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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ndoned Jesus (버려진 예수)

Published by Billy Lee, 2021-12-01 17:55:44

Description: How to be abandoned Jesus from hi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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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증거가 성만찬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게르트 타이쎈 역시 그 시각을 세례와 성만찬에 대한 기독교 사상에서 출발한 부활에 초점을 맞춘 다. 그에 대해 경쟁자들 가운데 신들의 거리감에 대한 시각에 동의하는 표 현을 찾아 보았다. “죽어가는 신들에 대한 고대의 신앙이 존재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때 항상 두 명의 신이 등장한다. 하나는 아내가 되는 연상의 여신이고, 다 른 하나는 연하의 남편 신으로 언급되는데, 이 신은 대개의 경우 남성 신으로 등장한다. 연하의 남편 신은 죽음의 고통을 받고, 연상의 파트너 여신은 이를 슬퍼한다. 삶과 죽음의 투쟁 가운데 죽음이 어느 정도 극복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부활이 묘사되는 경우는 원시기 독교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11 필자 역시 한 때,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고통과 부활의 신에 대한 전형 모델은 기독교의 모델로 변화된 모방에 불과하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그 신들이 마치 신이 된 인간 예수로서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지극 히 인간적인 형태의 변형은 기대할 수 없었다. 사실상 부활 전까지는 다분 히 인간 그 자체였고, 죽음에 가까이 간 한 인물에 불과한 자였다. 그러한 신화의 부활 모델은 기독교 태생 이후에 등장하였다고 학계는 주목한다. 독일의 신학자 젤러Dieter Zeller 역시 2세기 이후로부터 비로서 고통과 부활 의 전형적인 신적 형태가 부각되었으며, 이들의 경쟁자들은 십자가에서 죽 음을 당하고 부활한 전형적인 경쟁자가 되었던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의 세례 의식에 견줄 수 있는 이방종교들, 곧‘데메테르’,‘퀴벨레’, ‘이스시’라는 밀의종교와의 다른 점은 이들은 그저 의식을 통해 통곡할 뿐 이지, 부활을 기념하거나 그 부활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기독교인들 자신들도 부활은 예수이외에 결코 없었다고 소리친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49

다. 처형 후 3일 만에 … 이들 예수의 제자들이 가공하여 만들어 놓을 여유 나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거니와 마음의 평안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오 히려 마가복음서의 자자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죽은 자 가운데 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12라는 마음을 제자들이 마음에 담아 두었다고 진술한다. 또 잠시 뒤에 제자들이 깨끗지 못한 영이 있는 유대인을 고치지 못하여“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꾸짓는 예수의 메시지 가운데 갈릴리에 서 선포한 메시지, 곧“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13라 는 말을 두고서 제자들은 그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했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낱낱히 공개했다. 부활을 만들어 놓을 시간은 오히려 제자들보다 다른 자에게 넘겨야 했 다. 신이라는 자…, 하나님이라는 그분만이 그 죽음을 다시 삶으로 돌려 놓 아야 할 차례였다. 시체로 변한 예수의 죽음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가 능한 일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 에너지가 무엇이던 간에 중요한 것 은 그와 함께 동거하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부활이라는 몰상식하고 비이성적 이치로 인해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것은 거짓된 죽음으로 인해 점점 시들어가는 것처럼 급기야 꺼진 듯이 느껴질 수도 있었던 시간에서 출발했다. 그렇게 예수가 당한 그 부활은 우 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 부활이라는 영역은 신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비 슷하게도 인간이 만들어놓은 신화 역시 인간의 영역으로서 남는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상상 속에서 거쳐간 무수히 많은 환상적인 표현으로 부활 역시 ‘신적인 가공’이 되어갔음에도…. 확고한 사실에 입각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그 죽음 앞에 놓인 예수에 대한‘부활의 가공’은 바로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죽은 자를 살리고 있다 고 하는 것에 대한 문장이 함께 녹아 있는“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 데 다시 살리셨습니다.”14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었고, 초기 기독교들은 그것을 믿었다. 특히 바울은“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 450 버려진 예수

대 …”15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부활은 우리의 몫이 아니요, 그 누가 퍼트린 대목이 아닌 구약의 창조자이시며 만유의 구세주인 여호와 하 나님의 영역이기에 다른 의심은 없다. 또한 니체가 말하는“신은 죽었다” 고 할 때 그 신은 하나님이 아니다. 혹시 니체의 말이 맞다면 그 신은 아마 진정 그리스∙로마에서 만든 인간이 만든 가공의 신일까? 만약 부활이 누군가의 첫 소산물이라면 그것은 신이자 신의 축복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저주였다. 우리의 소유가 아니기에 부활한 자는 바 로 신의 은총을 받은 자이며 그 승리는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 활은 생소하고 낯설게 다가왔다. 우리들의 눈에 볼 때 신의 은총인 부활은 ‘저주’로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승천할 때 본 자만의 전유물 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축복이요, 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저주이다. 부 활의 승리와 연관 지을 수 있는 그 대반격은‘신의 승리적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승리는 오로지 하나님만의 것이고, 적어도 이방인들에게 그 승리는 그렇게 아무 상관이 없는 듯했다. 처형된 삼 일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침묵이기에 저주였다.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들었던 말도 안 되는‘부활’에 대한 실망스런 저주…, 그래서 그것은 저주였다. 물론, 유대인들은 대대로 마카베오 하권처럼 혹은 구약성경의 묵시록에 해당되는 구절들을 찾아 알듯이, 모두가 언젠가는 죽음에 놓여 있었던 유 대인들이 모두 함께 부활되는 그날만을 기다렸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종말론적 사상’을 가진 유대인 들과 함께 부인할 수 없다. 다만, 1세기 유대인 작가였던 요세푸스와 동시 대를 주름 잡았던 신학자였지만 유대인으로서 필로의 견해는 기독교의 부 활 사상과 오히려 달랐다고 해야 할까? 너무 극명하게 대립되는 장면을 그의 책『Questions and Answers on Gensis(창세기의 질문과 대답들 - 지은이 역주)』에서 유대인들의 부활에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51

대한 좀더 확고한 세부적인 견해를 엿볼 수 있었다. “… … 이 말은 무슨 뜻인가?‘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 의 아비가 될지라’(창17:4). … … 그럼으로 아버지(여호와 하나님)가 현 명한 자에게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수여한 그 특권이 절정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는 오직 이 세계로부터 저 하늘heaven이 이르도록 처신하지 않 을 것이며 또한 하늘에서부터 인지할 수 있는 지력에 의한 저 비물질적 인‘영적인 세계’incoporeal world에 지나지 아니한다. 다만 그를 자신이 속 한 이 세계에 다시 들어올릴 것이다. 그에게 자신을 보여주어 그가 자신 안에 있지 아니한 채로 그것이 가능하지 아니할 지 언정, 고결한 자신 이 잡고 예의주시하는 지켜보는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적인 사람에 의하여 가능한 한 빨리 가시적인 기관들 속에서 멀리 그를 일으킬 것이 다.”16 비록 필로의 사상이 부활 사상의 대표자가 아닐지 언정 그에 의거 유대 인들이 생각하는 부활에 관한 유대 사상적 측면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 다. 성경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 이들은 지상에서 부활이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 지극히 미래의 부활이 오거나 마지막 날이 다가오던, 저 하늘 어딘 가가 아닌 혹은 하나님의 나라가 저 땅에 펼쳐질 그런 영적인 세계를 가지 는 것과는 달리 이 땅에 다시 펼쳐질 부활 신앙을 가졌다는데 유대인의 부 활신앙과 초기 기독교 신앙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어서 역시 이들에게는 예수 단독의 부활적인 측면에서 실로 놀라움과 황당하였음은 짐작되는 대 목이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신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믿는 하 나님의 나라는 이미 진행형이며, 그래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사상은 다르다. 부활 역시 미래의 일이었지만 기독교에서 예수라는 자는 이미 부 452 버려진 예수

활 했다는 것이 다르다. 만약 당신이 그 어떤 일로서 일세기 유대인들에게“부활이 일어났다”고 들었다면 그들은 N.T. 라이트가 말하는‘부활’이라는 용어가 단지“다시 육신을 입는 것”만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라 주장할 지 모른다. 곧 유대인들 의 부활은 죽음 이후의 그 어떤 다른 삶이 아닌 단순히 부활 이전의 몸 그 자체로서 가리키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그런고로 유대인들은 육체적인 몸 이 다시 의인에 의하여 일으켜질 것이며 순교자들이 다시 회복될 것은 집 합적인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결국 유대인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 은 예수 혼자서 다시 이 땅에 슬며시 발을 디디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 으로 부활한 자를 두고 유대인 생각에 예수를 미친 자라고 밖에 할 말이 없 다. 죽은 자가 다시 이 땅에 거닐다니? 그것도 혼자…. 유대인 사고에 육체와 분리된 측면의 사고에서 하늘은 그저 안전한 장소 를 제공하는 터일뿐이었다. 그들은 결국 육체보다는 영적인 상태를 부활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하면 결코 유대인들의 부활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본 예수에게서 본 부활은 다분히 몸과 영혼 이 분리되지 않는 과거 예수 그 자체의 몸, 즉 십자가에 달린 상처 투성이 의 몸과 그분의 과거에 가진 영 그대로의 순수하고 맑은 것을 동시에 가진 전체의 몸을 가진 것으로 이해했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그러기에 유대인 들이 말하는 부활에 대한 사안과는 얼마만큼 멀리 떨어지고 있는지 평가할 수가 있다. 비록 유대인들이 부활에 대한 집중적이고 핵심적인 통일된 사실이 실제 로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는 것도 헤아릴 줄 알아야 했다. 그만 큼 토라(모세오경)라는 통일성을 갖춘 유대인들도 부활에서만큼은 다양한 형태를 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에스겔 37장에 등장하는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부활과는 전혀, 아니 결코 들어맞을 수 없다.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53

유대인들에게 부활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상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제국이 펼쳐진다는 사실에 더 흥분했고, 그러한 아름다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곧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 새로운 옷을 입거나 혹은 모든 죽은 의인들이 다시 살아나 새 언약과 새로운 시대를…, 그 이상적인 꿈과 언약으로 부활을 구약시대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유대인으로서 혹은 예수의 제자로서 가질 수 있었던 부활 신앙을 표현하기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아니면 그 대답은 뻔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부활은 미친자의 소행 이라고…. 당연히 예수 추종자들이 두려움을 정복하기에는 3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고 세계를 정복해야 하는 사명을 갖기에는 그 짧은 시간에 맞춰 방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기에도 너무 턱없이 촉박한 시간 속의 여행이다. 유대인들 의 풀밭 냄새와 지중해 연안에서, 아니 오히려 자연 현상 가운데 품어져 내 려오는 다양한 자연의 향기 속에서 두드러지게 탄복할 만한 에스겔서의 들 어맞는 천국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했지만 예수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렇게 유대인들이 외치던 부활은 차디찬 죽음으로 나타났기에 3일간은 지 옥 그 자체였다. 그저 간구하던 그들의 목을 더욱더 갈급하게 만들었을 뿐 이었다. 그 사실에 대한 확실성은 두려움을 가졌던 예수 제자들의 행동에 나타나고 있었다. 비록 예수가 스스로 죽기 전, 3일 후에 있어질 그 어떤 사건을 언급하였 음에도 예수의 제자들은 그러한 말보다는 당장 눈 앞에 현실을 살핀 것이 부활을 가능케 하였다. 즉, 어느 유대인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로마 병사 들의 화력 넘치는 힘과 기개에 찬 무력 응징과 피비린내 나는 향기들 속에 살고 싶지 않고, 다만 그들에게서 하늘의 나라를 보고 싶은 그들의 충동은 복음서 저자들의 말을 통해 잘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제자들 역 시 어느 유대인 못지 않게 예수 한 사람의 부활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당 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했고, 제자들 역시 그런 헛된 망상에 454 버려진 예수

