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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ndoned Jesus (버려진 예수)

Published by Billy Lee, 2021-12-01 17:55:44

Description: How to be abandoned Jesus from hi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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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예수가 처녀의 자궁에서 그의 아버지인 신에 의해 신비하게 잉태되었다는 이야기는 미네르바가 주피터의 뇌에서 나왔다는 우화와 같은 범주로 분류될 날이 올 것입니다.” - 존 에덤스에게 쓴 편지 -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 천사 가브리엘 -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 마리아의 찬가 -

탄생의 후폭풍 I : 신화적 탄생 그리스·로마의 잉태적 인물인‘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인간 어머니 ‘다나에’사이에서 태어난 신화적 인물이다. 다나에, 그녀는 페르세우스 의 모친이자 제우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결과 그녀 위에 내린 황금 의 비에 의해서 임신하였다는 신화처럼 허구화된 신화적인 요소가 고대 문 서에서도 초자연적인 자료들로 전해 내려온다. 이와 비슷한 신화적인 산물 로 여겨지고 있는 예수 탄생에 적용시키는 신약 성경은 이러한 신화적 문 헌에서 출생했을 것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발상에서 끊임없이 심리적 시작 을 알리는 고대 문서 중에 하나인 성경은 신화적 특색과 공통되기에 문제 는 붉어진다. 완벽한 기독교적 사상에 치명적인 오류를 만들어가는데 거대 한 신화라고 했던 그리스∙로마 신화가 일조했다고 깎아 내린다. 수 많은 고대 문서의 사상들을 빌려 입힌 기독교 사상 중 초기 기독교인 들에게로 비난의 화살은 거침없이 쏟아지고, 그 일로 수 많은 비난을 받았 다. 이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탄생에 대한 정확한 날짜 또한 수 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여전히 정확한 날짜와 시간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탄생 기념일 축하행사가 초기 기독교에서는 결코 행해 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채롭다. 실제로 이교도의 제전에서 시작된 태양신의 탄생일(교회사에 나오는 말로서 12월 17일부터 24일로 사투리날리아 축제 일)에 대항하여 생긴 예수의 탄생일, 그 크리스마스가 기독교의 역사적인 날로서 재정하였다는 것이 더 이상 과거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과거 태양신 숭배의 날을 기다리는 로마인들에게 당연히 매년 우리가 크 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특별한 날로서 여기듯 그들에게 이러한 신 화적인 것은 다분하다. 단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래 없는 최고의 건 축물의 정점을 일궈낸 건축물들과 다양한 석조들로 이루어진 신들의 연중 행사가 12월에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만이 전부다. 그 시점에 시작되는 우 150 버려진 예수

상적인 신의 축제는 그 기간 동안 신분 귀천을 망론하고 구별 없이 환락에 취했다. 이는 선물을 주고 받아 누렸던 크리스마스와 형태가 비슷하다. 그 러한 점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비켜 갈 수 없는 관문이다. 물론 어느 날이 먼저 생겼느냐는 지루한 싸움도 관문이다. 사실 신과 인간에서 만들어진 아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과 매우 흡사한 고대 문화에서 나타나는 초자연적 잉태와 유사하다. 그 이유로 신과 인간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작품에 나타나는 그림 혹은 조각이 마치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들 에게 공격 당하는 점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 사유가 우리에게 강요되는 바, 오늘날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고 그저 신화적인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 자는 수 없이 많았다. 과연 그러한가? 그 가운데서도 예수의 영적인 탄생과 무언가 다른 점은 고대 문서에 나타나는 신들과 인간의 잉태는 단지 육체적인 관계에서만으 로도 그 위상을 드러낸다. 헤라클레스의 출생 또한 성적 관계를 신적인 뉘 앙스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며 페르세우스의 출생은 제우스가 그의 모친에 대한 음탕한 욕심을 품은 결과에서 초래된 것이다. 이쯤 되면 또 다른 질문 을 던질 수가 있다. “과연 야훼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욕망을 품었는가?”,“성령으로 어떻게 예수가 마리아의 자궁에서 임신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고 대 문서를 추적하여 논란을 벌이는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질 문이다. 의례 그렇듯이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 기원을 설명하려고 할 때 그런 시 도에 대해서 가장 제동을 거는 반론은 외부 기록에 의한 다른 생각에서 출 발할 수 있다. 유대교나 혹은 기타 다른 나라들의 신화 혹은 문화적인 측면 을 베낀 것이라고 말이다. 한 때 유대교 안에서 널리 알려진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다분히 여러 가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51

지로 존재했다.‘동정녀의 수태설’과 비교되는 문건은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라 그 어느 남자와 몰래 동침한‘판테라’라는 이름을 지닌 병사 사이 의 사생아라는 이야기를 펼치며 예수의 탄생에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 는 복음서에서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요셉과 정혼 시기에 하늘의 뜻에 의해 결정으로 초래된 초자연적이 아닌 육체적 관계에서 태어난 예수를 설명하 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고 임신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믿겨지지 않을 정도 로 믿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1, 2세기 로마와 그리스인의 학 자에 의한 마리아의 임신설은 다분히 가능성이 존재하는 주장을 하고 있었 다고 영국 버밍엄 대학교의 역사학자이며 신학자인‘마크 굿에이커’로부터 우리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주장을 만날 수 있다. 그 가 말하길 실제 2세기 그리스 철학자이자“법은 선과 형평의 기술”이라고 말한‘셀수스’가 예수는 로마 군인과 마리아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났 다는 주장을 과감히 펼쳤다고 대변했다. 2-3세기 로마 제국, 서방 기독교 신학의 창시자인‘터튤리안’은 당시 실 제로 예수를 음탕한 여인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는 소문이 떠돌았음을 인 정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 대목을 언급하는 사실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당시 주위 로마인들이나 유대인들에게 마리아에 대한 소문이 거짓은 아닐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할 수 있다. 즉, 예수가 태어난 당시 혹은 추후 살아 가면서 아마 배다른 어머니 혹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받는 것은 당 연한 사실일 것이다. 예수가 부활했고, 과거 마리아에게서 출생한 것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 는 성경에서 말하는 아기 예수가 이 땅 위에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분명 하다고 생각되어간다. 다만, 과연 마리아가 거룩한 영(성령)으로 잉태되었 는가라는 문제가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 ** 현재 예수 출생의 역사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 가지 통찰력을 얻은 것 152 버려진 예수

중에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하나님의 절대자가 신약에서 점차 사라진다는 점이다. 오히려 절대자는 물러가고 예수에 대해 더욱더 부각된다는 것과 인간과의 합작품의 세계로 전향되어감을 알게 되었다. 성경을 연구하게 되 면서 창세기부터 줄기차게 여호와 자신의 말을 내뱉으며 자주 등장했던 하 나님은 구약에 빈번히 등장했다. 예언자로서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수 많은 과거 선조들과 함께 자신을 등장시킨 하나님은 이제 신약에 접어들 무렵, 결국 전면에서 물러나고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약의 예수가 전면에 부각되게 된다. 예수 탄생에 대한 정확한 연대기적 측면이 사라진 과거와 달리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고유의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서 예수의 출생지와 잉태 날짜를 비롯한 기타 관련 사항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쉽게도 당시에 존재했던 예수의 발자취는 전쟁의 잿더미와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현실을 목도하는 우 리들과 다르게 예수의 출생은 비록 당시나 지금이나 엄청난 소용돌이지만 그냥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며 하나의 사역이라는 것을 보면서 그의 사역은 천사가 일러준 태몽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녀가 아들을 잉태한다는 천연덕스러운 천사의 예언으로 인해 마리아는 귀한 아들을 낳게 되었고 그 이름을‘예수’(실제 발음은‘여호수아’)라고 짖는다. 물론 나라 안에서 같은 이름들이 많듯이 예수라는 명칭의 이름은 작고 초라한 이 땅에 온 시기를 전후로 이미 많이 있었다.1 나사렛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 예수는 자신이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다시 귀향하게 되는데 그 곳이 예수가 태어난 자신의 고향이자 자신의 모친인 막달라 마리아가 성령 으로 예수를 가지게 되는 귀한 동네가 되었다.2 베들레헴 지역은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한 곳이며 여전히 성 스러운 곳으로 불린다. 그곳에는 태어난 기념으로 탄생교회가 만들어졌고,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53

오늘날도 순례객들의 많은 발걸음을 인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예수의 탄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고자 한다. 예수 탄 생이 누군가에겐 신화적인 우화로, 우리에겐 사실적 현장을 누비고 있었던 역사 현장의 참된 이미지로 다가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요셉과 마리아의 혼란 성경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드러냈다. 그런 그에 게 문제가 하나 생기고야 말았다.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임신하게 된 것이 다. 그는 그럼에도 그녀의 과오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그녀와 인연을 가 만히 끊고자 노력한 흔적을 성경에서 보게 된다.3 예수의 아버지, 요셉 그 가 가진 혼란스런 마음은 그의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요동쳤다. 이미 마 음 속에서 화산 같은 분노로 마리아를 향한 심한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 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잠시 요셉의 심리를 유추해보고자 한다. ** * 어찌하여 절대 전능의 신이라는 존재가 하필이면 요셉과 마리아를 선택 하여 결혼하기도 전에 갈라서야 할 운명을 만들었던가? 요셉이 지금 결혼 도 하기 전, 임신한 아이를 가진 마리아를 거두어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 무척 고민한 흔적을 신약 성경 첫 장에서 볼 수 있다. 그에게 불과 얼마 전, 약혼으로 행복해 하던 시간이 걱정으로 뒤바뀌어 버렸기에 무척 고심하고 근심하고 있는 모습으로 주위를 서성거렸을지도 모른다. 요셉은 하늘의 별들과 땅의 자연들을 감상하면서 걱정과 근심을 함께 하 고픈 자를 찾고 있을까?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의 별들과 자연들에게 나 의 고민을 넘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그의 얼굴에서 나타난다. 결혼을 앞 둔 요셉은 아직 동침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약혼한 마리아의 잉태한 소식에 지금 배속의 작은 아이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버릴 것인지 아니 면 같이 살 것인지 계속 고민 중이다. 그의 머리는 온통 그 생각뿐이다. 만 154 버려진 예수

약 욥과 세 친구가 다시 태어나 도와준다 해도, 그들의 충고를 쉽게 받아들 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는 욥과 그의 세 친구가 하는 말이 적혀 있 는 성경의 한 대목을 문뜩 생각하고 있다.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지금 네 상황을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 러감 같을 것이고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 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다!”- 소발 “하나님이 오로지 너를 책망하고 게다가 너를 심문하심은 너의 경건함 이 부족하여 그치지 않는구나!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으니라!”- 엘리바스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빌닷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구나..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 보다 무거움이로구나! 내가 어찌하여야 하나님을 다시 발견하며 그의 처소에서 예배할까?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서 채워 하나님께서 내게 대답해주는 말씀을 내가 알아 듣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오!”- 욥 요셉은 지금 욥과 그의 세 친구의 대화를 계속 떠올리면서 회개하고 늙 은 자에게 지혜가 있으며 장수하는 자에게 명철이 있듯이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언제까지 계속적으 로 이보다 더한 시련을 또 다시 얹어 줄지…. 마음만 무거운 요셉을 복음서 에서 한 대목만 보여줄 뿐이 아쉽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욥처럼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요셉의 편이 되고자 한다. 그를 위로하 려는 말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 이를 위로해 줄 것인가? 우리는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55

