”고 위로 하실 뿐더라 가까이 가서 관에 손을 대시교 말씀으로 청년을 살리셨다{녹 17:7-17). 성경은 또, 한 인생에 있어 ‘계수’(計數 . count)되는 기간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논 기간만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틀어 창세기 5장과 11 장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 계열에 속한 셋의 후손과 셈의 후손은 나이와 함께 족보를 상세히 기 록했지만 가인의 후손, 야뱃과 함의 후손들은 이름만 나열했을 뿐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n멈을 얻게 하소λ1 “라고 기 도했다{시 90:12). 서켄쪽 위원회와 10 。애 차 1월 13 일 제직회는 교회증축을 위한 확장위원회를 두기로 결정, 위원선정을 당회에 일임했다.3월 31 일자로 발표된 증축위원은 정주섭 위원장 외 위원 33 명이었으며, 후에 추가됐다. 기도회 때마다 교회증축 기도제목이 빠지지 않았고 수시로 위원회 모임이 열 리곤했다 7월에는 증축위원회를 ‘교회건축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위원장 정주섭 장로와 서 기 김의신, 회계 조영진, 총무 민의홍 제씨 외에 42명의 위원들로 강화했다. 8월 5 일부터 100 일간은 매연 새벽 성전건축을 위한 기도회를 교회당에서 오전5시 30 분부터 가지면서 매일 평균 60 명의 교우들이 합심하여 기도를 했다. 이 기도를 하나님 이 기특하게 여기사고 조만간 응답해 주신 것은 물론이다. 성전건축을 위한 기도기간 하반기인 51번째 날부터 100 일까지는 매일 새벽기도 전 5 시부터 25분까지 성도들 자신의 기도제목을 위해 담임목사가 함께 중보기도를 하는 시 간을 마련했다. 시간 관계로 하루 2 명 이상은 위하여 기도하지 못했지만, 부교역자에게 선청하여 해당 연을 받고 기도하기 전 기도제목을 담임목사에게 저l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새벽 기도하는 교우들은 5시 25분 후부터 본당에 들어오게 했다. 30 7

A$ 새&뼈악.21) 뉴저지성서대헨학장 김창길 목λH은 그해 1월 25 일 제2회 졸업식을 갖고 2월 첫 주 부터 개강했다. 마감 전까지 8교회에서 33명이 등록했다. 성서의 올바른 이해를 통한 교회지도자 빛 사회봉사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본 대 학은 타 신학대학과 달리, 성서과와 주교교사패각 2년)만 개설, 교회와 사회에 올바른 지도와 봉사를 할 일꾼을 초교파적으로 배출해왔다. 1988년 1월 봄 학기 때부터 신입생을 모집한 성서대는 그간 2회에 걸쳐 총18명 (1회 13명, 2회 5명)을 배출했다. 이 해에는 10 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할 예정이었다. 현 재학생 은 화요반 19명, 수요반 15명 등 모두 34명이었다. 당시 재학생의 구성은 장로 1명, 집사 25명, 권사 2명, 평신도 θ명 등. 교수진의긴) 지 도와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진지했다 수업은 당시 화 · 수요반으로 니눠 주 1회 실시함으로써 직장인들이 직장과 가정생활 의 시간대에 맞춰 선택, 부담 없이 과정을 이수케 하고 있었다 수업료는 학기당 200달 러로 저렴했고, 성적 우수자에게는 수엽료 전액을 면제해주고 있었다. 3월 8~1O일에는 학생회 신약신학(박준서 박새와 구약신헨박창환 교수 · 전 장선대 학쟁 공개선학 강좌도 개최했다. 박창환 교수의 경우 장신대 교수와 학장을 거치며 수 많은 제자들을 길렀고, 그 무렵 맥코믹신학교 초청교수로 와있었다. 특히 과거에 신약성서 원어인 그리스어 강의와 그리스어 학습교과서 저술로 명성을 떨쳤었다. 그는 사흘간 4복음서 선학 연속강의로 신학생들과 성도들의 성경말씀 이해에 큰도움을끼쳤다. 9월에 시작된 2학기에도 30 여명이 등록했다.12월 18 일에는 제3회 졸엽식을 갖고 10 명의 졸엽생을 배출시켰다. 공학, 약학을 전공한 박사출신들, 공인회계λL 은행원 등 다 양한 직종의 성도들이 포함돼 참다운 교회일꾼이 되려는 열의를 보였다.(사진 39) 학생들의 요구에 응해 향후로는 헬라어, 히브라어 코스도 개설, 원어로 성서이해를 돕 도록 하며 장차 학교를 독립시켜 이민2세 지도와 평신도훈련에 주력해볼 구상도 섰다. 21) 뉴욕중앙일보 1991 년 7 월27 일 기사 일부 참조. 22) 당시 과목별 교수진은 이려했다. 일반서신(송병기), 시문헨윤사무엘), 교회새이학권), 성서해석핵정굉 호), 종말론(김에스데, 정지기핸조덕현), 소선지서(박종맨 308