서 예수에게 영적인 따귀를 맞아야 했다. 이 땅은 바로 상상은 불허하고 상 식만이 허락되는 세계이기 때문일까? 지극히 현실적인 이 땅에서도 하나님에게는 흙 위에 기적과도 같은 현실 이지만 그럼에도 제자들을 비롯하여 유대인들은 기적보다 지상의 왕국을 더 펼쳐 보이고자 했다. 더 치욕적으로 말한다면 배고픈 배를 움켜쥐며 무 언가를 얻어내려는 심보로 제자들은 유대 왕이라고 한 예수 앞에서 발버둥 을 치기 시작한 것이 복음서에 잘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 석었던 과오를 기억할까? 물론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복음서를 작성하면서 자신들의 무지를 독자들에게 드러내고 있지 않았는가 보라! 기적도 그들에게는 잠시 지나가는 안개와 같았던 것은 성경을 보아 알 것이다. 왕으로 삼으려고 예수를 찾아 다니기에 그가 도망 다녔다는 사실 앞에 얼마나 더 치욕적인 유대인들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아니 더한 부와 명예를 획득코자 탄복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핥아가는 현대인들마저 이들 보다 잘한단 말인가? 부와 명예를 탐독한 자들은 그것이 평범함 그 단어 자 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은 많다. 부활에 앞서 기적을 바라고 환상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제자들 역시 추호 도 없다고 말하지 못했음은 한탄할 노릇이 되고 말았다. 당시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은 기적이 아니었다. 죽음은 현실이 되었고, 부활은 그들에게 헛된 망상이었다. 날조하기에는 이미 마음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죽음 앞 에서 모든 인간은 신을 생각하고 연관 짓는다. 죽음을 앞두고‘베일에 쌓인 체 말없이 고통을 지켜보는 듯’하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필립 얀시는 이를 두고서“복음서들은 하나같이 제 자들이 예수에게 일어난 동일한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날까봐 무서워한 채, 걸어 잠근 문 앞에서 움츠리고 위축되고 있는 중”임을 고백했다.17 예수의 죽음으로 그들에게 닥친 신랄한 충격은 상상하지 않아도 곱절의 배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죽음 앞에 놓이면 신을 찾는다. 고통 속에 놓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55

이면 또한 신을 찾는다. 실패와 좌절 앞에 놓이면 더욱이 신을 찾는다. 이 들의 공통점은 미안하지만“신이 어디에 있냐?”라고 외친다. 사실, 그들이 외치듯 없었다. 비록 죽은 시각 땅이 흔들리고 장막이 갈라지는 일들을 보 았음에도 그들에게는 기적은 없었다. 예수의 죽음 앞에 신이 없었듯이 말 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3일 후부터 유대 땅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대 땅은 뒤흔들리는 무언가, 즉 말에서 말이 돌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살아났다고! 빈 무덤과 육체의 부활? 심카 야코보비치 저널리스트에 의해 20세기 최대 이슈로 자리매김했던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신학적으로 많은 논쟁과 비판을 불러일으킨 다큐멘 터리『The Lost Tomb of Jesus(예수님의 마지막 무덤)』라는 예수와 그의 가족들의 무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밝히려고 했던 내용에 대해 이들은 예수 시체가 남아있고 영혼만 하늘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달라스 신학교 데럴 바크 교수는 신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사 실 하나를 언급한다. 즉, 예수의 무덤을 찾았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한 자들의 의견은 예수가 몸은 지상에 남기고 영혼 혹은 영만 하늘에 있다 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크 교수는“몸의 부활은 유대교의 유산이 라”고 말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마카비서 외경에 보면 자신들의 부활을 믿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 려고 하지 않아 죽음에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의 손과 혀를 태연하게 자르 라고 하는 내용을 바크 교수는 잘 설명하고 있었다. 모든 유대인들에게 적 용할 수 없을지언정, 사실 예수의 몸과 영혼이 따로 존재했고 혹은 다르게 살아갔다가 분리된 체로 몸만 남고 하늘에 올라간 것, 즉 뼈와 살이 존재한 몸만 지상 한 가운데에 남았다고 한다면 기독교 정신에서 이는 어긋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그 사실이 1세기 혹은 성경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로 456 버려진 예수

마인들 혹은 예수를 부인하고 미워하고 게다가 예수의 몸을 발견했다고 언 급한 유대인들이 있을지에 대한 사실이 중요하다. 즉, 예수의 부활 이후 그 당시 점검할 그 어떤 근거들, 즉 목록이나 책들이 남아있다고 한다면 몇 백 년 뒤의 성경을 만들었던 최종 니케아 회의에서 벌어진 예수가 신이자 인 간임을 재검토하였을 것이다. 동시에 이루어진 몸과 영혼의 부활은 사실 당시 로마인들이나 유대인들 에게 생소했고, 그 진실된‘예수의 부활’의 증거에 있어서는 반대하는 의 견이 많아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고문하고 반론했었다. 오히려 그 핍박이 더 기독교인들을 비롯하여 유대인, 로마인들까지 유럽을 온통 삼킬 만한 반론이 없었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영혼과 몸의 분리? 문제는 육체가 하늘에 올라갔고 영이 이 땅에 남았다 고 하는 사실은 어떠할까? 혹은 더 재미있게 육체와 함께 영혼이 지상에 남 았다고 하는 것은 어떠할까?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러한 논쟁이 오늘날의 일 만은 아니라고 보아야 했다. 그것은 과거 기독교의 역사를 종합해 볼 때 지 나간 사례였을 뿐, 초기 기독교에서 이미 시작된 이상한 언급이자 오류를 낳게 된 변명들의 한 토막 이야기였다. 그 결말은 기독교의 교리에 승리를 얻었고 자축하기도 했다. 물론 신앙의 뿌리나 부활에 대한 찬반에 대한 결말의 진위 여부는 믿음 을 수반한다. 부활, 그것은 용기를 수반하는‘믿음’이다. 그러나 또 중요한 사실은 그 믿음이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 말은 믿음이 있다면 그 믿어야 할 대상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 현상들의 모음집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부활 사건이 있기에 우리는 믿음이 생긴 것이고, 부활이 없다면 그 사실 앞에 우리는 믿음이 필요 없다. 즉, 믿음의 대상이 없는데 무엇을 믿으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의 대상인 부활은 하루 아침에 이 루어지지 않았고, 그 시작은 몸과 영혼이 같이 올라간 예수의 지나간 메시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57

지와 현상들로 남았다. 그럼으로써‘하나도 남기지 않은 예수의 발자취’와 그가 남긴 유일한 선 물인‘성령(거룩한 영)’이라는 독특한 공통점을 만들어놓았다. 이는 작용 과 반작용, 즉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벌어진 부작용이 아닌 완벽한 믿음과 그 사실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라고 불릴 수 있었던 메시야이자 엄연히 따지자면,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요 기독교의 창 시자인, 그 인간이자 신인 예수라는 자가 지구라는 땅 위에 깊이 더듬어 온 길이자 종적, 그리고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역사비평적 차원에서 만약 그러한 지상에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자원들 을 총동원하여 다양한 방법들을 가지고 빈 무덤으로 되어버린 초라한 시체 앞에 예수는 살아 나와 잠시 자신의 제자들과 관련된 자들을 만난 그 사실 을 증명하고 또한 반박할 수 있는 소지가 제공된다면 좋겠지만, 전문가들 이 지적하듯 그러한 것들은 모두 불가능하다는 토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 는 것 같다. 왜냐 하면 증거물을 모두 예수가 가져간 셈이기 때문이다. 더 깊이 말한다면, 과거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높낮이나 깊 이가 다르고 믿음의 그 어떤 행태가 다르기보다는 그것을 위시하여 신앙과 예수의 가르침 게다가 앞에서 언급한 로마 역사와 유대 문화,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함께 어울러진 협력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 그것들이 바 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역사가 기독교 문화로 재생되었다. 예수가 남긴‘세례’,‘성만찬’,‘성령’혹은‘하나님의 영’이라는 것들을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도 그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전달되었으며 지속 적으로 제자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그렇게 시작된 역사의 한복판에 서 처음 출발했고, 그 이후 세대들 역시 그 믿음이 역사로서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을 토대로 다른 모든 것들이 그와 동일하다고 본다. ** * 사실 빈 무덤 앞에 과학을 맹신하고 추종하는 현대인들에게 부활은 의심 458 버려진 예수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복음서는 부활한 예수 사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의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보고서도 믿지 못했다. 특별히‘도마의 의심’에 대한 내용을 기독 교인이라면 인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요한복음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문장의 색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앞에 의심하는 도마를 그리고 있다. 과연 도마만이 예수 부활을 의심했을까? 아니면 열한 제 자들 모두 육체의 부활을 믿 지 못했을까? 요한복음의 저 자는 우선, 빈 무덤 앞에 달 려간 제자들 모두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말 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 ▲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의1571-1610 1634년 작품, <의심하는 다. 곧이어 마리아는 빈 무 도마> 덤 앞에서 서서 울었다. 그 사이 그녀가 몸을 구부려 무덤 안을 보았더니 두 천사가 보였다. 또한 예수를 보고도 대화하지만 처음엔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보지 못했다고 요한복음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 복음서의 끝무렵 에는 그물에 걸린 생선을 잡은 제자들과 함께 육지로 나와 예수는 음식을 먹었다고 진술한다. 육체를 입은 인간으로서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을 요한 복음의 저자는 보여주고 있었다. 누가복음은 부활한 예수와 동행했던 엠마오 길로 가는 두 제자를 언급한 다. 엠마오로 도착한 그들과 더불어 다른 제자들 앞에 예수가 등장했지만 그들은 두려워했고, 예수는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며 자신이 삼일 후 에 육체를 입고 부활한 것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기뻐했지만 아직 도 믿지 못함을 누가복음의 저자는 세심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예수가 살 과 뼈가 있었음을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먹고서야 그들은 마음을 열어 성경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59

을 깨우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 부활에 대해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이 아님을 여 러 사람 앞에서 드러내었다. 그 부활의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자 하늘의 부 활에 대한 모형으로 다가선다. 그들이 느꼈던 망상과 역사는 진실과 거짓 이 팽배한 가운데 가려진다. 또한 과학과 종교 역시 진실과 거짓이 누군가 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오히려 과학이 더 종교적으로 과학주의자 혹은 그 제자들로서의 심복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그 추종자들이 과학을 이용하여 종교를 무시한다. 그럼에도 지금은 과학과 종교가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상 황에 입각했다. 또한 반대적 측면에서 볼 때, 근본적으로 과학과 종교는 함 께 논의가 되고자 했으나 과거 종교가 과학을 무시한 적도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빈 무덤 혹은 뼈가 있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바 로‘현실과 역사’들을 토대로 만들어가는 과학적인 합리성과 함께, 게다가 당연히 지상에 있을 수 없었던 비현실이지만 결코 과학적으로 발견해 낼 수 없는 분야인 비과학적인 사건들을 함께 들고 나온다. 사복음서의 저자들처럼 땅 위에 일어났던 유대와 로마 현장 앞에서 탄생 한 예수와 그의 부활이 남긴 비합리적인 혹은 비과학적인 현상 뒤에도 그 것들이 마치 현실인 양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 었던 몸과 그의 영혼 그 자체로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로 올라간 예수를 믿 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전에 이미 제자들과 함께 예수는 물고기를 먹으며 식 사까지 하였다고 말이다. 침묵하지 않았던 서류들 실제 예수의 처형에 대한 사실적 근거는 예수 사후에 남겨놓은 자들이 성경 이외에 몇 개가 된다. 타키투스, 마라 바르 사라피온Mara Bar ,Sarapion 플 라비우스, 터튤리안(터툴리아누스) 등등의 증언으로 인해 예수가 십자가 에 못 박힌 사실은 이미 증명되고 있었다. 그것을 넘어서서 극적인 것이 바 460 버려진 예수