욥의 마음 속 고뇌의 장면을 넘어가 마리아의 고백을 상상해보자! “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여, 나 마리 아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 머물지 못하는도 다. 누가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 가운데에 낼 수 있는가? 하나도 없도 다.” 마리아는 어두운 작은 방 한 칸에서 자신의 음성을 다스리고 있다. 자신 은 아직 결혼도 하기 전에 이미 임신을 하고야 말았다. 자신의 임신을 그 누가 알아챌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비교적 아름다운 세상에서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일상 생활의 한 부분처럼 누군가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어도 이제 대 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렇게 동요되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나 의 상황으로 되어 버린다면 이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무엇을 어 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중인 마리아는 지금 나름대로의 변명을 만들며 정 혼했던 자신의 남편 요셉에게 설득력 있게 구사할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천사의 환상을 보았고 뛸 뜻이 기뻐했었다. 그 러나 그 행복도 잠시였다. 마리아는 지금 요동치는 방황의 수 많은 마음을 버려야 할 지도 모른다. 많은 질문들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마 전, 자신에게 찾 아온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다. 그것이 시작된 축복인지 엉망인 삶인지 생 각할 겨를도 없이 그 순간이 찾아왔다. 이내 천사는 복중에 잉태하여 예수 라는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하였다. 곧,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 자신 이 임신을 하게 된다고…. 그것이 행복이자 또한 반대로 그것이 곧 걱정으 로 다가오기도 했다. 혹 그의 생각이 이러할 지도 모른다. 스스로 생각하길 “나의 사랑하는 약혼자 요셉이 곱게 받아들일까? 아마 의심하지 않을까? 156 버려진 예수

과연 나의 말을 믿어줄까?” ** * 이런 다양한 상상 가운데 복음서 중 마태복음의 상황과 누가복음의 상황 은 이상하게 다르다. 그것은 바로 마태복음은 요셉의 고뇌가 서려있는 구 절이 한 절만 있고, 마리아의 고뇌와 번뇌는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누가복 음은‘마리아의 찬가’만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나 동시에 남편의 고뇌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복음서들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함께 띄우 고 있었다. 이는 마치 복음서들이 하나같이 예수의 부모에 서린 심리적 상 황과 연출을 꺼리고 있었다. 어느 매체에서 본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Deux ex machina(데우스 엑 스 마키나)’, 곧 기계 위에서 내려온 신으로 그 문장을 해석할 수 있다. 그 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늘 사용하던 것으로 기계에 신을 태워 등 장시킨 관행에서 비롯되었던 유래가 지금도 전해온다. 그러한 강제적이고 극적인 장치를 복음서들의 저자들이 재사용한 것이 아닐지에 대해 논쟁한 다면? 과연 복음서를 그렇게 해석해야 할까? 성경을 극장으로 본다면 복음 서의 저자들은 하나같이 기계 대신 하늘을 사용한 유래로 조작했을까? 그 래서 기계에서 내려온 신이 예수라고? 혹시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했다는 꾸며낸 거짓된 이야기의 모티브가 바로 그 연극인가? 그래서‘기계’대신 ‘예수’를 붙인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 그 연관성은? 복음서 기록 당시 전쟁과 권력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예수의 삶과 죽 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목격자들과 그것을 전해들은 자들의 증거를 후세에 게도 알리기 위해 저술한 자들이 많았다고 고백한다.4 그것이 사실적 이야 기라고 한다면 대단한‘모티브’혹은‘동기’가 되지 않는가? 내게도 그 당 시 그러한 일들이 있었다면 발벗고 뛰어다니며 집필에 전념하기는 충분하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57

기 때문이다. 이들 중 데오빌로Theophilus, 즉‘하나님의 친구’라 일컬었고 예수의 제자였 던 누가를 아는 자에게 쓴 편지가 바로 누가복음이다. 학계에서는 데오빌 로를 인물이 아닌 가명이라고 취급함에도 이미 성취된 사건을 편찬한 복음 서 중 누가복음의 저자는 가장 탁월한 문장실력가로 알려져 있다. 그 편지 는 당시 헬라 문화가 다수였던 시기에 헬라어로 작성되었다. 하나님을 사 랑하는 데오빌로의 등장과 함께 청년 예수의 사건 실마리를 안겨주고자 한 누가복음의 저자는 그에게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제사장 사가랴zechariah 가 성전Temple안에서 만난 가브리엘 천사에 대해 언급을 시작한다. 이는 그가 편지를 쓰면서 받는 이, 즉 데오빌로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하 고 있지 않다는 강력한 증거를 들어 그 사건을 맨 먼저 예수의 십자가 사 건 앞머리에 첨가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누가복음의 저자 가 세례 요한의 탄생과 예수 탄생의 비교를 구사함으로, 그것을 처녀 마리 아가 잉태한 사실에 결정적인 근거로 끌어간다. 그 점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특히, 예수 탄생의 의구심에서 실마리를 제공 하는 단서가 하나 있다. 바로 세례 요한의 탄생은 유대인이라면 모르는 사 건이 아닐 정도로 유명하였다. 요세푸스 역시 세례 요한을 언급한 것이 결 정적인 근거다. 요세푸스는 세례요한이 지적한 헤롯 안티파스의 무분별한 결혼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세례자’라는 별명을 가진 요한에 대해“선한 사람이었 으며 유대인들에게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며, 그들이 이웃에게는 정의 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경건을 행하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세례를 받도록 인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롯이 그를 처형했기 때문”5이라고 부각시 켰다. 복음서의 저자는 세례요한을 언급하며 이미 잉태할 수 없는 부인을 가진 제사장 사가랴에게서 난 그의 기적 같은 이야기와 마리아의 처녀잉태 설에 대한 대조로 누가복음의 저자는 이러한 황당한 이야기들이 진실임을 158 버려진 예수

풀어가고 있었다. 순교자 오리게네스 혹은 오리겐 은OrigenAdamantius,A.D.185-254 알렉산드리아 학파 의 대표적 신학자로 성경, 체계적 신학, 그리스도의 변증적 저술 등의 저서 를 많이 남겼다. 특히『Against Celsus(켈수스 반박 - 지은이 역주)』에 자 신과 함께 신앙을 굳게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옹호하고자 변증하고 있 는 자신의 저서에서 요세푸스를 언급하며“…『유대고대사』라는 저서 내 에 의식을 행하는 자들에게 정화를 약속하거나 혹은 세례를 거행하는 자, 요한(세례 요한)에 대한 증거를 생산해낸 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6 그점에서 만큼은 오히려 오리겐은 요세푸스의 편이 되는 동지가 되었다. 누가 복음서를 쓴 저자는 그렇게 자신의 편지를 읽는 자들을 향하여 유 대인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점을 들어 예수의 기적과 같은 일이 실 제 있었던 일임을 세례 요한의 출생과 비교함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이제 누가복음서의 저자는 요한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기점으로 그들과 친 척된 관계로서 예수를 전개하고 있었다. 르호보암의 아들로 유대 왕위 계승자 중 한 사람인 아비야‘반열class ’혹 은‘반차’division에 있는 자가 바로 세례 요한의 아버지이다.7 이는 제사장들 의 24팀으로 나뉘어 매주 일주일을 지속적으로 돌아가면서 그 유대 전통에 따라 제사장들은 제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그러한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맡 겨진 임무를 완수하게 되는데, 이러한 제사장들의 전례 행위는 다윗 시대 부터 전해져 내려왔다. 그 24반열 중 8번째 반열의 순서에 해당되는 자가 바로 아비야 반열이다. 복음서 저자는 요한의 아버지 언급처럼 이들은 늘 투표로 인해 성전에서 일어난 일로 진정 사실을 말하며, 또 그 사건의 실마리 중 변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중요한 증거다. 그래서 실존 인물 예수에 대한 사 건의 증거 중 하나로 발전할 수 있다. 무릇 애굽에서 탈출시켜 주신 유일하신 하나님에게 하루에 2번씩 성전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59

안에서 향을 피워 소모되기까지 거행하는 매일의 제사 를daily service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제사 지내는 동안 어김없이 성전 밖에서 기도를 드리는 유대 인들은 성전이 파괴되기까지 늘 드리던 문화 그 자체였다.8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으레 하듯 제사장 사가랴는 성전에서 향을 피우고 매일 지내는 제사를 드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밖 으로 나오지 않자 궁금해 하던 유대 백성들은 벙어리가 된 사가랴를 보고 서 성전에서 환상vision을 본 것으로 이해하는 대목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사건은 불임 가졌던 늙은 여인 엘리사벳에게 난 세례 요한이라는 자식이 기적적으로 생기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더불어 함께 마리 아에게서 난 예수 탄생 역시 의심하 지 않게 하는 누가복음의 저자 의도 가 짙게 드려져 있었다.9 그 기적같 은 일이 비록 요세푸스의 입에서 나 타나지 않지만 어째든 세례 요한은 기적의 사람인 건 분명하다. 그렇다 면 예수는? 하나님은 동시에 그 가브리엘 천 ▲ 무릴로Bartolome Esteban Murillo, 의1617-1682 1655-1660년 작품,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 사를 다시 마리아에게 보내 복된 소 식을 알리고 있었다. 곧 마리아도 잉태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면 엘리 사벳의 잉태나 마리아의 잉태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물론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엘리사벳은 불임 혹은 태가 없던 늙은 노인이었고, 그와 다르게 마리아는 임신할 확률이 높은 젊디 젊 었다. 추가적으로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엘리사벳과 다른 점이지 만 이들에게 기적이라고 하는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았다. 160 버려진 예수

이제 종합해본다면 기적의 공통점은 서로가 잉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는 것과 둘 다 성령에 사로잡혀 탄생한 점만이 이러한 기적의 공통점을 느 끼게 한다. 다만 사역적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세례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신지자’이요,‘만인의 기쁨’이요,‘광야에 외치는 자 의 소리’이요, 더불어‘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우뚝 섰다. 그와 달리 예 수는‘하나님의 아들’로,‘세상의 빛’이자‘이방의 빛’이면서 동시에 그들 의 괴로움이자 버려질 운명의‘죽음의 기쁨’에 서로의 역할로 자리매김했 다. 이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잉태할 수 없었던 이 두 여 자들의 운명은 그렇게 서로 엇갈리기 시작했음에도 누가복음은 이들을 동 시에 첫 장 안에 함축하여 시사점을 주고자 노력했다. 영적인 부분에서 이들의 비슷한 점은 세례 요한이 이미 모태, 즉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이다. 또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에게 임하는 것은 둘 다 사건적인 면에서는 동일하고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가 장 반대된 채 큰 분류로서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모든 자에게 주지만 예 수는 불과 거룩한 영(성령)을 준다고 하는 역할로 나뉜다. 성경에서 말하는‘성령’은‘거룩한’단어와‘영’이라는 단어의 단순 조 합이다.‘영’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푸뉴마(pneu,ma)’라고 한다. 이는‘바 람’혹은‘영’,‘힘’과‘애정’그리고‘감정’과‘욕망’과 같은 결과를 주는 원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게다가‘거룩한’이라는 뜻은 영어로‘holy’, 헬라 어로는‘하기오스(a`gi,ou)’라고 한다. 결과적으로‘순결한 영’혹은‘거룩한 영’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영 가운데 만약 세례요한과 예수에게 있어서 이 둘의 차 이점이 존재한다고 보는가? 다른 점이 있다고 보는가? 혹 그 어느 것이 더 순결한 것인지 아는가? 또한 이들에게 차이를 두어 서로 높고 낮은 단계로 누가 나뉠 수가 있는가를 두고서 격렬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사 실 그럴 필요성은 없다‘. 모태로부터 성령을 받았던’세례 요한, 그리고‘성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61