i 양함 사진 39 뉴저지성서대학 공개 신학강좌에서 특별찬양을 하는 동문들 New Jersεy Bible Institutε alumni perfonn special hymn at their s꺼npOSlUlll. 그해 매주 금요일 정오에 한인 직장인 빚 개인사업가들을 위한 예배를 본교회당에서 드리기 시작됐다. 첫 예배는 5월 3 일, 12시 15분부터 45분까지였다. 신문지상에도 이를 위한 안내광고가 실렸다. “할렐루야 1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펑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 원합니다. 뉴저지한인장로교회에서는 직 ε엔 및 개인사업을 하시는 분들의 신앙생 활과 영적생활의 성장을 돕기 위하여 금요일 점심시죠띨 이용한 금요 낮 예배들 마련합니다. 우리의 삶이 떡으로만 채워질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의 많은 발 걸음을기다립니다 23) 이 부분의 상당량은 다음 자료를 참조했다. 뉴욕 한국일보 뉴저지 판 5월 보도내용 중 관련기사{발행 일 불명). 309

이 정기모임에는 매주 초청강사가 초빙됐고 본 교회에서 간단한 식사가 제공됐다. 직 장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바쁜 생활 속에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 하는 직장인 예배는 직장에서 발생할 만한 문제들을 신앙으로 해결하는 길도 모색하는 기회가됐다. 직장인 예배는 당시 한국에서는 새문안교회, 서소문교회, 영락교회 등에서 이미 실시 되고 있었으나 한인사회에서는 본 교회가 최초로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꺼 당시 포트 리에는 삼성 · 럭키금성 · 현대그룹 등 한국계 지상사들이 디수였고, 한인기업체도 많아 이 프로그램의 발전성이 큰 것으로 보였다 참석자들은 한시간 내로 예배와 식시를 마치 고 서둘러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김창길 목사는 어머니날에 즈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 직장인 은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생활 때문에 이번 어머니날을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한국의 부모님에게 안부전화라도 드려야겠다’고 금방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참석지들은 “이 예배가 각박한 생활 속에서 자칫하면 잃기 쉬운 삶의 가치와 일의 의미성을 다시금 일 깨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얼마 후 직장인예배의 모임 시기는 목요일로 바뀌었다. 해얘 효헬핵얘 얘랴 뺀-효 그해 5월 6 일 김창길 회장을 비롯한 뉴저지교협의 제4대 교협회장단이 제5회 정기총 회와 아울러 임기가 만료됐다 성베드로한인성공회당에서 열린 이날 총회에서는 김 회장의 후임으로 오다위 산부{보 고타성공회)가 제5 대 교협회장으로 선출됐다. 또 15개의 분과위원회 중 사모분과위원장 직은 본 교회 김에스더 사따 맡았다. 김 회장은 교협뉴스(2호)에 실린 이임사에서 ‘지난 1년은 내게 짧은 것이 아니라 긴 세월이었다’면서 “뉴욕교협에서 분리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자주성 확립과 교협이 나갈 방향과 지교회간의 신뢰감을 다져야하는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임기 중에 실천한 크고 작은 사엽 107}지를 회고하고 취임당시 공약했던 이사 회 조직을 실천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24) 최근에는 지역별 기독실업인회의 정기적 모임도 강화되고, 신자 직장인들의 모임이 생겼고 미국 회사 들도 상당수가 비슷한 성경모임을 실시하고 있다. 310