로 그 죽음만을 나타내는 한 인간이 버려진 인간으로만 끝나지 않았고, 신 으로 승격되었다는 점이다. 예수 부활의 명백은 순교자들과 함께 계속 이 어지고 있었다. 유대인들 혹은 이방인들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도외 시하는 문둥병자를 고쳐주고, 심지어는 사랑함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알리긴 했으나, 예수 자신의 생명은 어찌하지 못 했다고 했던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부활의 증거로 남았다. 이제 불과 얼마 후 다시 버려진 그가 돌아오는 등장으로 로마는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유대인들은 예수라는 존재 때문에 다시 한 번 후폭풍을 맞는다. 사람들에게 버려져 잊혀지나 싶었지만 불씨가 아직 남아 수 세기 동안 부활에 대한 논란거리가 등장하게 된다. 나사렛 예수라는 한 인물 이 외에는 여지없이 신이자 인간이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다른 이야기는 결코 없었고, 그와 같이 오늘날 대다수 국민들의 존경과 경외심은 다른 곳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던 것 같다. 부활의 논란거리를 지우고자 부활에 대한 근거를 나타내는 이야기가 나 타난 서류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세월이 흐른 시기에 예수의 죽음에 대 한 법정책임 공방을 느끼듯, 먼저 플라비우스의 증언은 유대 귀족과 로마 총독의 공조에 모두 책임을 돌린 것 같으며 사라피온은 유대 백성들에게, 타키투스는 예수를 재판한 본디오 빌라도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었다. 첫째로 사모사타Samosata지역 출신의 시리아인 스토어 철학자인 사라피온 은Mara Bar Sarapion 이방인이다. 이방인이었던 그가 예수에 대한 최초의 이방적 증거로 남겼던 사라피온의 개인 편지에서 우리는 죽음을 재촉한 현명한 왕 으로서의 한 인간을 만날 수가 있다. “… …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여서 무슨 이익을 보았느냐? 그 들이 무슨 일을 했길래 기아와 역병으로 되갚음 당했느냐? 사모스 섬 사람들이 피타고라스를 불태워 온 나라가 한 순간에 모래로 뒤덮이게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61

되었으니 그들에게 무슨 득이 있겠느냐? 유대인들이 현명한 왕을 처형 하고 그때부터 그 나라를 빼앗겼으니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신께서는 그 세 현자들을 위해서 똑같이 복수를 행하셨다. 아테네 사람 들은 굶주려 죽었고, 사모스 섬은 바닷물로 뒤덮였으며, 유대인들은 살 육 당하고 자기네 나라에서 쫓겨나 여기저기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소 크라테스는 죽지 않았다 - 플라톤 때문에, 피타고라스도 아직 살아있 다-헤라스타투에 때문에, 현명한 왕도 살아 있다 - 그가 준 새로운 율 법 때문에…”18 우리는 그가 어디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와 더불어 그 저자의 연대를 알 수 없다. A.D. 73년 직후에 집필로 주장하는 자들이 간혹 있지만 확실치 않고 다만 로마의 감옥에서 아들인 사라피온에게 쓴 편지임은 분명하다.19 이 편지는 자신이 실형을 선고 받고 곧 죽음을 목격 할 것이라는 상황에 직면한 채 아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통해 많은 권고와 경고들을 남긴 기록이다. 지혜를 그 무엇보다 더 추구하라고 주장하여‘삶 이 묻어나는 경고’가 감동적이며 건축가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 유명 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리고 로마의 속국으로서 창과 칼로 로마에서 벗 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자들을 향해‘사랑’이라는 새로운 율법을 전한 범죄 자이자 유대인의 왕으로 낙인 찍혔던 예수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처지에 대 해 변호하는 놀라운 솜씨를 그려낸다. 중요한 것은 그를 통해 예수 십자가 의 죽음과 엮어갈 수 밖에 없는 부활의 당연함을 아주 놀랍도록 비교하며 나타내고 있었다. 연대를 추정하는 자들에 의거 유대와 로마의 피 바다를 이룬 전쟁의 참 혹함이 자치권을 빼앗기고 학살당하고 흩어져 살게 된 유대 민족의 형벌 로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짐작 미루어 보면 유대와 로마 전쟁인 A.D. 66-74년(유대전쟁)의 참혹한 전쟁을 익히 들었던 것이다. 유대 전쟁 당시 462 버려진 예수

국외 추방이 있었고, 또한 바 코흐바 전쟁AD132-135에도 로마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진입 금지를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에 후대의 어느 한 사람의 편지에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물론 그 근거로서 이 편지의 시대적인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기 어렵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방 인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전승, 즉 새로운 율법(사랑)에 대해 들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요세푸스와 함께 유대교, 또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연관성을 조사 한 자들이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요시바 대학교 에서Yeshiva Universtiy 고전 교수로 재직 중인 루이스 펠드먼Louis H. ,Feldman 그리고 타마 비쥬스 대학교 의Tama Bijutsu University 교수인 고헤이 하타Gohei hata 와 함께 그 들이 집필한 저서가 있다. 그들에 의하면 요세푸스가 예수에 관한 훨씬 긴 분량의 책『플라비우스의 증언 』에서Testimonium Flavianum 예수의 삶과 죽음, 기적 과 기사, 죽음과 부활에 대해 철저하게 확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주 장을 펼친다. 그래서 그는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고대 문학 중에서 가장 논 란이 되고 있는 논쟁을 불러들이고 있다. 요세푸스의 저서 중 일부분을 인 용해본다. “그 때 예수라는 자가 살고 있던 무렵, 만약 누군가가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야만 한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눈부시도록 놀랄 만한 뛰어난 솜씨(기적)로 일했고, 기쁘게 진리를 받아 들임으로써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그는 대다수 유대인들과 수 많은 그 리스 헬라인들을 설득시켰다. 그는 메시야(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우 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다는 말을 듣 고 난 이후,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선고를 내렸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 랑한 사람들은 끝내 버리지 않았다. 삼일 만에 그는 그들에게 생명을 되 찾아 부활해서 나타났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미 그에 대해 이러한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63

무수히 많은 놀랄 만한 일들을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을 따라 소위 그리스도인Christians의 무리들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사라지지 않고 있다.”20 펠드먼과 하타, 이들 두 명에 의거『교회사History of Church』의 저자이면서 가 이사랴 출신의 유세비우스 역시Eusebius,A.D.260-339 윗글을 첫 인용하고 있다. 그 래서 그 이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내용은 대단히 중요한 성취라고 언급한 다. 또한 반대로 예수의 신성divine과 수난passion, 그리고 메시야 사상messiahship 까지의 실제적인 증거물로서 간주하는 사실에서 여전히 이 문장은 사기성 이 농후한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는 요세푸스의 이 저서를 통해‘성취’와 ‘사기’라는 두 노선에서 이견이 엇갈리는 의견을 동시에 내놓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 역사가로부터 출생한 증거가 본래 초기 기독교 시대에 있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지배되어 온 격한 토론에 확실한 증 거로서만 생각된다. 더욱이 이러한 증언이 16세기에 접어들 무렵, 토론의 쟁점이 부각되어 버렸다. 오늘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학자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내용들은 바로 요세푸스의 글에서 약간의‘변조’혹은‘가필’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글 안에 후대의 누군가가 어떤 구절을 첨가했다 는 잘못된 행위가 그 저서 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요세푸스가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필체나 어휘가 상당 히 다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글을 읽고 있다면“그 는 메시야였다.”라는 말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실제 요세푸스의 다 른 저서에서는 예수에 대해 확실한 정황이나 근거를 제시할만큼 기독교를 옹호하는 자가 아니다. 그 말에 더 확신을 주는 증거가 여기 있다. 『On the Gospel of Matthew(마태복음 주석 - 지은이 역주)』의 저자 오리 게네스 혹은 오리겐 는Origen Adamantius, A.D. 185-254 자신의 책에서 요세푸스가 예수 464 버려진 예수

를 믿지 않았다는 말을 남긴다. “예루살렘 성전이 지면에서 철저히 파괴되었던 거대한 재난에 유대백성 들이 왜 고통을 초래했는지 드러내기를 바랄 때, 유대고대사 12권을 집 필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거 그들에게 일 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받 아들이지 않았던 그가 사도 야고보의 의를 두고 위대했다는 증거를 아 직 소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말하길 백성들이 야고보 때문에 자신 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21 오리겐은 다분히 요세푸스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자신들의 거룩한 성이 무너지고 있었다고 하고, 동시에 유대인들의 편이 되었던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더불어 오리겐에 의거 요세푸스가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으며, 요세푸스의 예수 증거에 대해 언급한 유세비우스는 오리겐보다 후 대 사람인 것도 유념해야 할 덕목이다. 그 불투명한 언급 이외에 요세푸스는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더 할애하는 것보다, 이상하게도 그는 세례 요한을 더 중점적으로 치켜 세 우고 있었다. 요세푸스가 세례 요한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입증하는 저서 를 펼치는 순간에도 예수의 죽음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그는 주위에서 말하길 신기한 능력과 이적을 행했음에도 불특정 인물이 되고 말 았다. 게다가 요세푸스의 또 하나의 저작,『유대고대사』에 따르면“아나누스(?) 는 산헤드린 공의회를 소집하여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을 산헤드린 앞에 세우고 율법 위반자로 그들을 고소하여 돌로 쳐죽이도록 보냈다.”라고 하는 문장을 보면서 성경이 과거 믿음으로만 모 든 것을 보아야 하는 성경이 아닌 그것을 넘어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65

하여 그 믿음과 신뢰라는 토대 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 경이 역사적인 진정한 자료 수집과 함께 수록할 수 있었다. 셋째,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A.D.14-68년 사이의 찬란했던 로마 시 대의 역사를 기록한 인물이다. 소아시아의 총독으로 재직하였던 그는『연 대기』라는 저서를 펴낸 유명한 자이며 그 제목의 책을 시리즈로 여러 권을 펴냈다. 현재는 몇 권 안 남아 있지만 그래도 당시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책 중에 하나이다. 그의 책 후반에 예수 그리스도 추종자들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평소부터 꺼림직한 행위로 세상 사람들이 증오하며‘크리스투 스 신봉자(그리스도교 신자들)’라 부르는 자들이었다. 이 일파의 명칭 의 유래가 된 크리스투스(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자는 티베리우스 치세 하에 황제 속리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본디오 빌라도)에 의 해 처형되었다. 그 당장은 이해롭기 짝없는 미신이 일시 잠잠해졌지만, 최근에 이르러 다시 이 해악의 발상지인 유대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 서 마음에 안 드는 파렴치한 것들이 모두 흘러 들어오는 이 수도에서조 차 극도로 창궐하고 있었다.”22 바로 윗 글에서“크리스투스”christus라는 원문의 단어는 그리스도 예수가 죽고 부활한 뒤 여러 해가 지나면서 믿었던 당시 크리스트교 혹은 그리스 도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가리키는 단어다. 예루살렘 다음으로, 안디옥 은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 간에 예수 추종자들을 위하여 세운 가장 초기 지역이다. 혹은 다마스커스Damascus가 되는 예외적인 곳을 함 께 포함하여 가장 중요한 도시이기도 했다. 누가복음에 의해 그곳은 예수 추종자들을‘Christianoi(크리스티아노이)’ 라고 부른 첫 지역이기도 하다. 이는 사도행전에서 언급하듯“안디옥에 466 버려진 예수