령으로 잉태한’마리아의 아들 그 예수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사 료로 볼 때 우리가 마리아에게 더욱더 애착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 다. 물론 저자의 의도도 역시 동일하다. 예수도 세례 요한을 그렇게 인정했 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큰 자가 되고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 이며, 하나님은‘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선사한다는 이 엄청난 비밀을 복 음서의 저자는 털어놓고 있었으며, 그 내용을 들은 마리아는 가히 충격적 인 예언의 사실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던 것이 전부였다. 그 예언을 듣고 있던 마리아는 천사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자신은 남자를 알 지 못하며 어찌 그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10 결국 천사의 말에 마 리아 자신은 결코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자신을 변호하면서도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하는 가능성의 부재를 열고 있었다. 이러한 질문을 마치 알고 있는 듯한 천사는 그녀의 대답을 시원하게 해명해준다. 천사의 말은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며 지극히 높은 이의 능력이 마리 아를 덮어 준다\"고…. 또한 연속적으로, 한 가지 기이한 예언과 기적을 추 가로 선사하면서 마리아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이는 마치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확실 여부를 판가름하고 싶어 안달 난 주제로‘신의 존재여부’를 그 필두로 시작하여 마리아의 잉태설을 극구 부인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완 전히 묵살하는 대답을 말하고 있었다. 천사의 요점은 이러하다.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을 하 지 못하는 이가 임신을 하여 지금 기한이 여섯 달에 접어든 상황을 통해 확 실한 증거와 기적을 마리아에게 말하며 하나님의 능치 못한 무궁한 능력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한다는 선포를 힘차게 하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종합해 볼 때, 저자의 의도 면에서 세례 요한의 존재 여부 와 예수의 존재여부는 동일하다. 게다가 마리아의 잉태나 엘리사벳의 잉태 는 하나님의 능력이지 마리아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 162 버려진 예수

는 것이다. 또 거룩한 영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는 대등했 다. 그렇지만 다윗의 왕위는 예수, 그의 길을 예비한 자는 세례 요한, 그것 이 다른 점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례 요한이 존재한다면 임신 가능하지 못한 엘리사 벳이 임신한 그것이 기적이며 당연히 예수의 어머니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할 수 있는 기적이 아니겠는가? 반대로 세례 요한이 잉태하지 못했다면 예 수 역시 우리 기억 속에 영영히 지워진 채로 역사는 흘렀을 것이다. 한 번은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목회학을 전공하며 간호사로 일하는 나의 오래된 선배는 내게‘그 상황은 현실과 동 떨어진 초월적이며 마리아, 그녀만의 특정한 사건이다’라고 하는 말을 들 었다. 그러나 그 사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을 참고한다면 남자관계 없 이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과 불임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친척 엘리사벳, 이들과는 엄연히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상식적인 차원에 서 둘 다 잉태의 가능성은 제로다. 물론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남자와 관계하지 않았는데 어찌 엘리사벳 과 마리아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겠는지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의문 은 누가복음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처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사건이라고 본다면 이 두 가지 사건은 둘 다 기적적인 면에서 동일하지 않을까? 불임으로 판정 받아 낳은 늙은 엘리 사벳이나 남자를 모르는 여자가 임신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둘 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서야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 이다. 문제는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하였다는 것과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문 제거리였다. 그 추악한 사태를 언급함으로 오히려 분노와 격멸의 불씨만 조장했고, 부부에게서 더더욱 의구심이 심각하게 불거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의구심이란 점에서 마리아는 특히 더 심했다.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63

약혼, 즉 결혼 전에 정혼한 사이에서 불과 얼마 후 임신을 했다는 것은 주위에선 의심의 눈초리를 낳는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동일하다. 더욱이 유 대 문화에서 정혼erusin은 요즘과의 약혼보다 더 강한 구속력이 있었으며, 정 혼 상태는 보통 1년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이러한 정혼은 공적으로 서로에게 속한다는 의미로 암시하고 그렇게 강해진다. 정혼한 자가 다른 사람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간음으로 속하여 돌로 쳐 죽이라고 이들은 알고 있었다.11 이 사실을 요셉은 모를 리가 없었다. 마리아 부부와 사가랴 부부에게 기적이라는 사안은 이들에게 일치하지만 그 결과로 볼 때 한쪽은‘기쁨’이요, 또 다른 한 쪽은‘저주’라는 것이 되 어버렸다. 처음 천사를 만나기 전, 근심으로 무장한 요셉도 심각했을 것이 고, 이미 그의 가슴은 미어질 수 있다. 아내가 정혼 후에 욕보인 짓을 하였 는데 그녀를 다시 데리고 오려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을 것은 이 해할 만하다. 일반인들처럼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두 부부는 무척 싸웠을까? 이러한 요셉의 속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고 요 셉에게 예언을 했다. 만약 요셉이 천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예수는 탄생할 때부터 아버지가 없 는 홀로 키워진 아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을 수도 있을 끔찍한 상황에 간과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오히려 태어날 때부터 잉태의 혼선이거나 영아의 죽음에 직면하게 될 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아기 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죽음에 놓여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혹 남편없이 마리아 여인 혼자도 임신 가능하지 않았을까? 어째든 그럼에도 이러한 끔찍스런 상황에서 벗어나 예수는 추후 자신의 죽 음까지 스스로 예언한 메시야로서 결국 태어나야 할 인물임은 분명했다. 또한 로마와의 적대적 운명과 유대인들 사이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되 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태어날 운명을 가졌다. 유아시절부터 이어질‘비장 한 죽음’이라는 신사가 쫓아오는 그림자와 함께! 164 버려진 예수

그가 태어날 운명은 이미 과거 때부터 예언으로 이루어지려는 진행형처 럼 이젠 예수와 함께 그 역사의 송두리에 휘말려 가는 마리아와 요셉을 볼 것이다. 겨우 헤롯대왕 때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왕에 의해 제거될 불운의 운명을 지니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 가? 마리아는 아직 이러한 운명을 알아 채지 못한 채 착하고 의로운 어쩌면 한치 앞도 잘 모르지만 현명한 요셉을 만났던 것이 그녀에게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마리아에게 좋은 소식은 백성들의 구원자가 그녀의 삶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녀는 단지‘여자’woman 12이자 가브리엘 천사 앞에 자신을‘주의 계집종’13이라고 한 처녀이자‘어머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해마다 유월절 이면 올라갔던 이들 예수의 가족은 동행 중에 잃어버린 예수 앞에서‘내 아 버지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요셉과 마리아는 이해하지 못한 전형적인 인간이었다.14 그렇게 예수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 두 부부는 자주 예수의 말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했다. 나쁜 소식은 장차 생길‘아들의 죽음’이었 다. 그래서 잉태설은 이성적인 현대인들에게 지극히“허풍적인 천사 이야 기” 라는insaneangelstory15 타이틀 내용이 요셉 부부에게 딱 어울리지도 모른다. 탄생의 후폭풍II : 복음서들의 혼란 캐서린 하드윅 감독의 걸작『네티비티 스토리 - 위대한 탄생 』The Nativity Story 에 보면 신이 된 한 인간의 위대하며 격정적인 예수의 탄생 스토리에 초점 을 맞추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격정적인 핏빛에 얼룩진 예루살렘 땅에 다시 돌아 오고자 했던 예수의 탄생이 있은 지 얼마 후, 유대인들이 모인 곳에서 말을 탄 한 로마 군인은 로마 황제와 헤롯왕에 의거 인구조사를 실시한다는 포 고문을 읊조리고 있었다.“듣거라! 나사렛 사람들이여! 로마 황제와 헤롯 왕의 이름으로 너희는 인구조사에 임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가족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65

을 이끌고 자기 조상의 땅으로 가서 인구조사를 받아라!” 인구조사에 임하지 않는 자는 죽음으로 밀어붙이는 대목까지 합세하여 로마의 세력은 유대인들의 집과 재물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건은 그들의 세금을 조사하기 위한 시도로 엿볼 수 있다. 우선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아래 그림을 미리 익힌 채‘복음서들 의 혼란’이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고자 한다. [그림 3-1] 로마 황제와 유대 왕들의 통치 기간 역사적으로 요세푸스의『유대고대사Antiquities』에 의하면 A.D. 6년 헤롯대왕 의 아들 중 한 사람인 아르켈라우스의 추방 이후로 유대와 사마리아는 로 마의 직접 통치에 접어들며 세금 조사와 연관있는 시리아 통치자인‘퀴리 니우스’Quirinius가 등장한다. 그 인물은 성경에 등장하는‘구레뇨’와 동일 인 물로 그 호구조사는 세금징수의 토대가 되어갔다. 추후 그 사실은 유대전 쟁의 시발점이 되어 직접적인 로마 통치에 분개하여 유대인들을 화나게 하 였다. 그 결과로 반란과 저항 운동을 탄생케 했다. 그 저항 운동은 아르켈 166 버려진 예수

라우스의 공이 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며, 이는 요세푸스의 내용에 남아 있었다. “…… 아르켈라우스는 이삭의 숫자만큼의 기간 동안 통치하다가 많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자기 인생을 끝마치게 될 것이라는 말 이다. …… 아르켈라우스의 영토는 로마의 속주로 바뀌었고, 기병대 출 신 코포니우스Coponius 가 황제로부터 사형집행권을 포함한 모든 권력을 위임 받은 총독으로 파견되었다. …… 아르켈라우스의 통치영역이 하나 의 속주로 예속되었지만, 헤롯 왕(헤롯 대왕)의 나머지 상속자들인 빌립 과 헤롯 안티파스는 자기 영토를 계속해서 통치했다.”16 아르켈라우스Archelaus, 그의 통치 시절은 많은 위협과 고난이 다가왔다. 그 렇게 위험천만한 고비를 잠시 넘겼지만 결국 예수의 어린 시절 동안, 즉 B.C. 4년에서 A.D. 6년 동안의 짧은 기간을 유대 땅에 머물며 그의 통치는 막을 내린다. 아르켈라우스의 생명은 죽음에서 비켜가지 못했고, 결국 그 의 어리석은 많은 업적이 로마를 유대 땅 위에 밟게 만들었다. 자신의 통치 말엽, 그는 로마 황제의 법정에 소환되었다. 그 일이 유대지역에 대해 최초 로 로마 총독의 직접적인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유대인들의 짐이 되 기 시작했다. 요세푸스에 의거, 아르켈라우스는 황제 소환을 받기 전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다른 예언자로부터 해석되어진다. 그 꿈의 해석으로 인해 자신의 죽 음을 예상하였던 아르켈라우스를 과거 얼마 전까지 요세푸스는 유대 지역 을 통치한 자로 등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켈라우스의 죽음 이후 로 마는 퀴리니우스를 A.D. 6년 무렵에 시리아 통치자로 세우고 총독으로서 더불어 유대 땅 지배까지 맡겼다.17 사실 아르켈라우스는 헤롯 대왕의 마지막 상속인이자 아들들 중에 한 명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67

이다. 유대 땅이 로마의 속주(식민지)로 변한 시점 이전에 이미 통치자가 여러 명으로 쪼개졌다. 유대 땅 위에 로마 황제에게 제거 당한 아르켈라우 스는 여러 여자를 거느린 헤롯 대왕의 네 번째 부인으로 알려진‘말타케’ 의 배속에서 낳은 장남이다. 그 다음의 아들들이 여러 있다. 유대 땅 외각 지역에서 헤롯 대왕이 죽은 후 변화된 것이라곤 고작 다름 아닌 다수의 통 치체계 시스템이었다. 곧 예수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갈릴리 지 역의 분봉왕“헤롯 안티파스”(추후 예수와 동시대 사람이 되는 자) 그리고 ‘이두래’와‘드라고닛’지방의 분봉왕 빌립 2세, 이들의 분할 통치였다. 통치한지 얼마 후 분봉왕 아르켈라우스의 영토가 로마의 속주로 변한 시 점에 유대 지역은 첫 로마 황제에 의거 직접통치자로서 감독자인 코포니우 스 총독 이Perfect or Governor 부임했다. 또 모든 시리아 통치 영역을 로마가 직접 손을 대는 바람에 아르켈라우스의 통치 기간은 한정된 재임이었을 뿐이다. 시리아를 통치하게 된 코포니우스 총독, 그의 재임기간 동안 갈릴리 사람 들은 유대 지역 주민들을 선동하여 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갈릴리의 유다가 바로 그 주범이라는 것, 그 역시 요세푸스의 저술로 알 려져 있다. 그러한 사유는 바로 로마 군대들의 도입에 비해 코포니우스의 성격에는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그것은 바로 황제의 부임으로 소임을 다 하고 있는 코포니우스를 성공으로 이끈 로마 행정 장관이라는 직책과 그 의 인격적인 문제점 역시 그러했다. 다만 로마 군대들이 유대 땅을 밟고 있 는, 그 자체에서 비롯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바로 퀴리 니우스의 호구 조사를 진행하면서 이루어진 유대 지역의 재건 때문에 한층 더한 저항의 물결이 되고 만다. 더욱이 A.D. 6년경 전후로 시작된 호구조사 시점에서 불과 10년도 안되 어 시리아를 주관하려고 부임한 퀴리니우스 총독 시절 아우구스투스는 사 망한다. A.D 14년쯤 티베리우스 황제 집권시기에 부임한 본디오 빌라도는 그 즉시 성전 안으로 들여온 무자비한 깃발 사건과 유대인들의 율법에 훼 168 버려진 예수