a 양현 뼈 뻐사 진 때 리얼 데미 퍼 레미 드 M 익” 떠1 D 띤 M t .,.!!...i'냉 얘 매년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에 실시돼온 펠리세이즈팍의 한인 퍼레이드가 그 해 처음으로 100명 규모로 늘었다. 그 동안 지역 한인상가의 급속한 진출로 백인 주민 과의 사이에 다소 마찰을 벚기도 했지만 본 교회는 성섬으로 참여해 지역화합의 계기를 삼곤 했다.(사진 40 ) 본 교회와 펠리세이즈팍 상인번영회(회장 남완희)가 중섬이 되어 구성한 퍼레이드대 는 5월 27일 오전 10시 미국 행진단과 합류, 브로드애브뉴 일대를 약 2시간 행진했다. 한인퍼레이드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뉴욕국악원의 길놀이 팀과 본 교회 어린이를 비롯 한 태권도 시범단, 동부지구 미한언재향군인회 전역군인들을 초청해 참가시켰다. 우리 교우들을 포함한 한인들의 화려한 한복차림과 미소, 길놀이 팀의 민속장단 태권 도 팀의 무술시범 등은 주민들의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했고 미 군복을 입은 재향군인들 은 미군들과의 연대감을 북돋았다. 이날 본 교회는 펠리세이즈팍 도서관에 도서를 기증 했다. 25) 1991 년 5 월26 일자 주보 1991 년 5 월30 일자 뉴욕한국일보 기사 참조 311

‘ ↑ν、 듀;;;;:-1 ;;;;:1 ;Oι-른'걷-~ 호 130 년 ^t t¥품활4足 종캘o~1 빼 얘 악@경빡표후3 8월 23 일 금요일에는 뉴저지한인장로교회 한국학교의 여름학교 종강예배와 학예발 표회가 열렸다 교감 김성인 집사가 인도한 이날 예배 때 김창길 목사가 말씀을 전했고, 2부 여름학교 발표회 때 무용반과 음악반까지 모두 10반이 나와 뛰어난 솜씨로 재롱을 보였다 순서에 나타난교사들만모두 14명이었다 그 즈음 본 교회 한국학교는 자타의 인정을 받는 수준 높은 학교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해 1학기말 수료증을 받은 어린이들은 모두 132명이였다 26) 또 각종 수상자도 26명이 나됐다.앙) 학교 안내 내용에 따르면 학교 교육 취지가 이라했다 “본 교회 한국학교는 미국에서 자라니는 우리 한국인 2세들에게 신앙을 바탕으 로 한 민족적 긍지와 지부심을 심어주어 미국 안에서 한국인으로서의 특수성을 개발히여 미래를 이글어갈 지도자적 인물의 배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과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배제하고 신앙과 흐답지도에 투니월한 교사들과 함께 신앙 교육 생활 교양의 조화 있는 교육을 지효t하고 있다 한국학교 학기 및 학사과정은 가을학기 9월 둘째 주 토요일부터 1윌 셋째 주 토요일 까지 갖되, 매주 화요일 오후3시 30분부터 토요일은 오전9시 30분부터 오후12시 30분까 지 수업을 하며 교과서는 국어 와 사회 2학기 과정을 전반부로 하고 기타 음악과 미술, 태권도, 역새 사회 등을 가르쳤다. 봄 학기는 2월 첫째 주 토요일부터 6월 둘째 주 토요일까지 개교했다. 여름학교도 7 월 1 일부터 8월 마지막 주까지 매주 윌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9λ130분부터 오후3시 까지 했고 특별히 평소과목 외에 수영, 무용, 컴퓨터 등 다양한 교양과목과 여름캠프가 곁들여졌다. 찌 Å~뽕해 9윌초부터는 교육원부장 민의홍 집새 주관으로 현직 교회학교교사 및 신입교λl를 26) 유치 1 뷔 13 명), 유치2부{25) , 1 학년 17 병, 2학년 15 명, 3 학년 18 명, 4학년 10명, 특수1 ' II반 34명 등 27) 우등상 · 선행상 수상자가 각 9 명, 말씀상 8 명 등, 312