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3고 주장한 영단어로 ‘Christian(크리스챤)’의 기원이 된 용어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 리스도를 고수하고 그에게 속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2001년 영화로 리메이크 했던『쿼바디스 도미네QuoVadisDomine』영화는 대작 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타키투스의 연대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폭군 네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의 핍박과 아울러 그리스도인이었던 여인을 사랑하는 마커스 비니키우스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유명한 네로 황제의 통치 아래 저술에서 언급하듯 그 화재는 A.D. 64년, 여느 해와 다르지 않게 두 명의 집정관인 바수스Gaius 와Laecanius Bassus 프루기 가Marcus Crassus Frugi 선출된 후대 역사적 사건이다. 네로는 더욱더 공개적으로 성량이 풍부한 자신의 목소리를 무대에 서게 하고 싶은 욕구가 팽배한 심리 상태를 부각시키는 때이기도 했다. 네로는 당시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대저택이나 정원에서 자신의 맑고 명 료한 목소리를 과시하고 있었던 자신의 집인 작은 무대에서 금방 실증을 내곤 했다. 또한 네로는 이 넓고 광활한, 그래서 부와 명예 그리고 식민지 속국들의 천국이었던 로마가 세계에서 아름답고 즐거운 나라임을 과시하 기 위해 공공장소에서의 향연을 허락하여 자신의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한의 쾌락과 온갖 음행으로 몸을 더럽히어 더 이상의 타락을 볼 수 없을 정도의 행위에 제동을 건 사건이 바로‘로마 대화재’이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로마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팔라티 움 언덕 및 카일리우스 언덕과 접하는 대경기장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불 길은 삽시간에 전 지역으로 펴져갔다. 누구나 그 장면을 로마 시내 높은 곳 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대화재의 불꽃은 광포한 기세를 몰아 인근 백성들 의 가정과 도로들을 파고 들었고,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시장바닥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연출되어 자살하거나 도망치고, 게다가 그것들과 함께 어우러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67

져 공포의 소리가 한데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불길을 끄 려는 시도는 온데간데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는 그 불길을 끄려는 자를 방 해하여 당국이 명령을 내린 것 같은 표현도 타키투스는 서슴없이 기록했 다. 방화로 불꽃이 삽시간에 번진 로마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안티움에 있던 네로는 그 사실을 듣고 돌아와 이재민을 돕고 자신의 정원까지 개방한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오히려 방화의 주범이 바로 자기 라는 백성들 사이에서의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한가지 묘한을 짜낸다. 여 전히 불길의 주범이 네로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냐 혹은 제삼의 인물 인지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 그는 궁여지책으로 로마 백성들의 소득에 비례하여 장려금 제도를 신설한다. 그렇게 백성들의 주거도 해결하 고 소문들을 무마하려는 의도를 내비쳤으나 이미 백성들은 그의 말에 신뢰 를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이번 화재의 사건을 계기로 그는 황금의 대저택을 이전 저택보다 더 웅 장하게 짖는다. 마치 숲이 우거진 곳에 세워진 저택처럼 잔디, 연못, 황무 지 언덕들을 설계하여 로마인들의 분노를 사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로마 에 들여와 있는 신들에게 속죄 의식을 밤새워 진행하며 지극정성으로 향연 을 바치기도 했지만 신들의 분노가 백성들의 분노와 동일한 것 같이 사그 라지지 않게 된다. 그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려 희생양을 찾아 그리스도인들에게 방화죄 를 물어 책임을 떠 넘기게 된다. 방화죄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확 대되어 당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찾아내어 죽이는‘인류 적대 죄’를 선고한다. 그리고 그들을 대중들 앞에서 십자가 처형과 개에게 물리 는 방법을 동원하여 박해와 고문에 서슴없이 진두지휘하며 처참하게 죽이 면서까지 황제 네로 못지 않게 타키투스 역시 기독교인들을 죄인 취급하여 몰고 갔다.24 468 버려진 예수

그리스도인들이 영아 살인과 인육 섭취, 게다가 근친상간을 가리킬 정도 의 적대적인 배경으로 믿고 있었으며 죽은 자가 살아 유대 땅을 넘어 로마 이곳까지 들어와 예수의 살과 피를 마신다는 끔찍한 내용을 저주한 측근의 책략일까?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못마땅하게 여긴 로마 시민들일 까? 당시 로마인들의 상식에서는 기독교의 문화 자체가 식인 풍습과 같은 것에 반감을 가지고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서 나누던 ‘형제’,‘자매’라는 말은 이집트인들에게 성관계를 맺는 파트너라는 의미 로 사용하여 성적인 문란을 밖으로 드러내는 의미로 오해 받기도 했다.25 이러한 정치적 혹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오해를 받고 급기야 예수의 죽 음처럼 희생양이 되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의 순교 사건이 계기가 되어 네로 는 자신의 입으로 기독교의 창시자인 그리스도를 끌어들인다. 그러한 사 건의 내막에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은 자들에게 바치는 희생들이 열매가 되어 티베리우스의 재위 기간에 유대 총독으로 근무한 본디오 빌라 도의 판결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경탄할 만큼의 놀라운 기록을 볼 수가 있었다. 예수의 부활이 이들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죽음과도 맞바꿀 정도의 기적과 같은 경이로운 순교들을 참아내고 인내하여 기독교의 뿌리가 이어지게 되 는 사실 앞에 부활에 대한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할 만한 사 건이 되지 못한다. 예수가 그러했듯 이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희생양이 되어 그들의 피가 땅에 흘러 흙과 함께 묻은 채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예수와 함께 부활한 듯 그들의 행동으로 알리고 있었고, 그렇게 경 종을 울렸다. 부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되던 시기는 이제 지나간 듯, 이 들의 순교 앞에 예수의 부활은 세계가 공인하게 되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실상을 낳게 되었다. 그 결과로 사도신경을 만들고 오늘날 수세기 동안 그 부활을 믿고 의지한다는 경탄과 탄복이 섞여 있었다. 설마 신화를 믿고서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69

죽는 헛된 인생이 또 있는가? 부활!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순교와 죽음에 동참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공로로 인해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리스도는 유대 지방에서 시작된 새로운 종교 운동의 창시자로 부각된다. 승리의 부활과 함께 말이다. 이들 예수의 추종자들은 극악무도한 네로 시대에 이미 로마까지 알려진 세력적 측면에서 네로의 보좌를 흔들 정도였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타키 투스, 그도 역시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으로 분 석되며 이들 그리스도인들의 죄는 방화적인 측면에서보다는‘인류 적대죄’ 라는 죄명을 통해 인류에 대한 미움이라고 써낸 자신의 저서에서 과감한 진술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네로의 책임 회피에 깊은 실망감 을 또한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실로 이상한 점이 하나있다. 통상 인간이기에 연민의 정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듯 타키투스의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새록새록 연민의 정이 생겨났다고 토로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들은 공공의 이익에 반하여 한 개인 의 잔인함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바울은“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 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26라고 고백하는 것에 개인의 잔인함은 아담과 하와로 인함이나, 네로 황제의 잔인함이나 기독교의 역사를 더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고 있음은 동일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잔혹함이 인 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잘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누군가 말히길 빌라도 총독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가 예수와 대면하여 자신의 한 말에 대해 터튤리안 은Tertullian 자 신의 저서에서 그에 관한 짧은 글을 남긴다. 빌라도 자신의 양심을 볼 때 “그는 그리스도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그가 나중에 뉘우치거나 회개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빌라도 역시 그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다. 470 버려진 예수

그의 이름에 새겨진 잔인함과 방종이 세계가 알고 있는 유일한 신으로서 의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혐의 앞에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 다. 비록 그가 예수의 심문 가운데 손을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이 당당히 존재하여 유대인들과 함께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를 만나 십자가 판 결을 했던 자라는 오류 자국을 남긴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죄와 함께 영원 히 부인할 수 없다. 북 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활동한 교부 신학자 터튤리안의 서적『변증론 』은theApology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집필했다고 한다. 비이성적인 비평과 터 무니없는 믿음에 대한 기독교적 사고의 옹호로서 당시 미신이라는 무지, 아이를 먹는다는 소문, 근친상간의 풍습과 같은 흉물스런 소문을 드러내는 잘못된 소문을 잠재우게 된다. 이 책은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 로 파급효과는 컸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그(예수 그리스도)의 드러나는 표시에 대한 엄청난 능력을 통해 마술사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마디로 악에 사로잡힌 자를 내쫓거 나, 눈 먼 자에게 시력을 회복시키거나, 나병환자를 깨끗게 하거나, 중 풍(마비된) 환자를 회복시키거나,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일과 더불 어 그 앞에서 바다 위를 걷고 폭풍우를 그치게 하는 따위의 자연이 굴복 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그가 진정 태초의 말씀이라고 하는‘하 나님의 로고스’the Logos of God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로고스는 바로, 그 하나님의 영을 바탕으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바로 그 능력 power과 이성reason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의 가르침에 의해 격 노하게 되었다. 더불어 유대인들의 통치와 진리에 가책 받아 많은 자들 이 예수에게 돌아서 뉘우치게 되는 일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 이유 로 예수를 향한 그들의 외침의 폭력에 의하여 예수는 시리아의 로마 통 치자인 본디오 빌라도 앞에 데리고 갔다. 그렇게 강탈된 형벌이 예수를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71

십자가 앞에 포기하게 만들었다. 예수 자신은 그 일들을 예측하고 있었 다. 그러나 그것은 잘 알다시피, 오래 전 엄청난 일을 이룬 예언자들의 작은 전조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아직 십자가 위에 달려 있는 그에게 그 모든 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못할 그의 죽음에 의해 다분히 적지 않은 현저한 기적들signs을 나타냈다. 그가 가진 자유 의지free-will로 인해 사형 자의 과제를 재촉하는 자신 안의 영을 말씀으로 떠나 보내었다. 같은 시 각, 바로 그 때 있었던 태양은 정오의 눈부신 빛에서 물러났다. 그것이 곧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예측이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자들은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을 일식으로 생각했다. 너희는 그 일이 스스로 세기의 징후 로 보아 아직도 공문서에 보고되어 있다. 그 무렵, 예수의 몸이 십자가 에서 내려오고 무덤에 안치되었다. 셋째 날이라는 죽음에서 예수의 부 활할 것을 예측한 짓궂은 주의깊음에 주목하던 너희 유대인들은 혹시나 예수의 제자들이 가진 부활의 의심스러움까지도 받아들인 채, 그의 시 체를 훔쳐갈까 봐 수 많은 군대 경비병들과 함께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 나, 보라, 셋째 날에 지진이 일어나 무덤에 안치된 돌이 굴러가고 경비 병은 두려움에 도망쳤다: 그 때 단 한 명의 제자들도 근처에 없었고, 무 덤은 장사 지낸 옷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빈무덤으로 발견되었다. 그러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거짓말이 하마터면 확산되는 것에 서로 근심걱정 할 뻔하여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속국 사람들과 유순한 자들 에게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의 몸이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탈취되었다고 퍼뜨림으로 신뢰로부터 물러나 있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실이 고약한 자들이 그릇됨을 전할까 하지만 그 일이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또한 위대한 보상을 향해 미리 정해 둔 그 신앙심은 아마도 어려운 그 화제에서 잡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예수 는 갈릴리에서 자신의 대부분 제자들과 함께 사십 일을 보냈다. 심지어 는 유대 지역을 비롯하여 그들이 다른 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신조 안에 472 버려진 예수