손한 사건, 즉 성전 안에 함부로 이방인들의 물건이나 이방 사람들조차 들 어올 수 없는 순결한 장소였기에 요세푸스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의 책『유대 전쟁사』는 이러한 시기에 맞물려 고스란히 그 내용들이 남 아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더불어 앞에서 언급한 폭동과 반란의 주범인 표징 예언자들과 같은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은 죽음을 맛보아야 했고, 동족들의 죽음 때문에 충격을 잃었다. 그저 그들은 할 말을 잃고 잠잠해지기만 했다. 그러한 세월들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은 비단 지금 수 많은 비기독교인들에 의해 미완성되 고 완벽하지 않다고 하는 성경을 두고서 날카롭게 시사하여 비판하는 점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비판의 서적에 홍수로 인해 기독교인들 역 시 이 당시 유대인들처럼 가슴에 거대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 * 그리스도인들에 타격을 입을 만한 상처를 또 하나 가지고 가야 함을 두 렵게 생각한다. 우선 예수 출생의 시기를 둘러싼 복음서들의 혼란, 즉 마태 복음과 누가복음에 있어서 서로 다른 견해로 엇갈린다. 『The Roman Census and Jesus’s Birth(예수의 출생과 로마 인구조사 - 지은이 역주)』의 저자 D. J. 헬스D. J. 는Hayles 누가복음에서 언급한 시리아 통 치자로서 퀴리니우스가 호구조사를 실시한 A.D. 6-7년에 대한 내용과 마 태복음 사이에 어긋나는 대목을 들고 있으며, 결국 그는 복음서의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곧 헤롯대왕이 죽기 전에 잉태한 예수의 출생을 저술 한 마태복음의 언급 사이에 결코 중재를 할 수 없다고 말이다. 당연히 요세 푸스는 헤롯대왕의 죽음이 B.C. 4년 전이라고 했기에 헬스의 주장은 물론 근거가 있다. “그것은 몇몇의 학자들에 의해 그 이야기가 허구 소설이거나 또는 터무 니 없는 실책이라고 유지되고 있었다; 누가복음과 연관되어 그것에 연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69

결 지을 수 있는 환경들은 아마도 역사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고, 짧 게 말하고자 한다면 그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비역사적이고 그 역시 불 가능한 것이지, 거의 유일한 길은 아니다. 다만 몇은 제외하고서 말이 다. 그것은 로마의 호구조사가 위조이라는 논쟁이 일고 있었다. 일어날 성 싶지 않는 한 지역의 도시에서 요구되는 조사 수준으로 불가능성을 들고 있는 헤롯 지배하에 있던 지역 수준의 것이었고, 또한 퀴리니우스 와 초기 호구조사에 그 어떤 연관성이 결여된 복음서는 완전하게도 연 대가 틀렸던 것이다.”18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성경의 진실은 이내 진정 거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역사적 이해와 진실 속에‘복음서들의 오류’라는 충돌과 다양한 착오에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충격을 가진다. 이런 올바른 복음서를 보게 되는 필수 요소들을 찾아내려고 하는 촉구는 더더욱 오류의 불을 지핀다. 그 내용은 이렇다. 먼저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출생이 헤롯 대왕의 살아 생전에 시작된 것으로 언급한다. 그렇다면 예수 탄생의 연대는 결국 B.C. 4년 이전으로 잡아야 한다. 복음서에 등장하는‘아켈라오’, 즉‘아르 켈라우스’라고도 발음하는 그 인물을 등장시킨 유대 왕은 헤롯 대왕의 죽 음으로 자신 아내이자 넷째 부인의 장남인 그의 통치가 시작된 후에야 비 로서 다시 돌아왔다는 시점을 인식해야 한다.19 그러나 이와 달리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잉태 시기가 수리아 총독인 ‘구레뇨’, 즉‘퀴리니우스’총독 시절 전후가 예수의 출생 시점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었다.20 요세푸스에 의하여 호구 조사가 있던 퀴리니우스 총독 시절은 A.D. 6년 쯤이다. 결국 두 복음서를 대조한다면 적어도 10년쯤 차이가 난다. 예수의 잉태 시기 역시 복음서 대조적 측면에서 차이가 확연하다. 쉽게 이해하도 170 버려진 예수

록 아래 그림을 참조하라! 마태복음의 예수 출생 누가복음의 예수 출생 아우구스투스 황제 집권 티베리우스 황제 집권 ? ? A.D. 14 ? - A.D. 29 B.C. 4 A.D. 6 헤롯대왕 통치 아르켈라우스 통치기간 퀴리니우스 통치 퀴리니우스 수리아 총독, 첫 호구조사(?) 헤롯대왕 사망 본디오 빌라도 (유대 총독) 헤롯 안티파스 부임(갈릴리 분봉왕) 빌립 부임(이두래와 드라고닛 분봉왕) 아르켈라우스 사망(유대 분봉왕) 누가복음의 요한 사역 (티베리우스 열다섯 해) 아르켈라우스 부임(유대 분봉왕) 루사니아 통치(아빌레네의 분봉왕) 빌립 통치(이두래와 드라고닛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 통치(갈릴리 분봉왕) [그림 3-2] 복음서들 간의 예수 출생 년도 만약 심각하게 대두될 이러한 두 가지만을 종합해볼 때, 10년의 차이를 두고서 조용했던 예수의 탄생에 대해 성경은 결국“복음서들의 오류를 가 진 터무니 없는 진리”라는 기념의 공로가 된다. 『Christ in the Gospels of the Liturgical Year(예수의 복음에 대한 전례 연도 - 지은이 역주)』의 저자 브라운Raymond E. Brown 은 전통성에 주안점을 두 는 기독교계, 특히 천주교의 믿음에 의심이라는 불씨를‘던져주는 불확실 한 의구심’castingdoubt에 입각하고자 매진한다. 그는 역사적 정확성의 다양한 성경 비평가로 유명하다. 가장 현대 역사가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누 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서의 증거는 다른 복음서의 충돌을 그리고 있으며, 그가 만들어낸“성경의 오류”라고 못박고 있다. 일부의 전문가들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는 실정이다.21 그러나 우선 두 복음서들의 오류 증명에 앞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 다. [그림 3-2]에서 A.D. 29년도 쯤에 있었던 사건, 곧 아빌라네의 분봉왕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71

루사니아Lysanias 통치에 대한 내용을 인지해야 한다. 이는 누가복음 3장 1절 에“티베리우스 황제 통치 15년”이라는 힌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티베리우스 황제 등극 연도는 대략 A.D. 13-14년이다. 무엇보다 알아야 할 것은 티베리우스 황제의 등극 연도가 학자마다 1-2 년 차이로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거기에 복음서에서 언급한 15 년 티베리우스 통치를 더하면 대략 A.D. 28-29년 쯤이다. 그 때 이미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누가복음은 공개한다. 이를 통해 루사 니아 분봉왕이 A.D. 29년까지 지속적으로 아빌라네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고 주장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태생의 성경학자이며 동시에 복음주의 학 자인 브루스F.F.Bruce는 아빌라네 분봉왕의 통치 시대가 등장하는 누가복음 3 장 1절을 두고서, 또 다른 루사니아 분봉왕을 언급한다. 브루스에 의거, 우 선 누가복음의 루사니아 분봉왕, 곧 대략“A.D. 27-28년 티베리우스 황제 의 15년 집권시기에 다메섹(Damascus, 현재 다마스커스라고 불리는 지역)의 서쪽에 있는 아빌라네Abilene에서 분봉왕tetrarch이었던‘루사니아’라는 인물”에 대한 것을 언급한다. 브루스는 이어서 말하길“그와는 다르게 왕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고대 역사에 또 등장하는 B.C. 34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k 의Antony 명에 의하 여 죽임을 당한 사건으로 남겨져 알려진 루사니아 역시 아빌라네의 분봉 왕”22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과연 누가복음의 언급대로“루사니아가 아빌 레네의 분봉왕”이라고 언급한 것이 바로 A.D. 27-28년대의 루사니아일까? 아니면 B.C. 34년대의 루사니아일까? 이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밝히 보이려는 노력이 엿보인 브루스가 계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 말다툼을 일으킬 수 있는 한 실마리, 즉 그 언단을 제공하는 대목은 존 호그John 의Hogg 서적에서 브루 스의 논점을 더 확고히 해준다. 그 역시 브루스가 계산한 누가복음의 역사 적 증거는 올바르다고 경고한다. 그러한 확실한 근거는 다름 아닌 관련된 172 버려진 예수

고고학적인 발굴로 등장하게 된다. 루사니아 분봉왕에 대해 수록한 비문이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분봉왕 루 사니아의 연대를 말해준다. 그에 대한 비문은 아빌라Abila, Abilene에서 발견되 었다. 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23 “이 거리와 다른 모든 것들을 설립한 분봉왕‘님페리우스’이자 루사니 아, 황제들(Lords) 아우[구스투스]와 그들의 왕실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For the salvation of the Au[gust] lords and of [all] their household, Nymphaeus, free[dman] of Ea[gle] Lysanias .”tetrarch established this street and other things 24 윗글은 비문의 원문을 영문 번역한 글이다. 물론 이러한 미완성된 루사 니아의 비석으로도 티베리우스 황제와 아우구스투스의 미망인 그의 어머 니 리비아에 대한 기념비라고 아주 정확하게 참고할 수 있다. 이는 티베리 우스 황제의 통치시작인 대략 A.D 13-14년도와 리비아의 죽음인 A.D. 29 년 사이에 기념된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루사니아의 비석이라고 할 수 있 다. 공평하게도, 그 비석의 주인공을 B.C. 34년 안토니우스에게 죽은 루 사니아로 해석하는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 해석의 중요한 열쇠는 바로 “Lords(로스)”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를 번역하면‘왕들’혹은‘군주들’이 라고 할 수 있다.“Lords Imperial-(로스 임페리얼-)”, 즉‘황제 가족들’이 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를 통해 브루스는“그러한 타이틀은 오직 티베리 우스 황제와 그의 어머니 리비아에게 향한 아우구스투스의 공동호칭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단어의 참조는 A.D. 14년 그리고 29년 사이의 비문으로 고정된다”고 결론 짖는다. 인구조사c e n s u s 『유대고대사』의 저서를 편찬한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여 예수의 탄생을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73