1 앵앵 X 얻 위한 교사반을 개설했다. 향후 4주간 교사과정을 마쳐 본 교회 교회학교에서 교사를 할 수 있었다. 수업은 9윌 3, 8, 15, 22 일 오후7시에 가졌다. 9윌 15 일 주일학교 전담 김도일 전도사가 새로 부임했다. 영쪽새 ^~액 쁨약 10윌 27일자로 김흥교 목사는 행정, 조영진 목사는 교육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두 사 람은 이미 1, 2교구 등 다양한 엽무를 분담해 왔었다. 한편 조 목사는 청년부 지도자로도 임명됐다 내 엉 α4빼 샤 샤#c~ 그해 10월 6 일부터 날로 늘어나는 교인 수를 감당하기 어려워 4부 예배를 드리기 시 작했다. 이에 따라 예배시간이 1부 오전8시, 2부 9시 30분, 3부 11시, 4부 12시 30분 등으 로 조정 변경됐다. 예배별 찬양은 할렐루야 성가대가 4부 예배로 옮겨가고 3부를 위한 성가대원은 선규모집에 들어갔다. 교회학교의 경우, 유치부와 어린이부 예배는 2, 3, 4부 예배 때 각각 제1교육관과 친 교실에서, 중등부는 2, 4부 예배 때 제2교육관에서, 고등부는 제1교육관에서 각각 실시 됐다. 청년부는 오후1λ140분 본딩3층에서 모임을 가졌다. 교회 밴 버스는 2'4부 예배 에 한해 운행했다. 신문에는 ‘ 10-월부터 4부 예배를 드립니다’란 제목 아래, 본 교회 교역자들의 사진2메과 함께 이런 재미있는 광고문이 실렸다꺼 “저희 교회는 떠들고 울고 넘어지고 히는 요란스런 교회가 아니라 순수한 복음 과 신 g}이 설교되며 예배를 중시하는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주님의 섭리와 은혜로 주일마다 달마다 해마다 더해 가는 교회입니다, 1부에서 4부까지 설교하시는 김창 길 목사님의 설교는 이해하기가 쉽고 간절하며 이민자들의 마댐 와 닿는 감화 력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교회와 교우들을 사랑하시는 생활의 설교에서 은혜 받습 니다. 항상 목사님들의 방문은 열려져 있습니다. 당회는 아래와 같이 4부 예배시 28) 김 목사 등 3 명의 목사들은 나란히 소위 ‘로먼 칼러’ (Roman collar) 로 불리는 흰 깃을 단 성직자 복장 을하고가운데서 있었다 29) 일간지 하단광고에서 인용{신문명 · 날짜 미상). 313

간을 알려드립니다... (하략).\" 4부 예배를 광고하면서 내친 김에 본 교회를 한껏 홍보한 것이다. 비정상적인 교회들 과의 차별화를 선언하면서, 담임목사의 메시지를 부각시켰다. 그 아래는 당회원들과 부 설기관, 성경반 등을 소개하고1 교역자 소개란에는 7명 교역자들의30) 현 학력까지 상세히 소개했다. 한편, 4부 예배는 여러 모로 ‘시행착오’를 일으켜 93년 1월부터 3부 예배로 일단 환 원됐다가 예닮원을 마련한 뒤인 95년 10윌부터는 다시 4부 예배가 부활된다 빽활 략해I 밟 성전건축을 앞두고 각 부서들은 나름대로 부산하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우선 9월 15 일에는 청년부가 점심을 성전건축 헌금을 위해 봉사했다.10윌 19 일에는 여전도회 주최로 본격적인 건축바자회를 가졌다. 당초 이 바자는 여전도회에서 주최한다 는 내용으로만 간단히 공문이 나갔다가 3차 관련공문에서 엄마누엘회부터 청년남 · 여전 도회까지 모든 어른 부서가 총동원되는 대행사란 사질이 드러난다. 더욱이 여전도회는 단순히 바자만을 준비하지 않교 바자회의 성공을 위해 행사 당일 을 한달 여 앞둔 9월16 일부터 이 바자를 앞두고 ‘기도 릴레이’3') 에 들어간다고 했던 것 이다. 무슨 수륙 양면작전 같고 입체 전쟁과도 방불한 느낌이다. 사실 기도란 영적 싸움 이 아니딘가 건축을 위한 새벽기도도 교우 자신들의 제목을 위한 목회자의 중재기도를 함께 곁들이듯 바자도 그러했다 10월 5 일자로 성전건축 바자의 일환으로 ‘치과반’을 신설한다는 공문도 나갔다. 토요 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장장 10시간을 계속 진료한다는 것이다. 공문 내용 이 흥미롭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금번 성전건축을 위한 바자의 일환으로 치과반을 신설하여 교우님들께 봉사코 30) 김창길 목사, 김홍교 목사, 조영진 목사, 이학준 전도사{청년부), 웨슬라 남 전도사(영어예배 고등부), 최정훈 전도入H중등부), 김도일 전도사{어린이뷔. 31) 또는 연쇄기도 314