서 유대 지역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후, 온 세계에 그 복음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그들에게 주신 다음에 그는 구름에 에워싸였고, 하 늘을 향하여 올라가셨다. 이 사건은 로물루스(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영 웅이름)에 관한 한 당신의 프라귤리Proculi(그는 실제로 로물루스가 죽은 후 하늘에서 자신에게 나타나 자신의 손과 겉옷을 잡았다고 맹세하며 말했던 자)의 증거보다 더 확실한 사실이다. … … 유대인 역시 예언자 들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는 왔었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아니 오히 려 그의 재림을 그들이 기대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분 쟁도 없다. 차라리 그보다 그들이 아직도 발생하지 않은 그 재림을 믿고 있다는 것이 더할 뿐이다. 그 재림은 우리에게 드러낸 바 진행 중이다: 첫째로 그는 인간의 보잘것없는 초라함으로 수행했고; 두 번째는 장차 온 세계 위에 드리워질 것이며, 지금이 그 때이다. 드러날 신의 자비로 서; 그리고 처음의 낯선 의견의 상이한 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세워놓 은 소망 위에 최고의 일목요연한 예언의 한 형태로 된 두 번째, 역시 그 한 사람이다.”27 터튤리안의 저서를 통해 유대인들이‘한 인간’으로 평가하고, 그저 마술 사쯤으로 이해한 역사적 사실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예수의 기적과 빌라도 가 유대인들에게 내어준 일, 뇌물 매수, 유대인들의 적대감 등에서 일치하 여 보존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사료된다. 유대인들이 퍼트린 그‘거짓말’이라고 하는 대목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또한 성경에서도 거짓말에 대한 언급 중 비슷한 내용으로“너희가 잠든 사 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시체를 훔쳐 갔다고 말하여라.”28라고 되어있는 문구에서 보듯 빌라도와 예수 그리고 부활 앞에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에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타격할 만할, 그래서 혹자들은 말하길 이 미‘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간 것’에 대한 논제를 가하는 현대 학자들과 놀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73

랍도록 일치하는데 성경의 예언은 또한 경이롭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 퍼 진 사건이 오히려 부활을 종용하게 만들고 더 파급효과를 상승시키고 그럼 으로 점점 배가시킨 훌륭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그리고 유대교 용어에 맞서‘기독교’라는 이 름을 처음 창안한‘안티오크(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of 는Antioch 로마인 들을 향해 무신론자들이라고 폭풍같이 퍼부어 받았던 그 저주 때문에 이즈 미르Izmir에 해당하는 서머나 경기장에서 화형 당했다. 이슬로 사라진 서머나의‘폴리카르푸스’혹은‘폴리캅’감독, 블란디나 ,Blandian 페르페투아Perpetua, 펠리키타스Felicitas를 비롯한 수 많은 여성들 역시 순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도 제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들 에게 위안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이라는 칭호를 달게 받으며 세상에 당당히 걸어갔다. 더불어 윤리와 도덕, 관습, 문화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들의 다짐 속에 꺾으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시작은 이러했다. 초기 기독교들은 예수를 주Lord 로서 표현할 수 있었다. 그 기본적인 기초 바탕에 신divine 이라고 하여 예수를 그렇게 믿고 있었고, 하나님에 의하여 하늘에서 그분의 오른손이 붙들어 예수의 생명이 일어났다고 진술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기적과 가르침의 초기 삶에서 반영된 예수의 신성을 인성과 함께 보았다.29 지금의 시스템을 갖춘 교회가 없던 시절, A.D. 1세기 기독교인들은‘공 식적인 신조’30조차 채택되지 않은 그런 미지의 개척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행히“예수는 구주이시다”라는 말이 이들 사이에 대세였다. 이들 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초대 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자들의 신조와 기독교들의 토론장인‘공의회’31에서 가져다 준‘자 474 버려진 예수

명한 이치’ 가self-evidentAxiom 하나 있었다. 즉, 부활 소식이 스스로 증명하게 만 든 그 이치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은 로마의 압제 와 박해가운데서도 꿋꿋이 견디고 자라났다. 이들 세대를 일컬어‘열두 제자들의 시대’혹은‘열두 사도들의 시대’라 고 하는 이들이 살아 있을 때의 많은 기독교인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핍 박당하는 삶 속에서도 절대 믿음의 위안과 진리를 굳게 잡고 있었다. 비록 부활을 목격한 당시부터 로마가 기독교 공인하기까지 현대인들이 손에 쥐 고 있는 성경과 다르게 성경의 파편이라 할 수 있는 일부만을 읽었음에도 그들은 신앙과 믿음, 그리고 예수의 부활하심은 동일했다. 추후에 믿음의 문제를 다루는 최고 지도자의 명료한 가르침으로 완성본인 성경이 등장하 였지만, 얼마 전까지 참된 안내할 수 있는 가르침에 대한 것들이 구약성경 을 제외하곤 거의 전무했다. 부활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듣기도 했고, 그렇게 고민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초기 교부들’the Church ,fathers 즉 예수의 제자들 다음으로 바통baton 을 이은 세대들을 일컫는 이들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즉, 부활과 예 수의 가르침과 그의 일생을 저술로 전념하며 그것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에 성경책은 다양한 자들에 의해 집대성되고, 그 동안 교회들이 서로 공유한 편지들을 모아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만 선정하기에 이른다. “사도적 교부들‘( 속사도 교부’혹은‘초기 교부들’)은 신약성경을 제외 한 기독교의 가장 초기 저작물을 남긴, 이른바 속사도 시대를 산 사람들 이다. 그들이 남긴 저작들은 신약성경과 2세기에 등장한 기독교 변증가 Apologist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32 부활 역시 역사적으로 밝히려고 하는 고집스런 마음들을 모아 보니, 그 증거적 측면에서 열두 제자들의 다음 바통을 이어 받은 차세대 초기 교부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75

들의 저서 또한 예수 죽음과 그 육신대로 다시 일어난 그 부활에 대한 완벽 한 이어짐은 부활의 증거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연속성 상에서 중요한 역 할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열두 제자들의 죽음에 동조하여 기꺼이 자신들 의 순교들도 받아 누리고 있었다. 만약 부활이 열두 제자들 사이에서 오용투성이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헛된 남발 속에 포장된 가르침과 사복음서들의 저자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가장하여 거짓으로 남아 있었다면 다음 세대들은 그 거짓을 얼마든지 조사 하고 경계하여 폭로하고도 남았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말할 정도 로 그들은 조사하고 또 조사했을 것이다. 오히려 헛된 행위에 대한 허사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돌아다니며 예수의 죽음에 부활이라는 꾸부정한 이론 을 발라댔다면 그것은 곧‘허설’이요‘거짓부리’라고 오늘날 예수를 믿으 라고 하는 그 소리에 지겨워하고, 이를 갈았던 자들에 의해 진실이 아닌 허 구요, 허상이라고 예수에 대한 헛된 믿음임을 만천하에 알렸어야 했다. 그와 같은 오해는 요한복음 8장에도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인 가, 빛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예수와 유대인들 지도자들 간의 말다툼 속 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보고서“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 (깨끗치 못한 영)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라는 말에 예수는 자 신의 입을 통해 세상의‘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해 있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왔다고 거론하면서“너 희는 그(하나님)을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 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래된 전통 유대인들과 유대교에서 전향한 기독교인들 사이에 서로간의 정체성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에서도 유대인이자 기독교인들은 이상하게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히려 유대인 자신들이 죽인 예수를 믿는 어처 구니 없는 일이 있어났던 건 사도행전을 보면 알게 된다. 어찌 이러한 일들 476 버려진 예수

이 사람에게서 만들어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 혼란과 동일시되는 민족 안에서의 내부적 갈등이 오히려 예수를 저울질하 려는 도덕적인 이슈를 배제하고자 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이슈로서‘하나 님의 아들’,‘구원자’,‘구세주’라는 말을 오히려 예수를 죽인 자들이 퍼뜨 리게 된다. 정말 이상하지 않는가? 박해와 순교를 기쁘게 받아 마신 기독교인들 중 이방인들을 제외한다면, 이들은 과거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숭배하는 자들이고, 그럼으로 더욱더 그러한 신앙심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쉽게 다른 종교로 옮길 수 있 는 마음들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유대인들 사이에서 기적과 언약을 잘 알 고 들었던 그들에게는 개종이 쉽지 않는 결단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부활 이야기는 이들이 흠모하고 취하기는 너무 부정적이고 다 골라 쓰고 남은 찌꺼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전통 유대인들과 기독교로 전향 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놀랍도록 십계명을 기준으 로 도덕적 억측에 해당되는 구약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함께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두려울 정도로 유대인들은 구약의 예언을 한 구원자가 예수 그리스도 구 세주라는 연결을 알게 되었기에 쉬운 결정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세례 요한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에 해당되는 회개를 메시야 출현에 대비하여 연결하기는 했지만 예수의 가르침에는 죄를 위해‘회개’라는 단 어를 이용하고자 유대인들을 불러야 할 이유 말고는‘부정의’,‘폭력’, 그 리고‘빈곤’에 반대하는 유대교 안에서 움직인 첫 종교적인 선생은 아니 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을 생각해보라! 예수처럼 죽인 자들 살리거나 병 든 자를 고치고, 포도주 같은 기적을 행한 구약의 시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과 다르게 예수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식과 예를 갖추는 것을 위시하여 성적인 도덕성, 결혼의 엄수, 육적인 타락의 회피와 같은 것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77

보다‘사랑’을 무엇보다 더 숭고하게 여겼다. 보다 더 근본적인 유대교와 유대인들 안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큰 장벽은 바로 유대인들의 법률에 대 한 준수 여부였다. 이를 놓고 많은 갈등이 오고 가게 된다. 예수가 마련해 놓은 죽음과 부활 말고도 더 많은 갈등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바, 예수의 가 공할 만큼 눈에 보이는 뚜렷한‘율법에 대한 냉담함’이 그리스도인들 사이 에서 오고 간 산더미 같은 논쟁들이 복음서들을 수놓으며 많은 논쟁을 받 아 누린다. 첨가적으로 유대 질서적 차원의 율법에서 이유야 어떻든 간에 사랑과 서로 어긋나게 되는 아픔도 물론 겪는다. 110년경, 이미 유대교와 결별을 선언한 후‘안티오크’혹은 성경의‘안디 옥’지역의 감독을 지낸 이그나티우스는 나중에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실행 될 세 가지‘감독’bishop,‘장로’pesbyter, 그리고‘집사’deacon를 새롭게 제안하 기도 하며 기독교 교회의 뿌리가 되는 인물인 베드로의 순교를 알린 그가 부활에 대해 언급한 사례를 보면, 예수 탄생 후 거의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곳에서 가까우면서도 먼 다양한 지역에 교회가 급속도로 파 고들어 부활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다음을 단순하게 진단하고 있다. 만약 에 우리가 유대교를 따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할 것이다. 은혜 를 받을 수 없다고. ;(Magnesians, 8 ; New Eusebius, pp. 13-14) 그리고 그는‘안식일 규례’Keeping the Sabbath - 유대교 준수 사항들 중 하나인 - 계약을 진행한 다.‘주의 날로 인한 통치된 삶’과 함께 - 그 한 예로 부활 ,resurrection 따 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삶까지 ….”33 그리스도인이자 유대인인 이들은 살인, 간음, 이혼, 배신, 손 씻는 청결 법에 대한 의식, 유대 음식법, 십일조 등등 심지어는 유대 안식일 규례까지 중요치 않게 여긴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것들을 포함시키고 있는 그 이유 478 버려진 예수