B.C. 4년 봄 이전의 일에 대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자 한다. 어두움사이 로 조그마한 희망의 불빛은 아주 잘 드러나듯 예수가 태어난 시점을 마태 복음에 의거“헤롯 대왕이 아직 살아 있을 때”25에서 실마리를 밝힐 수 있 는 희망은 당시 문화와 역사 속에 숨겨져 있었다. 『Studying the Historical Jesus(역사적 예수의 연구 - 지은이 역주)』의 저자 데럴 보크 의DarrellL.Bock 대목을 주목하고자 한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고 대 사회 당시에 통용되었고 사사로이 쓴 연도 사용법과 함께 들고서 독자 들에게 제시한다. “다수의 고대 사회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중요한 방법들을 날짜로 확립 시킨다. 그들은 통치자의 이력에 대한 길이를 가지고 날짜 계산에 연결 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한 사건을 또 다른 핵심 사건들의 시대와 연관 되는 일방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26 보크가 말하는 고대 날짜 측량에 대한 방법은 현대인들처럼 정확하게 쓰 고 있는 날짜, 즉 어느 인물에 대해 정확하게 어느 연도, 어느 달, 어느 일 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역사가이자 혁명가였던 요세푸스가 언급하듯“아우구스투스 황제가 57년 6개월 2일 동안을 다스리고 사망한 후”에 일로 어느 시점을 언급한다. 즉, 헤롯대왕의 아들 빌립은 요단 강 수 원지 근처에 가이사랴를, 예수의 삶과 죽음이라는 역사 시대에 직접 연관 되어 버린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에‘율리아’도시 건설을 그 사건과 연 관 짖는다. 그때에 티베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죽음으로 로마 황제 자리에 앉아 다스리며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본디오 빌라도’라는 인물을 동시에 나열하고 있었다. 이는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과 같은 성경의 저자들에 의한 연도는 그리 스·로마 당시의‘공통적인 연대식 표기법’으로 간주하면 된다. 그렇기에 174 버려진 예수

그 시대 있었던 이야기를 모아 서로 연관지어 가고 있는 사안을 간과하거 나 결코 묵시해서는 안 된다. 요세푸스는 시리아 통치자 퀴리니우스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유대전쟁시기에 맞춰“유대인들이 하나님 외에 로마인들을 섬기는 것을 질 책했던‘갈릴리 사람’이라고 불리던 유다의 아들”을 언급하는데 그 이름은 ‘므나엠’이라고 지적하며 퀴리니우스와 함께 연결시키고 있었다. 호위대를 만들기 위해 무기고를 습격하기도 했던 므나엠, 그가 평범한 자임에도 왕처럼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후 그 요새를 진두지휘하며 반란군 의 지도자 노릇을 한다. 이때 시리아 퀴리니우스 왕이 시행한 인구조사는 유대인들 통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세금을 지불해야 할 유대인들에게 그 일은 하나님 을 거역하는 사건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로마의 세금 징수는‘신을 향한 역 행’이라고 진단한 듯, 그것이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세 금 징수가 종교 신앙심에 역행하는 처신이었음이 호구조사를 강행했던 가 능성에 더욱 무게 실리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카이사르 황제 들에게 주어야 할 세금이 유대 사회에 더욱더 가중되고 만다. 결국 집권시 기에 맞춰 호구조사를 실시한 A.D. 6년경, 유대 지역을 시리아의 행정구역 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최초로 로마식 호적등록을 시행했다고 하는 퀴리니 우스의 사실적 바탕은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진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10년이라는 공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에게 여전히 역사를 다시 되돌리는 방법 밖에 없는 듯 보인다. 물론 근본적인 해 결책은 하나 있다. 과연 A.D. 6년 경, 그 이전의 첫 시리아 호구조사를 찾 아보는 것이 어떠할까? 아니면 날짜를 되돌려 A.D. 6년을 B.C. 4년 이전으 로 돌리면 어떠할까? W. 미첼 렘시W. M. 와Ramsay 마크 윌슨Mark ,Wilson 이들이 펴낸 저술『St. Paul: the traveler and Roman citizen(사도 바울: 여행자와 로마 시민들 - 지은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75

이 역주)』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사실을 바탕으로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 다. “누가는 바울 자신의 편지들과 함께 분명하게도 연관되어 있는 영향력 을 바탕에 쥔, 권위 있는 것들을 첨가했다. …… 퀴리니우스 아래 인구 조사27는 호구 조사의 종류이자 연재물 같은 시리즈series라고 할 수 있다 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바,‘처음’the first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주안점 을 둔다. 그 호적 조사census는 알려진 대로 아마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제 안했던 A.D. 6년에 대한 두 번째 통제이자 규제로 퀴리니우스에 의해 시리아에서 만들어진 경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B.C. 5-4년에 있던 호적 조사를 위한 것으로서 또 다른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 만 우리가 순수한 우유적인 사실, 즉 뜻밖에 우연한 것이 두 번째 호적 조사라고 한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욕심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당연히 첫 번째 호구 조사라는 것을 가지고 누가복음 문장의 신뢰성에 대하여 논쟁거리가 없는 성립을 가능하게 연관 시킬 수 있을 것 같다.”28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바로“처음”이라는 말에 주목하여야 한다. 처음이 라는 말은 유대 땅에 시작점을 말함과 동시에 그 이후에도 있다는 점을 유 추할 수 있다. 또한 호구조사가 로마 식민지로 편입된 유대 땅에서 처음 시 작했다는 점이 앞에서 자주 언급한 요세푸스의 세금 징수와 관련된 폭동과 반란이라는 유대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진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집권하던 A.D. 14년 전까지 시대에 있어서 첫 호적 이 A.D. 6년으로, 이는 두 번째 호구조사임은 어떤가? 또한 이미 그 이전에 발생한, 즉 B.C. 4년쯤 첫 호구조사를 실시했다면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그래서 누가복음 2장에서 언급하는“이 호적은 구레 뇨(퀴리니우스)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고 말할 때 그 176 버려진 예수

시기가 혹 B.C. 4년이라고 한다면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시기와 잘 맞아 떨 어진다. 그러한 생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로마 역사와 인구 조사간의 연관성, 그리고 그 사실적 가능성의 실현을 보고자 한다. 우선 무신론자들에게서 나오는 이론처럼 과연 로마 시대, 게다가 유대 땅에서 호구 조사가 과연 있 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구조사에 대한 연대적인 정확성은 없지만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고대 로마 초기시절, 로마의 7대 왕 중 여섯 번째 왕으로 세르비우스 툴 리우스 의Servius Tullius, B.C.578-535? 시대에 20년간 정복된 전쟁을 마감하면서 로마 의 영토와 인구를 재배치코자 노력했다. 다름 아닌 로마 최초의 인구 조사 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군사와 선거를 비롯하여 세금까지 새롭게 개혁 했다는 것이다. 이때 조사된 인구 조사는 역사상 최초라는 시점에서‘개인 종합 자산의 측정‘이 되었는데, 곧 조사원registrar,censor들은 백성들의 성명, 주 소, 사회적 등급 혹은 신분social ,rank 가족 관계 ,family members 종(하인)의 수 ,servants 부동산tenants, 재산property 등을 적어갔다. 그는 더불어 이를 바탕으로 5년마다 실시하려고 절차를 시행하여 누렸으나, 점차 로마 인구의 끝없는 성장으로 인해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정책은 당시 성공하여 인구 조사를 바탕으로 8만의 남자들이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4백만 명으로 불 어나버렸다.29 예수가 오기 불과 얼마 전, 로마의 인구조사는 B.C. 27년부터 시작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자서전『업적』에 보면 자신이 로마 지역의 모든 속주 영토 를 확대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사실 당시 예수의 업적과 비교해본다면 엄 청난 차이를 느낄 수가 있을 정도로 영토적인 측면에서 그의 업적은 탁월 함을 넘어선다. 추후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전 로마 속주 지역을 방문하고 함께 다녔던 로마 장군이자 로마 남부 캄파니아 Campania 에서 태어난 마르쿠스 아그립바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77

,Marcus Vipsanius Agrippa, B.C. 63 - B.C. 12 그에 의해‘지구’라는 뜻의“오르비스 테라룸” 을orbisterrarum 맡아 결국 B.C. 20년경 완성하게 된다.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팔레스틴 땅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그곳에 시리 아라는 땅의 이름만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유대 땅이 시리아 속주 로 이미 포함되어 있기에 아마 유대 땅을 따로 표기하지 않은 듯하다. 시리 아가 만약 인구 조사를 행했다면 이미 유대 땅도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복 음서에 시리아 통치자 퀴리니우스의 세금 징수를 포함한 것이 어쩌면 결정 적인 증거다. 결국 시리아가 인구조사를 했다면 유대 땅 역시 했음은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다. 데쿠리오Decurio, 데쿠리오네스Decuriones, 혹은 나중에는 또 다른 용어인 쿠리 알레스Curiales라고 하는 직책은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지방의 도시내에서 구 성된 약 100명의 회원으로 로마 원로원이 임명하고 있는 중요한 직책의 제 도다. 원로원 내에서 가장 유명했던 키케로에 의거한다면 그 자격은 비록 시기마다 혹은 도시마다 다르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 그것은 다름 아닌 재산과 신분, 사회적 평판과 아울러 26세 이상의 연령만을 제안하고 있었 다. 그리하여 관직에 오른 사람 중 5년마다 호구조사에 의한 엄격한 자격심 사를 통해서만 관직에 재임명하였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로마는 속 주의 사람들도 받아들일 정도로 넓은 관용을 중요시했다. 그 관용에 유대 민족도 빠지지 않았다. “lectio senatus(원로원 선출 제도 - 지은이 역주)”, 이는 원로원 의원을 선출하는 프로세스 과정을 읽컬는 말로 로마를 이끌어가는데 결정적으로 중대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아우구스투스를 통해 다음과 같이 네 개의 문장으로 만들 수 있 다. 우선, 그는 3가지 경우에 있어서만“원로원 선출”lectiosenatus을 수행했다. 두 번째, 그는 42년이 지난 사이,“5년마다 실시하는 로마 내의 호구조사” 인 루스트럼 이lustrum 완성되는 시기인 B.C. 28년쯤에 그의 동료 아그립바와 178 버려진 예수

함께 여섯 번의 조언 하에 호구 조사를 실시했다. 그 호구 조사를 통해 등 록된 인구만도 462만명이었다. 셋째, 그는 B.C. 8년에 아그립바의 동료 없 이 직접 집정관의 통치권(임페리움)에 수여하여 두 번째 루스트럼을 완성 한다. 이때의 인구 숫자는 740만명으로 불어났다. 넷째, 그는 A.D. 14년에 다시 집정관의 통치권을 이용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동료 티베리우스와 함 께 세 번째 루스트럼을 완성했다. 740만 명이 더 증가한 시민들의 수가 합 세했다.30 『Chronological aspects of the life of Christ(예수 생애의 연대기적 측면 - 지은이 역주)』를 저술한 저명한 학자인 H. W. 헤롤드 호너H.W.Hoehner 역시 키케로가 언급하듯“B.C. 28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그리고 공화정 아래 잇 달아 일어난 뒤의 경우들처럼 이들에 의해 주기적으로 인구조사가 진행되 었던 풍부한 자료가 있다. 특히 저항군들이 많았던 갈리아 내전에 인구조 사는 B.C. 27년, 12년 그리고 키레네 B.C 7년 실행했었다”31고 말한다. 최고 제사장의 타이틀까지 검어진 야망스런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그립 바의 보고서를 끌어내어 명백히“인구통계학적 프로젝트들 ”demographic projects 의 완성을 위하여 5년의 주기로 로마의 제사장이 되면 인구조사를 강행할 수 있었다. 곧 제국의 전체에 걸쳐 황제의 인구조사가 일련의 한 시리즈이 기도 했던 그 계량적인 특유한 칙령은 B.C. 12년 갈리아에서 시작되어 마 침내 B.C. 7년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한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키 레네Cyrene 에서 멈추었다.32 그에 대한 증거는 한 그리스 지질학자에게 질문 할 수가 있다. 스트라보 가Strabo, B.C. 63 - A.D. 24 바로 그런 자였고, 그는 그리스 역 사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소아시아의 폰투스 지방 아마세이아 사람인 그는 이집트와 고대 인도였던 북동부의 쿠시Gusi 를 포함하여 그 주변에 위 치한 다른 나라들을 거치기도 했다. 결국 질적인 강조를 보여주는 유럽 전 지역의 지도를 그려냈던 시기가 바로 B.C. 7년에 이미 완성33하였고, 그 해에 로마를 마지막으로 방문하기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79