‘행쟁 i 염 자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인데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 소홀하여 신경까지 썩어 통증이 왔을 때, 이미 시간적 경제적 불이익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번 좋은 기회에 온 교 우님들께서는 전 가족 진료를 해 두시기를 희망합니다. 저희 치과란때1 서는 지속적으로 기회가 되어지면, 무료강의 및 진료를 병행할 예정입니다. 많은 협조를 바랍니다. 진료시일 : 1991 년 10월 19일(토) 진료시간 : 오전 9시 30분~오후9시 1991 년 10월 5일 바지준비위원회 10월 8 일자 바자회 공문 내용은 보다 총체적이다. 건축바자회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 으니 힘써 행할지니라끼역대상 28: 10) 일시 : 1991년 10월 19일(토요일) 9:30am-9:00pm 장소:뉴저지힌인장로교회 10월 19 일 건축바자회로 전 교우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초대합니다. 임마누엘(회) 어른들께서 준비하신 고향의 맛이 깃들인 전통음식과 여전도회 회원들과 청년여전도회 회원들이 준비한 깔끔하고 정성이 담뿔 든 밑반찬과 남전 도회 회원과 정년남전도회 회원들의 각종 옷과 일상용품을 준비하고 교우님들을 기다리고있습니다. 컴퓨터 세일 및 컴퓨터 특강도 준비하였습니다. 금번 성전건축을 위한 바자의 일환으로 칫과브띨 신설하여 교우님들께 봉사코자 합니다. 예로부터 치아가 오복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바쁜 이민생활 속에 치아관리가 소홀하기 쉽습니다. 이번 좋은 기회에 전 가족이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협조를바랍니다. 1. 김치종류: 배추포기김치 막김치 짝두기 오이김치 파김치 2. 밑반찬: 고보, 창난젓 오징어젓 어리굴젓 마늘장아찌 갯잎 멸치복음 호빅L죽 삼색나물 무말랭이 오이무침 북어무침 오징어채무침 묵 도토리묵 오이지 김 치겉절이 떡복이 315

^ ..누주 ;4;l 。 {ë르;끄:2: 1 30 딘^~ 3. 전 종류: 빈대떡 생전전 4. 김밥, 묘닫듀, 잡채 5. 새옷. 고급 여성 옷, 이동복, 기타 각종 옷 6. 잡화. 넥타이, 양말, 운동화, 비디오 공테이프, 기타 잡화 7. ffiMPUTER: 별지 참조 8. RUMMAGE SALEL: 헌옷, 장난감... 9. 식사: 토요일 09일) 점심과 저벽 10. 주일 (20일) 점심 주보 형태의 바자공문 뒷면에는 교회 약도와 함께 복음송가 가사도 실려 있었다. 주의 장믿L이 어찌 아름다운지요 내 영이 사모합니다 내 맙 다하여 주님께 기도합니다. 나의왕나의주께 주의 궁전이 어찌 사랑스런지요 내 영이 사모합니다 내 맘 다하여 주님께 효솜합니다. 나의왕나의주께 주의 궁전이 어찌 은해스런지요 내 영이 사모합니다 내 맘 다하여 주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왕나의주께 바자회 결과 총 25,110 여 불이 모금돼, 그중 2천 불은 펠리세이즈팍 타운에 기증했다. 고객들 중 타운 사람들도 있었을 뿐더러, 이런 계기에 타운의 좋은 점수를 얻는 ‘주고받 는’ 지혜로운 투자인 셈이었다 12월 1 일 주일에는 교회신축헌금을 1백만 불 목표로 실행했다.32) 정작 1 일 헌금 때, 작 정헌금을 포함해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308,463달러 50 센트가 걷혀졌다. 그러나 추가 로 건축헌금이 계속 들어와 12월말까지는 53만 달리를 넘었다 그 일부{$215,156.74)는 12월 18 일 본당 모기지로 전액 상환했다 32) 그 주일 전까지 건축헌금 총계는 $163 ,665.50와 다이아몬드 반지 1 점이었다 316