로 인해 예수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바로‘이단’이라고 하는 낙인 찍힌 사악한 종교 집단으로 오해하고 있었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전통을 굳게 받아들었다. 설사 바뀐다고 해서 아브라함부터 언약이 시작되어 시내산에 서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서 생긴 율법들이 없이도 의인이 된다는 것은 유 대인들 세계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즉, 예수에 의해 그를 믿는 자는 전부 선한 자로 전환된다는 것이 이들에게 당연히 이단으로 낙인 찍는다고 부러워하거나 무서울 것은 없다. 그렇다면 전통 유대인들이 죽음까지 혹은 유대교에서 다른 종교로 이동하는, 그 죽음과 맞바꾸는 중대한 사안들에서 내내 생각했을 법한 이유가 된다.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신약성경을 구약성경과 비교한다면 천덕꾸러기 같 은 복음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 음이라는 거짓말까지 보태어 예수 부활에 대해 운운하며 목숨과 바꿀 정도 로 굳은 마음이 어디서 생겼을까? 실제적으로 누가 먼저 그 작업에 의견을 내였을까? 열두 제자들이 꾸며놓은 거짓 이야기에 휩싸인 이 미스터리 음 모 속에 자신들이 죽음까지 담보로 모든 것을 거짓으로 뒤집어 놓을 것인 가? 게다가 부활했다고 거짓 진술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자 했다면 부 활을 그 어떤 다른 옷을 입은, 마치 어느 왕의 입었던 옷보다 눈부시게 빛 나고 찬란하기 그지없이 예수가 천박한 육체의 옷을 입지 않고, 아마 다른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처럼 그 어떤 다른 것으로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었 을 것 아니겠는가? 만약 복음서를 가짜로 꾸며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죽음 과 부활의 결과물들은 그 어떤 면에서 아름다움과 멀리 있었다. 신은 위대 해야 한다. 그런데 신이 죽음을? 그리고 부활까지? 게다가 인간이라는 종 자가 그렇게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까지 얼마 전까지 숨 쉬고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79

있던 예수를 그들의 지존자적인 스승이자 하나님의 아들, 게다가 신으로서 떠받들 정도로 작용받아 오히려 반란에서 주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죽기 위해 책을 쓰고 집필하는 자가 과연 있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성경은 구약부터 예수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었고 후 대 유대인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예수에 대한 부활 이미지를 더 확실히 잡 았다. 오히려 유대인이 유대인의 전통에 입각하여 쓰게 되면서 예수를 통 해 이러한 유대교를 침범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진정으로 한층 더 강화시키 는 작용을 하였다. 점차적으로 특별한 견해에는 구약 법률을 해석함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도 했다. 그런 수고와 인내를 생각해 지속적으 로 말한 예수의 연관성에서 구약이 없다면 예수 존재는 무의미하다. 구약의 율법들이나 관습들이 필요치 않다면 예수 자체가 필요 없다는 말 이다. 물론 구약부터 행해진 모든 율법과 언약에 관련된 문구들이 예수 시 대에 메시야를 필요로 한 조건으로 달았다는 것은 이미 간파한 것이기 때 문이다. 그러한 것을 적용시킨다면 사람들에게 율법과 언약을 지키고 행하 는 복종에서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것들을 어느 정도 과감히 부수려는 경우를 받아들여야 할 사안과 사유가 결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지, 결단코 로마의 정치 풍토나 그 어떤 강압에 의해 예수가 그것들을 폐지하거나 없애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 에 이교도 혹은 로마인들 사이에서 질색할 정도로 무신론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변증법’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생겨나면서 초기 교부들에게서 많은 로마인들 혹은 헬라인 게다가 유대인들에게까지 그러한 분야를 서적 으로 출간하면서 오히려 그리스도를 더 알리게 된다. 유스틴, 오리겐, 그리 고 클레맨스 2세 등이 변증법적 가르침과 교육으로 그 세대를 주름잡게 되 면서 기독교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어간다. 기독교도들은 그렇게 박해와 핍박 속에서, 게다가 변명해야 하는 변증법 480 버려진 예수

적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잊지 않고 전통처럼 지켜온 초기 기독교 예 배의 형태가 전해진다. 물론 과거와 달리 형식과 내용이 조금 변형되지만, 그래도 유지되어 가는 것이 있었다. 그 의심할 것 없이 아주 뚜렷하면서 화려한 이들의 믿음에 드러난 명백을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은 바로 세례 와Baptism 성찬식Eucharist , 그리고 매일의 기도Daily prayer 들이 그 주요 기독교 전 통이자 문화로 남았다. 오히려 그것이 예수 부활에 대한 또 다른 증거로 남 는다. 특히 기독교 전통인 사도들의 전통 에Apostolic Tradition 따르면 세례를 받고 자 모인 참가자들은 세례를 하고자 하는 물에 서있는 성직자 앞에서 그들 은 다음의 질문들에 놓이게 된다. 뉴 에우세비우스New Eusebius의『사도들의 전통』이라는 문서를 보면 질문과 대답 속에 세 번을 질문하면서 각각에 대해 대답까지 해야 하는‘물세례’ 가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 중에 놀라운 사실은 두 번째 질문에서 부활에 대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그 때 그의 머리에 성직자의 손이 들린 채, 그는 한 번 그를 세례 할 것이다. 그리고 즉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예수 그리스도, 마 리아의 성령에 의하여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 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고, 죽었으며 장사되어 죽음으로부터 삼 일째 다 시 일어났다는 것과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아 있고, 또한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할 것임을 당신은 믿는 가?’ 그리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그가 대답한다. ‘네 믿습니다.’… … ”34 이러한 신경Creed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도신경에 등장하는 기 도 문구와 거의 유사하며, 이러한 내용들은 마치 과거 사도신경Apostles’s creed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81

과 니케아 신경Nicene creed - 일찍이 니케아 회의에서 의견을 모은 초기 형태 - 을 사용하여 세부분으로 나뉘어지는 구조로 사용된 초기 사도신경은 믿 음의 세례 고백으로부터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문구는 바로 예수가 부활 했다고 하는 강력한 증거로 뒷받침되어 세대를 주름잡았다. 부활이 없다면 이들의 준비와 문구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믿음과 마찬가지로 이들에 게 이러한 행위는 가히 불필요한 쓸데 없는 짓이다. 다른 버전으로는 A.D. 325년경 만들어진 니케아 신경theCreedof 과Nicaea A.D.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 에서The Creed of Constantinople 동일한 문구인“본디오 빌 라도에게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일 만에 살아나 하늘로 올라”갔다는 문구 가 동일하게 첨가되어 부활에 대한 근거에 대해 신호탄을 남긴다. 서기 180 년 레온의 주교 이라네우스는“복음의 기반은 너무도 견고해 이교도들조차 증인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교도들까지 합세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 이단 집단이었던 기독교인들 은 질투적인 측면에서 분노의 대상자였고, 치부의 어머니였으며, 위선자들 의 앞잡이 노릇을 대신 해야 했고, 강도로 취급 당하기 일쑤였다는 것은 역 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더욱이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보다 이방인 들 속에서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삼고 부활 신앙에 의지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진 것 또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이방인들도 그리스 철학을 배우고 듣고 느끼고 사색하는 학문이자 자신 들이 마련한 신들을 깨우치는 종교적인 가르침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까지 예수의 부활에 영향을 미쳐 다시 한 번 완전한 유일신의 존재나 신의 역사 에 대한 내용에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실제 플라톤, 아리스 토텔레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각기 그리스 철학의 주류로 형성되어 이후, 바울이 전하는 기독교 사상이 그들 안으로 더욱더 쉽고 빠르게 전파되는 지름길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스 철학은 초월적인 무언가의 절대적인 유일한 분이 신으로서 자리 482 버려진 예수

매김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고민하고 있었다. 비록 다양한 신들이 존재함에 도 이들이 알고 있는 그 어느 절대자 신의 존재에 덧붙여 인간의 운명은 결 국 철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육체의 껍데기에 불과한 몸이‘영혼의 무덤’ 이자 감옥 그 자체였음을 통해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 운명이 신성화, 즉 황제가 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어하는 충동을 늘 간직하였기에 바울의 이방 전파는 기회가 되었음은 분명했다. 그리스인들도 절대적 신을 숭상화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황제들의 조각 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인간이 신성화되는 일에 경의와 찬사, 그리고 숭 배에까지 이르는 일을 통해 우상숭배사건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어나 갔다. 그 사실이 부활의 신성을 믿는 예수 추종자들의 사고와 사상을 제대 로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누가 신으로 떠받들어진 황제를 위 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수 만명의 운명을 유지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들 은 세상을 두려워한 것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던 자들이기에 그러하다. 그런 가운데 슬픈 이야기는 가이사랴 감독을 지낸 유세비우스Eusebius of 의Caesarea 기록에 의거 초대 교회 야고보가 순교하자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 이 66년 11월경 요단강 건너 펠라Pella로 순교에 지친 나머지 이주했다. 물론 유대 전쟁 이후 지중해에서 유대인들이 전 지역으로 흩어지는 사태를 누구 도 막지 못했고, 그 사건은 예상치 못했던 슬픈 일이었다. 그 후에 야파Jaffa 인근의 얌니아Jamnia에서 바리새인들이 주축이 되어 의회 를 구성하여 유대 경전의 목록을 결정하게 된다. 그중에 암송되는 열여덟 개의 축복 기원문이 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안에 열두 번째 기도를 보 면 배교자들, 즉 나사렛 사람들을 저주하는 문구를 추가하면서도 기독교에 순교와 핍박 속에 불어 닥친 부활의 열풍은 잠재우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이 실제로 존재했음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공공 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자료다. A.D. 165년경 로마에서 죽음을 맞아들인 순교자 유스티누스(저스틴)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83

의Justinus, A.D. 100-165 공식적인 법정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 스 황제에 의하여 6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그는 고집스럽게 그리스 철학을 고집했다. 주로 로마에서 활동한 그로서는 그리스 철학에 목을 맨 이유가 바로 헤라크리투스나 소크라테스 같은 그리 스의 이교 철학자들이 하나님의 우주적 말씀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를 발견 했고,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육신적으로 등장했다 고 하는 로고스Logos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곤 했다. 당시 철학자들은 로고스 를 복음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 지어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 었다. “그들(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법을 따르지만 법보다 높은 삶의 방식에 치우치고 있다. 그들은 모두를 사랑하지만 모두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 다. 그들은 이름도 없으며 저주를 받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내몰리지 만 생명을 얻습니다. … …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안에 있지만 이 세 상의 것은 아닙니다.”35 그는 그 말이 씨가 되어 스토아 철학에 고집 센 황제의 지시로 참수형에 처해지는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탁월한 변증가에게 그리 스·로마 신들과 그리스도의 운명 중 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유명한 말을 남긴 터튤리안 은Tertullianus 박해가 가해지면 이상하게 고통의 강도가 심해지는만큼 더 십자 가에 고난을 당한 예수와 하나됨을 극적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 로 순교자들에게 원동력이 되었고, 교회 안에 있던 많은 주역들 역시 마찬 가지였다.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 의Septimius Severus, A.D. 145-211 칙령을 어겨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의 손에 죽은 페르페투아를 위시하여 박해 기간 동안 순 교 당한 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484 버려진 예수