도 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스트라보의 지도는 고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 공하는 아주 중요한 소스이기도 하며 유럽의 지도가 그의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스트라보의『지리지Geographica』17권에 달하는 방대한 서적 중에‘book XVII’의 중동 편을 보면 팔레스틴 땅에 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즉, 그 내용은“16권에는 서방의 남쪽 절반에 해당하는 아시아, 바빌로니아, 메소 포타미아, 시리아, 페니키아, 그리고 팔레스틴, 페르시아인과 아랍인의 페 르시아만Gulfs, 에디오피아 해안, 최근의 아라비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34 결국 아우구스투스의 천하를 아우르는 호적사건이 녹아 있는 누가복음 2 장 1절의 내용은 B.C. 12년에서 7년 사이에 있었던 로마에 속한 주들을 일 컬어 말한 유일한 아우구스투스 호적조사 기록들의 단위 안에 포함되었고, 그 결과 국제적인 칙령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요세푸스가 말한 반란과 폭동의 근거가 되는 세금 징수가 유대 땅에서 예수 시기 전후 로 이미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퀴리니우스 인구조사가 떡 하니 버티고 있 었다. 그 시기가 곧 B.C. 10-4년 사이에 최초로 세금 징수를 토대로 인구조 사가 행하였음은 가능하다. 헤롤드 호너는 덧붙여 말하길, A.D. 104년으로 예상되는 파피루스 파편 에 수록되어 있는“이집트 행정관들이 이집트인들에게 인구조사를 수행하 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명령한”35 내용을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안은 이집트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며, 로마의 속주들은 하나같이 동일 한 범주 안에서 주무르듯 황제에 의해 자신의 로마뿐만 아니라 모든 속주 들의 인구조사를 세금과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이집트 호구조사 를 14년마다 한 것처럼 아마 유대 땅 내에서도 세금을 징수하였음은 당연 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전역에 걸쳐 호구조사를 했다는 강력한 증거는 요셉과 마리아가 호구조사로 인해 베들레헴을 다녀간 사실에 의심할 수 없 게 된다. 180 버려진 예수

실제 인구조사에 관련된 확실한 증거는 파라오 신전에서 발견된 파피루 스 조각, 그것을 손에 넣었다. 파라오 시대에 인구조사를 처음 실행한 후 A.D. 600년에 헤사임 마쿠엔 시대에Hesham Abdel Malek ben Marwan 인구 수를 포함 하여, 그들의 나이와 거주자들을 조사하기도 했다.36 아울러 일찍이 B.C. 3340년 그리고 3050년 파라오의 시대 에Pharaonicperiod 행해졌음이 전해지는데, 특히 국유지 매수 신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슈가 되었던 수 많은 무상 토지 불하land grants 그리고 세금 목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은 B.C. 499-500년에 시 행한 기록도 볼 수 있었다.37 그런데 공교롭게도 B.C. 4년 이전에 이집트가 인구 조사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약 B.C. 10년경 공을 들인 새로운 인구조사 절차가 이집트에서 갑작스럽게 위엄 있는 듯이 서서 오래되어 버 린 예스러운 모습으로 그윽한 고색창연한‘프톨레마이오 체계’Ptolemaic system 를 따르게 된다.38 * ** 유세비우스는 예수가 탄생한 시기를 기록한 자신의 글에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즉위 42년, 톨레미 왕조의 마지막을 가져다 주었던 애굽의 정복 및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지 28년 되던 해에 예수의 예언은 이루 어졌다고 기록한 글을 보게 된다면 예수의 탄생에 대한 신빙성은 점차 증 폭되어 간다. 초대교회사에 공언한 자들 중 또 한 명이 있다. 『The First Apology(초기 변증론 - 지은이 역주)』책을 저술한 지중해 지 역 카이사리아Caesarea 출신의 순교자 저스틴 ,Justin Martyr, A.D. 100-165 그는 당시 그 리스도인들을 변호하는 일에 앞장섰고, 그 결과 A.D. 165년 순교자의 대열 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예수 사후 제자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그들의 다음 제자였던 초대 교부 중 철학자이자 변증가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미가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 다 족속 중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81

이라.’; 지금 유대 땅 위에 마을이 들어섰고, 예루살렘에서 불과 35스타 디아thirty-five stadia(35 x 600피트)39 로 떨어진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 났으며, 또한 당신은 당신들의 첫 유대 행정 장관procurator 직을 맡고 있 는 퀴리니우스Publius Sulpicius Cyrenius, 51 B.C. -A.D. 21 (저스틴은 퀴리니우스Quirinius 를‘Cyrenius’라고 적었는데, 이는 동일인물이다.) 아래 만들어진 세금 에 대한 호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40 순교자 저스틴은 예수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자들에게 향하여 실제적으 로 예루살렘 근처 베들레헴에 예수 이름과 그의 부모의 호적이 올라가 있 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저스틴의 말에 따르면 누구나 원하고 알고 싶다면 호적 조사를 통해 진실을 알아보라고 하는 확고한 의 지를 표출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발흥』저서의 주인공인 영국 글라스고 대학의 권위 있는 초대 교회사에 전문가인 W. 프렌드W. H. C. 는Frend 아우구스투스 황제 최초 인구조 사가 B.C. 6년에 대대적으로 실시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헤롯이 제2성전을 시작한 B.C. 20년, 아그립바의 출생 B.C. 10년, 결국 예 수 B.C. 6년, 마지막으로 헤롯대왕이 세상을 떠난 B.C. 4년을 잡는다면 가 설에 근거한 내용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만다.41 신약에 관한 고고학자로 유명하여 알려진 서적만 해도 31권이 되는 윌리 엄 렘지 는William M. Ramsay, 1851-1939 스코틀랜드 고고학자이자 신약성경 학자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초기,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의 연 구하는 고전 고고학자classical archaeology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의 서적 중 『The Layman’s Guide to the New Testament(신약성서에 대한 레이먼의 지침서 - 지은이 역주)』에서 그 역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충돌이라는 관점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그는 그 10년간의 공백 사건이 동일한 사건으 로, 그에 대해 해명을 하고 있었다. 182 버려진 예수

“한가지 문제는‘연도’에 관련된다. 누가는 조심스럽게‘구레뇨(퀴리니 우스)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42라는 시대 동안, 전 지역의 세금 으로 호적조사를 시행한 배경에 이야기를 배치시킨다. 그러나 마태복음 에서 말하듯 퀴리니우스가 예수가 탄생한 날짜에 해당되는 헤롯의 죽음 후에 몇 년까지 시리아 총독governor이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록에는 로마 전 지역의 세금 부과 명복으로 시행 한 호구 조사가 A.D. 7년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불확실한 문제 를 제출할 수 있는 확실치 않는 해명은 퀴리니우스가 B.C. 7년 혹은 그 보다 더 일찍이 시리아의 보다 덜 중요한 관직에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 실에 의존하여 걸려 있다. 그리고 그 해, 이집트에 과세를 포함한 호구 조사를 명령했었다. 아마도 그 일을 통해 가정할 수 있는 것은 그 호구 조사가 팔레스틴 땅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43 이는 퀴리니우스가 알려지지 않았던 B.C. 4년 이전에 실시한 호구조사에 간접 혹은 직접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 사명에 놓여져 있는 듯하다. 그러 나 월리엄 렘지처럼 이집트가 그 시절에 호구 조사한 것으로 팔레스틴 땅 에서도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추측과 억지에 불과할 수도 있는 상황은 아 닐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그러한 추측을 조사하여 실제로 예수 출생 B.C. 4년 전에 있었을 법한 호구 조사를 증명할 수 없을까? 여전히 날짜 혹은 시기적인 면에서 고고학 혹은 역사적 서적 같은 눈에 띄는 확실하고도 공개적인 사실이 남아 있지 않음에 안타깝다. 예수 탄생 시점에 있었던 호구 조사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없지만 터 툴리안에 의하면 호적등록은 센티우스 사투르누스 총독이 통치하던 B.C. 9 년 시기에 시행되었다고 기록하는 것44을 볼 때 기원전 호구조사라는 역사 적인 사건이 유대 땅에서 적어도 한 번은 있었음을 반영해주기도 한다.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83

이제 그것의 진상에 관한 한 확실한 근거는 또 있다.『역사적 예수』의 공 동 저자인 게르트 타이쎈과 아네테 메르츠는 이를 두고서“물론 시리아 총 독이었던 퀴리니우스가 오론테스의 자유도시인 아파메아에서 호적조사를 시행한 것에 대한 증거가 한 비석에서 발견되었다.”라고 놀라움을 터트린 다. 물론 그 당시 호구 조사에 대한 내용을 비록 언급하지만, 이러한 비석 의 내용이 당시 예수가 살던 유대 땅까지 호구 조사를 실시했다는 결정적 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다만 그 때부터 시리아 영역에 그가 통치자로서 호구 조사에 관여한 것은 분명 확실한 것임을 알아야 했다.45 물론 그 비석 이 거짓말이라면 모든 것이 가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총독 혹은 통치자governor라는 말이 실제 통솔하는 개념 으로 정확한 용어로서‘총독’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원문에는 다만 다스린 다는 말로서 맡겨진 직책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곧“지휘하는”tobeleading, 그 리고 무언가를 맡은 담당으로서의“맡는다는”in charge of , 이 두 가지 개념을 염두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 고대 로마 시절, 로마 통치자는 사법적인 행정 또는 판결의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세금의 관리자로서 혹은 공식적인 절차로 자신이 맡은 지역에 보내져 관리하는 자를 말하고 있는 두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고 볼 수 있다. 곧 총독이라는 명칭은 자신의 권한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 기보다는 행정관들과 전 행정관들이 재임 시 갖게 되는 군사 지휘권인 임 페리움(속주)를 바로 위임 받는, 쉽게 말해 로마로부터 파견 내려온 부하 장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예를 든다면, 커다란 주(지역) 내의 소 구역subregion 안에서 의무를 행사 하는 기사단의 임무이자 통치자로서 성경에 언급된 유명한 본디오 빌라도 가 그 중 한 사람으로 보면 된다. 결국 정치적인 분할로 인하여 유다를 포 함하고 있었던 시리아의 속주the province of Syria위에 통치자의 통솔과 지휘가 아 닌 맡겨진 지휘관말이다. 이는 헬라어로‘호모나덴시안’homonadensians 이라고 184 버려진 예수

하는데, 군사 작전에 맡겨진 퀴리니우스의 직책은‘군정 장관’military governor 이였다. 그 때가 B.C. 12년과 2년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라틴어로 된 비석 을 통해 퀴리니우스가 이러한 두 가지 다른 경우로 시리아에 권위적인 지 휘를 하였던 견해에 무게를 더하여 주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상 기원전 BC 경에 연관된 인구조사를 가지고 누가복음의 그 시대에 구체적인 세금부과 사건도 있었다.46 오늘날 이스라엘 땅 지도를 중심으로 지중해 서쪽 방향에 위치한 시리아 땅, 즉 서쪽 부근에 위치한 아파메아Apamea 지역은‘황금도시’라 불린다. 또 한 그곳은 셀루쿠스 왕들의 연대본부 스터드stud-depot이기도 했다. 아파메아 는 현재 시리아 내의 다른 유적지를 비롯하여 매우 유명한 곳이며, 그곳의 고대 문화와 살아있는 유적지를 보고 싶다면 게브Ghab 골짜기 위에 굽어 보 이는 헤마Hama, 시리아 땅 북서부 방향으로 55km 정도에서 찾을 수 있다. ‘파메이크’Pharmake라고 이전에 알려진 아파메아는 과거 요새였고,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마케도니아 장군들 중에 한 명인 셀루쿠스 1세가 세력을 확장 했던 곳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후 제국을 분할했던 자들은 다름아 닌 디아도코이Diadochi였다. 이는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했던 마케도니아 장 군들을 보통 호칭하는 말이다. 그렇게 불리는 이들 중 마케도니아 장교officer 인‘셀루쿠스’Seleucus는 B.C. 300년에 아파메아, 그곳을 요새화하기 시작한 다. 그후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데 총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자신의 왕조를 세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시리아는 로마 속주 로Roman province 폼페이 장 군에 의해 B.C. 64년에 귀속되었다.47 “첫 퀴리니우스의 호구조사를 포함한 시리아의 새로운 국면은 아마 B.C. 9년 이맘 때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역사적인 증거로 그의 영향력은 시 리아-실리시아 속주Syria-Cilicia 의province 일부 지역인 남부·중부·북부 지 제 4 장 예기치 못한 탄생 185