lH) 용 I 행g 11월 17일에는 제2회 구역찬송대회를 가졌는데 90년대 초로서는 대규모인 데다 본격 적이었다. 먼저 양호식 장로 인도로 예배를 드리고 김 목사가 ‘우리가 부르는 찬송7}'(녹 19:37-38) 란 말씀을 전했다. 대회 전 김홍교 목사가 심사규정 및 심사위원을 발표한 뒤 이영종 집사의 진행으로 본 대회로 들어갔다. 반주는 김미경 · 서연화 · 홍순금 제씨가 맡았다. 대회 참가순서는 22 개 구역 수에 따라미리 추첨하여 정했다. 대회 후김홍일 집사가 심사발표를, 사상 및 총평을 김 목사가 했다. 시상 순위는 1'2'3등과사랑상, 심사부분 평점배분 부분별 심사위원 믿음상 소망상 장려상등이었고1 전년도 동원 40점 김홍교,조영진 1등 구역인 유학생구역이 우승기를 넘 음악 30점 김홍교,이상원,정성훈 겼다. 참가자 전원에게는 기념 컵을 분 30점 트~^'-기 ζ〉 배했다.않) 쐐i 배해 채 x 최홉 채뱉냥랴 12월 8 일에는 창립 20주년기념으로, 세 번째 지 교회인 남부뉴저지장로교회의 창립 예배를드렸다.34) 담임사역지논 이학준 목샤 본 교회 교육전도사로 3년간 사역하다가 11월 5 일 목사안 수를 받았다. 이로써 본 교회는 89년 권오경 전도사를 개척자로 하여 출범한 뉴저지영 광교회, 91년 초 김진양 목사를 통해 개척한 웨체스터한인교회에 이어, 모두 3 개의 지 교회를두게 된것이다. 본 교회는 이후 1999년에 설립-8}는 영어교회 Joy α비stian Fεllowship(Danny H뻐 목 새에 이르기까지 모두 4개의 지 교회를 2000년전에 세우게 된다. 최〈새 J앞훌i) 흩 세 연말을 암둔', 12월 15 일. 여전도회는 넷으로, 남전도회는 셋으로 각각 세분화했다. 학 33) 자세한 입상 내역은 그 다음 주일 주보에 기재되지 못했다. 34) 교회당 주소는 10 West, Maple Avenue, Merchantville, NJ 08109. 317

교의 학년이 나뉘어있듯이 연령과 세대끼리 구분함으로써 효과를 기하기 위함이었다. 여 전도회가 남전도회와 다른 점은 31~40세 층을 물로 분할했다는 점이었다 1930년 이 전 출생자인 60세 이상 교우들은 자연스럽게 임미누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12월 22 일 주보간지에는 각 선교회별 명단이 적혀있었다. 세분한 결과 제2남선교회 회원들이 96명으로 가장 수가 많았다. 일부 선교회는 해당 회원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 해 회원명단이 미처 기재되지 못했다 이중 6 개 선교회가 12월 29 일부터 일제히 총회에 들어갔다 여전도회 기혼~30세(기혼 후~1961년 생) 제 4여전도회 31~35 세 (1960~1956) 제 3 여전도회 36~40 세 (1955~1951) 제 2 여전도회 41~59 세 (1950~1931) 제 1여전도회 남전도회 기흔~30세(기혼 후~1961) 제 3남전도회 31~40 세 (1960~1951) 제 2남전도회 41~59 세 (1950~1931) 제 1남전도회 실제구성 결과 제 3남선교회(24명) 제 2남선교회(96명) 제 3 여선교회(61명) 제 2 。여3 선교회(4μ0명 제 4여선교회 (48명) &짧 그옳 Jd L ‘1 그해에는 우리 교회당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결혼식을 거행했다. 주보철 에는 모두 6매의 결혼순서지가 끼어있다. 본 교회당에서 열린 결흔식만 최소한 6회였다 는 얘기다펴 마치 이 해를 기다렸q는 듯, 계절을 따로 타지 않고 봄여름 7않 겨울 등 수시로 거행됐다. 한 주 간격으로 연이어 거행된 때도 있었다. 자체교회당 구입 후 교회당 주변이 말끔히 정돈되어 기는 데다 무엇보다 지역상 여러 35) 1991 년에 결혼식을 올린 커플은 다음과 같았다 전형지 · 서연회<6월5 일), %f종찬 · 이정희 (8 월 10 일) 유 인식 · 정선림 (8 월 17 일), 김창용 · 이연승(9 월7 일), 김명철 · 윤덕란(11 윌9 일), 김홍일 · 홍순금(11 월23 일) 318