자들이었던 것이다. 흙에 속한 자, 하늘에 속한 자 부활의 역사적 사건 앞에 게르트 류데만이 말한‘주관적 환상 이론’을 이 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수 추종자들이 단순히 주관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환상으로 본 것으로 이해한 적대자, 그들 사이로 그의 말에 불끈하 여 탈봇신학교Talbot School of 의Theology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인 윌리엄 L. 크레이 그 는WilliamLaneGraig 자신의 사이트에‘게르트 류데만의 망상이론’에 대한 비평 의 글을 남기고 있다.36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그 어떤 가장 알맞음에 충 분한 예수 운명과 예언에 대한 역사적인 가설은 반드시 네 가지 필수 불 가결한 확립된 사건들을 설명해야 한다:‘예수의 고귀한 묘지’,‘그의 빈 무덤 발견’,‘포스트 모템Post-Mortem(사망 후)37 의 출현’,‘예수 부활 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역사적 표현의 시도로 사용된 기본적인 척도를 사용해 볼 때 류데만의 망상이론은 매우 여유가 없는 제안된 설명의 범위를 가지고 있고, 너무 약한 설명의 힘을 가지고 있고, 그럴 듯 하지 못하여 받아들이기 어려우 며, 받아들일 수 없는‘Ad hoc’(라틴어로‘임시방편의 일반화 할 수 없 는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받아들였던 믿음들의 계수가 많 았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고, 이러한 다양한 사건의 검사들을 만나는 그 들의 라이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윌리엄 크레이그는 류데만의 가설보다 오히려 성경을 더 신뢰하는 무게 를 두고 있다. 사실 빈 무덤에 대한 사복음서의 주장들과 고린도전서 15장 에서 언급하듯 예수 부활 사건, 그 즉시 수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 당시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85

에 살아 있던 증인 약 500여명 모두의 리스트를 무시하고 있었고, 고린도 전서의 편지 시대에 있어서 바울에게 빈 무덤에 대한 사실은 확고한 증거 중에 하나였고, 그 사실은 누가복음에 의거하여 빈 무덤 이야기가 전파되 었다. 또한 제자들이 예수의 몸을 훔쳐 내었다는 초기 유대인들의 변증은 예수의 몸이 무덤에서 출발한 과감성에 대한‘망상이 아닌 역사적 진실성 에 대한 사실적 근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예수 부활의 적대자들은 간과한 듯 했다. 만약 유대인들 앞에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믿고 그렇게 외친다면 다른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그의 몸을 훔쳐 갔다고 말할 것이며, 그리스도 인들은 무덤의 군인들이 그 사실을 막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 유 대인들은 군인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는 증거로 대제사장이 무덤을 지킨 군 인에게 그렇게 훔쳐갔다고 이야기 하도록 뇌물을 받았다는 복음서에 언급 한 내용을 볼 때, 그 사건은 이미 초기 기독교인들이나 유대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예수에 대한 루머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 루머는 오히려 빈 무덤 에서 출발한 역사적 근거의 시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으로 말미암 아 예수의 무덤은 비어있다는 것이 초기 비평가였던 변증론자들에 의한 진 실을 간과한 채, 스스로 드러내어 불거진 문제점들이 비판적인 현대 성경 학자들의 오류가 되었음을 모르고 있다. 열두 제자들과 예수에 대한 일대기를 기록한 복음서들이나 바울이 쓴 편 지들이 실로 가공된 추측과 날조라면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로 전향 할 필요성과 갈증을 느끼지 못하고 설득력을 잃어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존 스토트의『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책이야 말로 가장 권위가 있으며 기독교에서 빠질 수 없는 절묘한 극적인 반전에 녹아 있는 십자가의 복음 저서라는 데 극찬을 아끼지 않는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옥스퍼드 대학 역사 신학 교수인 존 스토트를 만나 복음적인 신앙의 소명을 깨달으면서 그는 486 버려진 예수

추후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날카로운 초점을 두고 깊은 연구와 묵상으 로 십자가의 재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었다. “부활절의 그 대반전은 승리의 외침이다. 그 승리는 오로지 그리스도만 의 것이고,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부활신앙의 감춰 진 능력이 모두 드러나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승리는 모든 유한한 인간 의 종말을 변화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가 쓴 책에서 십자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새롭게 재조명하면서 나사렛 에서 태어나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죽은 영혼을 치유하고 고침 받고 죽었 다가 불과 삼일 만에 이제 다시 살아나면서 자신의 과업만을 남기는 사건 을 볼 때, 그것은 우리와 동떨어진 것으로 과거 이스라엘이 그러하듯 자신 들만의 구원에 인도된 것처럼 예수 역시 혼자만의 전유물로 남아 남의 나 라 이야기 혹은 저 먼 외계인들의 나붓거리는 소리로만 남길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죽음을 갈리고 나서 하늘에 속한 자로서 예수는 자신을 핍 박한 초기,‘사울’에게 어느 날 다메섹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서 맥그래스의 표현대로 그것은 대반전이자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영화 의 주인공으로 되었다. 이제 그는 빛의 예수를 만나는 변화를 체험하여 느 끼면서 사도들과 동일 선상에 노이게 되었고 로마 속국들의 지역들을 전도 하며 그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나중에 그는 고린도 교회에 첫 번째 편지를 보낸 다. 그의 남은 편지 중 고린도전서는 바울 자신이 세운 교회 안에서 다양한 갈등, 즉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불거진 문제들처럼 몸과 불멸에 관한 갈등 38, 철학적 이상과 신비에 관한 조류에 의거한 다양한 의견충돌39속에서 첨 예하게 대립되는 현상은 초기 기독교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 다소 움츠리고자 하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이 상황 앞에 흠칫 놀라움이 가득한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87

그 바울의 편지는 그 당시 부활로 붉어진 다양한 의견들의 대립이 바로 부 활의 증거 중 그 하나의 단서가 되었다. 첫 번째로 묻는 질문으로 바울은 과연“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40라고 꾸중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 과 함께 그가 세운 교회 안에서 부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만약 그 사실이 진정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사건 실마리를 제공하는 단서로 작용한다면 그 사실을 손쉽게 캐낼 수 있다. 부활은 그렇 게 교회에서도 버려지고 있었던 증거다. 부활의 첨예한 대립이 가지고 올 후폭풍 앞에 우리는 다소곳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사실이 맞아 떨어진다면 자신들이 세운 교회와 그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어리석은 사고와 사상으로 똘똘 뭉친 어리석 은 자들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바보라는 소리밖에 안된다는 것을 이미 알 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바울은 부활에 있어서 그 어떤 이유 가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은 그것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 중에 마지막 증인이 었다는 것과 또 부활에 대해 몸소 보았던 다른 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어 리석은(?) 일을 범한다. 하지만 그 내역을 통해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할 수 있는 편지의 내용으로 부활에 대해 직접 목격한 시대라는 놀라운 폭로 에 대한 사료로 발전했다. 실제 초기 교회들은 신약의 파편과도 같은 바울의 다양한 편지들과 및 다른 증거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는 의견이 팽배하고 있다. 만약 그 편 지들 사이로 교회들이 공유했다고 하는 당시 시대 조류에 있어서 그 사실 을 가지고 만약 그 어떤 자가 부활에 대한 고백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시간 을 할애하여 그 명단의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보고 실상을 파악함으로 진실 과 거짓에 대한 대립을 무마할 수 있었을 것은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이 다. 그렇지 않는가? 488 버려진 예수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유대인들은 부활에 대해 어리석은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헬라인들은 그 당시에 논리적이며 수학적인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 로 그 같은 거짓이요, 허풍쟁이들의 논단에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 만이 부활했고, 게다가 몸과 영혼을 간직한 채 나타났다는 것은 우스운 이 야기가 아니고 또한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부활이 거짓인 지 참인지에 대한 고린도교회의 갈등과 대립에 대한 실상을 경고하고 있었 다. 그렇다면 더욱 놓치지 말아야 할 경종을 울리는 질문은 유대인들이 말 하듯 하나님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 가? 예수가 부활한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온다면“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41라고 말한 내용을 깊이 상고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더욱이 씨가 죽 어 열매를 맺고, 그 결과 과실이 이루어져 많은 자들에게 덕이 되고자 죽은 예수가 만약 그렇게 죽은 뒤 유대인들 사이에서 말하는 음부의 권세를 이 기지 못했다면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당 연히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한다는 것은 놀랍도록 우리를 불행한 자로 만든다. 불행을 넘어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향한 소명과 그의 뜻대로 노력 하는 삶과 땀에 얼룩진 채 살아온 허무한 인내 가운데 무릎을 꿇을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에 대 해“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 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42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부활을 증거하러 다니면서 증거하는 말이 거짓이라면 스스로가 불 쌍한 자라는 변증을 통해 그는 부활에 대한 사실성에 부활을 맹신적이고 허무한 설화라는데 초점을 맞추어 예수의 삶과 부활을 깎아 내리는 자들에 게 무게 넘치는 역설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두 번째 부활에 대한 질문은 바로“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89

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43는 것이다. 바울은 이 끊임없는 질문공세에 지 칠 대로 지쳐 자빠질 정도로 현기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여러분은 어리석다!”You full 라는 말을 첫 시작으로 부 활에 목말라 하여 심한 의구심이라는 갈증에 놓인 이들에게 바울은 부활을 가장 늦게 체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으로 나타난 예수를 만난 쾌재 를 바탕으로 부활에 비웃음 짖는 자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망라한 다. * ** 지구 상에 수 많은 몸과 그 형체는 다르면서도 오묘하게 서로 비슷함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하나같이 육체라는 껍질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준 것도 아니고 받고 싶어서도 아닌 그냥 달려있는 듯 그렇게 살아가고 있 다. 만약 유전이라는 과학의 원리와 아메바처럼 진화론에 입각하여 무언 가 점점 발달하여 만들어졌다면 돼지 껍데기인 피부와 정신적인 영적인 인 간의 합성인 작용이 되어 사람 안의 내부는 그대로 있고 피부는 동물이라 는 돼지 피부로 혼합되지 않았다고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사람의 육체가 따로 있고, 짐승의 육체가 그러하고, 새의 육체와 곤충의 피부 역시 그러하 며, 물속의 고기들 역시 동일한 자신들만의 색깔과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옳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침펜치의 DNA구조와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사 실 그 DNA의 연구 성과는 인간의 두뇌 3%에 해당되는 성과이다. 여전히 97%의 인간 DNA는 전혀 침펜치의 두뇌 구조와 다르다. 오직 3% 범위 안에 서 침펜치와의 DNA 구조가 인간의 그것과 대략 97%에 비슷하다고 과학계 는 알고 있다. 그 발견된 수치 범위는 너무 협소하다. 고작 인간 DNA의 3% 에 과장하여 침팬치와 인간의 같은 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과학의 오류라고 본다. 이제는 침펜치의 DNA와 다른 점들이 더 훨씬 인간에게만 있다고 본 진화론자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실정에 원숭이와 침팬지 그리고 뱀과 490 버려진 예수

도마뱀 사이는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DNA 구조 는 비슷하지만 완벽하게 다르게 구성되어 있듯이 육체의 피부와 저 하늘의 영적인 몸과 피부는 다르게 되어 있음은 바울 역시 자신의 능력 안에서 그 이야기를 토대로 말하고 있었다. 흙에 속한 영이 따로 있고, 영에 속한 자들이 있듯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라고 바울은 경고한다. 그의 편지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그렇기에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결코 들어 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어서인지, 썩은 것 또한 썩지 아니할 영적인 그 피부와 몸 에 대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에 예수가 다시 지상에 내려온 그 때 부활에 증거처럼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그 시점에 죽은 자들이 이제 썩지 아니할 그 무언인가로 변하여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목 소리 톤을 높이고 있었다.44 비록 죽어가는 자들에게 피부는 썩어가고 있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모두가 미치광이이며 예수 를 맹신적으로 믿는 열광자 혹은 지식적인 측면에서 눈먼 맹신자이다. 그 래서 우리는 결국 신에게 버림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부활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 래서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으로 그 막을 내렸다면 여지없이“내일 죽을 터 이니 먹고 마시자!”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믿음이요 진리요 길이 다. 이제 오늘부터 술을 마시고 여흥을 즐기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동안 마시지 못한 술잔을 기울이면서 고주망태dead ,drunkenness 즉 정신이 나가 취한 상태가 죽을 때까지 부어라 마시는 한국적 사고가 이 때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쾌락과 로마사에 길이 남았을 네로처럼 향락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길바 닥에서 옷을 벗고 차마 입으로 담지 못할 일을 서슴지 말고 유혹에 우리 의 몸을 내맡겨도 된다. 그렇게 흥청대는 행위에 그 누가 제동을 건단 말인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91