방의 일부 지역에도 활동 중이었다. 이와 같은 고대 비석이 아파메아 인 구조사가 속주의 남부 지역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이두레Ituraea의 침공 에 연결 지어진다.”48 그곳에서 시리아 비문이 발견되었고, 그 비문이 바로 퀴리니우스의 호적 조사에 관련된 내용을 수록하고 있었다. 그는 아파메아 지역에 분부한 이 같은 호구조사 기업 절차에 대항하여 싸우는 동안 이두레 지역의 산지 사 람들은 로마 호구조사 담당자들의 가장 거칠게 대항을 꾀하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행동은 좀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약탈을 저지르고, 또한 그렇게 종양처럼 번졌다. 그곳 근처에 예수는 조만간 유대 땅을 흔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 돌과 사람키보다 조금 큰 올리브 나무 사이로 거 닐며 사막 근처를 하나님의 영과 숨쉬고 있었다. 그는 세상의 시끄러운 폭 음과 폭동 사이로 조용히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닥쳐올 디아볼로스와의 광야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186 버려진 예수

▐ 4장 미주 ▐ 1.  서기 전 3-1세기의 인물 중 다양한 예수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대사제권을 빼앗긴 파베트의 아들 예수, 대제사권을 빼앗긴 오니아스의 형제 예수, 대사 제가 된 가므리엘의 아들 예수, 대사제가 된 암메우스의 아들 예수, 소동을 일으켜 처형당한 아나누스의 아들 예수, 티베리아스의 집정관 사파아스의 아 들 예수, 도적단의 두목 사파트의 아들 예수, 나자렛의 메시아 예수 등등 상 당한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았다. <유대교와 예수, 조철수 지음, p169 참조> 2.  사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설과 나사렛에서 태어나 베들레헴에 도망한 것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으며 성경의 저자들 역시 의견을 달리 한 것을 주목하길 바란다. 오직 성서에“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 냐?”라는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을 뿐이다. 3. 마태복음 1:19. 4.  누가복음 1:1. 5.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유대고대사(Jewish Antiquities), 18.116-119, LCL. 6. Origen, Against Celsus, 1:47. 7.  누가복음 1:5-10. 8.  누가복음 1:8-9. 9.  누가복음 1:14. 10.  누가복음 1:34. 11.  신명기 22:24. 12. 요한복음 2:4. 13. 누가복음 1:38. 14. 누가복음 2:41-50. 15.  Mark Littleton, “101 Amazing Truths about JESUS That You Probably Don’t Know”, 의 저서 내용 중 chapter 9의 Jesus’s parents were almost Divorced 내용을 살펴보라. 16.  요세푸스,“유대 전쟁사”상권, 나남, 박정수·박찬웅 옮김, p. 199-200. 17.  Josephus, Antiquities 17.342-44; 17.354; 18.1-10 18.  D. J. Hayles, “The Roman Census and Jesus’ Birth”, Buried History 9/4 (Dec. 1973), pp. 113. 미국의 비영리 교육기관인 CFI(the Center for Inquiry)의 한 소속인 “세속적 인본주의 협의회 ”가Council for Secular Humanism 발간 하는 바이오 월간지“프리 인콰이어리Free Inquiry”2004년 12월, 2005년 1월 연 속으로“Metthew vs. Luke”(마태와 누가복음서 대조 - 지은이 역주)의 제 목으로 실은 톰 폴린Tom 의Flynn 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그 사이트가 Austin’s Atheism Blog 블로그에 실려있다. 그의 사이트는 다음과 같다.“Matthew vs. Luk: Disentangling the Gospel Contradictions”, Tue. December 23, 2008. 인용한 곳은 어바웃닷컴 사이트인 “About.com : Agnosticism/Atheism”에서 어스틴의 무신론 블로그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사실 톰 폴린은 리처드 도킨 스가 언급한 3장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에서 인용한 사례가 있다. 19. 마태복음 2장을 참조하라. 제 4 장 미주 187

20. 누가복음 2:1-7. 21.  Raymond Brown, Christ in the Gospels of the Liturgical Year, (Liturgical Press, 2008), p. 114. See for example, James Douglas Grant Dunn, Jesus Remembered, (Eerdmans, 2003) p344. Similarly, Erich S. Gruen, ‘The expansion of the empire under Augustus’, in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Volume 10, p157, Geza Vermes, The Nativity, Penguin 2006, p.96, W.D Davies and E. P. Sanders, ‘Jesus from the Jewish point of view’, in The Cambridge History of Judaism ed William Horbury, vol 3: the Early Roman Period, 1984, Anthony Harvey, A Companion to the New Testa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221, Meier, John P., A Marginal Jew: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Doubleday, 1991, v. 1, p. 213,Brown. Raymond E. The Birth of the Messiah: A Commentary on the Infancy Narratives in Matthew and Luke. London: G. Chapman, 1977, p. 554, A. N. Sherwin-White, pp. 166, 167, Fergus Millar (1990). “Reflections on the trials of Jesus”. A Tribute to Geza Vermes: Essays on Jewish and Christian Literature and History (JSOT Suppl. 100) [eds. P.R. Davies and R.T. White]. Sheffield: JSOT Press. pp. 355-81.  repr. in Millar. Fergus (2006). “The Greek World, the Jews, and the East”. Rome, the Greek World and the East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3: 139–163.  22.  F.F. Bruce,“The New Testament Documents: Are They Reliable?”, chapter VII,‘The writings of Luke”의 내용을 참조하라. 23.  John Hogg,“On the City of Abila, and the District Called Abilene near Mount Lebanon, and on a Latin Inscription at the River Lycus, in the North of Syria”, Journal of the Royal Geographical Society of London, Vol. 20 (1850), p. 43. [?] 24.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Lysanias’를 검색하여 참조. 25.  마태복음 2:1. 26.  Darrell Bock,“Studying the Historical Jesus: A Guide to Sources and Methods”(Michigan: Apollos, 2002), p. 68. 27.  누가복음 2:1-2. 28.  Sir William Mitchell Ramsay and Mark Wilson, “St. Paul: the traveler and Roman citizen”(USA: Angus Hudson, 2001), p. 300. 29.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사이트에서 “Servius Tullius”를 참조. 김경준,“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 원앤원북스, 2006, p46 참조하라. 30.  E.G. Hardy, “The Classical Quarterly”, “LECTIO SENATVS AND CENSVS UNDER AVGVSTVS 45” (Senatus and Census under Augustus), by Camberidge Journals, Vol. 13. Issue 01, Jan 1919. p.43-49. 31. Harold W. Hoehner,“Chronological aspects of the life of christ” (Zondervan:Michi gan, 1977), pp.14. 32.  E. Jerry Vardaman,“Chronos, kairos, Christos II: chronological, Nativity, and religious studies in memory of Ray Summers”(, 1998), p.62-63. Finegan, Jack.“Handbook of Biblical Chronology: Principles of Time Reckoning in the Ancient World and Problems of Chronology in the 188 버려진 예수

Bible.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4. 236-237. 33.  Trans. Horace Leonard Jones.“The Geography of Strabo”, Based in part upon the unfinished version of John R. S. Sterrett. Eight vol. Loeb Classical Libra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60. 1:xxv - xxvi. 34.  H.C. Hamilton, W. Falconer,“The Geography of Strabo, Vol.III”(London, 1857), preface. xviii. 35.  Harold W. Hoehner,“Chronological aspects of the life of christ” (Zondervan: Michigan, 1977), pp.14. 36.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Census in Egypt”를 검색하여 참조. 37.  A. Kuhrt, “The Ancient Near East: c. 3000–330BC”(Vol 2 Routledge, London. 1995, p. 695. 38.  J. B. Bury,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Twelve vols.(Cambridge: The Cambridge Ancient University Press, 1923-1929), 10:304, E. Jerry Vardaman, “Chronos, kairos, Christos 2: chronological, Nativity, and religious studies in memory of Ray Summers”(, 1998), p.61-68. 39. “거리”라는 뜻으로,‘stadia’(length)는 추후‘Stadion’(unit of length)로 변하여 길이의 단위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단위로 사용되었는데, 헤로도 투스(Herodotus)에 의하면 한 거리(Stade)는 600 피트와 동일했다. 40.  Justin Martyr,“The First Apology”, chapter XXXIV. - Place of Christ’ s birth forehold. http://www.ccel.org,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사이트에서 참조하라. 41. 이러한 사안으로 볼 때, F.F. Bruce, W. Ward Gasque에 의거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 사건은 약 3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견해와 조금은 일치한다. 42. 누가복음 2:2. 43.  William M. Ramsay,“The Layman’s Guide to the New Testament”(1973), p. 79. 44.  추가적으로 “유대고대사”를 저술한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총독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거로 나타난다. 45. 게르트 타이쎈·아네테 메르츠,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손성현 옮김, 1997, p.236. 46.  Christiananswers.net에서 ‘census’라는 단어를 찾아보고, 또한 “when did the Luke 2 census occur?”라 는 제 목 에 서 내 용 을 참 조 하 라. 즉, Wayne Brindle, “The Census and Quirinius: Luke 2:2”(Liberty University, 1984), pp.45-47. 참조. 47.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Apamea”단어를 검색하여 참조. 48. E. Jerry Vardaman, “Chronos, kairos, Christos 2: chronological, Nativity, and religious studies in memory of Ray Summers”(1998), p. 65. 제 4 장 미주 189



제 5 장 디아볼로스, 광야의 전쟁 그는 심리학자들이 표본처럼 제시하는 온전하고, 균형 잡히고, 순응적이고, 행복한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는 일반 시민의 모습과는 결코 닮지 않았다. 세상이 자신을 향해‘악마를 소유한 자’라고, 따라서 벌거벗기 운 채 나무에 못박혀 종말을 고하게 되리라고 얘기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세상에 순응할 수 없는 것이다. - C.S 루이스 - 악(Evil)은 여전히 네 글자로 된 단어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랑(Love) 또한 네 글자로 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1 - 톰 라이트 - 하나님을 만나는 자여!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니는 자여! 법정에 세워 시험하는 자여! 내게 말해다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였느뇨! 그를 만나더니 어떠하던가?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이 두려웠는가? 당신이 만난 예수는 어떤 자인가? 어서 내게 말해다오! 사단이여!