예수 닮기 원하는 사람둡 1991 년도 모로 편리한 장소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h 결혼식 음악은 주로 피아노 3중주가 인기를 끌었고 축가 연주자는 독장 중창 등이 ψ Eb 있었다. 결혼 순서지 뒷면에는 ‘결혼식을 도운 분들’이란 타이틀 아래 축가연주자와 반 앓h M 주자, 신부를 돌보는 기혼부인과 들러리(best man . bridesmaid . groomsman), 반지 나르 얼μ 는 이 (ring-bearers), 화동(flower girls)등의 이름이 모두 적혀있거나 기재되지 않은 경우 X싸 도 있었다. 또 과거 토요일에만 주로 거행되던 것이 주중의 다른 요일에 거행되는 예도 있었다. 수요일에 거행된 6월 5 일의 결혼식이 그러했다. 다음은 그해 결혼한 사람들이다. 특히 11월 23 일에는 할렐루야 · 호산나 성가대 지휘자 김홍일 집사와 피아니스트 홍 순금 양의 결혼식이 있었다\".92년에는 아예 새해정초인 1월 1 일부터 혼례 ‘테이프’를 끊 는 두 사람이 있다. 장경숙 · 엄태용{스티븐) 커플이다. 1~~1 년도 대내외 옐 ~I 1월 6일 제2지교회로 웨체스터한인장로교회(김진양 전도새 설립. 1월중 구역 교구제 시작. 1월 7일 뉴저지 교협 신년하례만찬회. 1월 13 일 교회증측확장위원회(건축위원회) 구성 결의. 3월 22~24일 호산니\"91청소년전도집회(허드슨장로교회) 3월 31일 교협 주최 연합 부활절 예llW6) 5월 3일 직장인을 위한 금요예배 개시. 8월 5일 성전건축을 위한 100 일 새벽기도회 시작. 8월 17~18 일 제1회 성가대 수련회(강사 박재훈 목새. 10월 6일 4부 예배 개시. m월 19 일 건축바자회 n월 17일 제2회 구역찬송대회. 11월 28 일~12월 1일 부흥성회(강λk 김창언 목새.앙) 12월 1일 전 교인 교회신축헌금. 12월 8 일 제3 지교회 남부뉴저지장로교회 설립예배(교역자: 이학준 목새. 12월 15 일 남녀전도회(선교회) 세분화. 36) 뉴저지교협(회장 김창길 목시)이 주관한 그해 부활절 새벽연합예배는 3월 31 일 새벽6시에 뉴저지 8 개 지역에서 일제히 개최됐다. 이 새벽성회에서는특히 예년과달리 순서지가통일되어 모든교우들이 동 시에 같은 찬송가를 부를 수 있었다 37) 광성교회 시무 • 훗날 예장 총회장. 3t,9

‘?;사션 #;;ζ{Zl ^。I-{~£끄호 130 년사 廠짧7 애 1 훌종뼈채 새해 1월 1일. 우리 교회 장기호 집λF김귀남권사부부의 장녀인 장경숙 양과 엄태용{스티브)군의 결흔식으로써 새해 하 늘에 힘찬 소망의 첫 시그널을 올렸다. 주례자는 묻론 김창길 목사였다. 신학교 출선인 신랑 염태용 군은 전 도사 기간을 거쳐 목사안수를 받고 90년대 후반기 뉴 욕 뀐즈장로교회 영어교회 목사로 한동안 사역하게 된다. 그해는본교회 설립 스무돌을맞는해였다. 성숙 한 이십 대로 돌입한 것이다. 새해 목표는 ‘믿고 순종 하자’였다. 교회가 날로 증가되어가면서 믿음의 순종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단적인 예후 약 두 달 전 온 교회 가 실시한 건축헌금의 1백만 달러 목표는 여태 절반 수 준 밖에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담임 김창길 목사의 새 해 첫 주일 (5 일) 섣교도 ‘믿고 순종하라’(요 14:12-15) 였고, 둘째 주일인 12 일의 설교 제목은 ‘오늘이 중요하 다’(시 90:1-12) 였다. 당회는 1992년도 건축위원들을 임명했다. 임원까지 모두 15 명이었다.19 일 예배 중에는 92년도 신임서리 집사임명식이 있었다 모두 7개로 니눠진 남여선교회 중 최초로 구성된 제 3 여전도회 초대회장으로는 김미경 집 λh 부회장 윤영 여 집사개 가장 연소한 제4여전도회의 초대회장은 나 애덕 집새 부회장은 전년도에 갓 결흔한 홍순금 교-'f-381 였다. 38) 할렐루야 겸 호산나성가대 지휘자 김홍일 집사의 부인, 주 121 참조. 320