가? 심판도, 정의도, 거짓과 진실 그 어느 것도 가려지지 않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던 무슨 상상을 하던 그것은 당연히 우리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고 그러한 행위가 올바르게 정당화 되어간다. 여전히 번성하고 선한 양들 속에 목자의 길을 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도 염세주의와 무신론을 펼친 쇼펜하우어, 루터파 목사의 아들이었음에도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받아들인 신의 죽음을 외쳤던 니체, 오늘날 만들어 진 신을 주창하는 리처드 도킨스 등등 …, 오늘날 신의 부재를 외치고 유신 론적 사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무수한 인간들 사이에서 바울은 다시 신의 존재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흙, 공기, 불, 물이라는 네 개의 물질이 이 지구를 형성하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요소라고 한 헬라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러한 사고를 지금도 배 우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 철학자들의 말을 여전히 잘 받아들인다. 또한 정 치학, 의학에서부터 종교와 철학을 두루 널리 섭렵한 엠페도클레스는 지구 위에 존재하는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두 가지의 힘이 바로‘사랑과 증오’ 라는 말을 하면서 자연철학적 결합과 분해의 요소를 주장하듯 바울을 증오 하는 유대인들 혹은 로마인들의 사이에서 바울은 이 세상의 삶의 존재 여 부는‘부활과 죽음’사이에서 날마다 죽음으로 시작된 부활을 주장하는 자 로 남았다. 예수의 부활이 이루고 간 쾌거는 역사에 남을 만한 웅대한 과업이자 장 대한 위업이었고, 게다가 그것은 지상의 사업이 되었다. 예수가 뿌려놓은 씨가 죽었지만 얼마 후 새싹이 돋아 열매를 맺듯 살아서 역사하는 한복판 에서 예수 부활의 사건은 이제 유대 사회 통념이 되어갔다. 부활은 멀리 있 지 않는다. 자연에서 보면 알 수 있다. 뿌리만이 존재하면 꽃과 열매는 다 시 핀다. 예수에게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뿌리가 존재했기에 신의 영역이 되어 다시 살았다. 초기에 기독교를 흠모하지 않고 그들에게 맹공격을 퍼부었으며 그들을 492 버려진 예수

잡으러 활개치고 돌아다녔던 바울이 무엇이 아쉬워 정신작용을 제대로 하 지 못하는 인간이 부활했다는 정신나간 괘상한 이야기를 퍼트리는 사람으 로 유대인의 변질자가 되었는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이전부터 간접적으로 들었을 것이며 그 어떤 사실로 인해 죽음에 주동자가 된 것은 어찌 보면 환자였던 것이다. 그가 죽음에 놓 인 어리석은, 아니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유대인이자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을 평가절하로 진단하고 판결자로서 그들을 증오했던 그가 무 엇인가로 미쳤다는 것은 필시 계기가 수반되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이다. 그러한 망상적인 증오에서 그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자 혹 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즉 동포이자 제 삼자로서의 다른 유대인들이 보기에 그를 두고 미친 자라고 할 정도로 그는 과감히 역전되어 유대인이 자 이방인들을 전도하고픈 사랑으로 저주와 평화를 넘나들었다. 결과는 반드시 원인을 수반한다. 바울에게 부활 신앙은 결코 신화와 달 랐다. 신화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거짓된 사건이지만, 부활은 하나님이 만 든 사건이다. 결코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었던 현실이다. 결국 하나님 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도 그것은 위대한 유산이 되고 말았다. 바울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단연코‘부활’이자,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 래서 기독교에서 볼 때 그‘부활’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그러한 익숙함 이 다른 사람을 예수의 부활에 대한 정신으로 흐리게 했다. 제자들에게 늘 외치고 다녔던 핵심이 바로 부활에 대한 증거를 미리 설파하였던 예수의 내용을 제자들이 과거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예수의 부활에 죽음 과 승리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진동이 없어 전혀 울리지 않는 종bell과 같 이 되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 어느 한쪽만으로 쏠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부활은 둘다 끌어 안았다. 죽음이라는‘실패’와 승리라는 값진‘보석’을 말이다. 넓은 선입견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활이 승리로만 끝나서는 안 된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93

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부활 에 대해“신약 성경은 부활을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들을 회복시키기 위 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의 상징이자 약속이라고 설명하고 있 다”라고 부활에 대한 넓은 개념을 펼치고 있다. 세계 모든 자들에게 예수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그는 그 방법 대 신 인간에게 기회를 주어 모든 것에 권세와 권한을 대행했다. 그것과 반대 로 우리를 회복에 방종하고, 또한 자신의 아들이라고 칭찬을 마지 않았던 아들 예수를 버린 하나님이 숨쉬고 웅크리고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핵심이다. 부활은 승리만을 가진 전리품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고난과 함께 동반하 였다는 잔인하지만 거룩한 길이었다. 이는 부활이 비록 예수의 죽음 앞에 서 무언가 없어 보이는 듯 하다가 강력한 하나님의 회복과 고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의도가 있는 부활의 초점으로 인해 우리는 또 한 번 고통과 회 복이 흡사 선과 악의 공존의 세계에서 함께 메아리치고 울부짖었다. 이는 마치 우리 내면과 비슷하다. 즉, 우리 안에 솟구치는 다양한‘내면의 고통’ 과 하늘에서 울부짖는 영, 이 사이로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죽음의 상황이라는 현실 속에서 무신론자들이 소리치는“십자가에서 내 려오라!”혹은“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외치는 현 실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러한 답변하지 못할 것만 같은 그 슬픔이 공존 하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 가운데 부활이라는 극적인 실제 사건을 토 대로 신의 부재를 외치는 자들에게 그의 존재를 잘 드러냄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억울한 현실 속에서 부활의 원인 제공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완성하였고, 그것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맥그래스가 말하길“부활은 완고한 인간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기나긴 과 정의 화려한 절정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통해 부활은 기다림을 수반한 494 버려진 예수

다고 기억해야 한다. 사실 무서운 것은 이것이다. 아직 완벽한 이 땅의 해 결책이 아니기에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만약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나 라가 완성되었다면 우리는 결단코 고통과 아픔에서 방치되지 못해야 했다. 그렇기에 현재 부활의 결론은 결코 완료된 시점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래 서 부활은 아직 우리들에게 저주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결과물 이 아직 출발점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여전히 종착점에 다다르지 못했고, 지금 현 시대에 비교해본다면 그 시사점을 알게 된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구약시대, 오히려 초기 태초에 천지가 마치 우리 의 인생처럼 혼돈하고 어지러운 가운데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듯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아직 결말은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45시킨 것처럼 우리의 손에 서 벗어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한다. 부활의 지휘봉은 우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절대자의 편에 붙어 우리를 마구 혼돈 스럽게 했다. 죽음을 보았던 제자들은 하나님이 좀처럼 지휘와 사태에 대 한 해결책을 알면서 건져 내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도록 방치했던 것…, 나 는 그것을 나중에야 간파했다. 복음서에 기록된 그들의 무지가 드러나지 않았는가? 또한 그들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그로 인해 인내심이 아닌 조바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끝내 죽음 앞에 예수를 버린다. 그렇지 않았는가? 결론적으로는 하나님, 그가 해야 했던 일이 예수를 내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죽음에 방종한 것이며, 그 죽음이라는 불행한 일로 인해 자신의 위대 하였지만 불행히도 버려진 아들 예수를 부활시킴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 하게 되었다. 부활은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이미 메아리치고 있었다. 예수는 그것을 알았기에 고난과 치부를 드러낼 조롱을 참고 인내하면서 모든 것을 승화시 키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 다. 역시 부활이 없다면 유대인들에게도 희망은 없고 열두 제자들과 초기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95

기독교의 웅장한 예수 혁명에 불사르지 못했다. 다만 우상 신들을 믿는 이 방인 취급 받아 우리 개인의 죽음이 다른 생명을 죽인다고 눈 하나 깜짝하 지 않는 하나님에게 우리 역시 남아있는 한가닥 희망과 부풀었던 저 너머 의 새로운 하늘의 초원을 꿈꾸는 것이 아마 덧없이 되었을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 나지 못했다면 우리 또한 언젠가 죽을 따름이고 죽음이 결말이다. 허무하지 않는가? 그래도 그것이 정말 불행한 마지막이 될 뻔하 였다. 그래서 아마 초창기에 제자들도 예수의 죽음을 보고 허무함을 느꼈 을 터…. 무질서한 존재 속에 사는 우리에게 부활이 한 가닥 남은 희망이요 삶의 터전이 되고 말았다. 지극히 죽음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자 우리를 괴롭히는 적대적이면서도 떨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인 불가분 관계이기 때문 에 더욱더 우리 인간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부의 적이면서 동 시에 외부에서 오는 충격이다. 그럼에도 그 충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창조 자가 창조를 하였던 것이 당연하듯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새롭게 시작되어 도약되어가는 지름길로 가는 길이 생기게 될 것이다. 첫 사람인 아담은 온전하지 않는 죽음으로 끝을 맺었던 육체와 영이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는 완벽한 자, 즉 첫 사람 아담처럼 육체로 입었지만 온전하여 완전하게 된 우리 모두를 살려주는 완전한 영46이 되어 우리 곁에 있기에 부활의 증거를 제거하거나 혹은 부인하는 자들에게 그들을 옭아매 는 스스로의 덫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계획했으며 이 땅에 속할 뻔한, 그러나 이 땅에 속할 이유가 전혀 없는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이 세상을 주관하여 하나 님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어 결국‘흙에 속한 자’가 될 뻔한 우리를‘하늘에 속한 자’로 만들었다. 그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이러한 비밀스러웠으 며 극적인 계획을 통해 삐딱하게 된 창조적 질서의 세계가 이제 새로운 시 496 버려진 예수

대를 맞았으며 곧 펼쳐질 나래의 행복을 바라보며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 을 잘 그려보아야 할 것이 우리의 차세대 사명으로 부각된다. 그 출발이 행 복만은 아니다. 바울의 말이 적혀 있는 성경 중 로마서에서 그는 흥겨운 기 쁨과 영광을 받았음에도 동시에 고난이라는 섬뜩한 단어를 동일한 쟁반 위 에 같이 올리고 있었다.47 A.D. 177년경 골의 리옹에서 블란디나Blandina라는 장애인 여성 노예가 대 중들 앞에 서 있었다. 황제에게 분향할 수 없음을 제차 강조했고, 그 일로 그녀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고문을 감당해야 했다. 병사들은 그녀를 경기 장으로 끌고 가서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 고 굶주린 맹수를 풀었다. 그러나 맹수는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했고, 이를 참지 못해 그녀의 피부를 모두 벗겨내고 채찍질했다. 그 후 불에 달군 석쇠 위에 그녀를 올려놓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 속에 서 이러한 상황을 묵묵히 숨죽여 지켜보던 이방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그 녀의 죽음에서 예수의 처형장면을 떠올리게 되었고 희망의 등불은 여전히 로마 제국의 구름 위를 덮고 있었다. 제 10 장 꺼지지 않았던 부활의 불씨 49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10: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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