내겐 지금 사단에 대한 영적인 시각과 그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노력 중 이다. 그러한 시각으로 현재 독일의 한 그림을 보고 있다. 독일 15세기 쯤 그려진 그 작품은『악령 추방』이라는 중세 시대에 그린 그림 한 점으로 인 상적이면서 조금은 퇴색된 장면을 보여준다. 대략의 윤곽은 이러하다. 그 리스도가 한 여인의 몸 속에서 악령을 쫓아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아 래 부분을 보면 어느 여인의 입에서 날개를 달은 검은 색 몇 개가 날아 가 고 있다. 그 여인 뒤에는 3명의 사람들이 두 손을 든 채 말이다. 여인의 입 에서 날아 오르는 날개를 달은 검은 색은 악령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는 또 하나의 그림을 보고 있다. 이 작품은 계시록『짐승 숭배』라는 13 세기 드 퀸시의 작품이다. 몇몇 사람들은 앉아서 두 손을 짐승에게 벌리고 있으며, 이는 마치 그‘짐승’을 경배하는 듯한 이미지로, 또한 다른 이들은 짐승을 경배하지 않는 모습에 처형당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의거‘짐승’은 용의 부하로 나온다. 그 용은 상징적인 구 약의 뱀과 같다고 볼 수 있고, 마치 사단의 마지막 최대의 친구인 적그리스 도가 숭배하지 않은 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우두머리와 같은 이미지로 보인 다. 결국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고 방해하는 악의 세력이 된 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반응적으로 다른 이미지, 즉 마치 하늘의 혼인 잔 치에 천사가 초대하며 하늘이 열리더니 백마와 그것을 타는 자가 나타나는 요한계시록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입에서 칼을 뽑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 와 동시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의 대적인‘데리온’(이는‘짐승’으로 번역하 는데 사나운 짐승과 잔인한 야만인들)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과의 전쟁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듯한 모습말이다. 백마와 하늘의 군대들에 의해 결국 짐승과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히게 되었으니 이들 중 혹자는 유황불이 타오르는 못에 던져지고 다른 사람들은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는다.2 요한계시록의 다른 표현을 보면 천사가 심연스런 열쇠와 큰 쇠사슬로 묶었던 용이 등장 192 버려진 예수

한다. 용은 헬라어로‘드라콘’혹은 영어로‘드라곤’Dragon이라고 한다. 이는 과 거 고대의‘옵히스’(아담과 하와를 꼬신 뱀) 혹은‘디아볼로스’(예수를 시 험하는 자)이자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사단이다. 천 년이 차매 그 사단, 곧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가 감옥에서 풀려 나온다. 그는 곧 지상을 위협한 다. 그 결과 이스라엘 근처 마곡 땅의 왕, 곡Gog과 그 지역의 왕이 이스라엘 을 공격할 땅인 마곡Magog지역은 초토화된다. 그 지역 백성들의 넋을 빼놓는 수법으로 안전, 진리, 도덕에서부터 그들 을 해방시킨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죄를 짖 게 하도록 유혹의 발을 그들 심장에 들여놓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쟁 을 도모하도록 바다의 모래와 같은 수를 자신의 군대로 흡수한다. 이제‘옵히스’,‘드래곤’혹은‘디아볼로스’라고도 하는 그가 그런 바다 의 모래 같은 자신의 수 많은 짐승들, 곧 데리온들과 함께 세계의 정치와 군사력을 이용하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싸움을 붙여 지면에 널리 퍼트 린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져, 결국 그들은 태워진다. 급기야 이 땅 의 백성들을 미혹하는 디아볼로스가 불과 유황에 던져진 채 데리온들과 함 께 거짓 선지자들은 영원히 괴로움을 받는다. 이러한 다양한 환상들이 내 게는 흥미롭다.3 기독교에서 말하는‘사단’혹은‘귀신(깨끗지 못한 영)’, 게다가‘마귀’ 라고 하는 단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단의 전략 과 그들의 횡포를 알아보고자, 지금 제 2차 세계대전에『가디언The 』Guardian 지에 게재된 C.S.루이스의 서적,『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한 대목을 읽고 있었다. 그 내용은 바로 사단끼리의 주고 받는 편지들 중 한 대목이 나의 시선에 꽂혔다. “난 지금 전쟁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확산되는 고난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제 5 장 디아볼로스 광야의 전쟁 193

게야. 물론 공포라든지 사별처럼 육체적 고통을 당할 때에는 이성이 일 시적으로 마비된 상태를 틈타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을 잡아챌 수도 있지. 그러나 나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설사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인 간이 원수(하나님)의 본부에 구원을 요청하기만 하면 그의 요새는 거의 언제나 보호받게 되어 있다.” 사단, 그는 소위‘데리온’혹은‘마귀(정확한 어구나 어휘는 없는 단어)’ 들의 대장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들끼리 서로서로 주고 받 으며 나름대로 지구상의 인간들을 자신의 원수(그리스도)에서 떼어놓으려 는 방법들을 서로 교환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도저히 생각해봐도, 내겐 데리온들의 우두머리인 사단의 생각을 읽기에는 나와 다른 차원에서 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이 해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도 흡족히 읽기 힘든 상황에서 사단의 영 적인 상태와 마음을 읽으려니 루이스의 글을 참고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문 뜩 들었다. 더불어 아직 끝나지 않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 한 것이 있다면 적을 알아야 한다. 적을 알기 위해 우선 그의 모습과 행동, 게다가 그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창조자의 정신』의 저자 도로시 세이어즈는 다음과 같이 이러한 상황을 차분히 말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창조적 에너지가 전체 중 한 부분에서만 활성화되어 전체가 파괴되고 창조적 힘이 줄어든다. 실제로 악 마에게 합당한 몫을 주지 않고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몫을 줄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세상은 마치 사단과 그의 부하, 곧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데 리온이라고 하는 그들을 잘 이용하든지 혹은 이용당하든지 그들을 수용하 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분노, 욕설, 마약, 술, 살인과 전쟁, 강간, 재물, 감금과 폭행, 자살, 폭탄 테러, 이기심과 자만, 비교의식과 열등감, 교만, 성욕과 육욕 등이 인간을 194 버려진 예수

지배하고 있거나 지배 당하고 있는 자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 한 모순 위의 모순 같은 헤게모니를 추구하려는 듯 볼 수 있지만 하나님에 게 하나님 되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단까지 하나님의 손아귀에서 놀 수 있는 그런 분이어야 진정한 선에 속한 분 아닐까? 마치 추악한 세대가 하나님의 거룩성을 짓밟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 실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수놓고 있는다. 그 말은 또한 다른 비유로 ‘못생긴 친구 옆에 있어야 예뻐야 보인다’고 하는 말과 비유할 수 있지 않 을까? 선한 자 옆에 악한 자가 있음으로 선한 자는 악한 자를 잘 알고 더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악한 이가 존재해야 선한 이가 빛을 발하는 것과 대동소이하게 느껴진다. 물론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야 하겠지만 하나님이 악을 이용한다는 어려운(?) 생각은 여기서 하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시간 과 문장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째든 신약시대 이후에 나온 그림들을 보면서 언급한 그런 사단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진정 사실일까? 나의 마음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인 5 세기 신학자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영들이 실제로 날개를 달고 다니는 인 간처럼 생겼을 거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 부하고 있다. 천사이든 사단이든 용의 모습이든,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을 믿지 않듯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라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시각 혹은 영상적 측면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 묘사하려는 나의 고집처럼 화가나 작가들은 나름대로의 구약과 신약에 등 장하는 그 사단과 그의 부하 데리온들의 형태를 무엇이든 인용했을 것이 다. 과연 영적인 존재를 그릴 수 있을까? 사단을 본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사단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공통적인 것은 그러한 사고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각도로 본다는 것이 다. 다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약의 사단과 그 추종 세력들이 매일매일 인 제 5 장 디아볼로스 광야의 전쟁 195

간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흩어 놓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까? 한 예로 구약에서도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의 공통된 사실이 존재한다. 최고의 기타리스트였으며 준수한 다윗도 그랬고, 지혜를 받아 사용하는데 아끼지 않았던 솔로몬도 그랬고, 최고의 이방 신이 충만한 애굽의 땅에서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킨 모세도 그랬다. 이들에게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실컷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지만 이 들이 중간의 과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무언가 를 범하게 되어 잘못을 저지른다. 자신이 최고였을 때, 혹은 그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자신도 모르게 교묘하도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 공로자는 누 구일까?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혁혁한 공을 세우는데 앞장서지만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비 롯하여 수 많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점점 외부나 내부 의 욕망, 정욕, 욕심 또한 과욕과 더불어 교만이 슬슬 자리잡으면서 도움 준 자를 잊고 산다. 교묘하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판에 박히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야 할 하나님의 마음에서 우리는 왜 희미하게 멀어질까? 사 단이 보여줌으로 인해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출까? 아니면 아름다 운 여인으로 등장할까? 인간들의 탐욕과 정욕이라는 내면에 갖힌 마음 속 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 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 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 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하니\"4 196 버려진 예수

늘상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자들, 그 가운 데서도 바울처럼 이러한 경계를 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마음을 매일매일 되새긴다면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의 수준을 넘어서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에도 늘 주위를 돌며 벌거벗은 아이처럼 우리들의 속마음을 벗겨보아 마치 먹이감을 찍었을 때 교란시키는 사자들의 공격처럼 우리들의 속마음을 들 여다 보고 결정적인 순간에 낙아 채듯 우리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쉽게 약해진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상태를 감시해 약점을 이끌어 내어 계속적으로 정신적인 다운 상태를 만들어가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를 단번에 알아 차릴까? 물론 그가 사전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그런 어 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를 찾는 것보다 한 명의 하나님 자녀를 마음 속으로부터 무언가로 괴롭히는 그의 영특함을 따라갈 자가 있을까? 혹 어떤 사람의 내면 속에서 울리고 떨리는 목소리 가운데 나 의 귓가를 속삭이고 있지 않을까? ** * 복음서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위대한 자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자마다 수 도 없이 괴롭히는 사단이라는 존재가 늘 등장했다. 그 어느 날, 세례를 받 아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자 예수의 존재가 갑자기 부각된 사 단의 눈에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져 버린 사십 일을 금식한 예수에게 자기를 사랑하게 할 수도 있으며, 돈을 사랑하게 최면을 걸어 볼 수도 있고, 경건 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사단과 예수 앞에 놓여 있다. 게다가 예수는 지금 사십 일이나 금식 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이보다 스릴 넘치는 경우를 어디서 보는가? 매일 매일 음식의 생각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해도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예수는 외롭고 소외된 버려진 아들 제 5 장 디아볼로스 광야의 전쟁 197

일 뿐이라고 사단은 생각했을 것이다. 하늘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아들이 지상에 있다는 행운! 그것은 나사렛 예수라는 한 청년이 곧 자신의 것으로 될 소유물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처럼 이제 전락할 것이라고 자부하였을 지 도 모른다. 혹자는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 자신이라고 밝힌 그가 그저 사 십 일 금식하고 설마 사단에게서 시험을 못 이길까 봐서 전전긍긍할 수 있 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복음서 저자들의 공통점은 예수를 인 간과 다를 바 없는 자로 보았다. 약해지기도 했고, 병든 자 혹은 죽은 자를 위해 울기도 했고 아픔을 보고 참지 못했던 의로운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 는 것은 사실 아닌가? 아무리 신이라 해도 인간의 몸을 입은 이상 우리가 그토록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고통의 순간, 아픔, 슬픔, 웃음, 외로움, 가난, 배고픔, 그리고 이별이라는 이 울타리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는 정말 못 느 낄까? 누군가는 성경의 저자들이 예수의 시험을 두고 환상을 본 그대로를 그린 것으로 이해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진정 헛것을 보든, 아 니면 헛 것을 본 그대로가 아닌 직접 대면해 본 것이든 간에 마치 스케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배고픔을 느꼈을 예수는 사단과의 시험에서 나름 대로 괴로운 감정과 배고픔이라는 음식에 대한 유혹을 느꼈을 것도 감안해 야 했다. 그래서 혹시 과거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까라고 확신했던 구약 시대의 사단이 울타리로 두른 욥의 재물과 그의 집을 모두 가져가 그를 시험하는 것처럼 예수를 재물로 삼아 하나님과의 한바탕 승부 수를 띄우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 벽한 예수이지만 사단은 욥과의 승부에서 진 과거의 수모를 가진 자신의 체면을 뒤로한 채, 또 다시 사단은 작전에 들어갔을 것이다. 정직한 욥을 떼어놓으려는 사단의 공격이(물론 그 공격이 지고 말았지만) 이제 막 유대인들과 이 땅의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역과 죽음 그리고 부 198 버려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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