2 원 의 고고서 (n;.ITJI띠聲) 2월 초순에는 한 주간 사이에 한꺼번에 4명의 아기들이 태어났다. 1 일은 주소윌고명옥) 부부, 4 일은 최정훈{최경란) 전도사 집, 그 이튿날인 5 일은 정우 영(김현정) 집사 가정, 7일은 이한엽(이종옥) 집사 가정에서 각각, 앞을 다투듯 힘찬 고고 의 울음이 터졌다 새갱곡엉난조서화 새해부터는 성경공부가 더 조직화됐다. 모두 117B 반으로 나누었고 주일부터 토요일 까지 월, 수요일만 빼고는 거의 매일 모이는 셈이었다{표 40). 표 40 뉴저지 한인 장로교호I 1992 년 성경공부 7삼 대상 · 내용 담당자 소집책임 요일 시간 각 가져 1 제 1 남전도회(말씀과 만남) 김창길 양 진 목 8:30pm 교 행 。 2 츠 여전도회(에베소서) 김홍교 허필수 주 1:50pm 。 3 4 제자반 김에스더 홍순애 화 4:00pm 각가정 5 파라무스(교리별성경공부) 김영숙 김영숙 화 !0:00am 친교실 6 화요어머니성경반(크로스웨이) 김흥교 김미경 목 8:30pm 교회 검흥교 김성인 7 제 2남전도회 목 8 화 제 3 남전도회 부부성경반 조영진 이승환 8:30pm 교회 m9 교리반 김창길 김경열 금 8:00pm 각가정 금요어머니성경반 김에스더 나애먹 금 9:30am 교회 교회 금요어머니성경반(구약역사서) 조영진 윤영여 9:30 버n 11 청년부 조영진 7} ójλ1 토 6:30pm 교회 。 dl 주 - 1:50pm 촌에 주쪽난 4 본 교회가 한창 성장 발전 일로에 있으면서 자연히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그만큼 한 인사회에 알려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탄생 20돌을 맞아 당시 한인언론과 한인사회에 비친 우리 교회의 자회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할까. 2월 9 일에는 본 교회 3부 예배 광경을 대한텔레비전 방송에서 녹화를 했다. 녹화내용 321

‘뇨처 \"1^01- 2 교호 1‘?3’ 0 녕 A. ......... 은 그 다음주일인 16 일 케이블채널 10에서 오전9~ 1O시에 방영됐다. 당시는 케이블 채 널이 한인사회에도 점차 보급돼가고 있는 때였다. 2월 초순에는 당시 막 정착해가던 한인언론의 하나인 미주조선일보(발행인 한상기)도 본 교회를 크게 다뤘다떠 ‘하나님께 순종하며 교우화합 노력’이란 제하에, 본당 정변사 진과 김 목사의 원내사진을 곁들인 이 기사는 당시 본 교회 정황을 비교적 상세히 그리 고있었다. “김창길 목사가 부임하면서 교회의 실질적 부흥이 시작됐다”고 서두를 연 이 기 사는 성장원인의 하나가 “하나님의 섭라 7}운데 내적 변화 즉 영석” 지적 변화를 통 해 잠된 신앙을 깨닫는 데 주력했기 때문” 이라는 교우의 말을 인용했다 또 “성장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교회 내 파별 조성을 막고 교우간의 화목을 꾀했으 며 경건한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88년에 개교해 3회 졸업생을 배출한’ 뉴저지성서대학과 버겐경로학당, 한 국학고 직장언예배, 어머니성경만 남 · 여전도회 등 본 교회 기관을 소개했다. 또 전년도 5월 메모리얼데이에 교인 150명이 참개 한인의 단결된 모습을 보였고1 바 자회 수익금으로 지역사회 도서관, 학교 소방서 등에 성금을 전달했다는 귀띔과 함께, 향후 이웃동네를 위한 병원, 학고 아파트 등의 설립계획을 세우고 “선교와 베푸는 하나 님의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고 썼다. 이 신문은 또 1986년에 구입한 6,400평방피트의 교회당과 교육관, 3개 지교회 등 본 교회의 현황과 김 목사 개인에 관한 자세한 소개를 덧붙였다. 3월 중순에는 뉴저지 ‘교포신문’이 ‘교회순례시리즈’의 첫 대상으로 본 교회를 한 쪽 전면에다 대서특필했다찌 초창기 역사의 간략한 요약과 함께, 1980년 김 목사 부임당시 33 명이었던 교인이 현재는 800 여 성도가 예배드리며 교회학교 어린이부 250명, 중고등 부 100 여명, 대학 · 청년부 30 여명이라는 소개와 연예산 66만불, 볼리비아에 선교λH 이 상철) 파송 사실과 예산의 10%가 선교비로 나간다는 설명이 붙었다. 본 교회 특성의 하나로 어린이가 많은.4') 사실을 꼽은 이 신문은 “불과 12년 동안에 이렇게 불같이 성장한 교회의 모습이 경이롭기만 하다’며 교인들은 김 목사의 목회능력 을 높이 평가하고 김 목사는 신자들의 믿음이 큰 점을 공로로 돌린다고 적었다 39) 미주조선일보 1992년 2월 10일자 기사 참조 40) 교포신문 1992년 3월 16일자 7면 참조 41) 당시 어 린이 250명, 교사 30명으로 기록됐다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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